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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 대본

성스 제15강 대본 (필사)

             

                   

 

 

   성스 제15강 대본 (필사)


1. 명륜당 (낮)


유생들, 자신의 책상 앞에 가장자리로 쭉 둘러 앉아 있다.  맨 앞에 앉아 있는 장의, 여림, 남명식.


장의 ; 오늘 재회는, 문재신 유생과 김윤식 유생의, 남색추문에 대한 유거를 결정하는 자리다.  남녀가 유별한 것은, 유학의 기본이요, 예와 법도를 숭상하는 이 성균관에서 남색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여, 우리 모든 유생들은, 자네들의 두이름을 청금록에서 영원히 삭제, 과거와 출사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으로, 그 부도덕을 벌하고, 성균관에서 제명해, 성균관의 명예를 지키고자 한다.

유생들 ; 옳소!  옳소!  옳소!  옳소! 옳소!


앉아서 주먹 쥐는 걸오.  걸오의 손목을 손으로 살짝 누르고 떼는 윤희.


여림 ; (한숨) 후우!

장의 ; 문재신, 김윤식에게 묻지.  그날밤, 향관청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이, 사실인가?

윤희 ; (단호하게) 아닙니다.  저희..  믿어주십시오, 장의.

장의 ; 아니라면.. 그날밤 향관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든 유생들 앞에서 사실대로 말해주겠나?

윤희 ; 저흰.. 저흰 그저..

장의 ; 허면, 목격자의 증언을 듣는 수 밖에.


선준, 자리에서 나와 앞의 빈 공간에 양반다리하고 앉는다 

  

장의 ; 이선준 유생, 그날밤 향관청에서, 문재신과 김윤식을 봤나?  저 둘은, 남색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나?

선준 ; (정면 보며) 남색은, 접니다.

유생들 ; 뭐야?  뭔소리야?  (웅성웅성)


놀라는 걸오와 윤희, 여림.


장의 ; (선준 똑바로 보며) 지금, 뭐라 했나?

선준 ; (장의 보았다가 다시 정면 본다) 남색은 바로, 접니다.


2. 박사 집무실 (낮)


대사성 ; 이선준이, 남색? (찻잔을 큰 탁자에 떨어뜨린다)  이이..이선준이 제입으로 남..남색이라 말했단 말인가?

함춘호 ; (대사성의 앞에 서서) 예에.. 영감.

대사성 ; (탁자를 탁 치고 일어서서) 이놈의 자식들, 언젠가는 사고칠 줄 알았다. 아니, 나더러 좌상대감의 얼굴을 어찌 보라고..  아이구.. (급히 나간다)


함춘호, 대사성 뒤를 따라 나간다.


유박사 ; (차마시는 정박사 옆에 앉아서) 남, 남색이라니.. 이 성균관에, 허. 그것도 한두명도 아니고.. 나 원.

정박사 ; (찻잔을 내려 놓으며) 하핫하하 하하하. 

유박사 ;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웃음이?

정박사 ; 이선준 그친구.. 알면 알수록 재밌는 녀석입니다.  아, 이럴게 아니라, 우리도 가서, 구경이나 해볼까요, 유박사님?


3. 명륜당 (낮)

선준 ; (책상다리 위에 손을 주먹쥔 채 올리고) 그날밤 향관청엔, 문재신, 김윤식 유생만이 아니라, 저도 함께 있었습니다. 

유생들 ; 뭐어?

이선준 ; 그러니.. 문재신, 김윤식 유생이 남색이라면, 저 또한 남색이라 해야 마땅한 일 아닙니까?

장의 ; 자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나?  스스로 남색임을 고백하고 있는 게다.  청금록에서 삭제당한다 해도, 할말이 없어.

선준 ; 그것이 법도라면, 하는수 없겠지요.  문재신 유생과 김윤식 유생이, 선비로서 할 수 없는 부덕한 소행을 했다면 말입니다.

장의 ; 그따위 거짓증언으로, 죄인들을 변호할 생각인가?

선준 ; 그날밤, 제가 향관청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한 사람도, 분명 있었습니다.  안도현, 김우탁, 배해원 유생입니다.

장의 ; 사실인가?  


유생들, 나란히 앉은 도현, 우탁, 해원을 본다.  고개를 끄덕이는 세 명.


선준 ; 헌데, 왜 저는 그 추문 속에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추문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생들 ; (웅성웅성) 사실이 아니라고?

선준 ; 김윤식, 문재신 유생의 부적절한 관계를, 유생께서 보셨습니까? (옆의 한 유생을 본다)

유생1 : 난 아니, (다른 유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친구가..

유생2 ; 아, 나 나도 아.. (도현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친구가 그랬소.

선준 ; (도현 쪽을 보며) 봤습니까?


도현, 우탁, 해원, 고개를 가로 젓는다.


선준 ; (정면 응시하고) 또한 재임에게 묻고자 합니다.  (장의, 여림, 명식 보며) 남색이, 추문입니까?


자막 ; 재임 齋任 학생회 임원


명식 ; 그야 응당.. 성리학을 숭상하는 유생에겐..

선준 ; (단호하게) 유교에서 가장 중시여기는 덕목인 인은, 벗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을 말합니다. 제가 틀렸습니까?


자막 ; 仁 (선준 얼굴 옆 왼쪽 화면에 크게 써진다)


명식 ; 그야..

선준 ; 인, 의, 예, 지, 신..


자막 ; 仁 義 禮 智 信 (화면 왼쪽에 세로로 차례로 쓰여진다)


선준 ; 맹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선비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덕목들입니다.  헌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어리석은 마음은, 지혜롭지 못하며,


자막 ; 智 (도현, 우탁, 해원의 얼굴 위에 크게 쓰여졌다 지워진다)


선준 ; 무책임한 호기심으로, 다른 이를 공경에 빠뜨리고도, 그것이 죄인지도 모르는채, 그저 웃고, 보고 즐기는 마음은, 의롭다고도, 예라고도 할 수 없으며,,


자막 ; 義, 禮  (유생들의 모습 보이고 그 위에 크게 차례로 쓰여졌다가 지워진다)  


선준 ; 벗을 믿지 못하는 그마음 또한, 유학을 하는 선비라 할 수 없습니다.


자막 ; 信 (윤희의 모습 보이다가, 전경 보이며 그 위에 글자 쓰여졌다 지워진다)


선준 ;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계율이나 삐뚤어진 잣대를 들어, 추문이라 손가락질할 자격은, 그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것이, 성리학을 하는 유생의 길이라면, 저는 차라리 남색이 되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걸오, 윤희 모습 보인다.


여림 ; (한 팔 괴고 미소띤 채) 그렇단 말이지, 이선준.


4. 박사 집무실 (낮)

문 열고 들어서는 대사성, 정박사, 함춘호.

 

함춘호 ; 그러니까.. 이선준 상유가, 남색이 아니란 말인거죠?

정박사 ; 그런것, 같구만.

대사성 ; (허리춤을 여미며) 다행입니다, 이번 재회도 별탈없이, 무사히 끝난 모양입니다, 하하.


5. 명륜당 (낮)


장의 ; (선준 보며) 이걸로 끝이라 보는가?  


선준, 장의 본다. 

윤희, 걸오, 여림 보인다.


