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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 대본

성스 제11강 대본 (필사)

   

     

 

                 

                          

 

 

     성스 제11강 대본 (필사)

 

 


1. 명륜당 (낮)


걸오 ;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올겁니다, 그녀석.

금상 ; 진범을 찾았다는 말이냐?

걸오 ; 시간을.. 좀 주십시오.  그녀석 반드시, 자백하러 올겁니다.

장의 ; (일어서서) 외람되오나 전하.. 순두정강의 시한은, 어제까지 유효한 걸로 압니다.  지금까지 진범을 찾지 못한 것은, 순두정강에서 탈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금상 ; 그는 장의말이 맞다.  상유 김윤식은, 과인이 내린 시한 안에, 진범을 찾지 못했다.  그렇지 않나?

윤희 ; 송구하옵니다, 전하..


E (선준) ; 진범!  여기 있습니다.


다들 소리나는 쪽을 본다. 


선준 ; (마당에서 대청마루로 올라와 금상 앞에서 인사를 하고) 이번 도난사건의 진범은.. (장부를 내밀며) 여기, 이 장부안에 있습니다, 전하.


의아하여 선준 보는 사람들.  대사성, 장부를 받아 금상에게 준다.


금상 ; (장부 펼쳐보고, 선준 보며) 도난사건의 진범이라..

선준 ; (금상을 똑바로 응시하며) 이곳 성균관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 도성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도난사건의 진범일수도 있겠지요.

금상 ; 무슨 뜻인가?

선준 ; 시전상인들의 횡포로, 물가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하여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은 난전을 열어 살길을 찾고자 하나, 그는 바로, 금난전권, 국법을 어긴 죄인이 되는 길입니다.  이것이, 힘없고 가진것없는 백성에게 도적이 되라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장부, 시전상인들의 뒷돈을 받아온 관원들의 기록입니다.


다들 놀란 표정으로 선준을 본다.


대사성 ; (놀라서) 어.. 엇..

선준 ; 가진 자만의 편을 드는 그릇된 법.  금난전권과 백성이 아닌 돈을 섬기는 관원.  그리고 그들의 뒷배인, 더 큰 정치인들이, 바로 이 도난사건의.. 진범입니다.

여림 ; (앉은채 부채로 입을 가리고 걸오를 보며, 작게) 저자식.. 너랑 같은 종류였어, 꼴통.

금상 ; 도난사건의 진범이.. 금난전권과 정치신료들이라.. 했나?

장의 ; 어불성설입니다, 전하.  이번 도난사건은 유생김윤식이, 동료유생들의 귀중품에 현혹돼버린 단순한 범죄일뿐,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닙니다.  죄인 김윤식에게 마땅히 출재를, 그런 김윤식의 죄를 덮으려, 헛된 위헌으로 전하를 기망한 이선준 역시,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시어, 군왕의 권위를, 바로 세우시오솝서.

금상 ; 군왕의 권위를 바로 세우라?  물론 그래야겠지.


E (복수) ; 그거 어떻게 하는 겁니까?


다들 소리나는 쪽을 보면, 복수 명륜당 마루 바로 옆에 섰다.

   

복수 ; 증인인지, 증건지..  어려워서 알 수가 있나, 젠장.

대사성 ; 저..저런 발칙한.. (크게) 당장 저놈을 끌어내지 못할까아?


관군들, 복수에게 다가와 잡고 끌어내려 한다. 


복수 ; (관군들의 팔을 뿌리치고 바닥에 무릎 꿇고 엎드려) 제가 훔쳤습니다.  성균관에서 물건을 훔쳐 내다판, 진범은 바로 이놈입니다, 전하.


재직 아이들 나무 뒤에서 명륜동 쪽을 본다.

복동, 나무 뒤에 기대서서 시무룩하게 고개 숙이고 있다.


금상 ; 이제 죄를 자백했으니, 그 벌을 받아야할 터, 두렵지 않느냐?  이제와 자백을 한, 연유를 물었다.      

복수 ; (걸오와 윤희 쪽 보며) 저들이 제게..  (눈물 삼키며) 돌이킬수 없는 일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소인, 반촌사는 반인입니다.  힘없고 가진것없어, 세상이 반토막사람이라 부르는.. 반인.  저역시, 세상이 보는대로 그렇게 반토막으로 살아버릴 작정이었습니다.  내키는대로 살면 그뿐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문이 막히는지) 하아,  젠장.

대사성 ; 아니, 얘가 어느안전이라고 상소리를.  저런 망할놈의 자식..

금상 ; 계속 하라.

복수 ; (걸오와 윤희 쪽을 보며) 저들이 절.. 사람처럼, 저들과 꼭 같은 사람으로 대해주는 바람에, 이놈도 그만, 제대로, 사람답게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야 제 뒷모습을 보며 따라오는 녀석도, 사람답게 살아질테니깐.. (걸오 본다)


걸오, 고개 약간 끄덕인다.

나무 옆의 복동의 모습.


금상 ; 과인은.. 김윤식을 범인이라 주장한, 장의 하인수와 그외 모든 유생들에게 불통을 내린다.


주먹을 불끈 쥐는 장의.  속상한 표정의 유생들.

  

금상 ; 허나 그는 단지, 김윤식이 진범이 아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의, (보며) 한성부권지의 명을 받고 그대는, 김윤식의 구명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김윤식의 무죄 가능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있다.

장의 ; 소생은, 김윤식을 진범으로 믿는 쪽이었습니다, 전하.

금상 ; 바로 그 때문이다.  조선의 관원으로, 성균관의 장의로서 그대는, 김윤식을 구명하기 위해 한번은, 무죄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재수사를 했어야 했다.  과인의 백성을 아끼고 귀히 여기지 않을 관원이라면, 과인에겐 필요치 않다.  그것이 장의 하인수와 그대들에게 불통을 내린 이유이며, 과인이 세우고자 하는 군왕의 권위다, 장의.

도현 ; (앉은 채 옆의 우탁, 해원에게) 불통받고 기분좋은 거면, 난 분명히 변탠거지?       

우탁과 해원,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도현 ; (코를 양손가락으로 잡으며) 쓰읍.

