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 제14강 대본 (필사)
1. 마을 (밤)
관군을 피해 달려와서 초가집 담벼락에 몸을 숨기는 홍벽서 차림의 걸오.
2. 존경각 (밤)
윤희 ; (가는 선준의 등 뒤에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거였어? 이선준한테 우리 지난시간, 그렇게 사소한 오해 한번에 무너질 만큼, 그렇게, 하찮고 보잘것없는 시간들이었나?
선준 ; (여전히 등돌린 채 슬픈 표정으로) 잘 들어, 김윤식. (윤희를 돌아 보며, 단호하게) 난.. 예전처럼 돌아갈 생각이, (사이) 없다.
눈물 뚝 흘리며 가는 윤희.
3. 성균관 뜰 (밤)
뜰을 가로질러 전력질주하는 윤희.
담에서 뛰어 내려와 아픈지 잔디밭에 몸 수그리고 펴지 못하고 신음하는 걸오.
놀라 잔디밭에 쭈그려 앉아 걸오의 몸을 건드려 보는 윤희.
걸오, 피묻은 손으로 윤희의 어깨를 잡고 안듯이 기댄다.
놀라서 ‘어’ 하는 윤희.
4. 장의 방 (밤)
장의 ; (앉아서) 부상당한 홍벽서가.. 성균관 담장을 넘었다?
5. 성균관 뜰 (밤)
걸오 ; (윤희을 안듯 기대어 힘겹게) 살아있길.. 잘했군.
싫은 표정으로 걸오의 팔을 빼려고 하던 윤희, 멈추고 본다.
걸오, 윤희에게서 몸을 떼고 힘겨운지 여전히 고개 약간 옆으로 숙인 채, 자신의 얼굴의 복면을 내리며 웃는다.
6. 성균관 뜰 일각 (밤)
뜰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유생복 차림의 세 명.
셋 멈춰선다.
반대쪽에서 와서 몽둥이를 주는 한 사람의 뒷모습.
몽둥이를 받는 셋.
병춘 ; (옆의 장의를 보고) 홍벽서가 부상을 당했다면, 멀리 가진 못했을 겁니다요.
몽둥이 들고 가는 고봉과 병춘.
7. 성균관 일각 (밤)
달려 오는 선준.
한 건물의 문을 열고 보다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문을 닫는다.
다시 어디론가 달려 간다.
8. 성균관 뜰 (밤)
뜰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윤희의 뒷모습.
달려가다가 윤희의 뒷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하아)을 쉬는 선준.
윤희에게 뭔가 얘기를 해야 겠다는 표정으로 가까이 가려 하는 선준.
그때 윤희, 빗자루를 바닥에 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닥 쓸고 온 방향으로 다급히 뛰어간다.
선준, 의아하여 본다.
9. 향관청 (밤)
놋그릇이 놓인 선반에 기대 앉아 붉게 보이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댄 채, 식은땀 흘리며 떨듯이 신음(어흠... 어허허... 어허...)하는 걸오.
문 열리고 들어오는 윤희, 걸오에게 다가와서 무릎 꿇고 앉아 걸오의 상의를 열어보려 한다.
걸오 ;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한 채 피 묻은 왼손으로 윤희의 손목을 잡아 막으며) 됐다. 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윤희 ; 알아서 한다는 사람이, 이꼴입니까? 홍벽서, 대체 그 한심한 위인이 누군가 했더니, (걸오의 옷을 세게 잡고 열면서) 사형이십니까..
걸오 ; (많이 아픈지 더 세게 신음) 끄응!
윤희가 옷을 잡고 벌려 약간 벌어진 옷 사이로 걸오의 칼자국 길게 난 왼쪽가슴이 보인다.
상처를 보고 놀라서 울듯 보는 윤희.
걸오 ; (그런 윤희를 보며 허탈한 웃음 짓고, 힘겹게) 헛, 큰소리 치던 놈이, 겨우 이꼴이냐? (피묻은 손으로 윤희의 손을 안심시키려는 듯 살짝 잡으며) 괜찮아. 익숙한 일이야.
윤희 ; (놀라서 울듯 하다가) 참, 퍽두 자랑이십니다. (자신의 유생복 도포를 찢어 걸오의 가슴에 사선으로 둘러 묶어준다)
걸오 ; (아픈 표정으로 힘든지 계속 신음) 으음... 으음... (피 묻은 손으로 우는 윤희의 눈물을 닦아주려 가까이 가져가다가 다시 통증이 오는지 강하게 찡그린 표정으로 신음하며) 앗! 아앗!
윤희 ; (걱정되어) 사사형.
선반 뒤에 숨어서 보는 선준.
선반 너머로 걸오와 안고 있는 듯 보이는 윤희. 신음하는 걸오의 얼굴.
그걸 보고 놀라는 선준의 얼굴.
10. 향관청 앞 뜰 (밤)
선준, 급히 향관청을 돌아 나와서 뜰에 놀란 표정으로 서 있다.
도현, 해원, 우탁이 선준의 앞에 와 서서 놀란다.
해원 ; 아, 이선, 이선준?
보다가 가는 선준.
해원 ; (선준의 뒷모습 보며) 아니 이선준도, 우리처럼 시험 준비하러 온건가? 처녀귀신 정기 받으러?
도현 ; 저자식이 어떻게 알았지이? 이 고급정보를?
우탁 ; (색안경낀 채 팔짱끼고) 이선준도 온 걸 보니, 이거 꽤 신뢰가 가는 정보군.
도현 ; 그래 임마아. 우리가 사실 집안이 좋냐, 실력이 되냐? 우리가 믿을건 오직 하나뿐이다.
해원 ; 그게 뭔데?
도현 ; 운빨.
해원과 우탁 ; 운빨.
도현 ; 가자, 향군청으로!
가는 세 명.
11. 성균관 뜰 일각 (밤)
급히 걸어오는 강무과 장의.
맞은편에서 급히 다가와 숨차하는 고봉과 병춘.
병춘 ; (숨차서 헐떡이며 고개 좌우로 저으며 없다는 표시하다가) 앗, 향군청입니다요. 상처를 의원에게 보일순 없을테고.. 지혈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장의 ; 이 밤에 숨을 곳은?
강무 ; 향관청 뿐입니다.
12. 향관청 (밤)
뭔가를 찾는 듯 선반의 재기며 향로, 각종 그릇 안을 보는 윤희. 마침 하나의 향로 안에서 뭔가를 발견한 듯 들고 돌아서다가 눈 가린 사람을 발견하고 놀라서 향로를 떨어뜨린다.
서서히 눈 가린 사람의 뒤에 서 있는 여림, 모습을 드러낸다.
윤희 ; (놀라서) 사..사형.
여림 ; 이제 걱정마라. 의원을 뫼셔 왔으니까.
13. 향관청 앞 (밤)
뜰을 걸어오는 장의 일행.
장의 ; (뒷짐지고 걸어가며) 놈이 홍벽서란 사실만 확인되면, 병조의 군사에게 그 즉시 연락을 취해라.
고봉 ; (부채로 놀라서 가리키며) 어? 장의.
그쪽을 보면, 한 사람이 급히 향관청을 돌아서 달아난다.
보는 장의 일행.