장의 ; (윤희와 걸오 보며) 허면 다시 묻지.  남색이 아니라면, 그대들은 향관청에서 뭘하고 있었나?  그 야심한 시각에.  그날밤, 홍벽서가 부상을 입고 성균관에 들어왔다.

유생들 ; 홍벽서?  (웅성거린다)

장의 ; 부상을 입은 홍벽서는 지혈이 필요했을테고, 응당 담뱃재가 있는 향관청으로 갔겠지.  그리고 그날밤, 향관청에선, 상유 문재신과 김윤식이, 부등껴안고 있는 모습이 발견됐다.


윤희 쪽을 보는 선준.

 

*몽타주 ; 선반 사이로 보이는 아주 가까이 마주 보고 있는 윤희와 걸오.


윤희와 걸오의 모습.


장의 ; 향관청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말할 수 없는 이유는, 혹, 그때문인가?


윤희 얼굴 보이고, 생각하는 선준의 얼굴 보인다.


*몽타주 ; - 뜰을 쓰는 윤희.  (E (선준) ; 그러니 말해.  그날밤, 향관청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 놀라 보는 선준, 안고 있는 듯 보이는 걸오와 윤희.

          - 환한 뜰에 마주 선 선준과 윤희

            윤희 ; (선준의 팔을 잡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며) 걸오 사형을 위해서요.  그러니, 믿고 도와주면 안되겠소?


생각하는 선준.


해원 ; 홍벽서가 들어왔으면, 김윤식이가 홍벽서야?

도현 ; 아냐아.. 걸오 유생이, 홍벽서라니까.

우탁 ; 내 분석에 따르면, 답은 이거야.  (검지 올리고) 2인, 1조.


웅성거리는 유생들의 모습.

  

장의 ; 문재신, 김윤식 유생에게, 충분히 스스로, 결백을 증명할 시간을 줬다.  난, 장의의 직권으로, 문재신, 김윤식 유생의, 상의 탈의를, 명한다.

걸오 ; 나만, 벗어주면 되는 거냐?  니가 원하는게, 그거 아냐?

윤희 ; 사형!

여림 ; 걸오.

선준 ; (장의 보며) 먼저, 대답해주셔야겠습니다, 장의.  그러니까 장의께선, 홍벽서를 잡기위한 덫으로.. 재회를 이용하실 생각이셨습니까?  남색 추문은, 믿지 않으셨다는 걸, 지금 스스로 고백하신 셈입니다.  (유생들 보며 크게) 재회는, 대사성 영감 이하, 그 어느 학관도, 그리고 전하께서도 개입하실 수 없는, 성균관유생 고유한 권한입니다.  성균관의 재회는, 그 어떤 정치적 이유로도, 이용돼선 안되기 때문입니다.  헌데, 재회의 의장인 장의께서는, (장의 똑바로 보며) 지금 스스로 그 원칙을 어기셨습니다.  만일 문재신 유생이 상의를 벗어, 상처가 없을시엔, 장의께선, 그 책임을 물으셔야 할겁니다.  (유생들 보며) 그렇지 않습니까?

유생들 ; 옳소!  옳소!  옳소.

명식 ; 허면, 문재신이 남색이 아닌걸 알고도, 재회에 세운 겁니까?


약간 민망한 표정의 장의.


소론 유생1 ; 너무한거 아냐, 이거?

소론 유생2 ; 우리 소론의 명예를 실추시켰소.

소론 유생3 ; 옳은 말이오.

유생4 ; 장의, 사실을 말해 주시오.

유생들 ; 말해 주시오.

유생5 ; 책임져라.


어쩔 줄 모르는 병춘 일행.


선준 ; (장의 보며) 허나 장의께서, 이일을 없었던 일이라 하신다면, 저와 여기 모든 유생들도, 오늘 장의의 실수를, 더는 추궁하지 않겠습니다.

여림 ; 왜에?  이왕 시작한거, 끝까지 가자고.  벗겨.

유생들 ; (불만 섞인 목소리) 아니 지금, 소론을 뭘로 보는거야?

선준 ; 장의께서, 그 명을 거두신 거라 믿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듯 선준을 노려보기만 하는 장의.


여림 ; (일어서서) 자아, 아직 우리에겐 할 일이 남았네.  재회는, 장의의 것이 아니라, 우리 성균관 유생들의 몫이 아닌가?  우리의 의무는 다해야겠지?  표결에 붙이지.  문재신, 김윤식 유생을 유벌에 처하겠는가?


자막 ; 유벌 儒罰 성균관 학생회에서 유생에게 자체적으로 내리는 벌.


7-명의 유생들, 드문드문 흰 판을 든다. 

병춘 일행, 시선을 외면하며 판을 안 든다.


여림 ; 장의, 재회의 결과를, 발표하시게.

장의 ; 문재신 유생과, 김윤식 유생의 남색추문은, 혐의가 없음을, 선고한다.


기쁜 내색을 숨기는 선준, 걸오, 윤희의 얼굴 보인다.


6. 명륜당 앞 마당(낮)


명륜당 앞 마당 댓돌을 걸어오는 선준.  마루에서 내려오는 유생들.


선준 ; (멈춰서서 혼잣말) 한심하군.  대체 무슨 오해를 했었던 거냐?  (걸어간다)


마루에서 내려와 누군가를 찾는 표정으로 마당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는 윤희.

반가운 표정으로 윤희 쪽을 보는 걸오.

 

해원 ; 대물!

우탁 ; 공자께선 이렇게 말씀하셨..

도현 ; (우탁의 입을 손으로 탁 치고) 야, 대물, 우리가 무조건 잘못했다.  한번만 봐주라, 어! 


시선 앞에 두고 급히 걸어가는 윤희.

그 윤희를 옆에서 따라 걷는 해원, 우탁, 도현.

마당 약간 떨어진 곳에서 윤희를 보는 걸오.


해원 ; (그런 윤희의 어깨를 잡으며) 얌마, 너 우린, 아는 체도 안하기로 한거냐?

윤희 ; (도현들 애타는 눈빛으로 보며) 이선준, 이선준 유생, 봤소?


고개를 젓는 도현, 우탁, 해원.


윤희 ; 방금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정말 못봤소? 


실망한 표정의 걸오.

고개 젓는 도현 일행. 

걱정스런 눈빛의 윤희.

헛웃음 지으며 고개 숙이는 걸오.


7. 명륜당 (낮)


낮인데도 어두운 명륜당 안.

장의, 고개 숙이고 앉아 있다.


8. 성균관 문 앞 (낮)


뒷짐 지고 문으로 걸어 나오는 선준.


여림 ; (그 앞에 와 서며) 뜻밖이구만..  이선준처럼 단정한 위인이, 남색이 되는걸 마다치 않겠다?

선준 ; (멈춰서) 전 그저..

여림 ; 아아.. 그 또한, 원칙을 지키고자 했을 뿐이다아?  원칙을 지킬 생각이었다면, 거짓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향관청에서 대물녀석과 걸오랑 쭉 함께 있었다는 말, 거짓말이잖아.  자네답지 않은 거짓말.

선준 ; 사형께서도, 그날밤 일을 다 알고 계셨습니까?

여림 ; 출세가 보장된 좌상댁 외아들이.. 하마터면 남색이라는 추문에 휩싸여, 출사길이 막힐 위험도 무릅쓰고 말이지.. 음.  왜지?  뭘 위해서였나?