금상 ; (일어서서) 허면 이제 진범에 대한 처결이 남았군.  (복수에 약간 가까운 마루 쪽으로 다가가, 윤희 보며) 한성부권지, 김윤식.

윤희 ; 예에?  예에, 전하.

금상 ; 도둑이라는 누명을 씌웠던 이자에게, 그대는.. 어떤 처결을 내리겠는가?

윤희 ; 잃어버린 물건을 변상한다하나, 그 죄를 갚을 길은 없습니다.

금상 ; 그래?

여림 ; (앉아서) 세게 나오는데.. 우리 대물.

윤희 ; 성균관 서리로 삼아, 다시는 성균관 안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처결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금상 ; 그 벌은.. 너무 가볍지 않은가?  (복수 보며) 그대는 이 성균관에서, (윤희 쪽을 보며) 저들이, 지금의 바른 마음을 지켜가는지, 언제나 과인의 눈으로 지켜보라.  이것이 과인이 내리는 벌이다.

복수 ; (감격하여) 하아.. 저전하.

금상 ; (선준보고 장부들어 보이며) 이 도난사건의 진범은, 이 안에 있다.  과인 역시, 그리 믿기 때문이다.  (유생들 보며) 허면 이제.. 과인의 몫이 남은 셈이군.  허허헛허허허.. (자리에 와서) 이런.. 순두정강에 왔다가, 숙제만 떠 안고 가는 꼴 아닙니까? (옆에 서 있는 대사성 보며) 대사성.  이런 고약한 유생들이 또, 어디에 있답니까?

대사성 ; (손 모으고 선 채) 이제는 안 속습니다, 전하.  농인줄 소신도 알겠나이다, 하하하핫하하하.

금상 ; 약속대로 진범을 밝혀낸, 유생 김윤식, 이선준, 구용하, 문재신에겐, 순두정강의 합격점, 통을, 내린다.


마주 보며 웃는 윤희와 선준.

여림, 걸오의 손을 살짝 친다. 

걸오, 서서 미소 띈다.

윤희, 돌아서 걸오를 보며 웃는다.

걸오, 윤희를 보더니, 민망하여 고개 약간 돌리고 귀를 만지다가 웃는다.



2. 성균관 일각 (낮)


유생들, 쪽문에 모여 서서 보다가 쪽문으로 나오는 장의 일행에게 길을 비켜준다.


병춘 ; (장의 뒤에 따라오며 멍석 돌리는 시늉을 하며) 장의, 반촌사는 저녀석, 멍석말이라도 할까요?

장의 ; (멈추어 병춘 째려보며) 하지 마라.  한마디도 더 하지마.


자기입에 손을 대고 막는 병춘.


함춘호 ; (뛰어 오며) 장의!



3. 의약방 (낮)


정박사 ; (약제를 손가락 두개로 가리키며) 천궁, 백출, 갈근, 길경, 감호.. (장의를 보며) 뭔줄 아나?  자네가 김윤식에게 내준 약첩들의 약젤세.

장의 ; 그렇습니까?

정박사 ; 천궁, 백출, 갈근, 길경, 건시.. 이건 뭔줄 아나?

장의 ; (정박사를 빤히 보며) 글쎄요.. 중인 따위나 보는 천한 의서엔, 취미가 없어서..

정박사 ; 김윤식이 내다판, 아니 내다 팔았다고 하는, 약첩에 들어있던 약제들일세.  (약제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감호와 건시. 이건, 천한 의서따윈 보지않은 사람은.. 쉽게 구분할수 없을 만큼 닮은 약제지.

장의 ; (정박사 손에 든 약제를 보며) 그렇군요.

정박사 ; 누군가 김윤식이 내다판 것처럼 함정을 꾸미려다 실수를 했나 본데.. 허면 이번 사건은, 반촌 아이 말고 또다른 범인이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지 않은가?


4. 동이방 (낮, 회상)


문에 사람 그림자 비치더니, 문 열고 들어온다.  병춘이다.

병춘, 들어와서 붙박이 옷걸이에 걸린 옷 속에서 호패를 꺼내든다.  

 

5. 의약방 (낮, 회상)


병춘, 약봉지에서 감호를 꺼내고 약방 약제들에서 건시를 꺼내어 양손에 하나씩 들고 웃는다.


E (장의) ; 저러언.. 그따위 일을 벌인 자가 누군지..


6. 의약방 (낮)


장의 ; 왜 진작 순두정강 자리에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정박사 ; (힘주어)자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으니까.  죄를 뉘우치며 수치심을 느껴볼 기회, 그리고 자백하는 용기를 내볼 기회.

장의 ; (정박사를 똑바로 보며)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전..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정박사 ; 안타깝군.  자넨 이번 순두정강에서 아무것도 배우질 못했어.  자네가 천하다 여길 그 반인 아이가, 성균관 장의보다 낫구만.


뒷짐쥔 주먹을 불끈 쥐는 장의.


7. 장의방 (낮)


책상 앞에 앉아 엽전 꾸러미를 마주앉은 병춘 앞에 던진다.


장의 ; 어머님 병구완은, 내 끝까지 해드리고 싶었다마는, 어쩔수 없게 됐다.

병춘 ; 장의, 제가 잘못했습니다요오.. (장의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오며) 다시는 이런 실수 없을 겁니다요, 예?  한번만,, 한번만 봐주시면 다음엔,,, 다음엔 꼭..

장의 ; 병춘의 멱살을 잡고, 이 악문 채) 너때문에 내가, 이 하인수가.. (멱살 놓고) 두말하게 만들지 마라.  난 참을성 같은건.. 가져본적이 없으니까. (일어나 나간다)


강무와 고봉, 장의를 따라 나간다.

 

병춘 ; (울상으로 앉아) 이대로, 절 버리실순 없을 겁니다요.


8. 성균관 뜰 (낮)


둘러선 유생복 입은 윤희, 여림, 걸오 섰고, 그 앞에 복수 서 있다.


윤희 ; (복수 보며) 고맙다아.. 용기내줘서.

