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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과 심리학, 철학 등

<심리학 2> 죽음으로부터 나를 구해 준 2가지

 

  나는 20대 초반, 취직을 하면서 늘 자살하고 싶었다.   이건 내가 알던 세상과 너무 다르고, 너무 힘이 들고, 나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다.

나는 일을 잘 하고 싶었으나 잘하기도 힘들었고 밤에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만큼 죄책감과 악몽에 시달렸다.  그때는 다이어트라는 호강된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도 스트레스 받으니 입맛이 없어서 적게 먹고 많이 힘쓰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시달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저절로 살이 빠져서 내 생애 최고로 낮은 몸무게를 기록했다.

 

  지금도 나는 다이어트 할 맘이 없는 게 고생(신체적, 정신적)하면 저절로 살이 빠진다.  그런데 무슨 다이어트를 왜 애써서 하느냐 말이다. 

 

  그 때 살이 빠지니까, 제일 싫었던 게 힘이 없는거다.   간호사란 직업은 은근히 정신적으로도 힘들지만 신체적으로도 힘을 써야 하는 직업인데, 운동할 시간(?)  그따위 호강은 꿈에도 꿔 본 적이 없다.  운동할 여유가 시간적으로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있을 게 뭐람.  좌우간 그래서 근육이 없는데 살까지 빠지니까 도대체 힘이 들어서 시트 하나도 못 갈고, 수액병(1000cc)도 제대로 들기가 어려운 것이다.  늘 튼튼해서 아파본 적이라곤 없는데 나는 왜이리 뼈가 약하고 힘이 없지?  하는 고민에 빠졌었다.  근데 나중에 보니, 그것은 단백질을 안 먹어서 그런 거다. 

 

   남자들이 왜 고기를 찾는 줄 아는가?  그것이 근육의 주성분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근육량이 많다, 그러니 저절로 그걸 찾게 되는 거지만, 확실히 내가 고기를 많이 먹으니까, 이제 그런 힘이 없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보통 나이트는 3일 정도면 다른 근무로 바꿔준다.  하는 일 없이 밤만 새도 체력이 딸리는데, 간호사란 밤 내내 쉬지 못하고 일을 한다.  응급실에서 응급 환자가 올라오면 밤내내 수액이나 혈액을 바꿔 걸며 고생을 해야 하고, 특히 바로 퇴근 직전에 새 환자가 오면, 힘이 고갈되는 마지막 아침 시간에 내내 고생을 해야 한다.  길어야 나이트는 4일을 준다.  그런데 수간호사는 나를 미워하여(왜 미워하는지 몰랐다.  그때는 내가 일을 못하니까 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나이트를 길게는 7일을 주기도 했다.  이건 나이트를 안해 본 사람은 모른다.  7일 나이트에 길게 10일 연장 근무를 주고나면 정말 내가 걷는 게 아니라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된다.  그런데 살까지 빠지니까, 손에 힘이 없어서 수액병을 들다가 툭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온 병동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몰리고 일 못하는 간호사로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일을 못하는 사람은 일을 배울 때까지 체력을 비축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하건만, 이건 전혀 그런 배려가 없다.  아마도 내가 4년제라서 그런 거 같다.  자기는 3년제 간호사가 일찍 출세하여 수간호사 자리에 올랐으니 말이다.  좌우간 그때도 전공을 벗어나 다른 직업을 가졌으면 될 걸, 그건 나에게 실패를 의미했거나 해서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거 같다.  그것은 완벽주의적인 사고와도 맞물려 있다.  물론 그당시 우리 사회에서 여자가 딱히 다른 직업을 가진다고 간호사보다 나으란 법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차라리 나는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음식점을 차리는 게 간호사 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리라, 지금은 생각한다.

 

  그리하여 병원을 자의반 타의반 그만두고도 늘 자살의 위협에 시달렸다.  내가 살 이유가 없는 거 같았다.  살아가려면 취직을 하고 집안을 부양해야 하는데 부양 할 자신도 없고.  게다가 병원에서 난 버텼어야 했는데 왜 버티지 못했나?  그런 자괴감에 시달렸다.  나는 정말 부족한 인간이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인간이다, 살 가치도 없는 인간이고, 살아갈 힘도 없다.  자살을 해야겠는데, 어떻게 죽어야 가족들에게 피해 안 주고 나라는 인간도 고통이 없이 죽을 것인가?  그 방법만 연구했던 거 같다.  

 

  도대체 나는 왜 병원에서 적응을 할 수 없었을까?  그 이유는 뭘까?  그 해답을 딱히 얻을 데가 없으니, 도서관에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그 해답을 찾으려 했다.  주로 눈에 띄는 대로 이것저것 여러 분야의 책을 읽다가 내 인생 한 권의 책을 발견하게 된다. 