여림을 비껴 걸어 가는 선준.


여림 ; (뒤따라 걸으며) 내일 정혼을 한다고?  그것도, 결코 손잡을 일 없어 보이는, 하인수와 가족이 되겠다아?  자네 가문과 걸맞는 상대가 필요해서 였나?  아니면.. 아무라도 상관이 없었다는건가?  마치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멈춰서는 선준.


여림 ; (멈춰선 선준 보며) 그래서 자네, 행복한가 가랑?  (굳은 선준의 표정 보며) 하아, 이봐이봐이봐.  지금도 이렇게 거짓말을 못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쭉 거짓말을 하고 살 생각이지?  그건, 누굴 위해선가?    

     

9. 박사 집무실 (낮)


대사성 ; (벽에 붙은 선반에서 책을 보다가 흥분하여 돌아서며) 이선준이 성균관을 그만둔다뇨?  (유박사 옆으로 달려와서) 아니, 아니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어찌 대명천지에 일어날 수가 있답니까?  그래, 성균관을 관두겠다길레, 옳다구나, 관둬라, 했단 말입니까?  철없는 어린 유생들이야, 이유없는 반항을 할 수도 있어요오..  유박사는 유생시절에 그런적이 한번도 없답니까?  아침에 눈을 뜨면 공부하기 싫어서, 성균관을 때려 쳐야겠다..

유박사 ; (단호하게) 없습니다.  단한번도.  (책을 덮고 대사성 보며) 그리고 이선준은, 철없는 유생이 아니라, 제 앞가림 정도는 알아서 할 녀석으로 보였습니다.  (고개 숙이고 간다)

대사성 ; 아니 근데 왜 하필, 지금이랍니까?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이대로 끝낼순 없습니다.. 아무래도 내 이선준을 직접..

고장복 ; (저쪽에 서서) 성균관을 그만두고, 구림 마을인가.. 그 죽정서원에서 수학하기로 했다던데..


앉아서 책읽는 유박사와 정박사. 

정박사,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다.


10. 존경각 (밤)


윤희, 선반을 등 뒤에 두고 서서 책 펼쳐든 채, 시선은 맞은편 선반에 두고 누군가를 찾는 표정이다.

문 열리고 유생 두 명 들어와서 윤희 보더니 머리 긁적이고 반대편으로 간다.

보는 윤희.   

문 열리고 쇠장대를 들고 들어와서 곳곳의 등불을 끄는 고장복, 윤희 쪽으로 걸어온다.


윤희 ; (선반에 책 놓고 걸어오는 고장복 앞을 막으며) 혹, 이선준 유생, 못봤소?

고장복 ; 소식, 못 들으셨습니까?


뭐지 하는 표정의 윤희.


11. 여림방 (밤)


술상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속바지저고리 차림의 여림과 도포 차림의 걸오.


여림 ; (비스듬히 앉은 채 술잔을 술상에 내려놓고) 재회는 다 싫은데 말이야.. 그거 하나 딱 좋아.  재회가 끝나면 늘 가는 모꼬지.  (걸오가 마시려 들고 있는 술잔을 뺏어 마시며) 캬아!  재회에서 유생들끼리 다친 마음들이랑 모두 다 잊어버리고.. 어울렁더울렁 하나가 돼, 흥청망청 취해나보자.  천하절경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걸오의 잔을 또 뺏어 든다)

걸오 ; (불만섞인 표정으로) 뭐하는 짓이냐?

여림 ; 상처.  아직 다 안 아물었잖아. (술 마신다)

윤희 ; (문 열고 들어서서 선 채) 혹, 알고 계셨습니까?  이선준 유생이, 그만뒀다 들었습니다, 성균관.

여림 ; (술잔 든 채 윤희 보다가 내려놓고) 내일 정혼 때문에 외출한 게 아니었어?  (혼잣말처럼) 뭐야 이자식.. 내가 한말 땜에, 상처받은건 아니겠지, 설마.

윤희 ; 정혼이.. 내일이었군요.  사형들께도 인사 한마디없이 나갔다니.. 예와 법도는 무슨.  사람 참, 못쓰겠군. (문 열고 나간다)

여림 ; 이선준,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이자식?


12. 중이방 앞 (밤)


걸오, 와서 마당에 선 채 방문에 비친 윤희의 그림자를 보고 섰다.

그러다가 마루에 걸터 앉아 방문을 본다.

앉는 윤희.


13. 중이방 안 (밤)


불 꺼진 방에 쪼그려 앉은 채 우는 윤희.


14. 중이방 앞 (밤)


그런 윤희의 기척을 느끼다 정면을 응시하며 입가를 훔치는 걸오.


15. 좌상집 우물가 (밤)


생각하고 섰는 선준.


*몽타주 ; 선준 앞에 선 여림-그래서 자네, 행복한가 가랑?  지금도 이렇게 거짓말을 못하는데.. 


생각에 잠긴 선준.


순돌 ; 데련님.. 히히 (와서 선준 앞에 서서) 정혼날에 요러커럼, 설레어서 잠을 못 이루면.. 혼인날은 석달열흘전부터 잠을 못잘텐디.. 하하아.  (선준의 굳은 표정을 보고 머쓱하여) 대감 마님 찾으셔라..


순돌 보는 선준.


16. 좌상방 (밤)


좌상 ; 구림, 죽정서원에선, 네 거처며 다 마련해뒀다더구나.  기왕 성균관을 나올 생각을 했으니, 하루라도 아껴 학업에 정진하는 것이 좋겠지.  내일 정혼례가 끝나면 바로.. (딴 생각에 잠긴 선준의 얼굴을 보며) 듣고 있는 게냐? 


다른 생각에 빠졌다가 급히 부에게 고개 숙이는 선준.


좌상 ; 혼인도 최대한 서두르기로, 병판과 얘기해뒀다.  대과준비는, 안사람 내졸받으면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혼인을 하고, 가솔이 생기면 그 책임감이, 사내를 밀고가는 힘이 돼줄게다.  번성하는 가문을 보며는, 또 그 자부심이 장부를 밀고 가고.  남아 일생, 그럼 된 게다.  

선준 ; 아버님, ... 그래서, 행복하십니까?

좌상 ; 허어, 허허허허허허허 허허허허허허허 허허허.

선준 ; 외람되오나, 소자, 그 답, 듣고 싶습니다.  

좌상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할 가치도 없는 물음이다.  규중 아녀자들의 한가한, 넋두리에나 어울릴법한 낯간지러운 말이, 진성 이문의 장손에게서 나오다니.  이 아빈 지금껏, 그런 불필요한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해본 일이, 없다.


17. 성균관 뜰 (낮)


서동, 댓돌에 올라서서 종을 치며 수업 시작을 알린다.

뜰을 걸어가는 유생들.

윤희, 책보 끼고 뜰을 가로질러 가다가 활쏘기 연습 중 선준과 함께 아래에 앉아 팔힘을 기르던 나무를 본다.


*몽타주 ; 선준은 옆에 앉아 책을 읽고 있고, 윤희는 나뭇가지에 천으로 손목을 묶은 채 당겼다 놨다 하며 책을 읽는 장면.


윤희, 눈물이 그렁해진다.


