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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아무거나 시크하게 쓰기

교육 8. 공교육의 허와 실 (<멜랑꼴리아> 특별하다는 착각)

  얼마전 지인으로부터 이런 문자를 받았다.

 "난 열심히 사는데 왜 우울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거기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신을 했다.

 "그건 니가 잘 생각해봐. 내 생각엔 모든 일이 맘먹기에 달린 거 같더라."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답은 이렇게 변경하고 싶다.

 

 "일단 잘 먹었는지, 잘 잤는지, 배변은 원활히 했는지, 마음은 편하지,,,, 를 먼저 확인해보고, 이 중 하나라도 불편하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런 다음에는 어떤 문제든지 마음을 어떻게 먹는냐에 따라 자기 기분은 많이 달라질 수 있

다. 그리고 운동을 한다. 집안일이든 운동이든 움직이면, 맘은 많이 바뀐다. 물론 씻는 것도 좋다.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집이든 자기몸이든 더러우면 기분이 나쁠 수 있는 것이다. "

 

 인간은 동물이기에 일단 신체적으로 편안한 지를 먼저 점검한 이후에야 정신적으로 맘을 즐거운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 같다.

 

 그럼 사람이 쾌락(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몇가지에 대해 얘기해보자. 쾌락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것을 하면 된다. 그것은 게임일 수도, 음악 듣는 것일 수도, 쇼핑하는 것, 외식, 영화나 동영상 감상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지속적 쾌락을 주기는 어렵다. 그 쾌락이 끝나면 허무한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가장 큰 쾌락은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즉 공부다. 그것은 알면 알수록 또 알고 싶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목표가 없을 때 허무해질 수 있겠다. 난 이사를 무진장 다녔는데, 그 이사를 다닐 때마다 옮기기 가장 무거운 것은 책이었다. 자식들이 편안한 보금자리에서 안정적인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마련해주는데는 능력이 부족한 아버지는 하지만 이사다닐 때마다 엄청난 책을 항상 소중히 가지고 다니면서 책 한권이라도 거꾸로 꽂혀 있으면 난리가 났다. 그런 아버지에게 세뇌되어 40세가 될때까지도 책은 소중한 것이니까 버리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내게 있었다. 허나 40대 중반을 지나는데도 나의 삶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여전히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아침마다 감옥에 가는 출근길을 반복하는 것에서 지쳤고, 아무것도 이룬것도 이룰 기미도 보이지 않으며, 체력도 떨어지는 나의 삶에 지쳐 몸과 정신에 문제가 생겼다. 그러다가 이사를 하면서 책이라는 것에 신물이 나서 모든 책을 버렸다. 첨엔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도 되었지만 (살 수도 없는 책들이니까),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다. 첫째 이사 다닐 때 무거운 짐이 확 줄어서이고, 꽂아놓기만 하지 생전 안 볼 책들이었으며, 책에 대한 어떤 외경심 같은 것을 깔아뭉개는 기쁨이 있었다. 그렇다. 책이 어쩌면 낡은 의식을 연장하게 하는 물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르는 걸 알게 되는 즐거움이란 꽤 큰 기쁨이고 쾌락이다. 단순히 기술적이고 단순한 지식을 달달 외우는 것은 싫을 수도 있지만, 내가 궁금한 사항을 찾아보고 알게되는 공부는 기쁜 것이다.

 

  사람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중고생 때 공부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는 착각 말이다. 정말 이것은 착각이다, 공교육이 심어 놓은 착각 말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매일 8시간 이상을, 정말 매일 출근하여 일을 한다는 것은 그보다 엄청나게 힘든 여정이다. 그것에 비하면, 중고생 때의 공부는 맘 먹기에 따라, 공부가 힘들다거나 지겨운 것이라는 편견만 가지지 않으면, 참 큰 쾌락이다. 더구나 공교육은 학생들에게 지루하거나 재미없는 것보다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서 시킨다. 왜냐하면 공교육 체계를 유지해야 하며, 일단 교사들이 재밌는 연수를 하고 싶어 하므로, 그것에 맞추어 구성되는 것이다. 중고등 시절 학교에서의 공부가 나의 진로를 결정할 모든 것이라는 착각은 안 하는 게 좋겠다. 왜냐하면 공교육의 교육과정은 대체로 일제시대때부터 구성된 것에서 재밌는 걸 흡수한 것들만 가르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사회에 나오면, 이 공교육의 내용들은 사회 제일 윗선에서나 해볼 수 있는 것들이다. 먹고 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이 학생 때 공부 내용과는 아주 다른 지루한 일들을 반복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점이라면, 돈이다. 만일 돈이 없다면, 다 때려 치울 사회인 많다. 다만 학생들은 돈을 못 받는다. 하지만 매일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힘든 일이니, 점심을 먹는 것도 꽤 큰 즐거움이다. 즉, 학생 때는 학교에 갇혀 있다는 걸 제외하고는 아주 즐거운 걸 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가끔 난 지금의 학생들이 부럽다.