14. 성균관 뜰 일각 (밤)
놀라는 의원. 그 앞에 선 장의 일행.
15. 향관청 안 (밤)
급히 들어와서 향관청 안을 뒤지는 장의 일행.
아무 것도 못 찾았다는 표정으로 고개 젓는 고봉.
아래를 보다가 놀라며 부채를 들어 올리는 고봉.
앉아서 부채를 보고 좋아하는 고봉과 병춘.
16. 향관청 앞 뜰 (밤)
장의 ; (부채를 펼쳐 보며) 여림의 부채라..
고봉 ; 설마, 여림이 홍벽서는 아니겠죠?
병춘 ; (고봉의 얼굴을 손으로 때리며) 얌마, 구용하는 몸 쓰는 일에는 아예 잼병이라고오.. 말이 되는 소릴해야지, 말이.
고봉 ; 혹시.. 그게 다 고도의 위장전술이 아닐까요? 그 삼국지에도 보면..
병춘 ; (고봉 보며)삼국지겉은 소리하구 있네.. (그럴지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장의 쪽으로 얼굴 돌려 보며) 헉, 장의?
생각에 빠진 장의.
*몽타주 - 의원 ; 병자의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상복부 좌측에 상처를 입었습죠.
생각하는 장의.
17. 여림방 (밤)
책상을 앞에 둔 채 보료에 기대어 비스듬히 앉아서 붉은 표지의 책을 보는 여림.
문이 열리며 장의와 강무가 들어온다.
놀라는 여림.
뒷짐지고 걷는 장의.
여림 ; (하품하며) 와아, 아. 자네가 이시간에 왠일인가? 잠 안자구?
장의 ; 자네 좋아하는,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해서..
여림 ; (책을 덮어서 책상에 놓고) 그래? 기대..되는데?
장의 ; (뒷짐지고 걸으며) 홍벽서가 오늘밤, 관군의 칼에 맞고, 이 성균관에 숨어들었다.
여림 ; 저런. 그런 일이 있었나? (병풍 밑으로 삐져나온 옷자락을 급히 발로 밀어 넣고, 일어서서 벽에 기대 허리를 짚으며) 아이구 허리야아..
장의 ; (여림의 얼굴 앞에 마주 서서) 헌데 난 이밤, 도망치듯 달아나는 의원을 만났지 뭔가? 향관청에서 칼자국이 난 사내를 치료했다더군. (부채를 보여주며) 자네 부챈, 향관청에 떨어져있고 말이지. 향관청엔 왜 갔나? 여림.
여림 ; (허리를 짚고 몸을 약간 굽혀 신음하며) 아, 아, 아이구, 아이구, 아아, 아아.
장의 여림의 도포를 잡고 열어 보려한다.
여림 ; (그런 장의의 손을 잡으며) 아이, 이보게. 잠깐만 이보게, 좀.
장의, 옷을 벌려 보면, 아무 상처가 없는 여림의 배가 드러난다.
여림 ; (장의 보다가 허리 구부려 웃는다) 픽, 크흐 크흐 크흐흐흐흐 (일어서서 장의보며) 아유, 아이, 아이 설마 나를, 이 여림 구용하가, 홍벽서라도, 된다고 생각한 건가? 어? 내 인정해주지. 오늘만큼은 재밌었네. (장의의 어깨를 치며) 앞으로 더 분발해 주겠나? 어? (부채를 들고 펼쳤다 접으며) 이 부챈, 내 불쏘시개나 할까 해서, 일보던 아이들에게 던져준건데. 향관청까지 흘러들어갔나 보구만. 어?
돌아서서 가는 장의.
여림 ; (뒤에서) 이봐.
멈춰서는 장의.
여림 ; 아무래도 오늘밤은, 숨바꼭질일랑 그만두고, 좀 자두는게 어때?
돌아보는 장의.
여림 ; (부채로 장의의 머리를 짚으며) 자네의 그 총명한 머리가 제 노릇을 못하고 있잖아아. 잃어버린 장의 명예를, 한시라도 빨리 되찾겠다는, 그 고약한 욕심때문에.
장의 ; 나도 충고 하나 하지.
여림 ; 얼마든지.
장의 ; 그간의 정리를 봐서, 오늘일은 내 너그러이 넘어가준다, 구용하. 허나.. (노려보며) 다시는 날 모욕해선 안돼. 잊지 마라, 난. 두 번은 봐주질 않아. 자네도 예외는 될 수 없다. 구용하. (돌아서 나간다.)
18. 중이방 앞 뜰 (밤)
걸어오는 장의 일행.
병춘 ; (장의 옆에서 걸어오며) 역시 홍벽서는, 중이방 놈들인가 봅니다, 장의.
마루에 올라서 방문을 여는 병춘과 강무.
어두운 방안에 아무도 없다.
병춘 ; 이자식들, 이밤에 어딜.. 갔을까요?
고봉 ; (마루 밑에 서서 불쌍하다는 어조로) 홍벽서라면 부상당한 몸으로 고생일텐데..차암. 에휴, 대체 어딜 간거야아?
병춘 ; (고봉의 입을 막고 내려서며) 자장의, 다시 향관청 쪽으로..
장의 ; (팔을 들어 제지하며) 아니, 아니다. (생각한다)
* 몽타주 - 여림방 안 풍경 ; 병풍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서 하품하던 여림과 병풍.
장의 ; 숨바꼭질은, 끝났군. (뒷짐지고 가는 장의)
그 뒤를 따르는 일행.
그 앞을 막아서는 유박사와 등불 든 고장복과 함춘호.
유박사 ; 자네들 모두 감점 5점씩이다. 취침시간이 한참 지났다는걸 모르나?
병춘 ; 저.. 홍벽서가 부상을 입고, 이 성균관으로 숨어 들어왔습니다요.
유박사 ; 홍벽서?
장의 ; 홍벽서는 역돕니다. 국학 성균관이 역도를 은닉할 생각은, 아니실거라 믿습니다.
유박사 ; 허나, 이 성균관은 치외법권 지역일세. 아무리 홍벽서라 해도..
정박사 ; (와서) 홍벽서라면 찾아봐야지요. (장의 앞에 와 서서)그래, 홍벽서가 숨어든 곳이 어딘가?
19. 여림방 (밤)
문 열고 들어서는 장의와 강무.
여림 ; (앞에 서서 어이없다는 웃음 지으며) 허어, 아직도 날 의심하는 건가?
들어서는 고장복과 함춘호.
여림 ; (서리까지 들어오는 걸 보고 허탈한 웃음과 한숨) 하이, 후우.
병풍 앞으로 가는 장의.
여림 ; (장의를 막으려 뒤를 따라가며) 아이.
강무, 여림의 어깨를 잡아 제재한다.
여림 ; (강무의 팔을 뿌리치고) 이보게, 이건.
장의, 병풍을 젖힌다. 병풍 뒤에 빨간책들이 쌓여 있다. 그걸 보는 장의.
앉아서 그 빨간책들을 신이 나서 보는 서리들.
여림 ; (보료에 앉아 기대서) 홍벽서 따위와 아무 관계없다고, 내 몇번을 말했나아.. 어? (귀를 만지며 웃는) 허어.
서서 여림을 보는 장의.