18. 명륜당 (낮)


곳곳에 드문드문 자유롭게 앉아 있는 유생들.

윤희, 마루에 올라서 잠시 도현 쪽을 보다가 자신의 책상 앞에 가 책을 펼친다.


도현 ; (책상에 앉아 발목 잡고 돌리며) 참, 이선준이가 성균관을 그만둔게, 사실이다아.. 허허허허.

우탁 ; 회자정리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지이. 

해원 ; 아이 그 재수없는 자식은 끝까지 싸가지가 없어어.  아, 사람이 온다간다 어, 말은 해야할거 아냐.


윤희, 시선 옆으로 하고 굳은 표정으로 얘기를 듣고 있다.

   

도현 ; 종원에서 색시 데리고 아예 도성을 떠나, 저어 산골 서원으로 들어간다나 어쩐다나..

해원 ; 아아 이선준 그자식, 정말 다시는 볼일 없겠군.

우탁 ;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서 만나지않는한, 글쎄 평생가야 만날일 있겠어?

도현 ; (윤희 쪽을 보며) 어어, 대물.  어떻게.. 자네한테도 아무런, 말이 없었나?


속상한 표정으로 아래를 보다가 책을 덮고 일어서 급히 나간다.


19. 명륜당 마당 (낮)


댓돌을 내려와 울먹이는 표정으로 마당으로 걸어가는 윤희.


걸오 ; (맞은편에서 와 윤희의 손목을 잡아 세우며) 무슨 일이야?  이렇게 급하게 어딜 가는 건데?


눈물이 터질 것 같아 묵례만 하고 가는 윤희.

보는 걸오.


20. 효은방 (낮)


책상 위에 비녀며 장신구 가지런히 놓였다.

화장품도 놓였고, 동그란 솜이 들어간 천으로 작은 그릇에 담긴 분을 찍어 볼에 바르고 입술연지도 바르는 효은.


속치마 바람으로 일어서는 효은. 

치마 입혀주고 저고리도 입혀준 후 옷고름을 매주는 버들.


다시 앉아서 거울 보고 있는 효은.

뒤에서 비녀를 꽂아주는 버들.


효은 ; 서둘러어..  도련님 오실 때 다 됐겠다.

버들 ; (효은 옆 약간 뒤에 앉아 효은의 얼굴을 보며) 그렇게 좋으세요?  얼굴에서 꽃이 피네요, 꽃이.

효은 ; (거울 보고 머리를 다듬으며) 도련님께도.. 그렇게 보일까?

버들 ; 아이, 그럼요오.  그러니 정혼도 서두르자신게 아닙니까.

효은 ; (여전히 거울 보며) 나 있지이.. 도련님께 꼭, 어울리는 배필이 될거다.  노력할거야, 나아.


21. 효은집 앞 (낮)


대문 한켠에서 서성이며 사람들이 리어카에서 짐을 내려 대문 안으로 들고 들어가는 것을 보는 윤희.

저쪽에서 짐 든 순돌 앞세우고 뒷짐지고 걸어오다가 문 앞에서 멈추서 윤희 쪽을 보는 선준.

놀라서 급히 숨는 윤희.

보는 선준.

숨어 있다 가만히 다시 대문 쪽을 보려는 윤희, 앞에 선 선준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선준 ; (굳은 표정으로) 맞았군.  헛거라도 본줄 알았지.

윤희 ; 아아, 이런 우연이, 허허.  여긴, 어쩐 일이오?  난.. 새책방의 필사일을.. 아침부터 오라고 기별이 와서.. 하하.

선준 ; 새책방은.. 필동 아니었소?

윤희 ; 역시 안통하는군, 이런 거짓말은.  어제 재회일, 고맙다는 인사를 못해서.  아니 뭐,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작별인사는 해야 할 거 같아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다신 못본다고 생각하니까, 꼭, 한번은 더 보고 싶었소.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소.  마음을 나눈 벗으로든, 그저 동방생으로든, 아니면, 오가다 만나는 수많은 유생들중 하나로든, 어떻게 생각하든 난, 마지막으로 꼭 한번은, 이선준이 더 보고 싶었으니까. 하어, 이제 봤으니 됐소.

선준 ; (얼굴 굳은 채 시선 피하며) 오늘.. 여기 오지 않는편이, 좋았소.

윤희 ; 왜?  내가 또 뭘 잘못했소?

선준 ; (여전히 시선 옆에 두고) 가라.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대문으로 가는 선준)


눈물이 흐르는 윤희, 선준의 뒷모습 본다.


22. 효은집 안 (낮)


대문으로 들어와 굳은 표정으로 안으로 가는 선준.


23. 거리 (낮)


눈물 훔치며 걸어가는 윤희.


24. 효은방 앞 (낮)


방문을 열고 들어서려다 멈춰서는 선준, 잠시 멈췄다 방문을 연다.


25. 효은방 (낮)


방문 열고 들어와 방문을 닫는 선준.

효은, 돌아서서 환하게 웃는다.


효은 ; 도련님.. (달려와서 선준을 안는다) 한참이나.. 기다렸습니다.  도련님께.. 평생 좋은 베필이 되겠습니다.  (떨어져 서서)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일이 없다.. 하셨지요?  도련님께서도, 제게 마음을 주고자 노력하시겠다.. 약조를 하셨습니다아.  저, 그 약조만 믿을것입니다, 도련님.

선준 ; (효은의 양손목을 잡고) 아무래도 그 약조, 지키지 못할것 같습니다.      


놀라는 효은.


26. 병판집 마당 (낮)


달려오는 선준, 병판과 마주친다.

병판 보고 섰다가 다시 달려가는 선준.


병판 ; 아이, 저어?


27. 골목 (낮)


달려가며 윤희 찾는 선준.


28. 저잣거리 (낮)


천이 널린 가게 옆을 걸어가는 윤희

달려가다 지나는 사람과 부딪치는 선준.

천 가게 앞을 달려와 윤희의 어깨를 잡고 자신 쪽으로 돌려 세우는 선준.


선준 ; (윤희의 양 어깨를 잡고 눈물그렁한 채 윤희를 똑바로 보며) 하아.  니가, 좋다 김윤식.  길이 아니면 가질 않던 내가, 원칙이 아니면 행하질 않던 내가, 예와 법도가 세상의 전분줄 알던 내가, 사내녀석인 니가, 좋아졌단 말이다.  내가 널, 벗으로도, 동방생으로도, 곁에 둘 수 없는 이유다.  (눈물 흐른다) 김윤식 니곁에서, 더는 이렇게 모른채 한 척, 나를 속이며 살 자신이 없으니까.


눈물 그렁한 윤희.


선준 ; 걱정마라 김윤식.  널 다치게 하진 않아.  내 마음 때문에, 니가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게 하진 않을거다.  니앞에 나타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지금으로선, 내가 널 위해 해줄수 있는, 전부니까. (돌아서 간다)


윤희, 얼떨결에 서서 눈물 흘리며 선준의 뒷모습을 본다.


29. 효은방 (낮)


버들, 천을 세수대야의 물 위에서 짜서 효은의 이마에 놓는다.


효은 ; (이부자리에 누워서 기침하며) 에허 에허, 이거.. 다 내 잘못인거 알지, 아버지?

병판 ; (옆에 앉아 안절부절하며) 알았데두..

