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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과 심리학, 철학 등

<진로 지도 9> 나는 왜 작가가 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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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교사라면, 작가가 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다.  작업실이 따로 있지, 한가할 때는 책을 읽을 수도 있지, 안 그런가?  그런데 나는 왜 작가가 되지 못했을까? 

 

 

  이런 작가 되기에 천상의 조건에 내가 작가가 되지 못한 건, 난 정말 작가적 재능이 없나 보다, 생각했다.  예전에 친했던 국어 교사(다 그런 건 아니다.)를 보면, 묘사에 달인이다.  그냥 나 같으면, A는 B다, 하면 끝날 얘기를 "A는 A-인데 A--같고, B-, B--,B---지요?".  그때는 이미 직업을 보건교사로 갈아 탔다고 생각할 때라서, 아 나는 작가적 재능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잘 갈아탔네 직업.  죽었다 깨나도 나는 저 샘처럼 말은 못하겠다.  으 닭살 돋고 지겨워서 말이다.  게다가 저런 단어들도 잘 알지 못하니까..  라고 생각했다.  역시 국어 교사도 안하길 잘했어, 라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문체의 차이다.  그 국어 교사는 묘사의 달인이고, 나는 간결체다.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작가가 되지 못한 건, 먼저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 등 창작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글을 쓰는 사람만 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울러 그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만 작가라고 생각한 탓이다. 

 

  게다가 그 때는 종이 지면으로만 글을 발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작가는 시간보다 생각의 자극이 더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 자극 없이 시간만 많으면, 생각은 멀리 달아나 버린다.

 

  네번째는, 존경의 욕구(사회적 명예 등의 욕구-보건교사로서의 인정)를 만족하지 못하고, 그 윗단계인 자아 실현의 욕구(-작가-)를 추구했기 때문에 단계를 뛰어넘는 욕구로 발전할 수 없었다.

 

 

   나는 외국 사람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래도 매슬로우 아저씨는 좋아한다.

 

   내가 간호학과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이 아저씨를 만난 거다.  그래봐야 5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간호학과는 2시간 수업에 두꺼운 스프링 노트 절반을 훌쩍 넘기게 수업 분량이 많다.  그렇게 다 배워봐야 기억 하나도 안나는데 말이다.  뭐 가끔 나는 것도 있지만 분량이 많으니, 상대적으로 공부를 포기하게 된다.)

 

 

   살아갈수록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은 맞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욕구는 단계가 있고, 그 하위 단계를 뛰어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는 견해 말이다.  사람은 제일 먼저, 식욕, 수면욕 등 '생리적 욕구'를 느끼고, 이 단계가 만족이 되면 '안전의 욕구'를 느끼며, 그 다음으로 '애정과 소속감의 욕구'가 생긴다.

 

  이 '애정과 소속감의 욕구'가 만족되면 다음으로 '존경과 명예/사회적 인정의 욕구'를 추구한다.  이 단계 위에 '자아 실현의 욕구'가 있다.

 