문을 들어서는 정박사와 유박사, 그 책들을 본다.
20. 박사 집무실 (밤)
정박사 ; (장의 일행 앞에서 뒷짐지고 걸으며) 성균관은 치외법권지역이다. 어명이 내리기전까진, 금부도 병조도 그 누구도, 성균관 유생을 수색할 수 없다. 그것이 설령, 성균관 학관이라 할지라도. 성균관은 공자를 뫼신 성전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문의 자유와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이나라 조선의 오랜 전통이다.
장의 ; 허나, 유일하게 성균관 장의에겐..
정박사 ; 유생을 벌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을 지닌 장의직은, 안타깝게도 공석 중이지. 자네 불찰로 말일세. 명심해라, 상유 하인수. 이시간이후 자넨 그 어떤 유생에게도, 임의로 장의 권한을 행세할 수 없다. 규정을 어길시엔, 유림을 소집해서 장의직을 박탈할 생각이다.
화난 표정의 장의.
서로 마주보는 고봉과 병춘.
21. 여림방 (밤)
방문 밖을 엿보다가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여림.
여림 ; 후우. 다행히 하인수가 더 귀찮게 할 일은 없을거 같군. (병풍을 젖히고 쌓인 책들을 모두 치우자 벽장이 나온다. 벽장문을 연다.)
윤희의 얼굴이 보이고, 윤희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식은땀 흘리며 힘겨워하는 걸오 있다.
걸오의 머리를 베개에 눕히는 윤희. 신음하는 걸오.
윤희 ; (천으로 걸오얼굴의 땀을 닦아주고) 고맙습니다, 사형.
여림 ; 그건 내가 할 소리 같다, 대물.
윤희 ;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걸오사형이 홍벽서라는 것도, 또 오늘 이런일이 생길거라는 것두.
걸오 ; (누운 채) 저자식 구용하다. 10년동안 나만 졸졸 따라다닌, 끈질긴 놈.
여림 ; (화나서 주먹쥐고) 한마디만 더해라, 어? 그땐, 옆구리 터지도록 패줄테니까. (걸오의 손을 잡고 만지작거리며) 봐주지이. 죽기살기로 살아돌아온, 그 정성이 갸륵하니까. (걸오 손에 자기 뺨을 대고 비비며 좋다는 표정 지으며) 어휴, 아우 좋아아..
걸오 ; (손을 뿌리치며) 사내놈이 간지럽기는..
여림 ; (웃는) 치이. 아하, 대물, 오늘일 말이다아.. 아무도 알아서는 안된다. 이자식, 금상까지 나서서, 현상금 걸고 찾고 있는 흉악범이라고, 지금. 이선준도 예외는 아냐. 그녀석을 위해서도 그편이 나을..
윤희 ; 알아들었습니다, 저.
22. 동이방 (밤)
술상을 차려놓고 술병에서 술을 붓고 마시고 다시 붓고 마시는 선준.
생각에 잠긴 선준.
23. 장의방 (밤)
술잔을 탁 놓고 다시 술을 따라 마시려는 장의.
그 손을 잡는 강무.
장의 ; 다 잡은 놈을 눈앞에서 놓쳤다.
강무 ; 장의, 다음기회가 있을겝니다. 지금은, 때가 안좋습니다.
장의 ; (강무보며) 왜? 장의직을 박탈 당할까봐, 겁이라도 난단 말이냐?
장의의 손을 놓는 강무.
술을 마시고 술잔을 벽을 향해 던지는 장의.
쨍그랑(술잔 깨지는 소리).
장의 ; (눈에 힘주어) 홍벽서가.. 이 성균관 안에 있다?
24. 창고 안 (밤)
가짜 홍벽서 앉았고, 병판 그 앞에 서 있다.
병판 ; 고생.. 했다.. 상처가 다 아물때까지.. 모란각엔 나가지 않는 편이 좋겠다. (돌아서 가려 한다)
초선 ; (한손을 피나는 왼쪽 어깨에 대고 힘들어하는 목소리로) 대감.. (멈춰서는 병판) 약조는 꼭 지켜주십시오. 더 늦기전에, 꼭 한번쯤은..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돌아보는 병판.
25. 좌상 집무실 (밤)
탁자를 화난 듯 몇번 치다가 병판을 힘주어 보는 좌상.
병판 ; (마주 앉아서 입술 떨며) 으음.. 대감, 그게 말입니다. 그, 홍벽서 그놈을 분명히, 다 잡았었는데 말입니다. (크게) 그때, 바람처럼 나타난, 신출귀몰하는 그그 검객이..
좌상 ; 금상이 보낸 호위무사 말입니까?
병판 ; 그걸 어찌?
좌상 ; 금상은 홍벽서를 보호하고 싶은 겝니다.
병판 ; 그러니까, 대체 왜요?
좌상 ; 금상은 말입니다, 병판. 금등지사를 찾고 있는 겁니다. 금등지사는 죽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는, 선대왕의 회한을 담은 서한입니다. 지금이라도 금등지사를 찾게된다며는, 우리 노론은.. 역도가 되겠죠.
병판 ; 허나 대감, 금등지사는 이세상에서 사라진지 오랩니다. 그건 대감께서도 잘 아시는 일입니다.
좌상 ; 금등지사를 말하는 홍벽서는, 성균관 유생입니다. 그 성균관으로 정약용을 보냈고, 전에 없이 성균관을 찾고 있습니다. 더 설명이 필요합니까?
병판 ; 대감..
좌상 ; 이사람이 두려운건 그다음입니다. 우리 노론을 역도로 제압하고 금상이 이루고자하는 뜻이, 진정 무언지.. 흐음..
26. 금상 집무실 (낮)
탁자 위에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펼쳐놓고 앞에 서는 정박사.
금상 ; (안경을 쓴 채 한손에 담배 들고 그림 본다) 화성 축성에, 과인의 10년을 예상했었다. 헌데, 이 거중기란 녀석이 그 시간을 3년으로 단축해준다? (정박사 본다)
정박사 ; 그렇습니다, 전하.
금상, 종이를 옆으로 치우고, 피우던 담배를 끄고 다시 종이위에 담배잿를 올려 말려 한다.
정박사 ; 그만 태우시는게 좋겠습니다. 옥체 상하실까..
금상 ; 말 안듣는 자네보다, 이 친구가 낫다는걸 모르는군.
정박사 (담뱃재가 들어있는 나무 상자에서 담뱃재를 집어 보며) 전하, 이는 앵속각이 아닙니까?
자막 ; 앵속각 (罌粟殼) 양귀비
폐기를 수렴하고 해소를 다스린다. 통증 마취제로 쓰인다.
정박사 ; (놀라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전하, 언제부터? 언제부터.. 진통제를 쓰지 않으면 견디기 힘드실만큼, 병세가 나빠지셨습니까?
금상 ; (말며) 생각보다.. 일찍 들켜버렸군.
정박사 ; 왜 신에게조차,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금상 ; (정박사 보며) 말하지 않았나.. 과인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과인이 그 아이들을 더 기다려야 하나? 정박사?
정박사 ; 한가지.. 소신과 약조해주시겠습니까? 언젠가 그아이들의 허물을 보시거든.. 전하, 그 죄는 반드시 소신에게만 물어주십시오.