효은 ; 에허 에허 에허 에허 에허 정혼날 하필, 아플게 뭐람.  도련님께 민폐만 끼치고.

병판 ; 내가 좌상대감 앞에서, 무릎이 닳도록 비는 한이 있어도, 이 혼인 안 깨지게 할테니까.. 딸내미 넌, 몸조리 잘하고 있거라, 음? 


효은, 고개를 끄덕인다.


병판 ; 에휴, 아이고 나참, 이거.  (일어나 나간다)


30.효은방 앞 (낮)


나오는 병판.

마주오는 장의.


병판 ; 아아, (장의의 팔을 잡고) 쉬게 둬라.


31. 병판방 (낮)


책상을 앞에 두고 서 있다가 마주 앉는 병판과 장의.


장의 ; 어찌된 일이랍니까? 오늘일은?

병판 ; 효은이가 열감기가 나서 쓰러졌다잖아.  이서방은 그길로 의원 부르러 가고.  나 이거야 원.  내자식이 잘못했으니, 좌상대감 얼굴 볼 낯이 안 서고.  허어, 참 이거, 딸자식 한번 치우기가 뭐가 이렇게 어려워, 그래?

장의 ; 헌데.. 이선준 말입니다, 아버님.  의원을 부르러 갔다지만, 의원이 다녀가길 했나, 정혼할 여인이 아프다는데, 병문안을 오길 하나, 아무래도 처가가 우스운 모양입니다.

병판 ; 뭐야?

장의 ;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저 아이들 둘만의 비밀이 있는지도 모르지요.


32. 효은방 (낮)


벌쩍 일어나는 효은.


버들 ; 가만 누워계시라니깐요오..  이러다 다 들켜요, 애기씨.

효은 ; 파혼이라니, 말도 안돼. 


*몽타주 

  - 마주 선 효은과 선준.

  선준 ; 아무래도 그 약조, 지키지 못할거 같습니다.  이댁에서 먼저, 파혼해주시겠습니까?

  효은 ;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말씀해 주시면, 고치겠습니다아.   

  선준 ; 잘못은 모두 제게 있습니다.  그러니, 이 혼인의 자격이 없는건, 제쪽입니다.  전 남들처럼 평범한 지아비로, 여인에게 마음을, 줄 수 없는 사람입니다.

 

효은 ; 하아 (벌떡 일어선다)


올려다 보는 버들.


효은 ; 하아, 하아.  도련님.. 참 잔인하시지 않니?  버들아, 어쩜 내가.. 그렇게, 싫으신걸까?  그래서 그렇게 있지도 않은 말로 파혼을.  하아.

버들 ; (일어서서 안스러운 표정으로) 애기씨이..

효은 ; 난 이대로 도련님 포기 못해.  도련님께선, 먼저 파혼 얘길 꺼내시진 않을거야.  날 파혼녀로 만드시진 않을 테니까.


33. 좌상방 (밤)


마주 앉은 선준과 좌상.


좌상 ; 병판의 여식이, 병이 깊다 했더냐?  정혼을 미루느니.. 차라리 곧, 혼인날을 잡기로 했다.

선준 ; (의아한 표정으로) 이 혼담에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까?  이 혼사, 파혼키로 했습니다.

좌상 ; (크게) 파혼이라니!  니가 서둘러 정혼코자 한 규수다.  그 책임을 방기할 생각이냐?  애비가 너를 잘못 본 게냐?

선준 ; 송구합니다, 아버님.  허나 소자, 이길이 그댁 규수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 믿고 있습니다.  혼인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버님.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좌상.


34. 선준방 (밤)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선준.

짐 싸고 있는 순돌.


순돌 ; (일어서서 인사하며) 오셨서라.. 음, 데련님, 서원에 가져갈 짐은 다 싸놨당게요.  오늘은 일찌감치 푹 주무셔.  내일은 솔찬히 걸어야될탱게.  지는, 대감마님 찾으셔라. (인사하고 방문열고 나간다)


선준, 짐에서 도포를 꺼내들고 본다.  도포에는 윤희가 쓴 글이 적혀 있다.


35. 좌상방 (밤)   

   

순돌 ; 꽃도령 선비님 말이어라?

좌상 ; 병판 사저에 가기 전에, 분명, 만난이가 있었단 말이냐?

순돌 ; (무릎 꿇고 몸을 수그린 채 앉아) 야. 되련님이랑은 병판대감댁에 도착했을때, 거 계시다가 되련님이랑 만나시던데..  뭐땀시 그러신다요?

좌상 ; 동방생이다?

순돌 ; 야.  거시기, 일전에 과장에서 되련님이 성균관으로 끌어들인, 바로 그 냥반인디..  인연은 인연이지라.. 히히.

좌상 ; 과장에서 거벽을 세웠다던?
순돌 ; 헤헤, 야아, 히.  김윤식, 그 이름으로 과장에 서시오.  거벽을 서기엔, 너무 아까운 필력이었소. 하하. 음.  되련님이랑 꽃도령 선비님 이야기만 써도, 웬만한 패설보다 사연이 훨씬 많당게요.

좌상 ; 그아이 이름이.. 김윤식이라 했더냐?

순돌 ; 야.  김윤식 유생.


36. 좌상방 (밤)


서랍을 열어 종이를 꺼내는 좌상.

김윤식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펼쳐 보는 좌상.


*몽타주 - 대사성과 등지고 선 좌상.

           좌상 ; 김윤식, 어떤 아입니까?     

           대사성 ; 전 성균관 박사, 김승헌의 아들입니다.

 

종이에 적힌 김승헌과 김윤식의 이름을 보는 좌상.


좌상 ; 김윤식, 이 무슨 악연이란 말인가..


37. 존경각 (낮)


터덜터덜 걸어 올라와 책상 앞에 앉는 윤희.


*몽타주 - 저잣거리의 선준과 윤희.

           선준 ; (윤희의 팔을 어깨를 잡고) 니가, 좋다 김윤식.  내마음 때문에, 니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게 하진 않을거다.  니 앞에 나타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돌아서 가는 선준의 뒷모습)



윤희 ; (속상한 표정으로 혼잣말) 벌받나보다, 나.  세상을 멋대로 속이고 산 죄. 하아. (고개 숙인다)

걸오 ; (윤희 책상 위에 겹쳐서 놓인 책에 기대어 몸 숙인 채) 뭐가 그렇게 심각해?  방해하지 말고, 갈까?  (탁 치고 일어서서 간다)

윤희 ; 사형!


멈춰서 돌아보는 걸오.


윤희 ; 한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의자를 갖고 와 윤희 앞에 거꾸로 놓고, 다리 벌리고 걸터앉아 의자의 등받이에 팔을 올리는 걸오.


윤희 ; 사형께선, 여기 이 책들, 다 읽었다 하셨지요?  그럼, 이럴땐 어떻게 해야.. 정답일까요?  제가.. 어떤 이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제 거짓말 때문에 그사람, 아주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기회를 포기할만큼.

걸오 ; (의자 등받이에 걸친 손에 얼굴 대고) 그래서?

