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나 읽는 시기에 따라 글의 감동이 많이 달라진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도 마찬가지다. 불과 몇년전까지 오랫동안 이 시에서 나는 아래 인용한 글처럼 가지 않은 길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는 나에 대해 반성만 했었다.
하지만 오늘 다시 읽은 이 글귀에서, 선택을 할 때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현명하여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을 택하면 대체로 좋긴 하지만 말이다.
진로를 선택할 때 예를 들어보자. 이미 많은 사람이 간 길을 내가 갔을 때 희소성의 가치가 줄어들어 미래에는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러니 선택을 할 때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편이 미래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 연예인을 광대라 폄하하고 기피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의 처지는 많이 달라졌다. 만화가를 천대시하던 시대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웹툰이 드라마나 영화의 밑바탕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미래는 지금에서 또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라. 아마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니까.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사람들은 늘 선택의 순간에 놓이고, 그 중 몇가지는 자기의 전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이 된다.
----------------------------------------- 아래는 인용 기사입니다. ---------------------------------------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작
노란 숲 속에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기에, 오랫동안 서있었다,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구부러지는 데까지
눈 닿는 데까지 멀리 굽어보면서;
그리고 다른 한 길을 택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좋은 이유가 있는 길을,
풀이 우거지고 별로 닳지 않았기에;
그 점을 말하자면, 발자취로 닳은 건
두 길이 사실 비슷했지만,
그리고 그 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직 밟혀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에 묻혀있었다.
아, 나는 첫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다!
길은 계속 길로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과연 여기 돌아올지 의심하면서도.
어디에선가 먼 먼 훗날
나는 한숨 쉬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을 택했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The Road Not Taken
by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바로 이 마지막 연에만 사람들이 주목하면서 오해가 발생한다고 오어를 비롯한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한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라는, 자기계발서나 CEO 자서전에 단골로 나오는 교훈을 이야기하는 시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중간부분, 특히 제2연의 번역이 틀리는 경우가 많아 그 오해가 더 굳어지곤 한다.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마지막 부분 못지않게 중간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제2연과 제3연에서 화자(話者)는 그가 택한 길이나 가지 않은 길이나 "똑같이 아름답고" "발자취로 닳은 건 두 길이 사실 비슷"했으며, “그 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직 밟혀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에 묻혀있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화자는 마지막에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을 택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평론가들은 그가 "한숨 쉬며" 그 말을 하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한다. 그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미련이 남은 상태에서 자신이 택한 길이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이었다고 기억을 윤색해서 자신의 선택에 자부심을 불어넣고 그것으로 위안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확신이 없기에 “한숨 쉬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의 이야기일까. 그렇지도 않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두 길은 똑같이 매혹적으로 보였고, 한 길을 택해서 거의 끝까지 걸은 "먼 먼 훗날"에도 가지 않은 길이 더 좋았는지는 미지로 남을 뿐이다. 더구나 화자가 말하는 시점은 아직 그 "먼 먼 훗날"이 아니라, 막 갈림길 중 한 길로 접어든 순간이다. 그는 "먼 먼 훗날" 자신이 한숨을 쉬게 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어느 한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기에." 그게 우리의 삶이다.
이 시의 제목인 ‘가지 않은 길’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내가 가지 않은 길’이며, 이 시는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가지 않는 길에 미련이 생기는 인생의 아이러니에 대한 이야기다. 프로스트(사진2) 자신의 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영문학자 윌리엄 프리차드(William H. Pritchard)가 쓴 프로스트 전기(1984)에 따르면, 프로스트는 이 시가 자신의 친구이며 또한 시인인 에드워드 토머스(Edward Thomas)로부터 영감 받은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들은 종종 함께 걸었는데, 토머스는 어느 길로 가든지 꼭 다 걷고 나면 다른 길로 갈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버릇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 ‘가지 않은 길’은 사실 프로스트 자신의 말대로 습관적으로 선택을 후회하는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농담”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의 여러 광고에서 감동적인 음악이 흐르며 “나는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을 택했다,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는 시구가 떠오르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시의 진실을 알고 나면 맥이 빠지거나 심지어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자 교도소의 생활을 코믹하게 그려낸 인기 미국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Orange Is the New Black)’의 2013년 에피소드에서 엘리트 계층 출신 주인공이 동료 죄수들에게 이 시의 진짜 의미를 설명했다가 죽여버리겠다는 소리만 듣는다.
그러나 이 시의 진정한 의미는 ‘남들이 걷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광고 문구나 CEO 자서전 스타일 교훈보다 더 깊고 은은한 울림을 지니고 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길을 택하든 가지 않은 길은 단지 가지 않았기에, 내가 밟지 않은 낙엽이 소복이 쌓인 채 저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름답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숙명적인 동경과 아쉬움도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덧붙여, 그러니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에 너무 빠지지 말고, 그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겨두고, 내가 선택한 길을 가라는 뜻도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 화가 조지 이네스(1825~1894)의 그림 ‘몬트클레어, 11월’]
프로스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이 시인보다 반세기 앞선 미국 풍경화가 조지 이네스(George Inness)의 그림 ‘몬트클레어, 11월’(사진3)이 떠오른다. 프랑스 바르비종파(Ecole de Barbizon)의 영향을 받아 형태와 색조 변화가 부드럽고 미묘한 그림이다. 온통 노란 숲 속에 한 나그네가 소복한 낙엽을 밟고 서있다. 그는 지금 프로스트의 시처럼 숲 속의 두 갈래 길을 “눈 닿는 데까지 멀리 굽어보고” 있는 게 아닐까 -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망설이면서.
우리의 2016년도 이런 망설임과 선택의 연속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길을 택하든, 가지 않은 길은 그 미지로 인한 신비와 아쉬움을 황홀한 안개처럼 두르고 저 멀리에 있을 것이다."
출처 : 중앙일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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