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답안에 반역을 권함>
허우원용 지음, 김태성 옮김, 공명 출판사, 2013, 13,000 원
사람들은 말 잘 듣는 사람을 좋아한다. 왜일까? 그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시키는대로 하면, 내가 이익이지. 그 시킴을 당하는 당사자는 이익이 아니다. 그런데 말 잘 듣는 사람은 착각을 한다. 그것이 나에게 이익인 것으로 말이다. 물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이익될 것을 시키겠지. 문제는 아무리 그래도 부모는 자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2가지 관점에서 그러하다.
먼저, 부모가 산 시대/사회와 경험이 자식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또, 부모가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물론 대부분 부모는 자식보다 많은 세월을 살았으므로 일정 정도 올바른 판단을 하지만 모든면에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
두번째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도, 100%는 아닐 수 있다는 점. 부모라서 자식을 사랑하기에 어느 정도 희생을 하지만 그 희생 정도는 부모에 따라 양이 다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가장 사랑한다. 가족을 어느정도 사랑한다고 해도 자신 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사랑을 해보지 않은 나의 판단이므로 오류가 있겠으나 이성적으로는 자식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겠으나 본능적으로 자신 사랑에 기울기도 하고, 방법을 잘못 선택할 수도 있다. 마치 사자가 소를 사랑하여 고기를 주었으나 소는 그것이 정말 싫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왜? 사람은 다 다르니까. 물론 비슷한 면도 있다. 그러니 대부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비슷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경험을 얘기하자면, 난 나의 생각이 별로 없었다. 학교에선 당연히 공부를 잘해야 인정 받았고, 부모도 공부를 제일 우선시했다. 공부를 하면, 추석 때 큰집을 가지 않아도 되었고 (물론 난 맘 속으로 추석에 도서관에 있기 보다는 큰집에 가는 가족 여행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말하진 않았다.)
그리하여 공부만 했다. 게다가 학교며 집에서 인정 받는 공부를 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공자님이 '배우고 익히면 때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말씀한 것처럼,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이게 왜 힘들다는 거지? 안 풀리던 수학 문제와 씨름하다가 딱 풀었을 때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외우는 공부는 싫었다. 그래서 외워야 되는 과목은 수학이 지겨워지면, 조금 보곤 했다. 하지만 아주 탑은 못해도 재밌는 공부만 해도 그럭저럭 상위권에 들어 학교와 집에서 인정 받는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그때는 공부를 못하면, 손바닥을 맞곤 했는데, '그냥 공부를 하지 왜 맞지?' 하는 의문이 잠시 들기도 했다.
내게 공부가 힘들어진 건 대학을 가서다. 과 수업이 재미도 없을 뿐더러 양이 너무 많은데다가 내 딴엔 아무리 공부를 한다고 해도 장학금을 타기가 어려웠다. 그러면서 여태 공부라면 자신 있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상위권에 들기가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중고생 때는 내가 대학만 가면 장밋빛 세상이 펼쳐질거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이미 대학에 와 버린 지금은 그것이 나의 환상임을 깨달아서 희망도 없는데다가 공부양은 엄청나서 중고생 통틀어 다 배울 공부양을 거의 일주일이면 다 배우는 것이다. 2시간 수업이 지나면, 두꺼운 스프링 노트 절반이 필기되어 있을 만큼 공부양이 많았다. 게다가 시험을 볼 때는 족보가 중요한데, 나는 대인관계에 잼병이라 어쩌다 얻긴 해도 선배에게서 시험에 대한 고급 정보를 매번 얻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나름 큰 문제는 없었다. 장학금을 못 받았고 성적이 좋지 않아 자존심이 약간 상하긴 했으나 다른 큰 불이익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사회에 나가니 정말 큰 문제가 생겼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취업을 하는데 나는 취직을 못했다. 겨우겨우 취직을 했으나 직장일을 하는 게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고3이 뭐가 그리 힘든 지 모르겠다. 그냥 앉아서 놀면서 내가 좋아하는 공부하면 되는데, 조금 힘이 들긴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나는 고3보다 사회생활이 훨씬 어렵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출퇴근 시간까지 합하면 거의 10시간에 가깝게 하기 싫은 일을 30년 이상 반복해야 하니까. 그게 더 어려운 거 아닌가? 게다가 학교 때는 공부만 잘하면 만사가 용서되었다. 조금 지각을 한들, 나는 모범생이니까 거의 야단을 맞지 않았다.
그런데 사회는 다르다. 5분만 늦어도 비난이 쏟아진다. 신입인 나로서는 30분 이상 일찍 가서 일 할 준비를 대부분 해야 한다. 그러니 밤부터 긴장하게 된다. 게다가 깨워주는 엄마도 없으니 탁상시계를 두세 개씩 맞춰 놓아도 피곤하여 못 일어날 수 있으니까, 늘 불안하다. 전날 피곤해서도 안된다. 그러니 너무 힘든 것이다.
직장에 가면, 정신적 노동에다 육체적 노동이 겹쳐서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이에 비해 고3이 뭐가 힘들다는 것일까? 게다가 그래봤자 공부양도 별로 안되고 1년의 기간 밖에 안된다. 희망적이다.