복수 ; 음, 뭐 나한테 고마울건 없어.  그쪽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됐다고 (걸오를 보며) 

이 작자가 꼭 나와 달라고, 어찌나 애걸복걸 사정을 하는지.. 귀찮아서, 안나올수가 없었거든.

걸오 ; 뭐 이자식아?  내가 언제.


복수 ; (가다가 돌아보고) 어이 형씨들!  똑바로 살라고오..  난 형씨들 뒷모습만 따라갈테니까. (웃더니 간다)

여림 ; 뭐래냐, 저자식?

걸오 ; 있다아.. 그런게.

윤희 ; (고마워서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사형, 전 몰랐습니다..

걸오 ; 됐다, 너 좋으라고 한 일 아니니까 너무 그럴거 없다구.

여림 ; (걸오 어깨에 한 팔 올리고) 대물을 위해서가 아니면.. 그럼 성적을 위해서였나아?  삼년 낙제생, 문재신 상유?


여림의 옆구리를 팔로 툭 치는 걸오.


여림 ; (아픈 척) 아아아, 아 아아.  아아 알았어.  (손바닥 보이며) 나도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근데 가랑 이녀석이 안보이네에?  이녀석 사고치고 무서워서 어디 숨은거 아냐?


걱정스런 표정의 윤희.


9. 존경각 (낮)


선준, 존경각 선반 사이를 걸어 나가려 한다.


장의 ; (선준 나가는 앞쪽 선반 앞에서 책 펼쳐 들고 보며) 부정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그렇게 믿고 있는 건가?  


멈춰 서서 장의를 보는 선준.

저 뒤쪽에서 보는 윤희.


장의 ; 시전행수의 뒷돈이.. 노론의 정치자금으로 쓰인다는 것쯤은, 자네도 이젠 자알.. 알텐데.  노론의 영수인 자네 아버님께선, 그와 관련이 없다고 믿는건가?  넌.. 아비의 등에 칼을꽂은, 패륜을 저지른거다.

선준 ; 아들인 내게, 부끄러운 일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  저역시, 그분께 부끄럽지 않은 길을, 찾았을 뿐입니다. 

장의 ; 자네 그 아둔한 노력은 가상하다만, 고작 장부 하나로 세상이 바뀔 것 같은가?  금상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걸세.  왜냐?  자네 아버님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내실 테니까.  자네가 그토록 믿고 있는, 그 완전무결한 아버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선준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반복해 치며) 자네도 이제 곧, 알게 될게다.  (나간다)


윤희, 선준 보면, 선준이 장의 나간 곳에 있는 윤희 쪽을 본다.

윤희, 놀라서 들고 있던 책들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선준, 다가와 책을 집어 들고 선다.


윤희 ; (서서) 고맙고.. 미안했단 말.. 하고 싶었소.

선준 ; (책을 선반에 놓으며) 책 몇 권 주워주고 듣기엔.. 좀 과한 인사군.

윤희 ; 오늘일.. 시전행수의 장부.  내가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운거 같아서, 후회했소.  차라리 말을 듣는 건데..  장부 같은건 들고나오지 말걸.

선준 ; 우린, 서로 할일을 했을 뿐이오. 누가 누구에게 미안할 마음 같은건, 처음부터 없었소.  그러니 그일 때문이라면 너무 마음쓰지 마시오.  게다가 장의 말처럼, 우린 어쩌면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간다)

윤희 ; 그래두.. 장하다, 이선준. 


선준, 멈춰서 돌아본다.


윤희 ; (미소 띄고 선준 보며) 잘했으니까.  그다음에 어찌됐든, 잘한건.. 잘한 거지.


보며 웃는 선준.  웃는 윤희.

    

윤희 ; 난 지금 이시간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할것이오.  이다음에 우리가 성균관을 나가서, 더는 함께 할 수 없겠지만.. 그래두 기억해야지.  지금 우리가 했던 고민들..  지금 우리가 느낀 두려움, 기뻤던 순간들.  하, 그리고 언제나 함께였던, 동방생들 모두.  그럼, 어쩌면 조금더 좋은 사람으로 살 수 있을거 같거든.  그러니 기억해주겠소?  언젠가, 오늘처럼 힘든 결정을 해야 할 날이 오거든, 한번쯤.. 내자신보다 더 이선준을 믿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거.  (선준 옆으로 지나쳐 간다)

선준 ; (윤희의 손목을 잡아 세우며) 싫다.  언제가 됐든, 이렇게 지금처럼 내옆에 있어라.  (윤희 응시하며) 두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  내가 끝까지 잘 가고 있는지.  그래야 나도 널 보면서, 오늘을 기억할테니까. 


눈물 맺혀 선준을 보는 윤희.


선준 ; 그러니까 김윤식, 너. 계속 내옆에 이렇게 있는거다.  (윤희 응시하다가 윤희의 입술만 보여서 시선을 돌리고, 간다.  가다가 다시 윤희에게 걸어와서, 시선은 외면한 채) 김윤식.. 다른건 다 참아도, 다시는, 다시는 절대로, 여인네 옷은 입지 마라, 부탁이다. (간다)

윤희 ; (선준 나가고 약간 섭섭한 표정으로) 여인네옷은 입지 말아달라니, 하, 참 부탁하나 기가 막히네..


10. 존경각 밖 (낮)


선준 ; (존경각 문을 나와 큰 나무 기둥들 사이를 빨리 걸어 나오며, 혼잣말로) 김윤식은 그저, 동방생이다.  동방생이야..



11. 기생방 (밤)


좌상 ; 그 장부.. 이세상에 존재한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병판 ; 예에?

좌상 ; 우리 노론의 존패가 걸린 일입니다.

병판 ; 그게.. 가능한 일이랍니까?

좌상 ; 궐안의 우리사람을 시켜, 장부를 없애세요.  금상의 입은, 이사람이 막겠습니다.

병판 ; 어떻게?

좌상 ; 지금의 금상을 보위에 올린 건, 우리 노론입니다.  용상을 채울 대군들쯤은, 얼마든지, 충분하니까요.

초선 ; (방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하고, 급한 목소리로) 대감, 좀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12. 기생집 마당 (밤)  


지붕 위에서 복면하고 활을 쏘려는 홍벽서.

