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그 자막처럼 정말 칼날이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
혼자인 소녀, 엄마는 없고 아빠는 야근으로 늘 늦게 들어온다.
어쩌면 그러한 아이의 다침은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막 나가는 범인들이 같은 세상에 함께 살고 있다면,,,
그렇다면, 아이가 무사한 방법은 아빠의 야근이 없던지, 그런 범인들이 사라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관객에게 통쾌함을 제공해준다.
막나가는 십대들이 담배를 피고 있거나 삥을 뜯고 있어도, 무서워서 어른들이 그냥 지나치는 세상이다.
그들이 무서운 이유는 충동적인 뇌로 인해 쉽게 죄를 짓고, 어른이 아니기에 처벌이 약하다.
그런 그들을 상대하자면, 어른도 똑같이 충동적이 되어 그들을 무찌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통쾌했다.
이 남자, 고장난 기계를 고쳐달라 해도 고쳐주지 않고, 납품기일을 못 맞추는 건 남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닥달하는 곳에서 일을 한다.
그런 곳에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아이가 있기에 삶의 희망이 있었던 거 아닐까?
이제 아이도 없는 세상에서 그는 더 이상 그 부당함을 견디면서 살아갈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중년의 충동적인 뇌로, 그는 살인을 저지른다.
그 남자가 저지르는 살인 장면은 아이의 아버지 였다면,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런 차원은 아닌 거 같다.
그저 그 순간, 자신의 충동적인 뇌를 절제하지 못한, 10대와 같은, 어른이 되지 못한 한 남자의 실수다.
만일 그 범인들이 법의 처벌을 받고 풀려 났을 때 살인을 했다면, 그것은 충동적이라고 볼 수 없겠지만,
이 영화에서의 그의 행동은 다분히 충동적이고, 연민이 생기는 행동일 뿐이다.
그러나 범인 같은 학원원장 같은 사람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야 하는 한 시민으로서,
주인공처럼 부당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행위에 통쾌함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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