  그러니까 못 먹고 살면, 생리적 욕구만 추구하다가 볼일 다 보는 것이다.  그 단계를 뛰어 넘으면, 집을 사고 싶다는 안전의 욕구를 느끼고, 그 다음엔 아 난 집과 돈, 다 있는데,,  사랑할 사람(가족 등)이 없구나 허무하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제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안전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게 되면, 드디어 나도 사회적으로 좀 인정받고 싶은데?  이런 욕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 욕구가 만족되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어떤 것을 추구하게 되고 그것으로 나아가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생긴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보건 교사, 교산데 수업을 안하네?  무시해도 되는 선생님, 이런 시각 속에서 나는 존경의 욕구를 뛰어넘지 못했다.  물론 남이 그렇다해도 나라는 인간이 아주 보건교사로서 탁월한 능력이 있다면 존경 받았을 것이나 나는 그러한 재능을 타고 나지 못했다, 늘 때로 학생이나 다른 교사보다 더 불안하다.  검사 기구도 없고, 딱히 응급실에 근무해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다른 모든 과를 아우를 지식도 없고, 일단 스스로가 관심이 별로 없었다, 의학에.  그러니 어찌 이 단계를 뛰어넘겠는가?  그러니 아무리 내가 자아실현의 욕구를 추구하고자 작가가 되고자 한들,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매슬로우라는 이 분을 무지 존경한다.  왜?  스스로 느껴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괜히 또 매슬로우라는 이분의 지식이 다양하게 쏟아지는 사회복지를 전공하겠다는 뜻 품지 말라.  사회복지?  음,,, 내 가족 1명도 아프면 돌보기가 어려운데, 남을?  그것도 때로 여러명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이 가장 요구가 많고 여건이 열악한 직업이다.  게다가 여기도 여자가 많다, 제대로 인원 수급되기 힘들다.  그리고 우리나라, 힘들수록 그 직업을 경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못 먹고 사는 사람 상대하려고 해봐라, 욕구는 뒤지게 많다.  자기에게 그 직업 시키면 얼마나 잘 할까?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의 불만을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풀게 된다.  그러니 보건교사도 좋아 보이지만 작가적 성향과 안 맞고, 늘 사고가 끊긴다.  그러니 선택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 이러한 이유로 나는 작가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보건 교사를 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게 관심의 전환이다.  그러니 전공과 너무나 다른 문과 계통의 작가?  어렵지 않겠는가?   내가 공부를 조금 한 이유는 딴 거 없다.  몰입도가 뛰어난 것이다.  그런데 다른 분야에 몰입하고 있다가, 아픈 학생이 들어온다, 그 몰입을 재빨리 전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자, 공부 잘하는 사람이 선택할 직업은, 책과 관련된 직업이다.  그리고 남이 아닌 자기 스스로 헤쳐 나가는 직업이 좋다.  타인을 위해 성취하는 건 체질이 아니다.  즉, 인간관계가 많거나 광범위하며,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은 적성이 아니란 얘기다.  정말 혼자. 공부하는 걸 좋아했다면 말이다.

 

  좌우간 그리하여 나는 작가가 되지 못했었다.

 

  왜 못했었냐고?  지금은 작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날부터 나는 보건교사가 아주 맘에 드는 직업이란 걸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블로그라는 이 인터넷 사이트를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아하, 글을 쓰는 게 꼭 지면만 있는 건 아니구나?  아주 좋은데,,,  이러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이제 수업까지 시킨다.  좋은 건 윗사람인 정교사.에게 해당하니까, 이제 인터넷 스마트폰이 등장하여 더이상 앉아 있는 게 면벽수행, 감옥에 갇힌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못하겠다는 거다.  감옥살이 하느라 힘든 시기에는 수업이 아주 대단한 거 인양 못하게 막느라 애쓰더니만, 야아 이거 둘 다 부려먹을 수 있겠네, 하니까 둘 다 시키겠다?  그렇게 만만하냐?  보건 교사가?  아니 그렇게 보건일이 만만하면 그냥 정교사 시키고 니들도 좀 편하고 만만한 일 해보면 되겠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근무할 때 블로그에 글 쓰는 걸 테클하느라 아주 바쁘시다.  그리하여 성질이 안 나겠는가?  자기 업무도 바빠 죽겠는데, 한가한 시간 보내며

 (그건 그 사람들 생각이다.  사실 나는 면벽수행 하느라 미쳐 돌아가시겠다.  이래서 보건교사는 정교사되고 서로 서로 다른 사람의 업무를 해보아야 힘든 거 안다.  나도 수업시키기 전까지는 수업이 꽤 힘든 일이라는 것 몰랐다.  그리고 아프지도 않은 꾀병 학생을 내가 왜 다 처치해줘야 하는 지 이해를 못했다.  사회가 이렇게 집에서 과보호하는 학생으로 넘쳐나는 지 몰랐다.) 