비명 지르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마루에 나와 서는 좌상과 병판.

홍벽서, 방향을 바꾸어 좌상과 병판 쪽으로 화살을 쏜다.

화살은 마루의 나무기둥에 박힌다.

마루 쪽을 보는 홍벽서.

홍벽서를 노려보는 좌상.


병판 ; (꽂힌 화살을 뽑아 들고) 벽서? 대감.. 게 아무도 없느냐?  당장 놈을 잡아들여라, 당장앙!


E (홍벽서) ; 조선이 가난하다 그 누가 말하는가?  가난한건, 오직 조선의 힘없는 백성이라.  시전상인의 구린내나는 곳간을 지키는 한성부의 견공들아, 던져주는 쌀알로 배불리살쪘더냐?  금난전권 독정속에 백성은 굶주리고 노론만이 기름지나니, 이제 곧 금등지사의 비밀이 더러운 노론들을 벌하리니, 그만, 니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모시는게 어떠할까?      


*몽타주 

   - 횃불과 창을 들고 달려오는 관군들.

   - 마을의 이곳 저곳에 홍벽서의 화살이 꽂힌다.

   - 난전을 엎는 관군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백성들.

   - 붉은 종이에 적힌 글자와 관군들 모습 겹친다.

   - 펼친 붉은 종이에 적힌 글자들.


13. 박사 집무실 (밤)


대사성 ; (붉은 종이를 접어서 책상에 패대기 치고 나서 책상을 손으로 탁 치며, 화난 목소리로) 이따위 홍벽서가 정말, 우리 순진한 유생들 속에 있다니요오?

유박사 ; 한성부와 병조 관군들에 따르면, 그런 모양입니다.

정박사 ; (쪽지를 집어 펼치며) 문체는 선비의 얼굴입니다.  시문에 숨겨진 얼굴이 있을텐데.. (펼쳐든 종이를 돋보기로 보며) 어디 보자아.. 

대사성 ; 뭐가 보입니까?

정박사 ; (손에 든 붉은 쪽지를 돋보기로 보며) 호방하고 거칠것 없는 기세하며, 쭉쭉 내리뻗은 붓놀림.  (쪽지 내리고) 올커니,

대사성 ; 말하세요 정박사, 누굽니까, 대체?

정박사 ; 홍벽서는.. 장붑니다.  사내 대장부.



14. 동이방 앞 (밤)


마루 앞에 서서 옷과 머리 매무새를 가다듬는 걸오.

술병에서 술을 조금씩 찍어 손으로 몸에 바른다.

   

E (윤희) ; 홍벽서가 성균관 유생이라는 말, 혹 들었소?


걸오, 술병째 옷에 들이 붓는다.



15. 동이방 (밤)


이불 위에 속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벽서를 바닥에 놓고 머리 맞대어 앉아 있는 선준과 윤희.


윤희 ; (쪽지를 한손으로 잡고 다른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금난전권과 한성부 비리 얘길 한걸 보면,

선준 ; (손가락으로 작은 쪽지를 짚어 내려온다) 우리와 가까운 유생인거 같기도.. (쪽지를 짚어 내려오던 손가락이 쪽지를 잡고 있던 윤희의 손가락에 닿자, 말을 멈추고 윤희 얼굴을 또렷이 보다가 시선을 돌리며) 걸오 사형, 걸오 사형은 왜이리 늦는지 모르..

걸오 ; (방문 열고 들어오며) 오셨다, 지금.  (약간 흐느적거리며 들어와 접힌 이불 끝부분을 발로 차 펴고 베개를 베고 가운데 눕는다)

윤희 ; (코를 잡아 막으며) 아아아 냄새.  (손을 내리며) 사형, 또 술 드셨습니까?

걸오 ; (술취한 목소리로) 오냐.  그러니까 대물 너, (발로 윤희를 문 쪽으로 밀며) 조기 저 꼭 붙어자라아.

선준 ; (표정 굳어지더니, 걸오 보고) 사형, 오늘은 꼭 말씀 드려야 겠습니다.  자리, 왜 자꾸 맘대로 바꾸시는지, 그 이율 알아야겠습니다. 

걸오 ; (누워서 눈 감은 채) 매사에 따박 따박 따지는 그 버릇, 안 고쳐지냐?

선준 ; 이건 아무래도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입니다.  이 벽쪽이 좋으시다면.. (베개 들고 윤희 쪽으로 가려 하면서) 제가 김윤식 옆에서..

걸오 ; (그런 선준을 발로 막으며 눈 뜨고) 먼지 난다.  그냥 자.    

선준 ; 아니, 오늘은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걸오 ; (눈 동그랗게 뜨고 선준 보며) 니자리내자리가 어딨어? 누우면 내자리지이..

선준 ; 그럼 김윤식에게 의견을 물어보죠.  자리를 어떻게 정하는게 좋을지..  


윤희 보는 선준과 걸오.

난감한 윤희, 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한다.

딸국질이 나려하여 돌아눕는 걸오.


선준 ; (침을 꼴깍 삼키고) 돼됐소.  흠,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그냥 이대로 자는게 좋겠소.  (눕는다)


윤희도 자리에 눕자, 선준, 벽 쪽을 보고 돌아 눕는다.


16. 선정전 (낮)


대신들 양쪽으로 쭉 늘어섰고, 금상은 위의 의자에 앉았다.


금상 ; 과인은..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백성 누구에게나 상거례를 허할 것이오.

대신1 ; 아니되옵니다, 전하.  이는 천부당만부당 한 일이옵니다, 전하.

대신들 ; (고개를 숙이며)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금상, 책상 위에 놓인 장부를 들려고 한다.


병판 ; (크게) 전하!  신 병조판서..

좌상 ; 그리하시지요, 전하.  지금 곧, 시전상인과 뒷거래를 한 한성부관원을 모두 잡아들이시어, 한점 의혹없는 수사를 벌이시고, 사사로운 개인들의 난전을 허해 물가를 안정시키시어,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시오, 전하.

