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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아무거나 시크하게 쓰기

성형? 타인의 시선이 내 몸보다 소중한가?

 

                      성형?


 

  '뼈와 살을 깍는 고통'과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성형하는 사람들을 전자적 입장에서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후자적 입장에서 보면 '참 겁없다' 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성형이라는 것이 존재치 않았으므로 그 어휘의 뜻은 어디서 발생한 것일까?

  주물 성형 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다.  주물이란 '쇠붙이를 녹인 쇳물을 일정한 형태의 거푸집에 부어 넣어 굳혀서 만든 물건'이란 뜻이란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이 물건인가?

 

   예를 들어 보자.  책상을 만드는데 책상 다리가 한쪽이 좀 긴 듯하다.  그 책상다리를 자른다.  그런데 자르고 보니, 다른 쪽 책상다리가 약간 더 길다.  그래서 또 그 다른 쪽 책상다리를 자른다.  그렇게 자르다보니, 어느새 책상은 아주 낮아지고 거의 흔적이 없어지려 한다.  사물이라면 책상이 좀 낮아진들 이런 것이 가능하겠다.

 

  하지만 사람은 피부 바로 아래 혈관과 신경이 지나간다.  그런데 그 피부 아래를 언제까지 보수 가능할까?

  주사를 맞다가 부위를 잘못 비껴나 신경을 건드리게 되면, 그 신경이 지나가는 아래로 마비가 올 수도 있다. 

  지방흡입술을 예로 들어본다고 해도 지방을 터뜨려 빼내다가 아주 작은 지방덩어리 하나라도 혈관으로 들어가게 되면, 혈관이 막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아주 성형을 잘한다 해도 그런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게다가 사람의 몸은 성장이 끝나도 끊임없이 주름이 생겨나고 노화되면서 변화하기 마련이다. 

   지금의 주름살을 지우기 위해 보톡스를 맞았다고 하자.  그럼 그 다음에는 주름살이 생기지 않는가?  그럼 또 보톡스를 맞겠다고?  주름살이 생길 때마다 맞는 것이 살아서 숨쉬는 인간에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현재 약간 보기 싫어도 이미 주름살이 있는 내 얼굴에 하나의 주름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보톡스를 맞아서 다른 곳은 빵빵한데 새로운 주름살이 한 개만 생겼다고 생각해보자.  흉물스럽지 않겠는가?

  

   인간은 살아 숨쉬는 존재이므로 그 형태 그대로 있지 않고 반드시 변하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에프터 그 후의 세월이 지나 변한 에프터의 모습으로는 tv에 나오지 않는다.  시사프로에서 다룬다 해도 그런 사람들은 필터처리되어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심각한 부작용이 아니어도 사람의 몸은 그대로 있지 않고 살아서 자꾸 바뀌게 된다.  그런데 그때마다 부자연스럽다고 피와 신경을 피해서 뼈를 깍는다고 하면 과연 몇번이나 가능할까?

 

 

   지금 성형해서 예뻐졌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주름이 하나 둘 생겨난 몇 년 후에도 보수 성형없이 그 얼굴 그대로 나올 수 있을까?   결코 나올 수 없다고 본다.

 

   타인의 시선이 내 몸보다 소중한가?    

 

 

    성형은 화장처럼, 했다가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가 돌고 살아 숨쉬는 사람의 뼈를 과연 언제까지 깍을 수 있을까?  

그런데 몸은 변화하는 것이므로 한번 성형하면 계속 재보수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끔찍하지 않은가?>

 

 

   성형외과 의사는 자기 가족을 성형해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고 한다.  하지만 아주 간단한 쌍꺼풀 수술 외에 양악을 자기 가족에게 시술해 줄 성형외과 의사가 있을까?  나는 0% 일거라 생각한다. 

 

 

   양악이란 한마디로 제대로 붙어 있는 해골(뼈)을 잘라 어긋난 자리에 갖다 붙이는 것이다.  (물론 원래 위아래의 해골이 잘못 붙어 있었던 사람은 제자리에 갖다 붙이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것은 성형이 아니라 질병의 치료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걸 회복하기 위해 또다시 치아 부위 뼈를 잘라다가 뒤에 또 갖다 붙인다고 해도 100% 원래의 기능을 갖긴 어려울 것이다.

 

 

   손의 뼈가 골절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부러졌던 부위가 가끔 찌르고 아플 때가 있고, 손가락 길이도 좀 짧아졌고, 감각도 약간 떨어져 있다.  제대로 붙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뼈가 부러졌을 당시는 구토가 날 정도로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일부러 뼈를 부러뜨려 제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갖다 붙인다니, 과연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골절되어 치료를 아무리 잘 받아도 100% 제대로 붙지는 않는다.  그래서 약간의 감각과 가끔의 통증 등은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부러졌다 다시 붙은 뼈는 기존 뼈보다 약하다. 

 

 

    그런데 양악수술이란 멀쩡한 뼈를 일부러 부러뜨려서 그 엄청난 통증을 느끼게 하고, 그 뒤에 제자리도 아닌 엉뚱한 자리에 갖다 붙인다니, 그런 수술을 감행하면서 모든 기능이 멀쩡할 거라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다. 

 

 

   예쁜사람을 보면 누구나 즐겁다.  심지어 어린아이도 예쁜 사람에게 다가간다고 하니 어찌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겠는가?  가끔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눈이 즐겁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저토록 자신이 노력해주니 말이다. 

 

 

    타인의 시선을 위해 내 몸을 깍아서 성형하여 희생까지 해야 하나?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내 몸은 남의 시선보다 소중하지 않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