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 또다른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다.
이미 앞에서 나는 완벽주의적 사고를 양육받은 사람의 위험성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그리하여 그러한 사고를 경계하라는 [절망이 아닌 선택]이라는 책을 추천한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뱀의 머리냐 용의 꼬리냐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가치관이 얼마나 안좋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그러한 완벽주의가 없다면, 사람들은 과연 일을 열심히 하게 될까? 세상은 발전할까? 이런 의문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결론은 잘모르겠다 이지만...
이 영화는 몇가지 의문을 던지며, 꽤 교훈을 주는 영화다. 그럼 이 영화가 던지는 몇가지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한 분야에서의 완벽을 요구하기에 다소 폭력적이기도 한 교수법은 옳은가?
내가 생각한 답은 그 부모의 양육 방법에 달렸다 하겠다. 그 부모가 그 교수와 같은 완벽주의적 부모라면, 그 교수법으로 배운 사람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을 것이고,
그 부모가 그 반대로 지나치게 허용적이고, 어떤 목표의식이나 이런것들이 부재한 사람의 경우는 효과적일 수 있겠다.
2.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정말 나의 욕구일까? 아니면 부모의 기대에서 비롯된, 또는 사회적 관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욕구일까?
플래처 교수의 교수법에 나가 떨어져서 드럼이 아닌 다른 길로 나가는 학생들의 경우, 드럼을 치는 것이 진정한 나의 열정이나 욕구라기 보다는 과시욕이나 기타 타인의 욕구일 확률이 높은 것이고, 이 글의 주인공의 경우 다른 무엇도 아닌 드럼 치는 것이 정말 자기가 원하는 욕구이며, 열정을 쏟을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누가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지만, 혼자서 열심히 드럼을 치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인다. 이것이 그 학생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마지막 부분 자기 아버지가 자신을 포옹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은 플래처 교수를 음해하거나 드럼을 그만두는 것이, 진정 자기 욕구가 아닌,
사실은 자신을 영원히 품 안에 두려는 아버지의 욕구였음을 깨닫는 것이다.
3. 한 분야에서 완벽한 뛰어남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가?
만일 그게 나쁘기만 하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연주라거나 기타 여러 문명의 이기들을 누릴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가끔 스마트폰을 개발한 사람을 영웅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짧은 그의 생이 행복했을까? 라는 의문을 떠올려 보는데, 그는 사는 동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행복했을 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이 영화를 보고 하기 시작한다.
'길고 가늘게' 와 '굵고 짧게' 중에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음,,, 나의 선택은?
여전히 '가늘고 길게' 이지만, '열정적으로'를 하나 덧붙여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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