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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아무거나 시크하게 쓰기

간호학과 절대! 가지 마라 2

 사람이 바쁜 것도 힘들겠지만, 할 일이 없는 것도 참 미칠 일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아마 심심해서일 지도 모른다. 나의 치부를 드러내어, 나 이렇게 못났소, 하고 글을 쓰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되도록 자신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인간의 욕망이니까. 그래도 나의 치부를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이런 글을 쓰는 건, 존재 증명이라고 해두자.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존재를 입증하고 싶어 한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도 어쩌면 그런 존재 증명의 일부 아닐까? 평생 독신으로 살고, 직장에서도 딱히 인정을 못 받고, 소위 세상사에서 인정받을만큼 성공하지도 못한 사람은 어떻게 자기의 존재를 증명해야할까? 나에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일종의 존재 증명이다. 그럼 왜 나란 인간이 간호사로 몇년 살지도 않은 나란 인간이 간호학과에 가지 말라는 지 본론으로 들어가보도록 하자.


 일년 반 정도의 병원생활을 접고, 이제부터 뭘 먹고 살아야 할 지 막막했다. 다들 잘 해내는 직장생활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리하여 도서관을 갔다. 읽고 싶어도 읽을 여력도 안되고 시간도 없어 못 읽은 소설책이나 실컷 읽어야지 하고 말이다. 병원을 다닐 때 난 그곳을 그만둘 수도 잘해낼 수도 없었기에 자살하고 싶었다. 내가 자살을 한다면 우리 가족은 얼마나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며, 뭘 먹고 살 것인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가도 그래 내가 죽는판에 가족 걱정은 뭐하러 하나, 다들 알아서들 살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살을 하고자 하니 그 방법이 문제였다. 병원에서 익사체에 대해 주고받은 얘기들이 생각났다. 죽더라도 물에 빠져 죽지는 말아야된다, 물에 퉁퉁 부은 모습은 정말 못봐준다는 거다. 좌우간 이 생각, 저 생각 했지만 죽을 용기가 없었다. 자살하는 사람은 참 독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드는 게 정말 맨정신으로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좌우간 그런 고민들을 하면서 책을 봤다. 간호학과를 나왔는데 간호사를 못하니, 뭔들 제대로 하고 살겠는가? 싶은 것이다. 아무 것도 못하면 죽는 수 밖에 없는데, 죽을 용기도 없었다. 그러다 책을 보며, 작가가 되어야겠다, 고 생각했다. 나만 못난 줄 알았더니, 책 속에는 나처럼 찌질한 인간들이 널린 거다. 그래, 작가는 학벌도, 나이도, 성별도, 돈도 다 무관하니, 작가가 되는 길만이 내가 살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아니면 난 죽음을 택해야 할텐데,, 작가가 된다면, 내게는 살 의미가 생기는 거였다. 그런데 작가가 되자, 생각을 해보니, 작가는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니 일단 돈을 벌면서 준비해야겠다, 생각한거다. 그러면서 그 당시 양호교사(지금은 보건교사로 명칭이 바뀌었다.)를 하면 책 읽을 시간은 많겠구나, 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 전까지 그렇게 안 좋아 보이던 교사라는 직업이 급 매력적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적어도 삼교대는 아니니,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실컷 보겠구나(요즘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tv시청이지만, 그 당시는 시간을 놓치면 볼 수 없었으니까.). 시간이 많으니 독서는 실컷 할 수 있겠구나, 이렇게 기대하고 양호교사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 꼬박 10시간씩 공부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건 모두 다 외우는 공부니, 어느날은 머릿속이 가득차서 한 글자도 밀어 넣을 수 없겠다, 싶을 때도 있었다. 게다가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신경을 쓰니, 위궤양에 시달렸다. 좌우간 그렇게 하여 하느님께 합격만 시켜주시면, 교회에 충실히 나가겠다고 빌어서 합격을 했다.(하지만 난 지금도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그리하여 근 26년 정도를 보건교사란 직업으로 살았다. 왜 작가가 되려고 보건교사가 되었는데 아직 작가가 되지 못했냐고? 직업이란 게 묘하다. 초임 발령을 받으면, 일에 익숙치 않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 또 내가 생각한 것처럼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일상에 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처음 입사하니, 함께 입사한 동기들과 같이 어울리는 것도 재밌고, 나쁘지 않았다. 점점 그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능력은 없으니 배우는 게 먼저였다. 작가가 되고 싶어, 시나리오, 대본 쓰는 걸 배우고 국문학과에도 가고 하다 보니, 배우다가 26년이 훌쩍 지난 것이다. 이 정도 경력이 되니, 처음에 정말 싫고 어렵던 보건교사 일도 할만하다. 그러니 더 이상 직업을 바꿀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게다가 여태껏 나는 작가는 글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글을 써서 돈을 벌 지 못해도 글을 쓰면, 작가인 것이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자 이제부터 보건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말해보기로 하자. 그러자면 한번 더 나의 치부를 드러내야 한다. 나는 합격하기 전, 지방 양호교사 임용에 응시해서 면접에서 똑 떨어진 경험이 있다. 그당시는 떨어진 이유가 성적과 후줄근한 나의 옷차림 탓이라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어쩌면 면접에서 내가 답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면접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만일 생물과에 결원이 생겨 생물을 가르쳐야 한다면 가르칠 수 있습니까?" 그 질문에 나는 교사가 되고 싶었고, 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에 그까짓것 못할 것도 없다 싶었다. "네, 당연히 할 수 있고,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제서야 그 답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보건교사 임용 시험을 볼 때는 절반은 교육학을, 절반은 간호학을 본다. 명칭도 '교사'이고 교육학 시험도 보았으니, 나는 당연히 교사로 입사하는 줄 알았다. 승진에 별 열의도 없었으니, 승진이 되든말든 별 관심도 없었다. 당장의 안정적인 월급 생활자에만 관심이 있었으므로. 그런데 26년을 하다보니, 그 생각이 참으로 잘못되었고, 교사라는 명칭에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교사라는 명칭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 정확히 교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정교사, 교과교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안 지도 거의 15년쯤 지났을 때 알았다. 컴퓨터 이전에 공문이 서류로만 올 때는 아예 대부분의 공문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며, 한동안 컴퓨터로 작업을 할 때도 컴퓨터가 자주 버벅대어 짜증이 났을 뿐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제서야 컴퓨터가 왜 버벅 댔는 지 알겠다. 다른 정교사들은 보건교사가 정교사가 아님을, 승진도 안됨을 보건교사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거다. 승진이 되고 정교사로서 특혜를 입고 있던 그들은 보건교사가 차별 받는다는 사실을 보건교사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감추고 싶었던 거다. 그당시는 정교사 아닌 교사는 보건교사 밖에 없었다. (일단 여기까지.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