금상 ; 과인의 마음으로 백성을 보살피는, (크게) 참된 신하가 여기 있었습니다.  이에 과인은 금난전권을 폐하고, 누구에게나 상거례를 허하는 통공정책을 금명, 신해년부터 실시할 것이다.  (주 ; 금명-오늘과 내일 사이)


자막 ; 통공 通共 시전상인의 독점득권인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정책.



17. 궁궐 일각 마당 (낮)


천천히 하늘 보며 걷는 좌상.


병판 ; (좌상을 따라 와서 앞에 서며) 대감, 이게 무슨.. 어쩌자고 통공이라뇨,  금난전권을 폐지하는데, 대감께서 앞장서시다니요?  금상과 맞서시겠다.. 철석같이 제게!

좌상 ; 우리 노론이, 어떻게 백년동안, 숙권세력자릴 지켜온줄 아십니까?

병판 ; 그 무슨?

좌상 ; 군왕과는 맞설지언정, 언제나.. 민심을 우리편으로 만드는법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흐음.. (앞으로 걸어가며) 이번일은 너무 커요.  이제 홍벽서의 내용이, 눈덩이처럼 몸을 불려, 저자의 인심을 동요케 할겝니다.  그전에.. 불을 끌 밖에요. (간다)


18. 성균관 명륜당 앞 (낮)


복동과 재직 아이1 ; (조보 뭉치를 한 손에 높이 들고 돌계단을 나란히 뛰어오며) 전하께서.. 금난전권을 폐지하시고, 통공정책을 시행하신 답니다.  신해통공.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조보를 유생들에게 나눠주며) 조보요, 조보요, 조보.  조보요, 조보.


자막 ; 신해통공 辛亥通共  정조 15년 1791년(신해년) 실시된 정책.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자유상업을 가능케함.  


*몽타주 ; - 조보를 보는 대사성과 박사들.

          - 해원, 우탁, 도현 조보 본다.

          - 자기방 책상위의 조보를 보고 화난 얼굴로 종이를 구긴다.

          - 뜰에 둘러 앉았는 걸오, 윤희, 선준.

            걸오 뒤에 와 걸오의 눈을 가리고 장난치다가

            선준과 윤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앉는다.

            걸오, 그런 여림의 뒤덜미를 잡아당겨 그바람에 넘어지는 여림,

                  박치기하게 되는 선준과 윤희.   

             


19. 궁궐의 뜰 (낮)


정박사 ; (금상의 앞에 와 서며) 신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전하.

금상 ; (앞을 보며) 금등지사를 찾아 저 노론을 제압하고, 새로운 조선을 세울 것이다.  이는, 과인의 오랜 꿈이다.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정박사 ; 하오나 전하,

금상 ; 이선준.. 아직도 이선준 때문인가?

정박사 ; 김윤식과.. 문재신 때문입니다.  금등지사를 찾기 위해 그 아이들은, 아비와 형을 잃었고, 소신은 존경하는 스승과 혈육과도 같은 벗을 잃었습니다.  이제 다시, 나어린 제자를 잃는 못난 스승은.. 될 수 없습니다.

금상 ; (화난 것처럼 힘주어) 과인의 벗이요, 과인의 신하요, 과인의 백성이다!  지금 이시간에도 저들의 수탈아래 굶주리고, 저들의 횡포아래 숨죽인 채 살아가는, 과인의 어린 백성들 앞에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그들에게 이미, (정박사를 보며) 입궐을 명했다.



20. 궁궐문 안 (낮)


궁궐문을 나란히 통과하는 잘금 4인방.


윤희 ; 궐이.. 무섭긴 무서운 곳인가 봅니다. (네 명 멈춰서 여림을 보며) 관복 따위는 절대 입지 않으시겠다던 여림사형께서, 이렇게 관복을 입고 계신걸 보면요.

걸오 ; (여림의 어깨에 한 팔 올리고, 한 손으로 여림의 가슴팍을 가볍게 치며) 개성도 없고, 취향도 모른 채 똑같은 관복을...       

선준 ; 관복때문에 훌륭한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고도 하셨습니다..

여림 ; 물론이지.  아직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네에.  (앞에서 한바퀴 휙 돌아 마주 보며 관복자락을 들춰 보여준다.  안에 비단옷이 보인다. ) 나 구용하다아.. (걸오의 밀침에 의해 앞으로 가게 된다)


걸어가는 네 명.


21. 궁궐 복도 (낮)


복도를 고개 약간 숙이고 차례로 들어오는 네 명.

궁녀와 신하들, 양쪽에 늘어서 고개 숙인다.


22. 금상 집무실 (낮)


금상 집무실로 차례로 들어오는 네 명, 금상 앞에 선다.

금상 옆에  영상과 정박사, 섰다.


금상 ; (뒤돌아 있다가 네 명 쪽으로 돌아서며) 그대들이 내준 숙제를, 과인이 맘에 들게 해냈는지 모르겠군.

네 명 ; (고개 숙이며) 황공하옵니다, 전하.

금상 ; 금난전권 폐지는, 과인에게도 오랜 숙원이었다.  그대들이 있어, 큰힘이 됐다.  영상,


  영상은 옆의 신하1에게 고개짓한다.  고개짓을 보고 인사하는 신하1.  네 명의 앞에 비단주머니 담긴 나무쟁반이 내밀어진다.


금상 ; 과인의 마음이다.


네 명 앞에 선 신하1, 옆의 신하2가 들고 선 나무쟁반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 하나씩 준다.


여림 ; (주머니를 풀어 보면 자금성이다.  놀라서) 전하, 이를 어찌?

금상 ; 운종가에서 나고자란, 그대의 활약이 컸다 들었다.

여림 ; (환하게 웃으며) 하아..


걸오, 주머니 풀어 보면 글자 쓰인 종이다.


금상 ; 성균관 장의, 문영신의 서과장원 시권이다. 

걸오 ; (종이 펼쳐 든 채 금상 보며) 제 형의 시권이란 말입니까?

금상 ; 보기힘든, 명문장이라.. 갖고 있었다.  허나 주인을 제대로 만난거 같군.


시권을 보는 걸오.

선준, 주머니를 열어 보면 나침반이다.


