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스산히 부니, 곧 겨울이 올 모양이다.
차가운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데도 불안하지 않다.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한 이유는 뭘까?
어려서 기억이, 추운 겨울에 큰 장독 위에까지 쌀을 가득 채워 두고, 나무 막대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연탄 간이 창고 위까지 연탄을 가득 채우면, 든든하면서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살다가 서울로 왔는데, 이곳에서는 겨울만 되면 더 가난했던 어려서보다 더욱 불안한 것이다. 참 이상했다, 어려서는 가난해서 쌀이나 연탄을 가득 쌓아 놓지 못하는 때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불안하지 않았는데, 왜 나의 20대 서울의 삶은 겨울만 되면 더욱 불안하고 가난했을까?
형편은 더 나아져 이제는 싸구려 연탄이 아닌, 기름으로 난방을 했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기름은 연탄처럼 쌓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기름통의 크기는 한정되어 겨울 내내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만큼 기름을 쌓아둘 수는 없었다. 물론 비싸서 그렇게 통이 크다고 해도 다 채워 놓을 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겨울이면 저녁은 빨리 오고 돈이 똑 떨어져서 미리 기름을 채울 수 없었다.
찬바람 쌩쌩 부는, 솜이불을 목까지 덮어도 추운 겨울밤, 기름 넣을 돈을 겨우 마련하여 퇴근했지만, 이미 기름 가게는 문을 닫아서 그 밤 내내 추위에 오돌오돌 떨어야 했던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기름(휘발유)을 난방으로 하는 이상, 싸구려 연탄처럼 가득 쟁여 놓을 수도 없고, 돈이 없어 3일만 건너 뛰어도 기름을 채울 수 없었다. 추위에 오돌오돌 떨며, 혹시 보일러가 얼어 터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던 것이다. 지금도 아마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그분들께는 미안하지만, 지금 나는 참 행복하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데도, 곧 추운 겨울이 올텐데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워지는 이 가을에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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