금상 ; 스승이, 어버이의 마음을 다하겠다 나오는데, 군왕이 질수야 있나? 내 그아이들의 허물은 무엇이든, 묻지 않겠다. 약조한다, 정박사.
정박사 ; 날이 밝는대로 그아이들과 입궐하겠습니다. 전하, 그들에게 금등지사를 찾는, 어명을 내리시옵소서.
27. 성균관 명륜각 앞 뜰 (아침)
마당을 빗질하는 서리 두 명.
28. 여림방 (아침)
누운 채 눈을 뜨고 옆에 쪼그리고 누워 잠든 윤희를 본다.
옆에 여림도 누워 잔다.
윤희, 깨어나자, 걸오, 빨리 눈을 감고 자는 척 한다.
윤희, 손으로 걸오의 이마를 짚어 보고 안심이 되는지 웃다가 나간다.
윤희가 나가자 눈을 뜨고 흐뭇한 미소 짓는 걸오.
29. 동이방 앞 (아침)
윤희 다가서서 댓돌에 가지런히 놓인 선준의 신발을 본다.
30. 동이방 안 (아침)
술상에 엎드려 자던 선준, 눈을 뜨고 일어나 주위를 본다. 술상 옆에 방바닥에 술병과 선준의 도포가 널부러져 있다. 선준, 상의 깃을 여미다가 생각에 빠진다.
윤희, 방문을 열고 들어와 주위를 본다.
윤희 ; (술병을 들어 술상에 놓으며) 마시지도 못하는 술은...
선준, 술병을 뺏어 탁 소리나게 놓고 일어나 나가려 한다.
윤희 ; (돌아보지 않고) 이제 그만하는게 어떻소? 다 알아들었으니까. 더는 전처럼 지낼수없다는 말, 다 알아들었다고. (선준 보며) 그러니, 매번 그렇게 무서운 얼굴, 할 필요 없소. 원하는대로, 그저, 동방생으로 지내 줄테니까. (돌아서 방문 열고 나간다)
보는 선준.
31. 동이방 앞 (아침)
윤희가 열고 나오는 문에 마루에 기대서 엿듣던 순돌의 머리가 부딪친다.
순돌 ; (머리 만지며 신음소리) 아아, 크으.. 으으.. (서서 손에 든 봉투를 마루에서 바닥에 내려서는 윤희에게 내밀며) 히히, 이거 드시고 화 푸시오, 꽃도령 선비님, 이. 둘이 먹다가 셋이 과거급제를 해도 모른다는 구림마을 꽂감이지라, 히히. 저희 되련님 정혼때 쓸려고 준비한건데.. 특별히, 챙겨왔당게요오. 저희 되련님, 정혼 날짜 받아오는길이구만요, 하, 히히히히. (봉투를 내민다)
윤희, 표정 굳어지며 순돌을 보다가 까딱 인사하고 그냥 가버린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 선준.
순돌 ; (왜그러나 윤희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오는 선준에게) 아따 참말로, 되련님땜에 못살겄소오..예에? 꽃도령 선비님이, 이, 봐봐요, (손가락으로 꼽아보며) 너이 두이 서이 너이, 스물시번찐건 알고계시요오, 으이? 이. 되련님 그 고약한 성질머리 못견디고 나자빠진, 되련님 글동무 말이어라.. 이. 사람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다가 봐주면서 사는 맛도 있어야지이, 이. (곶감을 먹으며) 어디 한번 말이나 들어봅시다. 이번엔 꽃도령 선비님이 뭐시가 부족해서 괴롭힌다요, 야? (곶감 먹는다)
선준 ; (얼굴 표정 굳은 채 아래에 시선 두고, 혼잣말처럼) 부족해서가 아니다. 내마음이.. 내마음이 넘쳐서다.
32. 존경각 (낮)
윤희 ; (선반에서 책을 찾다가 걸오를 보고 놀라서) 사형!
선반 앞에서 책을 펼쳐들고 책보는 걸오.
윤희 ; (급히 걸오의 앞에 와 서서) 사형, 괜찮으십니까?
책을 선반에 두고 앞으로 걸어오는 걸오.
윤희 ; (걸오의 걸음에 따라 뒷걸음질 치며 존경각의 문 앞 통로로 나오게 된다) 아직은 누워 계셔야 하는거 아닙니까? 아니, 벌써 이렇게 움직이시면..
책을 잔뜩 들고 나오는 서리 두 명에게 윤희가 다칠거 같자, 윤희를 자신 쪽으로 끌어 당겨 안는 걸오.
상처에 충격이 갔는지 약하게 신음하며 아픈 표정이다.
나란히 서서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도현, 해원, 우탁.
윤희 ; (걸오에게서 떨어지며 놀라서 큰소리로) 사형! 거 보십시오! 아직은 안된다니까요.
걸오 ; (윤희를 다시 당겨 안듯이 하고 귀속말로) 소문이라도 낼 셈이냐? 여기 홍벽서 있다, 어서 와서 잡아가라.
윤희 ; (아차 싶어 자신의 입과 머리를 손으로 치며) 아아, 헤.
어이없다는 웃음짓다 나가는 걸오와 나란히 가는 윤희.
해원 ; (누릉지 먹으며) 봐봐. 보통사이가 아니라니까.
우탁 ; (색안경 낀 채 검지를 얼굴 옆에 올리고) 그래서 어젯밤에 이선준이, 그렇게 귀신 본 얼굴이었군.
해원 ; 귀신보다 더하지. 동방생이 저런 사인데.
도현 ; 대물 저녀석, 달리 대물이 아니었어. 남녀 가리지 않는 대물.
남명식 ; (서너 명의 일행과 앞에 와 서서 자신이 들고 있던 책을 옆의 유생에게 주며) 그게 무슨 소리냐? 이선준이 왜? 걸오랑 대물이.. 뭐?
아차 싶어 딴곳 보는 세 명.
33. 성균관 쪽문 앞 (낮)
문에 서서 얘기하는 유생 두 명.
문쪽으로 걸어오다 멈추고 듣는 걸오.
유생1 ; 얘기들었나? 걸오랑 대물이랑 그렇고그런 사이라는데?
유생2 ; 아이, 누가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릴 해에..?
걸오를 발견하고, 반대쪽으로 가는 유생들.
생각하는 걸오.
34. 명륜당 (낮)
책을 한 쪽에 끼고 대청마루로 걸어 올라와서 자기 책상 앞에 앉는 윤희.
E (유생3) ; 진짜라니까아.. 아, 이선준이 봤다는데. 걔가 어디 빈말할 놈이야?
유생4 ; (윤희의 뒤쪽 옆에 앉아서) 매일밤 향관청에서.. 앗, (눈 감으며) 차마 내입으로 말 못하겠네. 아무튼 그 대물이랑 걸오랑 장난 아니라니까. 어. 이선준이 하는말.. 말 다했지 뭐.
그쪽을 보는 윤희.
유생4 ; (윤희를 보고) 으음.. (책을 보며) 삼자.. 아이, 아이 (다시 책을 덮는다)
35. 존경각 (낮)
존경각의 곳곳에 서 있는 유생들.
선반 사이를 걸어가는 선준.
E (유생5) ; 걸오 대물이.. 좋아하는게 그게 사실이야?
