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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아무거나 시크하게 쓰기

교육 3 : 학과와 직업 어떻게 선택할까?


 1. 학과 선택


  어제 <법정스님의 즉문즉설?>을 시청했다. 말 안 듣는 사춘기 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한 어머니에게, 스님은 부모의 말에 반항을 하고 자기 표현을 해야 독립성이 길러지고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맞는 말씀이다. 


  나란 인간은 학창시절에 부모와 선생님 말을 참 잘 듣는 학생이었다.(이것도 보건교사와 안 맞는 것이다. 대부분 보건실에 오는 학생은 말을 잘 안 듣는 학생들이다. 이것을 파악하는데 19년 정도가 걸렸다. 모범생이었던 나와 너무 다르니, 이해가 어려웠던 것이다.)


  중고생 시절에는 말을 잘 들으면 이득이 많다. 일단 학생기록부에 큰 치부가 남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사회에 나오면, 많은 불만들이 생기게 된다. 좌우간 그렇게 말을 잘 듣는 나란 인간은,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입학하는데까지는 큰 탈 없이 성공했다. '공부는 고독과 친구하는 것'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과 '교과서 중심으로 수업을 열심히 들어라, 거기서 중요한 게 다 나온다'(물론 요즘은 다를 것이고 모의고사 성적과는 거리가 약간 있었다)는 교육에 일가견이 있는 아버지의 말을 잘 들어서 대학 입학하는데는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대학을 입학하고 보니, 그 이후를 아무도 얘기해 준 어른이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는 내가 알아서 해야 했는데, 아니 정확히는 학과 선정(아버지는 서울대만 알려주셨지 과는 안 알려주셨다 ㅎㅎ)부터 나 혼자 해결해야 했는데, 잘 할 자신도, 방법도 없었던 것이다.


  요즘 부모들을 보니, 아주 똑똑한 부모 아니고는 아직도 공부를 잘해서 대학까지 가는 것만 알려주는 부모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 자식이 인서울을 못할까봐 그걸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란 인간은 인서울은 당연히 하는 거 아닌가? 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부모는 자식의 재능을 파악하고 어떤 분야에 몸 담으면 자식이 가장 행복할 지를 안내하고 찾아가도록 도우는 존재다. 그걸 잘하는 부모가 최고 부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와 자식을 잘 알아야 하는 아주 힘든 일이다. 그러니 좋은 부모가 드물고, 스스로 행복하지 못한 부모가 자식을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주기는 더더욱 힘든 법이다. 괜찮은 학과나 직업을 잘 찾아주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간섭이라도 안하는 편이 좋다.


  학과와 직업을 잘 찾기 위해서는 세상을 알고, 다양한 분야의 양서를 읽어야 한다. 요즘은 유튜브도 잘 찾으면, 그 분야의 생생한 선배의 조언을 들을 수 있으니 참고하자. 또, 직업적성을 분석하는 검사를 시행하는 학교도 있으니, 그것을 무시하지 말자. 나는 고등학교때, 기자나 사회학과가 적성으로 나와서, 이상하다, 나는 수학과 과학을 잘하니 이과 적성인데, 왜 과학자나 이런 게 안 나오고? 그런 의문을 가졌다. 그 적성검사를 무시하지 말기 바란다.


  간호학과에 가서 실험을 하고 레포터를 내 보니, 그건 아주 꼼꼼한 성격에 맞는 분야였다. 난 실험 레포터가 있는 과목이 아주 싫었다.  생화학 등의 학문은 인과관계에 의해 알려주는 것이라 재밌었지만, 실험은 시간마다 미세한 차이를 기록해야 하는 것이어서 아주 지루하고 답답했던 것이다. 즉, 과학 쪽 적성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몇 가지 예만 보아도, 중고등 때의 잘하는 과목이 나의 적성을 모두 말해주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과 문과를 나눠놓으니, 선택권이 좁아지는 셈이다. 이과 문과 나누는 교육 과정은 빨리 사라져야 할 악습이다. 하지만 일단 이 악습이 존재하고 있는 한, 과목 성적으로 이과 문과를 선택하지 말고, 적성검사를 했다면 그에 해당하는 쪽으로 이과 문과를 선택하는 편이 좋을 거 같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닐 지도 모른다. 내가 수학교육과를 가서 수학교사를 했다면, 다행스럽게도 이런 글을 안 썼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수학 교사를 하고 싶으나 할 수도 없고 해본 적도 없으므로, 나의 경험에 근거하여 위와 같이 판단한다.