윤희 ;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만, 그래서, 이제는 그 무거운 짐 내려놔도 좋다, 말하고 싶지만, 너무 늦은거 같아서, 절.. 용서해주지 않을거 같아서, 두렵습니다.  제가..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걸오 ; 뭘 고민해.  가서 솔직하게 말하면 되지.  내가 미안하게 됐다.  그러니 용서해줘야겠다.  지금 나한테 하는 것처럼, 니마음, 보여주면 되잖아.

윤희 ; 제가 한 거짓말이, 워낙 크고 엄청난 거라, 쉽게 용서가 되지 않을 겁니다.


걸오, 사랑이 담긴 눈빛으로 윤희를 보며, 난 벌써 널 용서해줬는데 뭐.. 하는 표정이다.

            

윤희 ; 사실대로 말했다가, 그사람이, 나에게서 영영 등을 돌려버릴까봐, 겁나고 두렵습니다.

걸오 ; 에휴. (일어선다.  윤희 내려다 보며) 그사람, 니가 마음에 둔 사람이냐?

윤희 ; 그건..

걸오 ; 누구? 초선이?  (씨익 웃고는 몸 돌려 걸어간다.  몇걸음 내려서다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 숙이고 있는 윤희를, 슬픈 표정으로 본다)


38. 박사 집무실 (낮)


대사성 ; (탁자에 놓인 지도를 돋보기로 보며) 보자 보자 보자..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돋보기 놓고) 결정했습니다, 이번 모꼬지는 월출산으로 가는 겁니다, 구용하 상유.

여림 ; (서서) 월출산요?

대사성 ; 무등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는 월출산.

여림 ; 요즘 누가 모꼬지를, 산과 계곡으로 갑니까, 촌스럽게. 

대사성 ; 그럼?

여림 ; 조선팔도 아무데나, 기생청 뒷마당에 돗자리 한장 깔면, 거기가 천국인걸요.

대사성 ; 호연지기를 기르기에는, 월출산이 최고래두!  내 이번 모꼬지에는, 금일봉도 하사하지, 그러니까.. 월출산일세.

여림 ; 하아, 사비로는 물한잔 사주시지 않는 영감께서, 금일봉을요? 

대사성 ; 우리 성균관 유생들의 힘찬 기상이야말로, 조선의 밝은 미래가 아닌가?

고장복 ; (대사성 옆에 서 있다가) 입은 삐뚤어졌어도, 나발은 바로 불랬다고.  아 이선준 상유가 가 있는 죽정서원이, 바로 월출산 부근이라서, 아닙니까? 

여림 ; 이선준?

고장복 ; 이선준 유생 앞에서, 우리 유생들이 알짱알짱대면, 다시 성균관에 돌아오고 싶어질지도 모른다고요..

대사성 ; 길잃은 어린양을, 바르게 인도하고 싶은 스승의 마음일세.

여림 ; 월출산, (탁자를 탁 짚으며) 가죠 머.  진작 말씀하시지이..  저도 이선준, 그 까칠한 자식이 보고 싶었거든요.


39. 선준방 (낮)


책상 앞에 넋 잃고 앉은 선준.

옆에서 보는 순돌.


40. 선준방 (밤)


여전히 책상 앞에 앉은 선준.


41. 선준방 (낮)


순돌 ; (바둑알 하나 놓고 박수치며 좋아서 괴성) 아!


선준, 하얀돌을 집어 바둑판을 보지도 않고 딴 생각에 빠져 바둑판 위에 놓는다.

의아하게 보는 순돌.


42. 선준방 (낮)


왜이러시나 하는 표정으로 보는 순돌.

밥상을 앞에 두고 딴생각에 빠져 국에 밥을 마는 선준.  너무 많이 말아서 국이 넘친다.


43. 금상 집무실 (낮)


장기판 앞에 두고 마주 앉은 금상과 좌상, 병판.


금상 ; 좌상의 아들이 성균관을 나갔다 들었습니다.  성균관 거관수학은, 과인의 어명이었습니다.  몸이 낫는대로, 성균관으로 불러올리세요.  과인은, 기다릴 생각입니다. (장기알을 탁 놓는다.)

좌상 ; (장기알 탁 놓고) 나어린 일개 유생에게, 어찌 그같이 지극한 성심을, 쓰시옵니까, 전하.  미거한 아들녀석이긴 하나, 학문에 대한 뜻이, 완강해, 서원으로 향하는 발길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금상 ; 학문에 대한 뜻이, 완강했다?  (장기알 둔다)

병판 ; 그 서원, 좌상께서 젊은시절, 수학하던 곳입니다, 전하.


장기알을 놓는 좌상.


병판 ; 나라정사에 대한 부친의 뜻을 물려받겠다는, 기특한 효심 아니겠습니까, 전하?

금상 ; 으음..  하여 과인도, 뒤늦은 아들노릇을 좀, 제대로 해볼 생각입니다, 좌상.  부친의 못다한 꿈이 잠든 화성으로, 도읍을 옮길 생각입니다.

병판 ; 전하.

금상 ; (장기알 놓고) 장이야.


44. 좌상 집무실 (밤)


병판 ; (서서 왔다 갔다 하며) 화성 천도라니요!  한양을 버리고, 화성으로 가겠다니, 이거야.. 우리 노론을 버리겠다는거 아닙니까!  어디 가능키나 하답니까?

좌상 ; (탁자 앞 의자에 앉은 채) 못할 것도 없지요. 

병판 ; (불만스럽다는듯이) 대감.    

좌상 ; 금상의 손에, 금등지사만 있다면 말입니다.

병판 ;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금등지사는 이미 십년도 전에, 사라지고 없습니다.


차를 마시는 좌상.


45. 마당 (밤)


짐을 지고 가는 두 사람, 뒤따라 온 관군의 칼에 맞아 쓰러진다.


E (병판) ; 그날밤, 금등지사를 호송하던, 김승헌과 장인 문영신이, 이세상에서 사라지던 날, 그들과 함께 금등지사도 사라졌습니다, 영원히.


장작불에 던져져 태워지는 짐들.


46. 좌상 집무실 (밤)

         

병판 ; 이는 대감께서 더 잘 아시는 일, 아닙니까?

좌상 ; 금상의 가신 중에.. 우리 사람이 있어야겠어요.  금상의 신뢰를 받는, 우리쪽 사람.


47. 금상 집무실 (밤)


서 있는 금상과 그 앞에 선 정박사,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영상.


금상 ; (탁자를 탁 치며) 이선준이 돌아올때까지, 기다릴 생각입니다.  밀명은 그때가서 내려도, 늦지 않아요.

영상 ; 전하.. 한시라도 빨리 금등지사를 찾는 것만이, 화성천도를.. 저들의 방해없이 완수할수 있는 비기임을, 아시지 않습니까?  이선준이.. 노론의 아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금상 ; 그래서 과인에겐 더더욱, 이선준이 필요합니다. 

영상 ; 전하!

금상 ; 영상, 과인이 찾고 싶은건, 단지 금등지사가 아닙니다.  조선의 미랩니다.  노론의 아들을 과인의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 한, 이 지리한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겝니다.


48. 마을 (낮)


그릇을 치는 유생들.


도현 ; 라리람빠람빠 리라리람빠요.

유생들 ; 라리람빠람빠 리라리람빠요. 라리람빠람빠 리라리람빠요.  라리람빠람빠 리라리람빠요.  왔노라, 왔노라, 우리가 왔노라.  월출산으로 모꼬지가러 우리가 왔노라.  라리람빠람빠 리라리람빠요.