E (유생6) ; 그건 이선준이 그렇게 말했으니, 사실일거야.
E (유생7) ; 같은방을 쓰지 않나아..
E (유생8) ; 그게 어디 선비가 할 짓인가? 그것도 공자를 뫼신 이 성균관에서. 말세세, 말세야아.
그 말들을 들으며 멈춰서는 선준.
36. 기생집 (낮)
술상 서너 개 차려놓고 곳곳에 앉은 유생과 기생들.
앞 쪽 끝 술상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여림.
반대 쪽 끝 술상에서 술을 마시는 유생들의 대화.
E (유생9) ; 어 이선준만 본 게 아냐아..
그쪽을 보는 여림.
E (유생9) ; (여림이 자신들을 보는 걸 보고) 어이, 나아, 가께에. (일어서서 나간다)
E (유생10) ; 같이 가세에. (여러명의 유생들 일어나 간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술잔을 드는 여림.
37. 변소 (낮)
급히 들어와 변소칸에 들어가 옷을 내리고 앉는 대사성.
대사성 ; (앞에 붙여 놓은 낙서된 종이를 보고 놀라서 옆을 보면 또 붙어 있다) 허어! 남색, 남색이라니?
38. 박사 집무실 (낮)
대사성 ; (서서 탁자 위에 그림들이 그려진 종이를 펼쳐놓고 탁탁탁 치며) 아니, 이이.. 이게 말이 됩니까? 신성한 성균관에,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해괴한 일이랍니까? 그것도 내가 대사성으로 있는, 지금..!
정박사 ; (앞에 서서) 아직 사실로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아.. 영감.
대사성 ; 이 사실을, 그 꼬장꼬장한 유림들이 알아보세요. 완전히 들고 일어날겁니다. 그러며는 난 옷벗고 손가락빨게 생겼는데, 그런 한가한 말이 나옵니까? 지그음..!
유박사 ; (심각한 표정으로) 아무래도 이 사태를, 저희 학관들이 무마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대사성 ; (한숨) 아이휴우..
39. 성균관 뜰 (낮)
해괴한 그림들이 그려지고 걸오, 김윤식 등의 이름이 쓰여진 벽보가 붙어있는 앞에 서 있는 유생들과 남명식.
유생10 ; 누가 이런걸 붙여논거야? 걸오가?
유생11 ;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유생12 ; (뒷짐진 채 남명식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남색이라니.. 하여튼 소론 놈들 하는 짓이라곤.
남명식 ; (유생12 보며) 뭐야? 소론이 뭐?
유생12 ; 한 대 치시겠다아. 내가 틀린말 했냐?
남명식 ; (유생12의 멱살 잡으며) 이자식이!
유생들 ; 어어!
유생12 ; 좋은말할 때 놔라아. (팔 올려 치려 한다) 이..
와서 팔을 잡는 장의.
유생12 ; (고개 숙이고 물러나며) 장의..
장의 ; (앞으로 나서 남명식 보며) 아무리 예와 법도가 땅에 떨어진 성균관이라지만. (유생12를 보며) 주먹질로 모든걸 해결해서야 쓰나아. (명식 보며) 이 성균관은, 우리만의 법도와 절차가 있는데 말이지.
생각하는 남명식.
40. 박사 집무실 (낮)
탁자 앞에 대사성 앉았고, 그 옆에 정박사와 유박에 섰다.
남명식을 앞에 세운 유생들 잔뜩 몰려와서 대사성 앞에 섰다.
남명식 ; (글이 쓰여진 종이를 탁자 앞에 펼쳐 놓으며) 장의 하인수의, 정직처분을 거둬 주십시오.
유생들 ; 거둬 주십시오!
남명식 ; 저희 유생들은, 이번 남색추문사건을, 재회에 붙이기로 했습니다.
자막 - 남색 (男色) 남자 동성애
재회 (齋會) 성균관 학생자치 회의
유박사 ; 재회
남명식 ; 재회에서는, 문재신, 김윤식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그에 따르는 처벌 또한 엄정하게 내려, 성균관과 저희 유생들의 명예를 회복할 것입니다.
유생들 ; 허락해 주십시오!
난감한 표정의 유박사와 정박사.
41. 성균관 뜰 (낮)
당당히 걸어오는 장의 일행.
붙은 벽보, 보는 유생들과 걸오와 여림.
E (장의) ; 성균관 장의, 나 하인수와 우리 재인들은, 남색추문으로 성균관의 명예를 떨어뜨린, 성균관 유생 문재신과, 유생 김윤식을 재회에 붙이고자 한다.
42. 존경각 (낮)
벽보를 잔뜩 들고와 붙이고 가는 서리들.
붙은 벽보를 보는 유생들과 윤희.
윤희, 놀라서 책을 떨어뜨린다.
윤희를 보는 유생들.
그리고 반대 쪽에서 보는 선준.
E (장의) ; 재회에서는, 진상을 조사해, 시시비비를 명백히 밝힐 것이며, 사실로 밝혀질 경우, 청금록에서 영원히 삭제시켜, 예와 법도를 숭상하는, 우리 성균관의 명예를 지킬 것이다.
43. 성균관 뜰 (낮)
뒷짐지고 힘차게 걷는 장의 일행.
걸오 ; (달려와서 장의의 멱살을 잡고) 당장 그만두지 못해? 말도 안되는 헛소문일 뿐이다. 그따위 헛소문에 놀아날만큼 성균관이, 우스운 곳이었나? 그래?
장의 ; 성균관이니까, (걸오의 팔을 잡아 떼며)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거다, 문재신 상유. 불명예를 씻을 기회를 주지. 그날밤, 향관청에는 왜 갔나? 향관청에서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사실대로만 말해. 번거로운 재회 따윈,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둬 줄테니까.
시선을 아래와 옆으로 돌리며 피하는 걸오.
장의 ; (걸오 표정 보더니) 이런이런, 말못할 속사정이 있는건, 확실한 모양이군. 그게 뭘까, 걸오? 아아, 이불속 사정이라, 곤란한건가?
걸오 ; (주먹쥐고 장의 치려하며) 너 이자식!
남명식 ; (장의 옆에 서서 걸오의 손목 잡으며) 할말 있으면, 정정당당히 재회에 나와서, 결백을 밝혀라, 문재신. 이일은, 자네뿐만이 아니라, 우리 소론의 명예도 달린 일이다.
유생들 ; 옳소, 옳소.
웃는 병춘.
44. 존경각 (낮)
보는 윤희.
약간 떨어진 선반 앞에서 책을 보다가 책을 선반에 놓고 걸어가는 걸오.
윤희 ; (약간 빨리 걸어와서 선준의 앞을 막으며) 그날밤, 향관청에서 우릴 분명 봤소?
선준 ; (윤희의 시선 피하며) 그 일이라면, 더는 말하고 싶지 않소.
윤희 ; 설마.. 내가 진짜 남색이라.. 그렇게 믿는 거요?
윤희 보는 선준.