  자신이 잘하는 걸 파악하고 그런 학과나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 하지만 그걸 기껏 10여년 살고 잘 알 수가 있겠는가? 그건 부모가 안내해주는 편이 좋을 수 있는데, 부모들도 현실과 사회와 자식의 적성을 잘 모른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

 

 2. 직업 적성


  직업을 선택할 때는 몇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대부분 사회에 툭 던져진 학생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 보수와 안정성, 복지(근무 조건)를 고려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직업에는 이보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조건이 있다.


  1) 우선, 어떤 업무를 하는가? 이다. 이 업무라는 것이 경력이 쌓일수록 달라지는 직장이 있는가 하면, 아닌 직장도 있다. 


  되도록이면 경력이 쌓일수록 업무가 달라지는 직업을 선택하는 편이 좋다. 그런 직업은 승진이 되는 것이니까.(하지만 나라는 인간은 승진이 되는 직업을 가진 적이 없으므로, 이것이 꼭 좋은 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말이다.) 

  일단, 승진이 안되는 직업이든 아니든, 그 업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 업무가 나의 성격과 맞고 하고 싶은 것인지 또는 잘 하는 것인지를 알고 입사해야 한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되는 편이 평생 그 계통 일을 해낼 수 있게 만든다.  물론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하기에 다들 대기업 또는 재밌는 직업에 입사하고 싶어하는 거 아니겠는가?  뭔가를 기획하고 늘 새로운 일을 하면, 힘은 들지만 즐거울 것이다.  그런 곳은 경쟁율이 높다.  하지만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지 않겠나? (이것이 3)의 자아실현과 통한다.)


  나는 보건교사가 교사라고 생각했지만, 교사의 주업무인 교육을 하는 직업이 아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교육을 하는 건 아니라고 알고 들어왔으니, 당연히 수업을 시키면 싫었다. 그때는 체육부에 있다는 이유로 체육부장이 자기 수업을 시켰다. 나란 인간은 수업을 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싫었지만, 시키니까 했다. 잘할 수 있겠는가? 너무 많은 내용을 1시간 내에 알려주려고 하기도 했고, 그때만 해도 조금 있는 체육 시간을 뺏기는 학생들이 반발을 하니, 그 다음부터는 수업을 하지 말라고 해서, 안도를 했었다.

  하지만 보건교사들이 괜히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해서는, 잘하지 못하는 보건 업무에다 수업까지 강제로 하게 되었다, 그것이 벌써 10여년 전이다. 나는 안정적인 게 좋아서 보건교사를 선택했는데, 매년 업무가 바뀌고 (사회변화에 따라 업무가 바뀐다. 그리고 매년 정교사들이 하기 싫은 새로운 업무가 생기거나 교육부 아닌 보건복지부에서 주는 업무도 담당하니, 또 업무가 덧붙여 지기도 한다.), 심지어 15년간 해본 적 없는 수업까지 법으로 강제되었다. 아니, 정교사는 법 바꾸기 힘들어 안된다고 하더니, 이용해 먹으려 하니, 수업하라는 법은 쉽게도 바뀌었다. 이것도 보건교사의 노력에 의해 바뀌었다고 보자. 그래서 나는 보건교사협회에 회비를 안 낸다. 정교사로의 승진은 니네는 교사가 아니니 안된다면서, 수업하라는 것은 니네는 교사니까 해야 된단다. 보건교사가 보건실 업무에다가 수업까지 하려면, 차라리 정교사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들은 일단 1학교에 인원부터 다른데, 업무도 수업만 한다. 물론 잡무를 맡는다고 해도, 보건실에서 응급처치까지 하는 보건교사보다야 낫지 않겠나? 그러니 나는 차라리 정교사가 하는 수업을 하고 싶은데 (인원 수급에서 유리하며 보건실 처치를 안해도 되니 좋지 않은가? 담임을 한다고 해도 그들은 담임 수당을 한달에 20만원 받는다. 물론 이 수당은 학생들 먹을 거 사주는데 다 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허나 보건교사는 전교생의 담임인 것처럼 전교생과 그 학부모에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 정교사는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이나 자기반 학생과 학부모에게만 평가 받으면 된다.), 천민이 양반될 수 없는 것처럼 안 시켜준다. (물론 이건 정교사 안해본 내 생각이다. 정교사들은 생각이 또 다를 수도 있다.) 

