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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아무거나 시크하게 쓰기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에 대한 소고

  어떤 작가의 글을 오늘 들었다. 시기별 성장 과제가 있다는 것은 사람을 옥죄고 그 정상 성장에 들지 못하는 사람을 구속하게 된다는 얘기다. 어느정도 맞는 말일 지도 모른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을 보며, 그 시기에 이루어야할 성장을 나는 이루지 못했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시기별 이루어야 할 성장과제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어 재단하는 것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참고로 사용하면 좋다. 그 작가의 글인지 DJ의 말인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 학생들은 방황할 기회가 없고, 학생 때 방황을 하게 되면, 사회적 과제 미달성자로 찍혀서 비난 받거나 한다고. 물론 직업은 결혼은 언제 할래, 애는 언제 낳을래 등 그런 과제들도 인간을 옥죄는 요소'라고 말이다. 시기별 성장 과제란 건 스스로 그 시기에 이루는 걸 이루었는 지 점검해보는 용도로 사용해야지, 그 틀에 들지 못했다고 비정상이란 건 아니다. 작가는 제국주의적 유물로 등장한 개념이라고 보고 있는데 나의 관점은 다르다.

 

  인간의 심리에 관심을 가지고 심리학이 대두되고 발전한 시기가 얼마되지 않는다. 즉, 심리학으로 개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연구할만큼 예전 시대는 인간적이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심리학이 생긴 지 얼마 안되므로 그러한 성장과제 개념조차 생긴 역사가 길지는 않은 셈이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이고 나의 가치관은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기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입시 위주의 몰아감은 이런 자아정체성을 확립할 기회를 빼앗는다. 즉, 시기별 성장과제에 대한 고민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모든 고민은 대학 가서 하라,는 식의 몰아침이 문제인 것이다. 대학 가서 고민하면, 이미 진로는 확정되어 버리고 늦기 마련이다.

 

 

  성장할 과제가 무엇인지, 시기별로 스스로를 점검해보는 것, 그걸로 옥죄거나 정상 범위에 들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성장과제 이용이 더더욱 필요하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타인의 성장 과제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그 성장 과제가 다인 것처럼 틀 지워 개인을 재단하는 것이 문제다. 어쩌면 그것은 성장 과제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시기별 의무조항과 흡사하다. 심리적 면에서의 성장과제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오히려 그런 시기별 의무를 강조하여 개인이 성장과제를 이행할 기회를 뺏을 뿐이다.

 

  인간이 성장 과제를 이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고민할 시간을 주자.  시기별 성장 과제는 참고로만 삼을 것이지, 그 범위에 들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탓하거나 이론에 얽매이지 말자, 그럼 아주 좋은 이론이 될 것이다.

 

  나만 해도 시기별 성장 과제를 이행할 기회가 박탈된 나라에서 살고 있으므로, 이제서야 이루지 못한 성장 과제를 이루고 있는 중이다. 다만 그렇다고 나를 비정상이라고 비난하거나 하진 않는다. 이런 나라에 태어나서 시기를 놓쳤을 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