 

 공교육의 아주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사회 구성원을 길러내는 것이다. 더불어 날뛰는 시기의 청소년을 학교에 잡아두는 역할이다. 어쩌면 교육계는 후자의 역할에 더욱 큰 관심이 있다. 그 증거는 아래와 같다.

 주5일제가 처음 시행되던 무렵 기존 수업시수대로 채우기 위해 7교시가 생겼다. 주6일에서 주5일로 바뀌면, 수업시수도 당연히 줄여야 하건만 편법으로 수업은 줄이지 않은 것이다. 주5일제 시행된 지가 근 10년을 넘어가건만, 여전히 일주일에 2일은 7교시를 하고 있다. 아무도 이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테고, 교육계의 학생들 잡아두는 역할에 보탬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사의 수급 때문일 것이다. 수업이 줄면, 교사도 줄어야 할 것이므로.  좌우간,,,  7교시 하는 날은 학생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에 다치는 학생도, 아픈 학생도, 심리적으로 아파서 보건실 오는 학생도 많다. 그러나 여전히 보건교사는 1명이다. 7교시는 빨리 없애야 한다.

 

 가끔 인간이 동물보다 더 불쌍하게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물은 자기가 배고픈 욕구가 생겼을 때 먹이감을 찾기 위해 일을 한다. 욕구가 있을 때 하는 일은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 왜냐하면 자기의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헌데 인간은 동물보다 기껏 조금 더 즐겁고 조금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매일 30년 이상을 하루의 반나절을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끼리의 약속으로 정한 건데, 서로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약속이기보다는 옥죄는 약속이다. 그러니 동물보다 불쌍한 우리 인간 서로를 위해 주4일제가 시행되어야 한다. 7교시도 없애고 말이다.

 

 <멜랑꼴리아>란 드라마를 봤다. 양호교사에서 보건교사로 명칭이 바뀐지 20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이 드라마에서는 양호실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학교를 몰라서이거나 기간제 교사로 잠시 학교에 머물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후자일거란 생각을 한다. 작가가 학교 생활을 해보지 않았다면, 학교와 관련된 디테일한 사실을 모르므로 드라마를 쓰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나의 경험을 하나 얘기해보자.

 

 교무실 보조 교사로 잠시 일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학교에 있을 때, 내겐 참 친절하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그 교무실 보조 교사가 다른 곳으로 기간제 교사(아마 교사 자격증이 있었나보다.)로 가는 날이었다. 마주쳤는데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어깨에는 힘이 팍팍 들어가 있었다. 난 그저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왜저리 180도 바뀐 태도로 나를 대하지? 하고 그 당시엔 잠시 그런 의문을 가졌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간제 교사를 잠시 하더라도 자기는 보건교사의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뭐 그렇거나 말거나 타인의 시선이 내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까.

 

 좌우간 이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 드라마가 재미있으면 되지, 사실적이기까지 해야 하나? 라는 관점에서는 그리 비판할 것이 없겠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옆으로 비껴두고 이 드라마를 보자.

 이 드라마는 돈 많은 사람들만 간다는 사립학교가 배경이다. 요즘 드라마에 사립학교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난 우리나라에 그런 학교가 있는 지 잘 모르겠다. 다만 정말 있다면 이 작가는 자신이 그런 사립학교에 다닌 사람일 확률이 높다. 경험이 있어야 글을 쓰기 쉬우니까.

