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취업을 실패하고 겨우 취직한 곳에서 너무 힘들어서 나도 죽고 싶었다. 매일 이 힘든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면, 그리하여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죄책감에 매일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면,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가 이대로 죽으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 것인가, 또, 목숨을 끊을 용기가 없어 그럭저럭 그때를 견뎌냈다. 내가 희망하고 상상했던 세상이 직접 발을 내딛어보니, 많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동안 잘 살아 있었구나, 가을에 노오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 푸른 하늘빛 아래 떠다닐 때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느낄 수 있다니 참 행복했다. 그런데 그러다가 몸이 아파질 때면, 20대에 죽을 걸 뭐하러 살아서 50대 들어섰나? 그때로부터 세상은 별반 다를 것도 없는데 말이다. 20대와 50대 초반에 똑같이 삶은 힘들고 쳇바퀴처럼 돌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어도 죽을 용기가 없어 죽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매일매일 직장을 나가고 하기 싫은 청소도 해야 하고 그런 일상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20대와 지금의 삶이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 그때는 나의 힘듬을 나의 부족함과 세상을 몰랐던 부모의 탓으로 돌렸다면, 지금은 그 힘듬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교육이라는 허울 좋은 거짓부렁에 있음을 안다.
옛말에 '여자는 공부시킬 필요 없다, 집안일이나 시키면 되지, 공부 시키면 더 못 산다.'는 말이 있다. 구렁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를 지금 이 민주적 시대에 왜 하냐?고 하는 사람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나도 그렇게 치부를 했다. 그런데 한 50년 살다 보니, 그 말이 맞다,,, 는 생각이 든다. 이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가 극대화된 시대에 말이다. 그럼 나는 왜 그런 결론에 이르렀을까?
내가 많은 일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제일 힘든 일이 청소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사실 내가 결혼을 안한 이유도 청소 등 가사노동을 하기 싫음에 있었다. 자취를 하다 보니, 그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제발 청소라는 하기 싫은 육체 노동은 남에게 떠넘기고 싶다. 아울러 다시 20대로 돌아가서 취직을 한다면, 절대 청소는 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하고 싶다. 즉, 육체노동이 싫은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자기가 살아가려면 안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여자가 결혼을 한다면 여자에겐 필수적인 일이다. 그러니, 진작에 공부하지 말고 집에서 가사노동을 배워 청소와 음식이나 열심히 할 걸 그랬다 싶기도 하다.
일반 회사에 취직을 하면, 청소는 다른 사람이 해준다. 사실 처음에 입사를 하면 책상을 닦거나 하는 육체 노동을 할 것이다. 그런데 직위가 올라갈수록 그것은 아랫 사람의 차지가 된다. 그러니 승진을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사람이 살아가려면 청소는 의무다. 그런데 왜 나는 청소가 힘들고 하기 싫을까? 그것은 우리의 교육에 있다. 비록 청소 당번을 하거나 하면 열심히 했었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그런데도 우리사회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공부만 하면 된다. 공부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신노동이다. 만일 재밌어서 한다면, 그것은 노동도 아니고 노는 것이 된다. 앉아서 베짱이처럼 말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을 노는 것만 잘하게끔 시키고 만드는 교육을 해놓고, 그들이 사회에 나와 노동을 잘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난 지금도 육체 노동도 싫고 정신 노동도 싫다. 그냥 놀고 싶다. 노는 게 딱 적성이다. 물론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정신적으로 힘든 것도 육체적으로 힘든 것 못지 않게 힘들다. 그중 최고는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이 겹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도 나는 집안에서 남녀차별 없이 동등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니까, 남자 동료는 안하는 식단 짜는 일을 여자에게만 시키는 것이다. 결코 남녀차별 없는 직업이었는데도 말이다. 난 집에서도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 무지 힘든데 왜 그런걸 날 시키나? 라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신입일 때라 그냥 시키는대로 했다.
만일 내가 남자였다면, 공부를 잘했으니 출세했을 것이다. 사회의 직업을 가지는데는 분명 남녀차별이 심했고, 여자는 아무리 공부를 했다 해도 특수한 직업 외에는 취직이 안되었을 때다. 그러니 한 집안에 남자와 여자 형제가 있다면, 그 가정에서는 남자를 공부시키는 편이 사회에 나왔을 때 여러가지로 유리하다. 그걸 어릴 때는 몰랐다는 거, 더구나 우리 부모도 몰랐다는 게 나의 힘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럼 현재 남녀차별이 정말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과연 취직할 때 여자도 열심히 공부만 하면, 남자와 차별이 없는가? 그것에 지금은 없다! 라고 확신있게 말할 수 있나? 물론 앞으로 점점 더 없어지겠지. 허나 아직은 분명 있다. 그러니까 여자가 하는 직업을 갖지 말란 것이다. 분명 복지와 업무에서 분명 힘든 일이다. 그러니 여자에게 주어졌던 일들이다.
