심한 불안증에 시달리다가 왜 나는 불안한가? 하고 생각해봤다.
그건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심이 내 안에 자리잡았기 때문이었다.
원래 글을 써서 돈을 벌기란 쉽지 않다. 이유는 첫째, 글이란 돈벌기 위해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글을 쓰려면, 다양한 독서는 기본이다. 다른 글을 읽는 것이 기본 재료가 되어 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나란 인간은 독서와는 담 쌓고 산다. 도서관에 가야 책을 읽는 습관은 오래 되었건만, 이 코로나 시대에 도서관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핑계에 불가하다. 나란 인간이 원래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나는 책을 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욕심을 버렸더니, 불안감이 사라졌다.
어쩌면 불안이란, 실력은 부족한데 목표는 지나치게 클 때 나타나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대학을 가려고 공부를 하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늘 불안했었다.
서울대를 갈 실력은 안되는데, 목표는 꼭 서울대를 들어가야만 하는 거였으니까.
여기서 또 아버지 얘기를 한번 하자면, 우리 아버지는 늘 '호랑이를 그리고자 해야 고양이라도 그린다.'라는 사고의 소유자였다. 또,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는 게 낫다.'라고 늘 얘기하셨는데,,, 이건 부모로서 자식을 양육할 때, 하지 말아야 할 사고방식이라고 본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완벽주의와도 다소 비슷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부모에게서 양육되는 자식은 늘 불안하다. 자신의 실력이 누구든 완벽할 수는 없기에 불안하고, 목표가 너무 높아 스스로의 실력이 그에 못 미치니까 불안하다. 완벽하게 못하느니, 차라리 포기해버리기 쉽상이다.
정말 호랑이를 그리려다 결과적으론 고양이를 그리게 되었을 수도 있다, 나처럼.
서울대 입학을 목표로 했더니, 비록 간호학과지만 서울대 입성은 성공했다. 그러나 결과가 좋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그 속에서 양육된 자식은 늘 불안하고 불행하다.
비록 완벽하지 못한 부모 역할이겠지만,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사랑한다거나 게임 안하고 말 잘들어서 사랑한다거나 그런 조건 없이 그냥 그저 자기 자식을 사랑한다는 모습을 부모는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자식은 부모 삶의 대변자가 아니라, 자식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주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욕심(나의 실력에 비해 큰 목표)이 불안을 부른다.
또, 잘하지 못할 바에야 안 하는 게 낫다는 사고방식이 불안을 부른다. 더이상 불안하지 말고 행복해지자.
글을 써서 돈 벌 실력은 안되는데, 돈을 벌고자 욕심을 부렸더니, 불안해졌다.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멋지고 재밌는 글을 써야지 했더니, 불안해졌다.
오히려 불안해서 글 한 자도 쓰지 못했다.
다 내려놓았더니 마음이 편안해져서, 지금 글을 쓰고 있다.
매일 글 하나라도 써보자,,, 라는 작은 목표여야, 글(실천)을 쓰게 한다.
너무 큰 목표를 지니고 욕심을 부리면, 불안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실천은 요원할 수 있다.
여튼 그렇다는 얘기다.
덧붙임 : 누군가 얘기했다. "성공은 나타나는 것에서 이루어진다!"
누군지는 생각 안나지만,,, 들어본 많은 명언 중 참명언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매일 이렇게 작은 글이라도 쓰면서 나타난다면, 언젠가 작가로 성공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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