  좌우간 내 나이 40이 넘어 40학급에서의 보건 업무와 보건 수업을 하게 되었다. 교실에 들어가면, 몇몇 학생들이 교실을 빙빙 돌며 뛰어 다니고 보건실에서 응급처치를 하는데도 다른 학생들이 보건실에 들어와서 빙빙 돌며 뛰어다닌다. 그때는 전교조 교사들이 많은 학교라서, 학생들에게 심지어 벌점조차 주지 않으니, 개판 오분전이다. 그러니, 처음 해보는 수업에 학급수도 많고 미쳐버렸다. 그래서 한참 우울증 치료를 받고 나니, 어떻게 해낼까 싶던 일도 다시 출근하니 할만했다.)

  그런데 인간이란 희한한 게 수업을 하다보니, 재밌는 거다. 수업만 하면 재밌는 일이고 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보건업무를 같이 하라고 하니, 1학교에 1명으로는 못하겠다는 거다. 게다가 성과급을 늘 바닥 받으면서는 더 못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올해는 안하던 수업을 하라고 한다. 이번에도 성과급을 바닥 준다면, 팍 엎어 버릴 생각이다.


  사람들이 한 인간을 해고하고 싶을 때는 일거리를 주지 않고 앉혀 놓는다. 나 같으면 그래도 버티겠건만, 얼마 못 가서 그 사람은 스스로 사직서를 낸다. 사람들은 업무가 많아서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불평들을 하는데, 왜 일 안하게 하고 월급 주는데 왜 그만두는가?


  결국, 직장에 출근했는데 바쁜 것보다 업무가 없는 게 더 견디기 힘들다는 거다. 보건교사 하지 말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잘하려면, 1학교에 1명이라 사실 불가능하다. 그러니 잘하지 않을 밖에. 그런데 잘하지 않으면, 또 업무가 너무 없다.(요즘은 별로 그렇지는 않다.) 그래도 보건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한 20년간 감옥살이처럼 그렇게 살면서도 업무가 없다는 게 힘든 거라는 걸 나조차도 깨닫지 못했다. 그리하여 잘하는 보건교사들은 일을 찾아서 한다. 그리고 다른 보건교사들에게 일을 얹어 준다. 여기서 또 보건교사의 부당한 지위를 하나 얘기해보자. 공립 보건교사는 교사 임용 시험을 치지만, 사립 보건교사는 그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뽑는다. 사립 보건교사는 1학교에만 있다는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사립 보건교사 1명이 일을 열심히 하다가, 정서행동검사 라는 걸 정신과 의사와 협의하여 최초로 만들었다. 이 보건교사는 정신과 간호사로 오래 근무했으므로, 그쪽으로 관심이 갔던 거다. 간호사는 전공 과가 없다. 이미 말했듯이 병원에 입사시 복불복으로 정해진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간호학과에도 전공이 생겨야 한다. 사람마다 적성이 있고 자신에게 맞는 과가 있다.

  좌우간 이 보건교사는 정서행동특성검사를 최초로 만들었고, 그 공으로 사립임에도 장학사로 나가서 지금은 교감에서 교장이 되었다. 그런데 나머지 승진도 안되는 보건교사들 입장에서는 없던 업무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원래 있던 보건 업무에 수업에 전교생 정서행동특성검사를 실시하고 상담하는 일까지 얹어진 셈이다. 대단하긴 하다. 기존에 있던 소위 상담을 전공했다는 상담사들이 못한, 전체 학생들의 정신건강 개선에 일조를 한 것이니까! 존경스럽다. 그런데 그냥 보건교사로 있어야만 하는 일개 보건교사로서는 화가 난다. 아니, 보건교사에게 그 일까지 시킬 것이면, 상담교사로라도 자격증 있는 사람은 나갈 수 있게 해주어야 될 거 아니냐 말이다. 그 분야는 정교사만 될 수 있도록 천민이 양반 못되는 것처럼 딱 막아놓고는 일만 시킨다, 좋겠는가? 사실 나는 이걸 인권위에 재소하려다 방학 때 골치 아프게 다시 메일을 쓰라고 해서 포기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1차 검사만 보건교사가 실시하고, 2차부터는 상담사가 하도록 바뀌었다. 좌우간 웃긴다.