금상 ; 하나만 묻지.  그대는 이번일로, 아비의 죄를 의심한 일이 없는가?  (사이)    


옆의 선준을 곁눈질 하는 윤희.


금상 ; 답하라.  회회국의 경구에 이런 말이 있더군.  나침반의 바늘이 흔들리는한, 그 나침반은, 틀리는 일이 없다.  흔들리는 그 눈빛을, 혈육도, 내자신도 경계하는, 지금의 그 마음을.. 잊지 말아라.


자막 ; 회회국 回回國 이슬람

  

고개 숙이는 선준.


E (병판) ; 금상의 속내가 뭐겠습니까?


23. 좌상 집무실 (낮)


병판 ; (탁자 사이에 두고 좌상과 마주 앉은 채 손짓하며) 대감의 아들이, 아비에게 등을 돌리고 금상을 택했다, 이걸 만천하에 알리고 싶은 겁니다, 대감.

좌상 ;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아래에 시선 둔 채 잠시 생각하다가) 흐음.. 천륜입니다, 세상 그무엇으로.. 아비와 아들이 적이 되어.. 서로를 내칠 수 있다고, 봅니까?

병판 ; (의아한 표정으로) 아니 대감, 허면.. 임오면 사도세자의 일은?  천륜보다 중요한 것은, 종묘와 사직이다. 그리 앞장섰던 우리 노론의 입장은, 뭐가 됩니까?

좌상 ; (화나서 보며 크게) 병판!

병판 ; 아니 뭐어.. 저.. 금상의 속내가 궁금하다.. 뭐 이런..

좌상 ; 쯧쯧쯧.


24. 금상 집무실 (낮)


큰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 보는 윤희.

보면 나무로 된 상자다.


영상 ; (옆에 선 정박사에게 조용히) 김승헌의 유품이요. 


보는 정박사.


영상 ; 전하께서 진정, 이 유생들에게 금등지사의 밀명을 내리시려나 봅니다.  정박사..


걱정스런 표정으로 윤희를 보는 정박사.

금상을 보는 윤희.


금상 ; (윤희 보며) 볼수록, 김윤식 그대는.. 아비를 많이 닮았다.

윤희 ; (공손하게) 제 아비를, 아십니까?

금상 ; 성균관 박사 김승헌은, 내 오랜 벗이자.. 과인이 가장 총애하는 신하였다.

윤희 ; 제 아비가.. 성균관 박사였다, 하셨습니까?

금상 ; 모르고 있었나?

윤희 ; 저는 제 아비가.. 글 읽는 일을 좋아하는 백면서생이었다, 그리 듣고 자랐습니다.  허나, 운수가 사나워서.. 비적대에게 목숨을 잃었다.. 하아, (눈물이 글썽하여 고개를 숙이며) 소송구합니다, 전하.  (고개 들고) 하온데 전하, 한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금상 ; 말하라.

윤희 ; (눈물 글썽하여 금상 보며) 진정, 제가, 아비와 닮았습니까?  (고개 숙이며) 소송구합니다.  전 그저.. 이제는, 아비의 얼굴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는지라..

금상 ; 선한 눈매며, 다부진 입매며, 그대는 내 고집스런 벗을, (눈이 젖어서) 소옥 빼 닮았다.    


소중한 듯 상자에 손을 대보려 하는 윤희.

보는 정박사.

숙연한 표정의 걸오.



25. 궁궐 정자 (낮)


서서 멀리를 보는 금상.

그 뒤에 와서 고개 약간 숙이는 정박사.



26. 종묘 정전 안 (낮)


김승헌의 신위(사생취의(捨生取義)와 김승헌 이름이 쓰여진)를 만지는 윤희의 손.

초가 군데 군데 켜져 있고 여러 신위가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앞에 향로가 몇 개 드문드문 놓였다. (주 : 사생취의-목숨을 버리고 의로움을 따른다는 뜻으로, 목숨을 버릴지언정 옳은 일을 함을 이르는 말.)


E (윤희) ; 사생취의.. 궁금합니다, 아버지.  당신의 일생을 걸고 지키고 싶으셨던, 의로운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어떤 곳이기에, 여기 이렇게 계셨던 당신을 전, 이제야 알게 된 걸까요?


김승헌 신위 앞에 손을 두고 눈물 그렁한 눈으로 선 윤희.



27. 좌상방 (낮)

화분의 난잎을 면으로 닦고 있는 좌상.


선준 ; (앞에 무릎꿇고 앉아서) 신해통공.. 이번일, 아버님께서 힘써 주셨다 들었습니다.  (약간 고개 숙이며) 감사합니다, 아버님.

좌상 ; (여전히 난에 눈길 두고) 좋은 자세다.  백성의 살림이 나아지며는..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사대부의 마땅한 도리다.  이 아비도, 그리했을 뿐이다.

선준 ; 그보다.. 지금처럼 계속, 아버님을 따르며 살아도 된다 보여주셨기에, 소자, (웃는 표정으로) 외람되게도 기뻤습니다, 아버님.

좌상 ; (난감한 표정으로) 혼인은, 서두르기로 했다.

선준 ; 아버님, 아직 그댁 규수와 전, 아무런..

좌상 ; (젖은 천을 앞에 놓인 놋그릇에 짜며) 사내, 성가스럽게 할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안사람은, 그럼 된게다. (다시 잎을 닦는다)


뭔가 할 말이 있으나 말을 못하고 앉은 선준.



28. 서책방 (낮)


효은 ; (책방 주인을 쫓아 다니며) 없어?  없는 거야?  (황가의 뒤에서 옷을 당기며) 아이치, 없냐구 정마알?

황가 ; (책 놓인 선반에서 몸을 떨며 짜증스럽게 효은 쪽으로 돌아보며) 아아참, 거 (돌아서서 선반에서 책들을 꺼내 잡으며) 요거, 조거, 이거, 저거.  (책 들어 효은의 팔 위에 얹으며) 죄다.. 그런 책이라고 내가, 말씀을 드렸잖습니까아..

버들 ; (책받고 좋다고 웃는 효은을 안스럽다는듯 보며) 책으로 백날.. 만리장성을 쌓으면 뭐해요오..  애기씨 그냥, (황가의 양 어깨를 잡으며) 확 도련님을 잡고, (황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다) 잡아뜨려버리세요오..