윤희 ; (가슴을 서너번 치며) 하아, 난 남자요. 남자인 내가 어떻게, 같은 남자인 걸오 사형을? 말도 안돼.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선준 ; (윤희 뚫어지게 보다가 시선 내리며) 그렇군.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일이, 그토록 말도 안되는 일이라 여긴다면, (윤희 보며) 다음부터는 행실을 좀 똑바로 하는게 좋겠소. 그럼 공연히, 다른이들이 김윤식 유생의 마음을 오해하는 일따윈, 없을 테니까.
윤희 ; 난..
장의 ; (멀리 서서) 시시비비는, 재회에서 가리는게 어떤가? (걸어와 선준 앞에서 뒷짐 지고 서서) 이선준 상유, 이번 재회에 증인으로 삼지. (윤희 보며) 문재신, 김윤식과 한방을 쓰는 동방생인데다, (선준 보며) 그날밤 향관청에서 두사람을 본, 목격자가 아닌가? 남색추문에 이보다 더 적합한 증인이 있단 말인가. 재회는, 성균관 유생이라면 그 누구도 권위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재회에서만큼은, 금상과 조정신료들도 간섭할수 없는, 장의만의 고유권한이다. 난, 이선준 자넬, 증인으로 택했다.
45. 장의방 (낮)
찻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장의와 여림.
여림 ; 이선준을 재회의 증인으로 세웠다아? (박수 치며) 완벽해, 완벽해. 예와 법도를 빼면 시체인 이선준을 증인으로 세워, (차를 따르고 차주전자를 놓으며) 이번 남색추문재회는, 무척이나 공정하고, 원칙적이라는 신망을 받겠다, 이런 생각인가?
장의 ; 역시 여림 자넨, 적으로 두기엔 아까워. 우린 아주 마음이 잘 통하는데 말이지.
여림 ; (차를 마신 후 내려놓고 진지하게) 정말 문재신과 김윤식이 부적절한 관계라고, 그게 사실이라고 믿나?
장의 ; 그날밤, 향관청에서 그 둘은, 부둥켜안고 있었지. 이유는 둘 중 하나. 부상당한 홍벽서였거나, 아니면, 남색이었거나. 뭐 어느 쪽도 내게 나쁠 게 없지. 홍벽서가 됐든, 남색이 됐든. 문재신, 김윤식은, 이 성균관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선준은, 동방생들에게서, 등을 돌리게 돼 있다는 거다.
여림 ; 이선준이?
장의 ; 결벽에 가까울만큼, 깔끔하고 모범적인 놈인데다, 좌상댁 외아들이다. 남색이란 흙탕물이 제 몸에, 아니 가문에 누를 끼치는걸, 가만 보고 있을성 싶은가?
여림 ; (피식 웃으며) 야하, 역시 훌륭해에. 이번일로 걸오 대물에, 여림까지 잡겠다.
장의 ; 하나 더 있다. 그렇게되면 여림 자네 곁엔, 아무도 남지 않게 되겠지.
생각에 잠긴 약간 언짢은 표정의 여림.
46. 성균관 뜰 (낮)
걸오 ; (벽보를 뜯다가 어딘가를 보며) 어이, 노론.
뒷짐지고 가는 선준이다.
걸오 ; (선준 앞으로 다가가) 못봤냐? 대물녀석.. 못봤냐고?
노려보다가 그냥 가려는 선준.
걸오 ; 같이 듣잖아, 유박사 대학 강의. (혼잣말처럼) 에이 이자식 어딜 간거야? 사람 걱정되게.
선준 ; (멈춰 서서 걸오 보며) 걱정. 그렇게 하는 겁니까? 아끼는 이를 곤경에 빠뜨리고,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게 만들고.. 사형이 하는 걱정이란, 그런 겁니까? (약간 크게) 정말 김윤식을 아낀다면, 이런 일은 없어야 했습니다.
걸오 ; 허, 신경 꺼라. 우리 일은 내가 알아서..
선준 ; (강하게) 그러니까 좀 제대로 해! 나도, 더는 신경쓰고 싶지 않으니까. (간다)
걸오 ; (어이없어) 하. (가는 선준을 돌아본다)
47. 의약방 (낮)
정박사 ; (서서) 그날밤 향관청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재회에서 너희둘에게 처벌이 내려지면, 그땐 전하께서도 그를 번복할 수 없는 것이 관례다. 사실을 말하면 내가 널 구제할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재회가 열리기 시작하면 그땐 늦는다. 그러니 사실을 말해보거라. 남색은, 성리학을 숭상하는 유생들에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청금록에서 영원히 삭제돼, 다시는 김윤식 이름으론, 과거도 출사도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은 게냐?
김윤식 ; (앞에 서서) 저흰,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지금 드릴 수 있는, 제 대답의 전붑니다.
정박사 ; (한숨) 허으.
죄송한 윤희 얼굴.
48. 동이방 밖 (낮)
댓돌을 올라서려다 소리듣고 멈추는 윤희.
E (여림) ; 그래서, 하인수가 원하는대로 해주겠단 거야, 지금?
49. 동이방 안 (낮)
마주 선 여림과 걸오.
걸오 ; (뒷짐 진 채 약하게) 유난떨지 마라. 뭐 대단한 일이라고.
여림 ; (걸오의 멱살 잡고 다급하게) 지금 홍벽서라고 고백하는 건, 살인 방화 절도, 이따위 죄목으로 죽게되는 거다. 그게 니가 그토록 바라는, 형의 뜻을 살리는 길이냐? 내일 재회에서 엇나가기만 해. 그땐 내손에 죽는날이니까.
걸오 ; (여림의 팔을 잡은 채 흔들며) 이런 솜방망이 주먹으로, 되겠냐? 생각중이다.. 어떻게 하는게 제일 좋을지..
여림 ; 그 생각에서 제일 중요한건, 대물 녀석 위하는 길이냐?
긍정도 부정도 안하는 걸오의 표정.
50. 동이방 밖 (낮)
듣고 당황하는 윤희.
51. 대사성 방 (낮)
마주 선 대사성과 곳곳하게 선 선준.
대사성 ; (허리 숙여 다급한듯) 이거 안되겠네. 장의를 불러, 내일 재회에서, 자네가 증인으로 나서는걸 내가 막아줌세. 추문이 뭔질 모르겠나? 잘못 엮였다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묶음으로 취급 받는게 추문일세. 그것도 남색이라니.. 이, 사람 잡을 일이 아닌가?
선준 ; 재회는, 조정신료들과 금상께서도, 개입하실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 알고 있습니다.
대사성 ; 그야..
선준 ; (단호하게) 제 일입니다. 스스로 원칙을 깨는 일은, 할 생각이 없습니다.
대사성 ; (답답하여 선준 보다가) 허면, 이렇게 하세. 확실하게 선을 긋는 거야. 동방생이라고 나랑.. 난 다르다. 틈을 주거나 동정을 하거나 변호를 해서는 안돼. 자칫해서 빌미를 줘서 추문과 엮였다가는, 끝장일세. 사대부에게 남색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내 말, (선준을 손을 잡고 간곡하게) 꼬옥.. 명심하게
보는 선준.
52. 성균관 건물 앞 (낮)
걸어가는 윤희에게 배추잎과 소금을 던지는 유생들.
유생 1 ; 어이 대물,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남색이냐? 어?
유생 2 ; (소금을 윤희의 얼굴에 뿌리며) 그것도 이 성균관에서. 에라이 더러운 자식아.