   검사는 보건교사가 만들었는데, 그 분야로 변경은 안된다. 학생들은 사실 신체보다 정신건강이 대체로 더 부실하다.  간호학과는 정신과를 배우고 그 자격도 있다. 하지만 이 검사는 만든 보건교사 집단에 혜택을 준 것이 아니라, 상담사 인력만 늘리는 혜택을 줬을 뿐이다.  게다가 그 경험도 없는 정교사한테는 문을 열어 놓으면서, 간호학과를 나온 보건교사는 될 수 없도록 막아 놓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가는 딱 그 경우다.  공평한가? 그러니 간호학과 가지 말란 말이다! 


    더 웃긴 것은 우리가 정교사가 되려고 하면, 간호협회(아마 의사협회도)에서도 반대를 하고 막고 나선다. 그것은 정교사가 보건교사 되는 게 싫어서다. 그러니 간호학과 더 가지 말란 말이다. 간호협회에서 반대할 게 뭔가? 보건교사의 입지에 대해 지들이 알기나 하나? 그래서 간호협회 회비도 안 낸다, 나는.  


  2) 어떤 동료인가? 도 중요하다.


    난 사람은 그리 다르지 않다고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 겪어보고,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 보다 보니, 사람도 참 천차만별이더라.

    예전에는 의료동아리 MT나 농활을 가서 한 방에서 남녀가 다 같이 자도, 한번도 성희롱 등을 걱정한 적이 없었고, 그런 일도 없었다. 그것이 예전이어서 그랬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르겠으나, 나는 사람 차이가 크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당시도 다른 학교를 보면, 그런 사건들이 없지는 않았던 거 같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인간 존중을 추구하는 동아리여서, 규칙을 잘 지키는 모범생들이 많은 곳이어서 그렇다고 본다. 내가 겪어보니, 적어도 경력 많은 간호사보다는 경력 많은 교사들이 낫더라. 옛말에 '장사꾼 중에 제일 착한 사람과 교사 중에 제일 나쁜 사람을 비교해도 교사가 착하다.'라는 말이 있다.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 중에 그렇게 사악한 사람은 없어 보인다. 맹모삼천지교가 왜 있겠는가 말이다. 물론 그 직업조건에 영향을 받기도 하겠으나, 학생들 보니, 사람 수준도 참 천차만별이더라. 학교에 따라 학생들 수준이나 분위기도 많이 다른데, 교육으로 학생 모두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정교육에서 부터 유전자가 다르다. 세상에는 원래 나쁜 인간도 많고 교육으로 바꿀 수 없는 인간도 많다. 최근에 소위 배웠다는 인간들 사이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시스템의 문제기도 하고, 소위 공부 잘했다는 모든 인간이 모범적일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법이나 제도를 만들어서 일거다. 세상에는 안 그런 사람도 참 많다. 따라서 적어도 공부를 잘하는 축에 들어가면, 괜찮은 동료를 만날 확률이 높다. 그래서도 공부는 일단 잘하고 봐야 한다.


  보건교사를 예로 들어보자. 일단 동료가 없다. 정교사는 보건교사에게 동료가 될 수 없다. 사적으로 친한 사람은 만들 수도 생길 수도 있겠으나 직장 동료는 아니라는 말이다. 직장 동료라면, 비슷한 업무를 하고 속상한 것도 비슷해야 한다. 그런데 보건교사와 정교사는 업무가 많이 달라서 한쪽이 편한 시기에 한쪽은 힘들어진다. 그러니, 서로 이해하기도 어렵고, 직장내 고충의 성질이 달라, 나누기가 힘들다. 직장생활의 재미, 같은 동료들끼리 함께 밥을 먹으면서 쌓이는 정도 쏠쏠할텐데, 그런게 전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직장을 선택할때는 동료가 있는 지 여부, 그들의 대체적인 성격이나 인간성 수준도 살펴봐야 한다.


  3) 업무의 성격이 자기 개발이 되는지 아닌지를 살펴봐야 한다.


   직장인을 보면, 두가지로 나뉜다.

(1)'월급만 아니라면 아, 이 직업을 빨리 관두고 싶다.'는 부류와 (2)'비록 월급이 적더라도 난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어.'하는 부류다. 나는 (1)의 부류다. 그런데 정교사들을 보면, 자기 일을 좋아하며, 잘리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들, 즉 (2)의 부류가 많은 것 같다. 같은 교사라고 생각하던 때에 나는 그점이 참 의아했다. 난 지금이라도 연금만 어느정도 받으면 관두고 싶은 맘이 굴뚝 같은데, 다른 교사는 아닌 거 같아서였다.