황가 (일어서서 눈 동그랗게 뜨며) 크, 아니, 나, 아니.. 저한테.. 왜왜이러세요오?

효은 ; (버들의 팔에 책을 놓으며, 강하게) 으이여, 내가 바라는건 그 반대라고, 반대에..  (턱을 양손으로 받치고 미소 띄며) 도련님께서 날 간절하게.. 원하게 만드는 책, 흐응.  (버들보며 크게) 모르겠어어?  으이..

황가 ; (은밀하게 웃으며 품 안에서 빨간 표지의 책을 꺼내 효은에게 건네며) 아후,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지이..

효은 ; (책 표지를 보며) 첫날밤, 이렇게만 하면.. 나도 황진이?  (펼쳐 보고 야한 그림에 놀라) 어흡!  (급히 닫는다)  

여림 ; (효은이 든 책을 쑥 뺏어 보고 탁 덮고, 황가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재고정리를 해도 정도껏 해야지., 어디서 임진왜란 때 책을 들고 나와서 흥정인가, 흥정이..  (책으로 황가의 머리를 살짝 친다)

황가 ; (민망하여 웃는다) 흐..

여림 ; 에휴 몹쓸사람..

효은 ; (여림의 뒤에서) 어머, 이인간이 정마알?

여림 ; (돌아보고 효은의 턱을 손으로 치켜들고) 이봐, 그대도 한참 멀었어.  (효은의 옷고름을 만지며) 그렇게 속곳부터 벗고 달려들면, 이선준은 도망갈텐데에..  뭐 나라면, 아쉬운대로 사양은 안하겠지만.  (효은의 이마를 튕기고 가려는데)

효은 ; (돌아서 가는 여림의 소맷자락을 잡으며) 흠, 그럼, 달리 방도가 있소?

여림 ; (효은 돌아보며) 있으면.. 그대로 할건가?        

효은 ; (환한 미소 짓고) 흐응.


29. 서책방 (낮)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쳐 놓고 접은 부채를 그 위에서 돌리다가 한 곳을 딱 짚는 여림.

효은, 놀라는 표정.


30. 저잣거리 (낮)


E (여림) ; 일단, 이선준처럼 정신머리가 항상 제대로 박힌 녀석은.. 낯선 곳으로 데려가야돼.  완벽하게 자신을 내려놀수 있도록.  남자나 여자나 분위기에 약한건 마찬가지.  분위기에 취하는게, 웬만한 말술에 취하는것보다, 더 무섭다구.  사랑엔 말이야, 극적 긴장감이 필요해.  운명이라고 믿게 되거든.  섬에 들어갔으면, 당연히 발을 묶어야겠지?      


*몽타주  - 꽃가게에서 꽃을 드는 여림, 여림 뒤에 와서 꽃향기를 맡는 효은.

         - 과일가게에서 사과를 던졌다 받는 여림, 사과를 효은에게 던져준다.

           받은 사과를 만지고 웃는 효은.

         - 각종 색색의 공중에 달린 등을 만져보고 가는 여림, 뒤에 오며 등을 건드려 보는 효은.

         - 배 앞에 서 있는 어부 2명.  엽전뭉치를 그들에게 건네고 귓속말을 하는 여림.  그 옆에 섰는 효은.



31. 효은집 옆 골목길 (낮)


기와집 담벼락 옆 골목을 나란히 걷는 여림과 효은, 그리고 뒤따르는 버들.


여림 ; (뒷짐지고 걸으며) 이선준은 죽었다깨나도, 그대하고 둘이만 가는 짓은 안해.  그러니까 알지?  우린 넷이 나갈 테니까, 그쪽도 넷이 나오는 거야아?

효은 ; (멈춰서) 허면 선준 도련님과 전?

여림 ; (검지 올려 효은의 얼굴 앞에 대며) 어이, 그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아..  내일 유시까지 약속장소로 나오면 돼.  유시, 마포나루우..

효은 ; 음.. (대문으로 들어가다가 다시 나와 여림 앞에 서서) 아무래도 신원은 확실히 해두는게 좋을거 같아서..


버들, 효은 뒤따라 들어가다가 급히 나오는 효은에게 놀라 비켜선다.


여림 ; 아하, 통성명을 하자아?  난 알거 다 아는데.. 하인수 동생, 하효은. (효은의 턱을 잡는다)

효은 ; (그런 여림의 손을 손으로 치우며) 그럼 거긴?

여림 ; 나?  나 구용하다.  (효은 귀에 대고 속삭인다) 호는 여림을 쓰지.

효은 ; (민망하고 놀라) 하아, 여여림?  하아아. (입에 손을 대고 고개 돌린다)

여림 ; 왜그래?  넉넉할 여에, 임할 임.. 여림, 좋잖아.  (효은 귀에 대고 속삭이듯) 그댄, 대체 뭘 상상하고 있는 거야?  응?

효은 ; (짜증나는 표정 지으며) 에이씨.  (간다)


32. 성균관 건물 옆 (낮) 

 

건물 옆 돌난간에서 건물 나무 기둥에 기대 선 걸오.

건물을 돌아 건물 옆 돌난간을 걸어서 걸오 쪽으로 오는 윤희.

윤희, 생각에 잠겨 걷다가 걸오를 본 후 한번 웃고, 계속 앞으로 걸어간다. 


걸오 ; (나란히 걸으며) 전혀 몰랐던 거냐, 아버님 일은?

윤희 ; 네에.  어머니께선, 제게 왜 사실대로 말씀해주지 않으셨을까요?

걸오 ; 고민.. 하셨을거다.  (멈춰서는 윤희따라 멈춰 서서) 그리고 생각하셨겠지.  그편이 대물 널 위한 길이라고.

윤희 ; 저희 아버진.. 정말 어떤 분이셨을까요?

걸오 ; (아래를 보다가 앉아 윤희의 풀린 대님을 묶어 주며) 뭘 물어.  당연히 좋은 분이셨을거다. 부전자전, 몰라?