그러니, 내 자식은 성공하기를 바라며 열심히 공부를 시켰지만, 그 자식은 세상에 나와 직업을 찾지 못하고, 학교에서 집에서 공부를 잘해 나는 꽤 잘난 인간인 줄 알았는데, 취직도 못한다,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다. 얼마전 방송을 보니, 한 아이는 집에서 아버지가 공부를 시켰는데, 스페인어, 중국어, 일어, 영어 까지 그렇게 잘하더군, 그러니 요즘 학생들의 지적 수준은 상당하구나 그런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부모를 갖지 못한 아이를 생각해보자. 우리나라는 대부분 아이 혼자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공부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배운 부모, 정보와 시간이 많은 부모를 가진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격차는 더욱더 벌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사회의 논리를 모르는 부모, 오로지 공부에만 돈과 힘을 들이는 부모를 가진 아이가 사회에 나왔을 때 얼마나 괴리감을 느끼겠는가?
그럼 이제부터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진실을 얘기해 주고자 한다. 예전에는 사농공상이 있었다. 즉, 양반, 중인, 평민, 천민이 있었다.
현재는 없어졌다고? 아니다, 분명히 있다. 그것은 직업이다. 지금 직업을 가지기 20대 이전까지 학생들은 공부만 한다. 즉, 그것은 예전에 양반에게만 허용되었던 것이다. 양반, 중인, 평민, 천민의 특성 중 어느 직업을 얻을 지를 고려할 때, 그냥 모두 양반이 하던 글읽기만 하다가 덜컹 직업에 안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생활이 싫었던, 공부가 싫었던 사람은 오히려 자기 특성에 맞으니 좋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공부가 그리 싫지 않고 적성에 맞아서 즐겁던 사람은 뜬금 없이 양반이 아닌 중인(기술직, 의료직)이나 평민(농사 등), 천민(정육업 등)이 가지는 직업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 너무 불행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양반, 중인, 평민, 천민의 신분을 나누어 차별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그 직업 특성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돈 많이 버니까 사람들은 의사라는 직업을 좋아하지만 예전에 중인이 했던 직업이다. 그러니 아주 직업 특성이 좋은 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그보다 더 힘든 직업은 간호사다. 그들은 의사들이 앉아서 오더를 내리면, 직접 몸으로 시행해야 한다. 의학은 좀 나은 것이 그들은 사회에 나오기 전에 전공을 정한다. 그러니 세심한 손재주가 필요한 외과 등은 손재주 없는 사람은 피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간호학과는 그런게 없다. 두루뭉실하게 모든 과를 다 해야 한다.
얼마전 어느 영화감독이 자기집 가훈은 '아님 말고'라고 하는 걸 들었다. 참 좋은 얘기다. 아니면 어떤가, 실패하면 어떤가, 다시 하면 되지. 그런데 이 아님 말고가 안 통하는 직업이 의료계통이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아님 말고? 안될 일이다. 그러니 이쪽 적성이 아닌 사람은 일정 정도 봉사정신이 없는 사람은 택해서는 안될 직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 인식이 올라가서 의료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니 이중삼중으로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겠는가? 자기가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데 인간이 괜찮을 확률은 적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자, 학생 때까지는 잘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행복한, 예전에 먹고사는 걱정없던 양반들이나 하던 공부만 했다. 그런데 모든 학생을 양반이나 하던 공부만 시키고서는 이제 사회에 나와 직업을 택하게 되니, 천민, 중인, 평민이 하던 일까지 시키려한다, 되겠는가? 목공을 해본 적 있는데 정말 중노동이었고, 기계를 다루는 일이 자칫 실수하면 다치기가 쉬운 일이었다. 그러니 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했고 재밌었던 사람은 직업을 잘 선택해야 한다. 교수 등 공부와 관련있는 직업을 가져야 행복하다. 나는 제일 좋은 직업이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들은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좌우간 하고싶은 말 하고 돈도 벌고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하지만 사실 돈 벌기 위해 하기 싫은 말을 해야 한다면 이도 쉬운 직업은 아니지 싶기도 하다.
그러니, 양반이 하던 책읽기가 재밌었다면, 몸 쓰는 직업은 적성에 맞는 지 여부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아울러 모든학생을 맨날 앉아 노는 공부만 시키다가 다양한 직종에 종사시키기가 쉬울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지만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고 말이다.
자, 그러니 일과 내가 맞나? 잘할 수 있는 직업인지를 잘 생각해보고 좋아하거나 잘하거나 둘 중 하나는 연관이 있는 직업, 전공을 택해야 할 것이다.
직업을 정하는 순간, 당신은 양반, 중인, 평민, 천민이 되어 영원히 그곳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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