하지만 사회 생활은 고3처럼 살지만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거의 9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서서 종종걸음치며 뛰어다니면서, 몸만 뛰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에 어느 걸 먼저 할 지를 결정하는 정신 노동까지 해야 한다. 난 정말 능력이 없었다.
아 그래, 내가 대학생 때 좀 더 열심히 공부했어야 했는데,,, 나는 정말 부족한 인간이구나,,, 이런 생각만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공부를 잘한 나는 집안의 희망인데, 내가 직장을 관두면 우리 가족은 뭐 먹고 사나?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실망을 끼쳐선 안되지,, 내가 이렇게 무능력한 인간이었다니,,, 한심하구나! 열심히 하자.
그런데 열심히 해도 나는 일을 못하는 것이다. 결국 '할 수 없다, 다른 직업을 찾고 여길 그만두는 수 밖에.'하고 타의반 자의반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찾아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제부터 정말 공부가 힘든 것이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재미도 없는, 외우는 공부를 해야 했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이 꽉 차서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시험에 붙으려면, 공부를 하며 앉아 있어야 한다. 고3 때는 밥을 해주는 엄마도 있었지만 이제는 밥도 사 먹어야 하는데, 돈은 없다. 그러니 밥을 챙겨 먹어도 하루에 1끼 사 먹고 나머지는 대충 때우는 식이다. 게다가 커피를 여러 잔 먹게 되고, 집에 돈도 없는데 꼭 붙어야 하는데 공부양도 많으니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 받게 되니, 복통이 생겨 엄청나게 아픈데도 약국이나 병원을 갈 시간도 돈도 없어서 고생을 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취직만 하면 다시는 공부의 ㄱ 자도 하지 않겠다, 지긋지긋하다, 이런 생각 했었다.
그리하여 직장에 취직하여 25년간 근무를 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예전에 나는 부모님 말씀 선생님 말씀도 잘 들었는데 요즘 세대는 안 그렇다, 그러니 왠지 억울하다. 나는 어려서는 남의 말 듣고 커서도 남의 말만 들어야 하나? 이제는 젊은애들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춰야 하나? 아주 억울한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어느 정도는 세상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래도 우물안 개구리로 살아서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세상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이 바뀌어서 세대가 다르니, 젊은애들이 말을 안 듣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직장을 이동하면서 어느 지역에 갔더니, 예전의 나처럼 젊은애들이 말을 잘 듣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좋다. 하지만 이제 또 깨닫게 된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세대를 다르게 살고 있구나, 공부에 치중하는 집안은 늘 말을 잘 듣게 되는구나. 그러니 말 잘 듣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말 안 듣는 곳에서 이미 세상을 터득하고 온 사람들과 경쟁을 해야 하니 말이다.
집에선 공부를 잘해서 대학을 가라고 했지만 우리집은 형편이 안되는 것 같은데, 중학교 때
서울여상에 원서를 접수하라는 기회가 있었다. 내 성적이면 충분히 붙고도 남으니 한번 가서 일찍 돈을 벌어야 하는 것 아닐까? 란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에이 대학 가면 더 좋은데 취직해서 잘될텐데 뭐하러. 이런 생각으로 접었었다. 또 나는 지방에서 서울로 중3 때 전학을 온 경우인데, 오히려 내가 살던 도시에 있었으면, 좋은 과를 가게 되었을테니, 적성에도 맞는 직업을 선택했을테니 평생 맘고생 덜 하고 나도 행복했을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생각하여 우리를 서울로 전학시켰지만, 오히려 그것이 내 인생에는 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세상 오래 살다 보니, 인생은 딱 새옹지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그러나 중고생 때 항상 정답이 있는 수학이 좋았고, 공평한(내생각에) 학교가 좋았다. 그런데 고3때 결정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한 일이 학교에서 생겼다. 그래서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항의를 하고 학교와의 싸움에 들어갔지만, 2학기로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험공부를 한다고 항의를 접었다. 하지만 나는 늦게까지 그 항의 그룹에 있었는데, 그러면서 고3 시기의 6개월 정도를 놓쳤다.
더구나 스쳐 지나가는 의문들을 나는 대학 가서 고민하기로 맘 먹고 고등학교 때는 공부만 해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대학을 가 보니, 그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알았다. 이미 결정은 나 버렸고 고민한다고 달라질 수가 없는 것이다. 집안이 넉넉해서 재수를 새로 하는 걸 용납할 형편도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중고등학교 때 드는 '고민은 대학 가서 하지' 하고 미루지 말고, 중고생 때 해결해야 한다!
다만 세상과 싸울 필요는 없다. 그래봐야 공부하는 시간을 놓치니 나만 손해다. 중고생 때 진로에 관한 고민은 해야 한다. 그것에 필요한 다양한 경험도 해야 하고. 다만 사회 문제에 나서서 부당함에 항의하는 작업은 대학과 사회에 미뤄도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권한다. 말 잘 듣는, 교육이 최고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이 책의 저자도 모범생이었고 작가로 성공했다. 하지만 자신이 학생 때 약간의 반역을 꾀했다면, 좀 더 일찍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을 거라 아쉽다,, 그런 내용들이다. 그러니, 공부 잘 하는 중고생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니가 사는 세계는 아주 좁은 우물 안일 수 있어. 그러니 우물 밖 세상을 생각하고 선택을 해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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