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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느낌

청담동 앨리스, 비범으로 시작해서 평범으로 결론 맺은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처음 이 드라마와 마주 했을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마치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 드라마와 만남을 마칠 때, 기존 평범한 드라마보다 더 평범한, 진부한 로맨스 소설을 쓸데없이 끝까지 본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다만 사랑에 대한 환상을 믿을 뿐이지.  우리가 소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그 사람의 외모거나 재력이거나 재력을 통해 갖춰진 외모거나 사고방식 따위일 확률이 크다.  게다가 그 유효기간은 너무도 짧다.

  그리하여 내게 드라마는 현실적 사랑보다 더 큰 진실한 사랑이라는 환상을 주는 선물인 지도 모르겠다.

 

  20대에서 30대까지 긴 세월을 그런 생각을 하고 산 것 같다.  왜 열심히 성실히 사는 내가, 대충 살다가 외모 꾸미는 것에만 최선을 다하여 남자 하나 잘 잡는 여자들보다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  세상 참, 불공평하군.  그러면서 우리나라 남자들은 좀더 똑똑해져야 할 필요가 있어.  그런 생각 말이다.  그리고 40대에 접어 들어 세상을 보니, 역시 세상은 길게 살아보면 공평해.  역시 자기가 노력한 것만이 자기 것인 거야.  그리고 외모를 꾸미거나 남자의 말에 순종하는 것도 참 힘든 노력이 필요하겠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런 힘든 노력을 기울여도 결국 남자에 기대어 이룬 것들은 내가 이룬 것이 아니므로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마니, 오히려 더 억울하군.  그런 생각 말이다.

 

  이제까지는 그런 생각을 나 혼자만 하는 줄 알았다.  사랑은 고귀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믿고 살고 있고, 그래서 저렇게 행복한 삶들을 사는 구나.  그런데 왜 난 사랑을 믿지 않을까?  이런 의문 말이다. 

 

  그런데 <청담동 앨리스>라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입 밖에 꺼내어 말하지 않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이토록 현실을 꼬집는 드라마라니, 정말 새롭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우리 사회는 많이 발전했구나, 이런 정곡을 찌르는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다니!  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마지막으로 갈수록 기존 진부한 드라마보다 더더욱 진부하고 평범한 결말이라니, 참으로 아쉽군.

 

  우선 여기서 우리는 장띠엘 샤 라는 남주를 살펴보자.  그는 문제가 없는가?  정말 속물적인 사람은 그 일지도 모른다.  그는 사랑이라는 순수한 환상을 믿고 있을 뿐이다.  사랑의 출발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떠나 생성될 수 없는데 어떻게 아주 순수한 사랑만 있을 수가 있는가?  그야말로 소와 사자의 사랑-- 소는 사자를 사랑하여 계속 풀을 준다.  사자는 소를 사랑하여 자신이 아끼는 고기를 순순히 내준다.  소와 사자는 정말 고기와 풀이 싫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계속 고기와 풀을 먹는다.  결국 둘은 헤어지고, 헤어지면서 정말 고기와 풀이 싫었노라고 얘기한다.--처럼 자기 위주의 사랑이 아닌가?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하길 나는 바랬다.  타미홍과 한세경을 이어주고 그들은 디자인샾을 차려 근사하게 이끌어 간다.  그리고 차승조는 서윤주와 다시 합쳐져 물질을 주고 누리는 삶을 살아간다.  

 

  드라마 팬에게서 돌 날아오는 소리 들리더라도 나는 이것이 더 합당한 결말인 거 같다.  외모와 관상만 봐도 (물론 관상가는 아니지만) 저 둘과 둘이 사고방식이나 외모로 봤을 때 훨씬 어울리는 한쌍이다.

 

  진정한 사랑은 없지만 비슷한 사고방식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인간 아닐까?   서윤주는 정말 차승조를 사랑했던 거 같다.  차승조는 부유하게 태어났으므로 자신 자체가 돈과 깊은 고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다만 돈이 아닌 순수한 자신을 사랑한다는 환상을 심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서윤주는 충분히 그런 환상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타미홍은 현재 비록 마담뚜로 살고 있으나, 열심히 사는 자신의 본성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본질이 그러하고 그 본질을 결코 버릴 수 없는 한세경과 어울린다. 

 

  물론 드라마상의 캐릭터는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연기자의 연기가 그러했다.  당신들의 어설픈 연기, 내게 다 들켰음. 

 

  드라마는 당신의 멀끔함이나 피트한 양복을 자랑하는 패션쇼 장이 아니며, 연기 재주를 뽐내는 경연장이 아니다.  드라마는 모름지기 드라마 속의 캐릭터에 몰입하여 시청자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곳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들의 연기에 분노한다.  [신의] 촬영장에서는 상대의 감정몰입을 방해할까봐, 신랑과 아이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고, 통화도 자제했다는 김희선의 프로정신을 좀 배우길...  그러기엔 너무 젊은가?

 

 

  하여튼 앞으로는 연기자의 철학도 배역 선정시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물질에 지나치게 물들어 빠져 있는 연기자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것은 큰 실수다.  따라서 드라마의 주제가 흐지부지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  

 

  연기자의 비쥬얼 역시, 타미홍과 한세경, 차승조와 서윤주가 어울린다.

 

  그리고 저렇게 결론 내면, 비범한 결론이 된다.  남주와 여주가 이어지지 않는 독특한 결말.  재밌지 않은가? 

 

  아니면 차라리 열린 결말은 어떤가?  비범한 주제에 발을 들였다면, 물질 만능주의 현 시대에서 어떤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나?  좀 더 고민하고 연구한 결말을 만들었어야 하지 않는가?  

 

  ,,, 실망이다.

 

 

  즐겁고 행복했었는데 이 글을 올리고 나서 분노가 마구 마구 차 오른다.  드라마를 망친 사람들에 대한 분노.  역시 어느 책에 쓰여진 것처럼,  분노도 선택이다. 

 

  그러나 분노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갈 거라 믿으며, 오늘 나는 드라마 중독자로서 작가며, 감독, 연기자, 제작자에게 심하게 분노한다. 

 

   청담동 앨리스를 망친 당신들의 책임을 느껴라! 

 

 

   결국, 물질 만능주의적 사고에 물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즐거움만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결론 지어도 되는 드라마였는가?  그러면 왜 그런 비범한 주제로 시작하여 나를 현혹시켰나?  ,,,  속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