유생3 ; 사라지시지, 어?
지나가는 선준.
유생4 ; 뭐가 그렇게 좋았냐?
유생5 ; 에이, 더러운 자식. 에이, 에이.
가다가 멈추는 선준, 다시 가려다가 윤희의 앞을 소매로 가린다.
윤희, 놀라 본다.
윤희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데려간다.
유생 ; (선준과 윤희 보며) 아 저, 저녀석 뭐야?
멀리서 이쪽으로 오려던 걸오, 본다.
53. 성균관 넓은 뜰 일각 (낮)
마주 선 선준과 윤희.
윤희 ; 고맙다고 해야 하나,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간절하게) 내일 재회에서도, 날 좀 도와주겠소? (고개 저으며) 걸오 사형하고 난, 우린, 그런 사이가.. 아무튼, 우린 결백하오.
선준 ; (간절한 표정으로) 그러니 말해. 그날밤, 향관청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사실대로.
윤희 ; 그건.. 그건..하. (선준의 손을 잡으며) 걸오 사형을 위해서요. 그러니, 믿고 도와주면 안되겠소? 이번 재회엔, 걸오 사형을..
선준 ; (약간 화나서) 이 일이, ... 얼마나 엄청난 일인줄 알아? 일이 잘못되면 김윤식, 니 남은 인생은 시궁창에 처박힐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지금, 이순간에도 넌, 니자신보다 문재신을 더 걱정하는건가?
윤희 ; 그래, 의심할 수도 있어. 이선준은 반듯한 사람이니까, 이해 못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한번만, 날 믿고 도와주면 좋겠소.
선준 ; 내가, 어디까지, 얼마나 더, 해야 되지? 김윤식,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더! (약간 눈물 고여) 이렇게 바보 같고, 한심하고 어리석은, 이따위 나 답지 않은 짓을 해야 되냔 말이다. (간다)
윤희 ; (혼잣말로 눈물 그렁하여) 그럼 어떡해. 이순간, 생각나는 사람은, 이선준, 너밖에 없는데..
뜰을 걸어가다 멈추고 생각하는 선준.
53. 건물 앞 (낮)
유생들 배추 잎 들고 모여 서 있다.
유생1 ; (배춧잎 손에 들고 흔들며) 이선준 그건 또 뭐여어?
유생2 ; 대물 이자식, 그 표정 뻔뻔한거 봤나? 어?
걸오, 다가온다.
유생1 ; (걸어오는 걸오 보고 놀라 비명) 아아!
걸오, 다가와서 유생1을 안는다.
유생1 ; (배춧잎 입에 물고 비명) 어어어... 아이구우..
걸오 ; (안은 채 여러 유생들 보며) 됐냐? 이제 가서 소문내는 거다. 반궁의 미친말 걸오가 마음에 둔 사내는, 바로 니놈이라고. (유생1 떨어뜨리고) 한번만 더 김윤식 건드려봐. (어깨잡고 흔들며 강하게) 그땐 이 두 팔이, 어디로 어떻게 갈 지 몰라서 말이지. (놓고 간다)
유생들, 무서워하며 서 있다.
54. 기생집 (낮)
술상을 놓고 쭉 늘어서 앉은 유생들.
유생들 ; (술잔 들고 부딪치며) 지화자! 어어 좋다.
여림 ; (술잔 들고 일어서서) 자아 자아 자자, 오늘은 안주 걱정, 술값 걱정 하지 말고, 허리띠 풀고 걸지게 한잔씩들 하는 거다, 어?
유생들 ; 어어, 그래.
여림 ; 음, 그리고 내일 재회에서 말야아.. 대물과 걸오, 그런 사이 아니라구우..
유생들, 불만 섞인 표정으로 여림 보며 웅성 댄다.
여림 ; 어어? 하이 나 구용하다. 내가 보장하지, 어. 자 쭉 들이키라구.. 한잔해, 한잔해, 어. (다시 앉아서 술잔 부딪치며) 그래, 그래, 그래.
해원 ; (술잔 들고) 정말 우리 때문일까? 아, 대물 일.. 이렇게 된거?
우탁 ; 다른 사람들도 다 봤다잖아. 우리보다 더 자세히 봤던데, 뭐.
해원 ; 그렇겠지..
도현 ; 야, 이제와서 돌이킬수도 없는 일인거 같으니까.. (술잔 들고) 자아, 마시고 죽자죽어. (마신다)
여림 ; (다른 유생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맞은편의 유생들에게 술 따라주며) 받게나, 자아. 그래, 그래. 그리고 내일 재회에서 말이야. 반대표 한표씩, 이쁘게 부탁하네, 어?
유생1 ; (술에 취해) 뭐야? 너 그럴려고 술사는 거야?
여림 : 아이, 뭐, 그렇다기 보다는.. 어. 아이 (다시 술을 따라준다)
병춘과 고봉, 여림의 양쪽에 와 앉는다.
병춘 ; (취한 목소리로) 어이, 여림, 다아.. 부질없다. 아니, 장사 한두번 해? 이미 재회가 열린다는건, 이 판이 결정났다는 거야아.. 문재신 김윤식은, 끼익, (손을 목 앞에서 사선으로 움직이며) 이거다. 헤헤헷
여림 ; 재회는 내일이고, 투표는 시작하지도 않았다.
고봉 ; (취한 목소리로 겁주듯) 누가 대놓고 장의 말에 반대를 해에. 다음번에 지들이 찍히겠다.. 작정한 놈들이 아니고서야. 히히. 이, 뭘 봐!
병춘 ; 깔어, 깔어, 이자식들아. (여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문재신 김윤식은 청금록에서 영원히 삭제, 영삭이다. 여림 자네가 술을 사야할 사람은, 걔들이야. 위로주. 하하하하.
고봉 ; 야, 마셔, 씨.
55. 성균관 문 (낮)
함춘호 ; (붓으로 종이에 표시를 하며 앞에 서 있는 선준에게) 그럼 정말, 소문이 사실이었습니까? 이선준 상유가 장의 매제가 된다는.. 정혼 준비하느라.. 꽤 바쁘시겠습니다요.
선준 ; 외출시간까지는 돌아오겠소.
지나가다가 듣는 윤희, 멈췄다가 다시 지나간다.
나뭇가지에 걸터 앉아 이 광경을 보는 걸오.
56. 명륜당 (낮)
책상 앞에 정좌하고 책을 보는 윤희.
걸오 ; (와서 윤희의 앞 책상에 걸터앉으며 윤희 책상의 책을 싹 치우고 책 한권을 펼쳐 들고 보며) 뭐.. 그런거냐? 아무랑도 말 섞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말시키면 재미없다, 꺼져라. 그럴려고 펴논 거?
윤희 ; (걸오 보며) 재밌어서 보는 겁니다.
걸오 ; (윤희 보며) 그 새빨간 거짓말, 자꾸하면 습관된다.
윤희 ; (웃는다) 흐흣.
걸오 ; 이 책보다 딱 스무 배는, 더 재밌는게 있는데..
57. 성균관 뜰 (낮)
큰 나뭇가지에 서서 둘러보는 윤희와 걸오.
기와 지붕과 마을의 전경이 보인다.