도현 ; 자, 모꼬지의 제일 원칙은?  신나게 논다.

우탁 ; 이 원칙, 뼈빠지게 논다.

해원 ; 제 삼원칙, 죽어라 논다.

도현 ; 가자!  월출산으로!


짐들 두들겨 소리를 내는 유생들.


유생들 ; (뭐든 두들겨 소리내며 등짐 메고 걸어가며) 라리람빠람빠 리라리람빠요.


49. 성균관 뜰 (낮)


대사성 ; (여림의 손을 잡고 애정담고 손등을 두들기며) 무슨일이 써서라도 돌아올 때, 자넨, 이선준을 꼬옥.. 데려와야 하네.  부탁하네.

여림 ; (손을 빼며) 에이.  글쎄요.. 워낙에 누구 말을 듣는 치가 아니라서 말이죠. 

대사성 ; 자네.. 구용하야, 할 수 있다고.  믿어, 긍정의 힘.  내가.. 삼십년 관직생활을, 이렇게 변두리를 전전하느냐, 아니며는 화려한 중앙무대에서 마무리를 하느냐는, 모두 자네 손에 달려있네.  (여림의 손을 잡고) 부탁하네, 어? 부탁하네.

여림 ; (손을 빼며) 아이, 좀.. 히히히히.  (나무잎 사이로 걸오와 윤희가 걸어가는 걸 보고) 전 이만, 작전회의를 좀 하러..  (간다)

대사성 ; (멀어지는 여림에게 팔을 펴서 손바닥을 보이고 흔들며, 크게) 부탁하네!


50. 성균관 마당 일각 (낮)


걸어가는 윤희와 걸오.

와서 몸을 한번 돌리는 여림.


여림 ; (윤희와 걸오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가운데 끼어 윤희의 침울한 얼굴을 보더니) 자아.  어이 대물, 아직도 기분이 별론 거야?  아유, 모꼬지가 아니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 얼굴을 하고 있네, 그려.  (문을 지날 때 고개를 숙이며) 어유, 걸오 조심하고..  거, 돈드는 것도 아닌데, 인상 좀 풀게나, 어.  대물 자네 웃는 얼굴 한번 보겠다고, 천하의 문재신이, 난생 처음 모꼬지를 따라나서..

걸오 ; (손으로 여림의 입을 막으며) 아침부터 헛소리 할래?

여림 ; 아, 나도 준비한게 하나 있거든.. 어.  기대해도 좋다구.  자 그럼, 우리 신나게 놀다오는 거다.  에이치.


51. 계곡 (낮)


계곡의 이곳저곳에 모여서 노는 유생들.  속바지 차림으로 한패는 물에서 물을 첨벙이며 놀고 있고, 한패는 바위에서 공을 차며 놀고 있다.  윤희는 바위에 앉아 있다.

한패는 솥에서 뭔가를 끓이고 있고, 한패는 술통의 술을 작은 단지에 붓는다.

걸오는 꼬챙이에 감자 끼운 것을 장작에 굽고 있다. 

윤희는 그 옆 바위에 앉아 노는 유생들을 미소띠고 보고 있다.

걸오, 윤희를 보다가 다시 감자 하나를 꼬챙이에 끼운다.

물에서 서로 물을 뿌리며 노는 유생들.    


도현 ; (그 옆 바위에 앉아 바지만 입고 상체에 물을 묻히며) 애들은 애들이구나, 이녀석들.  (물이 자기에게 튀자) 야이, 자식들아!

명식 ; (바지만 입고 물에서 놀던 유생들-우탁과 해원도 있다- 가운데 서서) 어이 대물, 넌 왜 탁족도 안하고 그림처럼 앉아만 있냐?  들어와.

유생들 ; 들어와, 들어와.

윤희 ; (당황하여)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명식 ; 그자식, 수상하네.  뭔가 우리한테 숨기고 있는 거 아냐?

윤희 ; 네?

명식 ; (손가락으로 윤희 가리키며) 너, 사실은..


놀란 윤희와 뭔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의 유생들 모습 차례로 보인다.

 

명식 ; 수영 못하는구나. 

옆의 유생들 ; (고개 끄덕이며) 아하.

윤희 ; 아하.. 네에.

명식 ; 아, 못하면 배우면 되지, 사내자식이 소심하기는.  (오라고 손짓하며) 자, 들어와, 들어와.

유생들 ; 그래, 들어와.

윤희 ; (뒤로 물러 앉으며) 아니 전, 정말 괜찮습니다.  정말입니다.

명식 ; 그래?  싫음 말구. 이삼아..

도현 ; (명식들에게 그릇째 물을 뿌리며) 뭘 들어와이.  전체 불어!  자!

유생들 ; (즐거운 비명) 아하.


책 펼쳐 읽는 윤희.

윤희를 저 뒤 수풀에 숨어 보다가 가는 병춘과 고봉.


52, 수풀 (낮)


수풀에 급히 와서 앉으며 약간 넘어진다.


병춘 ; 야아, 확실히 수상하지?  어? 사내자식이라면 이따위 물을 무서워할 리가 없잖어. 

고봉 ; 아암, 나도 안무서운데에..

병춘 ; 저자식 저거, 위통을 벗을수 없는 몸인게, 틀림없다니까.

고봉 ; 그그럼, 설마 대물이?

병춘 ; 홍벽서.

고봉 ; 장의께서 안 계시는동안, 우리가 홍벽서를 잡아가면, 장의께서도 기뻐하시겠지?  흐흐.

병춘 ; 흐흐흐.  좋은 생각이다, 고봉아.  (고봉의 뺨에 뽀뽀하고) 잡자, 홍벽서.


서로 팔을 거는 두 사람.


53. 계곡 (낮)


술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유생들.


도현 ; (술병 들고 술상 쪽으로 오며) 자, 월출산에 약주를 한잔씩 주겠다.  (유생들에게 술을 따르며) 마시고 우리 죽자.  자, 지화자!


걸오, 모닥불에 꼬챙이에 낀 감자를 부채질 해가며 굽느다.  약간 떨어져 책읽는 윤희를 보다가 윤희 쪽으로 감자를 들고 온다.


걸오 ; (꼬챙이에 낀 감자를 윤희에게 건네며) 자.


윤희, 본다.

걸오, 윤희에게 먹으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윤희가 감자를 잡으려 하자,

걸오, 감자를 입으로 후후 불다가 감자에 부채질을 한다.


걸오 ; (다시 건네며) 뜨겁길레.

윤희 ; 사형은, 분명 좋은 남편이 되실 겁니다.

걸오 ; 내가 무슨..


윤희, 시커멓게 탄 감자를 반으로 쪼개서 먹는다.

걸오, 웃으며 가려다가 윤희 얼굴 보면, 입가에 숯이 묻었다.

걸오, 그걸 손으로 닦아주려 한다.

윤희, 약간 멀리 얼굴을 피한다.


걸오 ; (머쓱하여) 아이, 용하 이자식은 어디간거야?  (간다)


54. 기생방 (낮)


기생들과 술상을 놓고 둘러 앉은 여림.

옆의 기생이 여림의 술잔에 술을 따른다.