 

  블로그질 하는 사람을 감시하고 못하게 하느라 힘을 써야 하나?  상대적으로 억울하네, 하고 테클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당신들 생각이시고, 나도 억울해 미치겠다.  내가 한가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바쁠 때는 또 힘들어 미치겠고, 한가할 때는 한가해서 미치겠고, 그렇다고 남 일 다 대신해 줄 수도 없고, 몇 천명인데 그 애들 요구 다 들어주긴 힘들고, 또 다 들어 주기가 싫다.  왜 자기들이 집에서 해야 하는 처치를 1명인 보건교사에게 바라는가?  물론 요즘은 집에 부모가 없으니 필요도 하겠다는 생각도 요즘은 들기도 하지만, 그러다 보면, 1학교에 1명 가지고 되겠는가? 싶다. 

 

  (앉아서 블로그질하며 아픈 학생 기다리는 게 내 일이다.  그럼 앉아 있는 내내 무슨 병에는 뭐 어떤 증상이 있고, 이런 스트레스 받는 지식 검색하고 있어야 하겠냐?  전공을 열심히 하셔야지요, 보건교사가?  열심히 하고 말고는 내 자유야, 게다가 니들이 이 전공에 내가 맞다고 박아줬냐?  좋은 대학 보내고 자기 성과 얻을라고 가만히 있었지.  근데 뭐 나한테 전공에 대해 열심히 해라마라야.  의사도 진단은 기계와 검사지 도움을 받는다.  근데 무슨 응급과 꾀병을 검사 도구도 없이 구분해 내냐? 그러니 나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 말지니...  그럼 친절이나 하라고?  학생 감당하기 힘들다고? 그게 당신들 일이다.  보건실에 오는 학생은 내가 감당하는 게 내 일이고.  그러니 내게 이래라저래라 바라지 마라.  난 친절할려고 보건교사 하는 사람 아니니까.)

 

 

  그러데 그때는 작가는 포기한 때라서 취미생활로 하려고 하는 때였다.  그런데 그걸 자꾸 주위에서 못하게 하니까, 이상한 거다. 왜에?

  그러다 나는 심하게 아프고 난 후, 세상에 조금쯤 눈을 뜨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인간관계가 잼병에다 보건실에 혼자만 있어서 세상물정을 몰랐다.  직업 조건이 나이차별이 없어진 지도 몰랐다.  게다가 학생들, 수업이 변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인터넷(전자공문)을 통해 예전에는 위에서 차단하면 못 받던 공문도 받게 되고 나서 인터넷이 왜 맨날 버벅거렸는지도 몰랐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 그러다가 아 내가 이런 모습인 게 내 잘못만은 아니구나?  그걸 알려야 겠는데?  하고.

 

 

  그리고 이제는 소설가만 작가가 아니구나, 하는 것도 알겠다.  작가란 자기 생각을 공식적인 글로 표현하여 독자의 호응을 얻는 사람이다, 독자와 대화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이미 작가다.  블로그에 내 생각을 쓰고 있으니까.  비록 독자는 적지만 그것은 차차 늘려가면 된다.  게다가 양이 다가 아니다.  내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소수라도 있으면 만족하는 것이다.

 

 

  이제 존경의 욕구만 뛰어 넘으면 된다.  그런데 친절하려고 노력해도 안 되더라.  직업 특성이다.  난 이 월급에 딱 이만큼 친절하고 일하면 그만이다, 는 판단이 섰다.  더이상 바랄려면 돈을 더 주든지 인원을 늘려줘라!

  (물론 나는 웬만큼 줘서는 만족 못한다.  다른 보건교사들이, 내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성과급은 맨날 다른 정교사들 깔아줘야 하나?  할 때도 아니, 성과급 맨날 바닥 주면 열심히 안하면 되지, 왜 자기가 하면서 성과급 안 준다고 난리지?  이랬다.  난 안 줄 거 아니까 열심히 안하는데 했거든.  아 나는 그 성과급 솔직히 더 많이 줘야 일하지, 이랬나 보다 내 가치는 더 높은데? 하고 말이다.)

 

 

  음.. 존경의 욕구와 자아 실현의 욕구를 동시에 만족하려니까, 자꾸 얘기가 내 직업으로 샌다.  여튼 이제 나는 작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