윤희 ; 스무 배는 더 재밌다구요? 새빨간 거짓말, 그거 자주하면 습관 되십니다.
약간 섭섭한 표정의 걸오, 시선 내린다.
윤희 ; (다시 전경 보더니) 백배는 더 훌륭합니다, 하하핫 흐흣.
쑥스럽지만 좋아서 미소 짓는 걸오.
윤희 ; (정색하며)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홍벽서. 위험하고.. 잡히면 죽을수도 있다면서요. 왜요? 왜, 뭘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사형?
걸오 ; 뭘.. 위해서? 그런건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답답해서.. 견딜수가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하지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 살려고, 살아볼려고 하는거다. 넌? 이렇게 있는 넌, 아냐? (멀리 보며) 여기 올라오면, 반궁의 숨소리가 들린다나.. 그런 헛소릴 하던 인간이 있었어. 그 인간이 알려줬지. 성균관의 문은, 임금이 있는 궁궐이 아니라, 조선에서 가장 천하다 멸시받는 반촌을 향해 나 있다는 걸.
*몽타주 : 위에서 내려다 본 반촌 전경
윤희 ; 어, 정말이네요.. 정말입니다, 사형.
걸오 ; 그 인간 때문인가 봐. 그 인간이 세상에 왔다갔다는 걸, 그래도 누군가는 알아줘야 할 거 같애서. 아무튼.
윤희 ; (걸오 보며) 누굽니까, 그 분?
걸오 ; 우리, 형. 김윤식?
윤희 ; 예에?
걸오 ; (윤희 보고 미소 지으며) 김. 윤식? 그 이름 더럽혀지지 않을 길, 있을 거다. (먼데 보며) 그리고, 미안하다. 오늘이 가기 전에, 이말 꼭 해주고 싶었어.
58. 병판방 (낮)
책상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선준과 병판.
사주단자를 책상에 올리는 선준.
병판 ; (사주단자를 만지다가) 흐흐흐흐 하하하핫. 하하하핫 하하하핫. 살다 보니까 이런날이 오는구만. 음, 와. 내가, 이 하오규가, 좌상대감과 사돈이 되는 날이 말일세, 아하. 사람이 말일세, 이서방아.. 살다 보니까 그래, 숙이는 법을 아는 것이 가장 어렵더란 말이지. 내가 자네 집안과 어깨를 겨룰 때까지, 내가 거저 여기까지 온 거는 아니거든. 자넨 다아 좋은데.. 너무 꼿꼿해. 내자식이 됐으니 내 이제 하는 말일세. 세상과 맞서서 좋을 게 뭔가? 내 말.. 명심하게, 이서방! 난 지금 자네에게, 출세하는 일급기밀을 전수해주고 있는 거라구, 혼인 선물로 말일세. 하하하핫, 하하하핫, 허허허헛, 허허허헛. 아아. (찻잔을 들어 마신다)
선준, 찻잔을 들어 마신다.
59. 병판댁 뜰 (밤)
걸어오는 선준과 효은. 그 뒤를 따르는 버들과 순돌.
효은 ; (손 앞에 가지런히 모으고 걸으며) 정말 꿈만 같습니다아. 여기 이곳에서, 도련님을 처음 뵀었는데.. 요즘은 정말, 누군가 써놓은 이야기책 그대로, 제가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니까요, 흐흣. 저.. 혼인은 더 추워지기전에 하는 것이 좋겠지요?
멈춰서는 선준.
효은 ; (함께 멈춰서서 선준 보며) 아닙니다아.. 첫눈이 올 때쯤..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정면을 보는 선준.
효은 ; (선준의 눈치를 보다가) 하아, 역시 도련님은 봄꽃이 필 때가 가장 좋으신 모양이지요? 실은 저도 그렇습니다. 흐으. (선준의 팔을 살며시 잡는다)
선준 ; (팔을 빼며) 으흠. (섭섭한 표정의 효은 보며) 미안합니다.
60. 좌상방 (밤)
찻잔이 놓인 책상을 두고 마주 앉은 좌상과 선준.
좌상 ; (찻잔을 들고) 새신랑 얼굴이, 그래서야 쓰나? (미소 띠며) 처가가 어려운 것도 알고.. 사내가 다 됐구나. (차를 한모금 마시고) 병판이 네 눈에 안 차는 거.. 애비도 다 안다.
선준 ; 송구합니다.
좌상 ; 헛된 욕심이 많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니, 네 눈엔, 비겁하게도 보일 게다.
선준 ; 한데 왜?
좌상 ; 널 위해선, 무슨 짓이던 다 할 위인이다. 장인 자리로, 나쁘다 할 수야 없지.
선준 ; 정혼식이 끝나면, 아버님 소자, 성균관을 나올까.. 합니다. 소자, 아직 배움이 짧아, 출세를 준비할 자격이.. 없습니다.
좌상 ; 니가 결정한 일이니, 더 이상 묻지 않으마.
61. 좌상방 밖 (밤)
부슬비 내리는 마당에 쓸쓸한 표정으로 서있는 선준.
62. 명륜당 (낮)
책상을 네모나게 배치하고 그 앞에 앉은 유생들.
책상의 가운데 앉아있는 윤희와 걸오.
그 앞에 서 있는 고장복.
고장복 ; (양팔을 들어 올리며) 기좌!
자리에서 일어서는 유생들.
들어와 앞자리에 놓인 책상 앞에 서는 장의와 여림, 남명식.
고장복 ; (팔을 내리며) 착석!
장의 일행이 먼저 앉으면, 모두 앉는다.
장의 ; 오늘 재회는, 문재신 유생과 김윤식 유생의, 남색추문에 대한 유거를 결정하는 자리다. 남녀가 유별한 것은, 유학의 기본이요, 예와 법도를 숭상하는 이 성균관에서 남색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여, 우리 모든 유생들은, 자네들의 두이름을 청금록에서 영원히 삭제, 과거와 출사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으로, 그 부도덕을 벌하고, 성균관에서 제명해, 성균관의 명예를 지키고자 한다.
유생들 ; 옳소! 옳소! 옳소! 옳소! 옳소!
앉아서 주먹 쥐는 걸오. 걸오의 손목을 손으로 살짝 누르고 떼는 윤희.
여림 ; (한숨) 후우!
장의 ; 문재신, 김윤식에게 묻지. 그날밤, 향관청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이, 사실인가?
윤희 ; (단호하게) 아닙니다. 저희.. 믿어주십시오, 장의.
장의 ; 아니라면.. 그날밤 향관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든 유생들 앞에서 사실대로 말해주겠나?
윤희 ; 저흰.. 저흰 그저..
장의 ; 허면, 목격자의 증언을 듣는 수 밖에.
선준, 자리에서 나와 앞의 빈 공간에 양반다리하고 앉는다
장의 ; 이선준 유생, 그날밤 향관청에서, 문재신과 김윤식을 봤나? 저 둘은, 남색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나?
선준 ; (정면 보며) 남색은, 접니다.
유생들 ; 뭐야? 뭔소리야? (웅성웅성)
놀라는 걸오와 윤희, 여림.
장의 ; (선준 똑바로 보며) 지금 뭐라 했나?
선준 ; (장의 보았다가 다시 정면 본다) 남색은 바로, 접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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