   그런데 수업을 해본 지금은 알겠다. 정교사 일이 재밌다는 걸 말이다. 적어도 보건 업무 보다는 교사 일이 재밌다. 보건교사나 간호사가 아주 적성인듯 보이는 다른 보건교사들도 이 얘기에는 대부분 동감한다. 나는 보건교사 생활을 한 지 20여년이 지나서야, 재미있는 연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교사들은 대부분 초임 발령 때부터 자신이 하고 싶으면 들을 수 있는 연수였지만, 보건교사인 나는 더이상 다른 직업으로 갈아탈 수 없는 시점이 되어서야 내가 듣고 싶은, 재미있는 연수를 듣게 된 것이다.  식물 키우기, 도자기 만들기, 목공 연수 등.  재밌는 연수는 대부분 경쟁율이 높아서 경력 낮은 보건교사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연수를 받으려면, 학교에서 3시쯤 조금 일찍 나가야 될 수 있는데, 늘 보건교사는 학교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거절 당하기가 쉽다. 다른 교사들이야, 자기 수업이 끝난 그 시간부터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런 연수도 받아보니, 나는 몸으로 하는 것과는 완전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위에 예로 든 3개가 모두 손놀림이 섬세하지 못하여 잘하기도 힘들고, 별로 흥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연수를 통해 갑자기 학교 생활이 즐거워졌다는 사실이다. 뭔가 자아실현이 되는 느낌이랄까?  그런 충격적인 감정을 느꼈다.  아 그래, 자아실현이 되는 직업과 일도 있구나, 내게 이런 연수들이 조금 일찍 주어졌다면, 내게 맞는 다른 직업으로 갈아타기가 더 쉬웠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 다른 직업으로 갈아탈 수 있는 그런 기회들은 필요할 때 주어지지 않는다. 앞에서 나는 교사가 그래도 공부하기 좋은 직업이라고 했지만, 나이가 젊을 때는 어떻게든 방해를 받는다. 나는 전문대학 문예창작과를 편입하여 야간에 다니면서도 무척 힘들었다. 꼭 내가 공부를 좀 하려하면, 어떤 식으로든 맥을 끊고 방해를 하기 마련이다.  직장은 그런 곳이다. 그러니, 보건교사를 하면서 다른 직업으로 갈아타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편이 좋다.  내가 아무 일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을 때는 방해를 하지 않지만, 그 가만히 있는 시간을 활용하여 뭔가 생산적인 나의 발전을 기하려면, 꼭 방해들을 하는 학생과 정교사가 있다. 다분히 의도적이란 심정이 들긴 하지만, 증거는 없다. 그러니 한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직장으로 갈아타는 것은 힘들다. 세상은 안정 아니면 모험이다. 

   좌우간 나는 이런 연수들을 50살이 넘어서야 접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을 통해 보건교사 보다는 정교사의 일이 자아실현 및 자기발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며, 그래서 재밌고, 또 육체노동은 아니기에 쉽다는 얘기를 분명히 해둔다.  어떤 직장을 선택할 때, 자기발전과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고 정신놀이에 가까운 업무인지를 잘 살펴보고 선택하는 편이 좋다. 

   하지만 다시 직업을 선택한다면, 나는 교사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성인들끼리의 성숙된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 수준에 맞추어 교양을 떨며 말과 행동을 해야 하며, 지나치게 인간과 많이 접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열받게 하는 동료나 상사라도, 숫자가 적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성인간의 인간관계가 낫다고 생각하고.  그러니 다시 직업을 선택한다면, 교사는 안할 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직업에 적성이 없다면, 더더욱 자기 개발과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는 업무인지, 아닌 업무인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이것은 그 직업을 빨리 관두고 싶어 하는 직업인들인지, 힘든 상황에서도 꼭 직장을 다니고 싶어하는 직업인들인지를 보면, 그 업무의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4) 결론 


 직업 선택할 때는 대부분이 예상하듯, 보수와 복지, 안정성과 더불어 아래 사항을 고려하면 되겠다.


  업무가 뭔지, 동료가 어떤지, 자아실현도 할 수 있는 정신놀이인 업무인지도 놓치지 말고 잘 살펴봐야 할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