 

 이 드라마의 아주 큰 문제점은 시선이 '특별한'에 꽂혀 있다는 점이다. 세상을 수학적으로 보는 특별한 학생이기에, 특별히 이뻐하는, 아주 특별하게 수학을 잘하는 선생님이 주인공이다. 물론 수학경시대회는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수학경시대회에서 시행하는 수학의 내용이 너무도 특별해서, 공교육으로 수학을 배운 학생들은 따라잡지 못하는 분야라면, 이 경시대회 성적으로 대학 수시를 결정하는 그 과정 자체가 공정하지 못하다. 주인공 남학생처럼 외국의 우수한 대학에서 수학하지 않거나, 특별한 수학 전공 가정교사를 두지 않은 학생은, 상을 탈 수 없는 대회라면, 그런 것은 대학 입학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정말 공정한 것이다. 배우지도 않은 내용, 수학 교수를 부모로 두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내용이라면, 그 내용 자체를 풀고 안다는 것이 공정한 시험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수능시험에, 배우지 않은 내용, 고등학생이 배울 수 없는 내용이 출제된다면, 큰 비판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경시대회니 수시니 하는 게 벌써 공정성과는 거리가 아주 멀기에, 주인공이 비공정성을 논하고 있는 자체가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대학의 수학과에서는 잘하는 사람을 받으면 좋기에 사소한 공정이라도 그 공정은 필요한 지 모르겠다. 

 여튼 이 드라마의 모든 인물이 성적에 목메는 (물론 다른 드라마도 마찬가지고) 그 상황이 우습다. 성적이 좋아서 좋은 대학이나 좋은 과를 가는 게 사회를 살아가는데 큰 의미는 없다. 앞으로 사회에 나온다고 해도 성적이 그리 크게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이런 드라마나 그런 착각들은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 학교 때 성적이 좋고 우수했으니, 자신은 아주 뛰어난 사람 같은데, 사회에 나오니 열등한 존재가 되었을 때 느낄 괴리감 같은 것 말이다.

 성적이나 우수하다거나 특별한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살아가거나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자신이 대단하다는 착각은 빨리 버리는 게 좋다. 다른 학생들보다, 마루를 닦는다거나 타인을 보살피는 것보다 지식을 얻는 쾌락이 훨씬 크다는 걸, 먼저 깨닫고 몰입했다는 게 다다.  그러니, 사회 적응과 성적은 아주 다른 문제다. 다만 학벌이 좋으면, 주위에서 좀 도와준다. 그 도움을 모르면서 받아서 살게 되는 지도 모르지만, 좌우간 성적이 좋거나 학교 생활을 잘했다고,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착각은 빨리 깨는 게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 의정부 모 병원의 간호사가 자살한 기사를 읽었다. 그만 두려 했는데, 60일은 더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듣고 목숨을 버린 것이다. 이 심정 아주 크게 공감한다. 어쩌면 나를 살게 한 것은 학벌인지도 모르겠다.

 병원을 그만두려 하는 건, 정말 더 있다가는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절박함에서 선택하는 쥐구멍이다.

나도 1년반 다닌 병원을 그런 심정으로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인계를 해줘야 하니, 30일을 더 다니라고 했다. 난 그러다가는 죽을 수 밖에 없을 거 같아, 학교 선배였던 간호과장님에게 찾아가서 울면서 호소했다. 난 하루도 더 다닐 수가 없다고,,, 제발 당장 그만둘 수 있게 도와달라고,,, 안 그럼 죽을 수 밖에 없을 거 같다고.  다행히도 과장님의 선처로 바로 그만둘 수 있었기에 아직도 목숨을 부지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간호사의 명복을 빌면서,,, 당신이 병원에서 적응하지 못한다고 열등한 인간이 아니란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 사람마다 능력이 있는 분야는 다 다르다.  어떤 사람도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어떤 인간도 열등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꼭! 말이다!!!

 

하지만 만일 인간 중 열등한 자와 우수한 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중고등 교육을 받을 때 난 나자신이 아주 우수한 줄 알았다. 그런데 간호사 일을 하다 보니, 나만큼 열등한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난 손도 작고 키도 작아서 그때는 수액도 큰 병으로 나와서 한 손에 잡기가 힘들었다. 즉, 나는 아주 열등한 인간 존재였던 것인데, 학교 때 그걸 착각했던 셈이다. 이렇게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공교육이다. 공부만 잘하면 아주 특별하고 우수한 존재로 인정해주니, 얼마나 착각하기가 쉽겠는가? 이것이 공교육의 폐해, 공부 잘하면 우수하고 특별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우리 교육의 폐해다! 

  내가 열등한 인간이라는 걸 받아들이는데, 한 45년 걸렸나보다. 그걸 받아들이고나니 아주 편안해졌다. 열등한 인간도 살 권리를 가진다. 따라서 당신이 아주 열등하다고 해도, 당신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충분히 살아갈 자격을 지닌다. 열등한 인간이란 걸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도 꽤 매력적이다. 열등하게 태어나서 열등한데 뭐 어쩌라고? 그냥 열등하게 일 못하고 사는 것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