 

   이미 소개한 바대로 그 책은 [절망이 아닌 선택]이다.  내가 살 가치가 없다고 여긴 것은 완벽주의적 사고 때문이구나, 하는 걸 발견하게 된 것이다.  즉, 뱀의 머리가 아니면 살 가치가 없었는데, 뱀의 꼬리여도 어느 인간이든 살 가치가 있다.  비록 용의 꼬리도 아닌, 뱀의 꼬리여도 말이다.  아, 내가 그렇게 된 이유는 완벽주의적 사고 때문이구나.  그러면서 나도 살 가치가 있는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을 가졌다.  공부를 잘해 용 같이 여겨지던 내가 기껏해야 뱀이 되었는데 뱀의 머리도 못되고 실패하여 뱀의 꼬리도 못되고 능력 없던 뱀들에게 치여 실패한 인생에, 가족을 부양하는 직업을 못 가졌어도 나라는 존재 자체로 나는 살 가치가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걸 깨달은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너는 너 존재 자체로 소중한 인간이야.  그리고 넌 살 가치가 있어, 하는 얘기를 해준 적이 없는데, 이 한 권 (지금은 2권으로 출판된다.)의 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래, 난 정말 소중한 인간인데, 왜 나라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 못하고 살아 온 걸까?  내가 가장 소중한데, 왜 나는 남만 소중하다고 생각한 걸까?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그 누가 나를 사랑해 줄 것인가?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는데, 나라도 나라는 인간을 사랑해줘야 겠다.  비록 내가 실패한 인생에, 보잘 것 없고,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도 말이다.  나 자신에게는 내가 제일 소중한 존재니까.

 

 

  아, 그런데 학교에서는 왜 이 중요한 심리학을 안 가르쳐 준 거지?  이런 걸 진작에 내가 배웠으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가열차게 심리학 책을 많이 읽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그런데 심리학 책을 쭉 읽다 보니, 계속 인간을 재단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특징을 지닌 인간은 이러저러하기 때문이며, 이러저러하다.  음....  읽다 보니, 나는 이러저러한 나쁜 인간이 안되려면, 요러저러하면 안되고 이러저러한 특징을 가져야 겠군.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를 재단하고 나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선교사가 운영하는 교회에 다녀서 노래와 춤을 배우고 빵과 우유도 주고 해서 좋았지만, 교회에 못가게 한 아버지의 제약이 없고도 대학교 캠퍼스나 도서관 풀밭에서 무수히 많은 교인들이 나를 교회에 보내려고 노력했지만 안 가게 된 이유와 통한다.  교회에 가면 늘 나 자신을 회개하고 나의 죄를 고백하면서 나란 인간을 재단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나란 인간을 어떤 틀에 넣어 잘잘못을 가리고 회개하게 만드는 게 싫다.  늘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나는 이미 이렇게 바르게 살고 있는데 더이상 어떻게 바르게 살라고 나에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라는 것일까?  그런 규격화하여 재단하고 늘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 주는 게 싫은 거다.  그리하여 이제 재밌는 책 위주로 읽게 되었다.  공부를 하다가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책을 읽는데 책 조차 재미가 없으면 난 무슨 재미에 산단 말인가?  하면서 말이다. 

 

 

  사실 그 책들을 읽으면서도 여전히 살기는 싫었다.  살아가려면 직장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직장에 취직을 못했으니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그러다가 한 소설을 읽게 되면서 아, 이건 나랑 비슷한 찌질한 인간들이 나오네, 나 같은 인간이 주인공이네,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나 같은 못나고 찌질한 인간이 많구나, 게다가 그런 인간이 감동까지 주는 주인공이다, 야하 재밌는데.  하면서 나도 작가가 되어야겠다, 그리하여 이런 글을 쓴다면 한번 살아볼만 하겠는데, 안 죽고 할 일이 생겼네.  그런데 작가가 되려면 보건교사가 가장 좋겠어.  시간도 있고 돈도 벌 수 있으니까 가족도 부양하면서 작가가 되겠다는 나의 꿈도 실현할 수가 있겠는데..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나에게 살 이유를 만들어 준 한 권의 소설.  그 소설은 [젊은날의 초상?] 또는 [마당 깊은 집] 이문열의 초기 단편집 [눈보라 속 영양을 넘어가는풍경--제목은 아니고 내용] 등 딱히 어느 것이었는 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나에게 꿈을 심어준 것이다.  아, 살아야겠다, 그리고 작가가 되어야겠다, 라는 꿈 말이다!

 

  그러니 나를 죽음으로부터 구해준 2가지는, 심리학과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