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는 귀천이 있나? 있다.
예전에는 사농공상이 있었다. 그게 직업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양반은 글을 읽고 제도를 결정지으며, 천민은 각종 기술이나 음식이 될 육류를 손질하였고, 양민은 곡식을 재배하였다. 이것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공부를 하는 것은 양반의 몫이었는데, 이제 모든 사람이 글을 읽는다. 학생 때는 대부분 이 양반이 했던 공부만 시킨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면, 아직도 이공계통과 문과계통으로 나뉜다. 이공계통은 대부분 기술직이다, 즉, 예전의 천민이 했던 직업이라는 것이다.
직업에는 적성이 있나? 있다.
예전에는 사농공상으로 나뉘어 했던 일을, 이제는 분업으로 각자 자기 직업 가운데 행한다. 학생 때는 아직 양반이 했던 공부만 해서 그 적성을 모른다. 그런데 그때 이과와 문과를 나눈다는 것은, 직업을 복불복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이다. 직업에는 적성이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여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하면, 이과로 배정해 버린다. 문과 학문은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게 하지만, 이과 학문은 그런 생각들을 키울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 자기 적성도 모르는데, 그냥 이과 문과로 나뉘어버리니까, 나중에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나의 적성과 관계없이 과를 선택하여, 직업에 몸 담는 것이 복불복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각종 진로를 배운다고 해도 그렇게 빨리 나는 양반 계통 직업인인지, 천민 계통 직업인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선택하는 꼴이 되니, 제대로 된 진로 교육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학생 때, 문과 이과 나누는 제도는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한다. 문과 이과는 대학갈 때 결정해도 늦지 않다.
나는 오랫동안 보건교사가 하는 일이 아주 쉬운 것인데, 내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교장이 말한 것처럼, 빨간약 슥슥 발라주면 되는 건데, 난 왜 이렇게 이 직업이 힘든 거지? 아마 내가 간호학 적성이 아니라서, 간호학에 무식해서 그런가 보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직업이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벌써 정교사들이 우리를 정교사에 넣고 그들이 우리 직업을 차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한다? 왜? 사무실도 교장처럼 따로 있고, 혼자 일할 수 있는 편한 일인데 말이다. 편한 게 싫어서? 그때 깨달은 것이다. 보건교사라는 직업이 정교사가 하는 일보다는 적어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아, 아주 어려운 일인데, 내가 이만큼 유지한 것도 대단하네, 쭉 해보자.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정교사가 학생을 교육하다가 살짝 잘못 가르쳤다 치자, 그럼 아, 선생님이 잘못 말했네, 그건 이게 아니라 이거야, 하면 끝난다. 하지만 간호사가 수액을 하나 잘못 놓거나 보건교사가 응급상황에서 실수를 했다고 치자, 이건 되돌리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이나 기능에 손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주 어려운 직업이다.
덜렁대는 성격을 가진 사람은 절대!!! 의료계통의 직업을 가져서는 안된다! 본인도 불행하고 사회의 다른 사람들도 불행하다. 나는 캔디라는 만화책을 보고, 간호사를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주 큰 실수다. 요즘 학생들은 이 만화책을 모르겠지만 말이다. 캔디는 아주 덜렁대는 성격을 가졌는데, 실수를 연발하다가 꽤 괜찮은 간호사로 거듭난다. 환자들은 캔디를 좋아한다. 환자들에게 친절하게 하고 희생, 봉사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과 너무 많이 어긋나서 큰 문제를 유발하는 내용이다. 간호사가 덜렁대다가 실수를 하면, 심할 경우 환자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그 실수를 만회하고 지속적으로 간호사 직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 큰 문제가 없어 실수를 만회하고 계속 간호사 일을 한다고 해도, 덜렁대는 성격은 고쳐지기 힘들며, 또다시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 다른 직업이야 아무리 큰 실수라도 인간의 생명과는 크게 무관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간호사는 그렇지 못하다. 덜렁대는 성격은 아주 상황이 차분하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실수를 할 수 있는데, 간호사나 보건교사는 상황이 열악하다. 간호사는 짦은 시간에 종종걸음을 치며 이 일 저 일을 힘든 상황에서 동시에 해야 하고(인원이 많이 부족하니까.), 보건교사는 여러학생들이 보건실에서 떠드는 상황에서 응급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니, 덜렁대는 성격이면 아주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잘못 실수로 비슷한 약을 바꾸어 투약했다 치자,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여러명이 몰려서 보건실을 온다. 난 환자만 들어오라고 내보내지만 떠들며 말은 잘 안 듣고, 응급환자가 있을 때는 학생들을 밖으로 내보낼 여유가 없다, 단 1명이니까. 그래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응급환자를 봐야 한다.
간호의 역사를 배우며, 아 의사 시다바리구나, 란 생각을 대학생 때는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바뀌었다. 간호사라는 명칭은 실행의사로 바뀌어야 한다. 의사가 이론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판단을 내리면, 그걸 직접 실행하는 것은 간호사다. 의사가 아 이 환자는 이런 저런 수액과 약을 줘야겠구나, 한다고 해서 직접 그 약을 주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의사가 직접 시술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간호사가 실행을 한다. 그러니 실행의사로 명칭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간호'라는 명칭은 '아픈 환자를 돌본다'는 의미가 강해서, 의사가 내린 처방을 직접 실행한다는 의미보다는, 가족이 환자를 돌보듯이 보살핀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간호사는 그렇게까지 돌볼 여력은 없다. 그것까지 하라고 한다면, 실행의사로서의 역할을 자칫 실수하기가 쉽다. 그러니 간병인과 혼동되다보니, 최근에는 간병일까지 간호사 업무로 더해지는 일이 생겼다. 내 가족 1명이 아파도 그걸 간호하기가 어려운 실정인데, 실행의사가 그것까지 감당하려면, 지금보다는 아주 많은 인원이 보강되어야 한다. 돈은 한정되어 있고 의사가 많은 돈을 가져가는데, 간호사를 많이 고용할 상황이 될 것인가? 그것은 또한 바로 일반환자의 의료비를 상승시킬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착각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간호사'라는 명칭에 있다. 의사들도 착각하는게, 판단은 자기들이 하지만, 환자에게 직접 자기의 판단을 실행하는 사람이 간호사인데, 간호사를 자기 밑에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현대는 분업시대다. 의사가 아무리 좋은 판단을 해서 괜찮은 약을 처방했다 하자, 그래도 간호사가 그 시행을 제대로 못하거나 안하면, 그들은 잘못된 의사로 지탄받을 수 있다. 그러니 의사들도 간호사를 동료로 생각하고 존중해야 한다. 일반 사람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려면, 간호사란 명칭을 실행의사로 바꿔야, 간병인과의 착각을 줄일 수 있다. 얼마전 간호사들이 환자에게 성희롱을 많이 당한단 기사를 접했는데, 참 위험한 행동을 가해자는 한 셈이다. 만일 내가 간호사로 있는데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나는 그 성희롱 환자에게 잘못된 약을 의도적으로 주입해 버릴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무서운 사실을 모르게 하는 명칭이 '간호사'다.
그러니 절대로 간호학과 가지 말란 말이다. 적성에 안 맞으면, 의도치 않게 실수로도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직업이다. 간호사를 안하고 그 계통의 다른 직업을 가져도 그런 부분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다.
그러니, 간호학과 절대!!! 덜렁대면 더 절대!!!!!!! 가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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