여림 ; (술을 마시고 놓으며) 아하, 그래 그래.  손!  (자기 손바닥을 위로 하여 내민다)

 

그 위에 손등을 위로 하여 올리는 순돌.

여림,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다시 여림의 손바닥에 손바닥을 위로 하여 올린다.


여림 ; (손돌의 손바닥에 엽전 꾸러미를 올려서 툭툭 친다) 그러니 자넨, 내말대로 이선준을 불러내기만 하면 된단 말일세.

순돌 ; (무릎 꿇고 여림 앞에 앉은 채 걱정스런 표정으로) 참말로.. 우리 되련님 병을 고칠 수 있단 말씀이시지라.

여림 ; 그렇다니까아.  이선준이 앓고 있는 병 처방엔, 나만한 명의가 없대두.  상사병.

순돌 ; 상..상사병이라고라?

여림 ; 뭐, 그런게 있다.


55. 서원의 선준방 (낮)


앉아서 책 읽고 있는 선준.


순돌 ; (방문 열고 들어와 선준 옆에 서서 크게) 되련님!  되련님.. 한양에서 마님이 올라오셨구만요오. 

선준 ; 어머님께서 말이냐?  기별도 없이?

순돌 ; 긍께요.  뭐 집안에 큰일이 난게 아닌가, 싶당게요.  싸게싸게 나오쇼, 예.  언능.


56. 계곡 (낮)


장작불에서 꼬챙이에 낀 구운 감자를 들어 올리던 도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옆의 우탁과 해원을 본다.  함께 고개를 끄덕이다가 옆에 앉아 책을 읽는 윤희에게 다가온다.


도현 ; 흐하하하하.  야아 대물, 이런데서 책을 읽으며는, 눈병 나는거 너 몰랐냐?

우탁 ; 눈병이 나선 안되지, 우리 대물.


미소띠는 윤희.


해원 ; 아 그럼, 어디 물속에서 소독이나 한번 해보라고오..

도현 ; (취한 목소리로) 그래, 한번 해보자. 자자자자.


놀란 표정의 윤희, 저 멀리 달아난다.


도현 ; 대물, 너 어디가냐, 어디가?


큰 바위 밑에 숨어서 보는 병춘과 고봉.


병춘 ; 대물자식, 난 던져버릴거다, 풍덩.

고봉 ; 난 벗겨버릴거다, 홀라당.


흐흐흐흐흐 웃다가 함께 윤희를 쫓아가는 둘.


도현 ; 야아, 쟤네들은 왜 또 뒤에 가냐?  야야야야, 술 먹자. 


57. 계곡 일각 (낮)


폭포 옆 넓게 고인 물 옆을 걸어가는 윤희.

그 뒤를 따라와 고인 물 옆을 걸어가는 병춘과 고봉.


58. 계곡 (낮)


걸어와서 윤희가 바위에 떨어뜨리고 간 책을 줍는 걸오.


걸오 ; (둘러보다가 감자를 먹고 있는 도현 패거리 쪽을 보고) 어이, 김윤식 못봤어?

우탁 ; 어?  병춘이랑 고봉이랑 놀러갔는데.


걸오, 걱정된 표정으로 얼굴 돌린다.


59. 계곡 일각 (낮)


걸어오는 순돌.

그 뒤를 뒷짐지고 느리게 걸어오는 선준.


순돌 ; (다시 와서 선준의 손목을 잡으며) 아따 참, 데련님 빨리 오시랑게요, 마님 기다리셔라.


60. 계곡 일각 (낮)


징검다리를 어렵게 지나는 순돌.


선준 ; (그 뒤에 뒷짐 지고 의심스러운듯 느리게 걸어오며) 정말.. 한양에서 어머님이 이리로 오셨단 말이냐?

순돌 ; (다시 징검다리를 돌아와서 선준을 안고 절실하게) 천지신명님, 지 우리 데련님 병 고치고, 순돌이 지옥 갈랍니다!

선준 ; 이게 무슨 짓이냐?

순돌 ; 오늘 여기, 성균관 나리들께서, 모꼬지 왔당게요오..  데련님 병 고치고 잡으면, 이리로 뫼시고 나오라고 해서.

선준 ; (팔을 빼며) 괜한 짓을 했다.  돌아가자.  (돌아서 간다)

순돌 ; 되련님, 여기가 맞당게요, 예?  (멀리 가리키며) 저보쇼.  저거 꽃도령 선비님 아니어라?


놀라서 돌아보는 선준.

저멀리 물 옆에 윤희, 서서 먼쪽을 보고있다.

  

선준 ; 가자.  이들과 난, 더는 상관없는 사람이다. (간다)


61. 계곡 바위 (낮)


윤희, 물 가운데 놓인 바위에 다리를 아래로 하고 걸터 앉는다.

약간 떨어진 수풀에 와서 보는 병춘과 고봉.


62. 계곡 일각 (낮)


전력질주하다가 멈추고 계곡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뛰어가는 걸오.


63. 숲 (낮)


숲속을 걸어오는 선준과 순돌.

갑자기 멈춰서는 선준.


선준 ; (굳은 결심한 표정으로) 순돌이 너, 먼저 서원에 가 있거라. (돌아서 달려간다)

순돌 ; 되련님, (돌아보며) 되련니임! 


64. 계곡 일각 (낮)


앉아 있는 윤희 뒤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고봉과 병춘.

밀려고 하듯 손을 들어서 살금살금 윤희에게 다가오는 둘.

그때 옆에서 걸오가 나타나 둘의 뒷멱살을 잡고 끌고 간다.

인기척에 돌아보는 윤희,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본다.

놀라 급히 일어나다가 신발 한짝을 물에 빠뜨리는 윤희.

돌아서 달려가는 윤희.


65. 계곡 일각 (낮)


선준 ; (바위에 와 서서) 김윤식!  (물에 떠내려오는 신발 한 짝을 본다)


66. 계곡 일각 (낮)


선준 ; (달려가 이곳저곳에서 찾으며 걱정되는 목소리로 크게)  김윤식!  김윤식!  김윤식! 

 67. 계곡 일각 (낮)


달려와서 보는 선준.  돌아보면 윤희가 서서 자기를 보고 있다.

달려가서 윤희를 안는 선준.

놀란 윤희, 기뻐서 눈물 그렁해진다.


선준 ; (한참 안고 있다가 떨어져서 눈물 그렁한 채) 안되겠다, 김윤식.  아무리 애를 써도, 난 이렇게 널 찾아 헤맬 수 밖에 없어.  그러니까, 이제 네 차례다.  나한테서 도망가라 김윤식. (돌아서 가려한다)

윤희 ; 기다려!


멈춰 서는 선준.


윤희 ; 내 대답, 듣고 가야지.


돌아보는 선준.

선준을 향해 달려가다가 버선이 바위에서 미끄러져 ‘아아’ 비명 지르며 물에 빠지는 윤희.

물에 뛰어 드는 선준.

한동안 안보이다가 물에서 윤희를 구해 안고 나오는 선준.


선준 ; (윤희의 머리를 손으로 받치고 바위에 눕히고 어깨를 흔들며) 김윤식, 김윤식.  정신 차려 김윤식.  하아.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다가 윤희의 도포의 단추를 풀고 저고리를 연다.  열고 보면, 가슴의 윗부분이 봉긋하게 보인다.  놀라는 선준.)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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