윤희 ; 사형, 걸오라는 별호.. 차암.. 안 어울리십니다.  제겐.. 늘 고맙기만 한 분이니까요.  처음부터.. 대사례 때도, 또 순두정강 때에도. 


대님을 다 묶어주고 일어나서 윤희를 마주 보는 걸오.


윤희 ; (걸오 보며) 고맙습니다, 사형.


딸국질을 하다가 그걸 감추느라 급히 가는 걸오.



33. 성균관 뜰 (낮)


뜰의 계단을 오르는 선준.


여림 ; (그 옆으로 와 선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어이 가랑, 뭐하면서 지내기로 했나?  전하께서 내리신 이번 포상휴가.

선준 ; 저야 뭐..

여림 ; 쉿! (선준의 입을 손가락으로 막으며) 곰팡내 나게 구들장 지고 책이나 보겠다는 말일랑은, 하지도 말게.  어때?  어여쁜 여인네들이랑, 뱃놀이 한판.

선준 ; 전 취미 없습니다.

여림 ; 뱃놀이가 싫으면 산으로 가지?

선준 ; 취미가 없는건.. 그쪽도 마찬가집니다.

여림 ; 설마 어여쁜 여인네들이 싫은건 아니지?  (외면하는 선준 얼굴보며) 어어, 자네 설마, 사네를 좋아하는 건가?      

선준 ; (불쾌한 표정으로) 사형,

여림 ; 아, 농일세, 농.

선준 ; 지나친 농은, 불쾌합니다. (가버린다)

여림 ; 만고불변의 진리가 떠오르는구만.. 화내니까, 더 수상하잖아아.



34. 성균관 벽보판 앞 (낮)


벽보판에 붙은 홍벽서를 찾는 전단지를 보고 서 있는 윤희와 걸오. 

약하게 딸국질 하는 걸오.


윤희 ; (걸오 보며) 사형, 홍벽서가 누군지 아십니까?  성균관 유생이라던데..

걸오 ; 관심 없다아..  (딸국질 한다)

윤희 ; 전, 알거 같습니다.


딸국질하는 걸오.


윤희 ; 홍벽서는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사형, (사이) 홍벽서죠?

걸오 ; (들켰다는 표정으로) 뭐?  뭐야?

윤희 ; (웃으며 손가락으로 걸오 가리키며) 딸국질 멈췄다, 그쵸?  하하하하하하 (90도로 고개 숙여 박장대소) 하하하하하하 (걸오를 살짝 치며) 허..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걸오도 윤희를 치며 웃는다.  서로 치면서 웃는다.


선준, 둘이 있는 쪽으로 오다가 윤희를 보고 웃음 지으려다, 걸오와 장난치는 걸 보고, 표정이 굳는다.


선준 ; (돌아서서 다시 왔던 길로 걸어가며 혼잣말로) 김윤식은 동방생이다.  김윤식은 동방생일 뿐이다.  김윤식은.. 단지 동방생일 뿐이다.   



35. 중이방 (낮)


뒷짐 지고 침 삼키며 섰는 선준.  “왕서방” 소리에 돌아본다.


*몽타주 ; “왕서방” 하는 윤희의 뒤돌아 서 웃는 모습.


“왕서방” 소리에 보는 선준.


*몽타주 ; “왕서방” 책상에 책을 펼쳐진 곳에 팔을 괴고 앉아 부르는 윤희.

          

“왕서방” 소리에 또 보는 선준.

*몽타주 - “왕서방” 엎드려서 책보며 돌아보고 웃는 윤희.


“아우“ 하는 듯 어쩌지 못해 난감한 선준.


* 몽타주 ; - 엎드린 윤희 “왕서방”

           - 서서 옷을 걸며 “왕서방” 부르는 윤희

           - 책상에 앉아 “왕서방” 부르는 윤희


윤희의 모습에 난감해서 어쩌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뜨고 주위를 둘러보고 후우 한숨 쉬는 선준.

  

여림 ; (문을 열고 들어서서 문 닫고, 선준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 어루만지며) 어이, 자네 얼굴이 왜이런가, 어?  몹쓸 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구, 아이구 정마알..

선준 ; 이방엔.. 어쩐 일이십니까?

여림 ; 아이, 음.  뱃놀이 가자구 같이이.. 부용하아, 자네 정혼녀가 간다니까아.

선준 ; (외면하며) 됐습니다, 전.

여림 ; 에이, 아무리 취미가 없어도, 머릿수는 맞춰줘야 될게 아닌가아.. 어?  아이 몰라 몰라 몰라 몰라.  (갓 벗어서 옆에 놓고 다리 선반에 올려 누우며) 난 자네가 확답을 줄때까지, 이방에서 단 한 발짝도 안 나갈테니까.  그리 알게.  아이구 좋다.. (소맷자락에서 빨간 표지의 책을 펴서 보며 콧노래..) 어허어어..


선준, 책상을 들고 와 책을 펼쳐 놓고 읽는다.

윤희와 걸오, 웃으며 들어온다.


윤희 ; (앉으며) 흐흐흐흐, (걸오 보고)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딸국질이 단번에 멈추다뇨오..

걸오 ; 그만해라, 이제. 


시선은 다른데 두고 책장을 세게 소리나게 신경질적으로 넘기는 선준. 


여림 ;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런 선준을 보다가) 에이고오.  (여전히 누워 빨간책 보며) 걸오가 딸국질을 멈췄단 말이지이?

윤희 ; (여림 보며 고개 끄덕이며) 제가 걸오 사형께, 특효약을 처방해 드렸거든요.   

걸오 ; 대물 너, 그만두래두..

윤희 ; (재밌다는 듯 웃는 표정으로) 아 아까 걸오 사형의 그 얼굴을, 다들 보셨어야 됐는데.. 히히 (고개 숙이며 웃는다)


신경질적으로 책을 소리나게 탁 덮는 선준.

놀라서 보는 윤희, 걸오.


여림 ; 허어.. 한때 난 말이야아..  대물이 혹 계집이 아닐까 의심했던 적이 있었거든..

윤희 ; 사형,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여림 ; 헌데, 더는 그런 의심따위 하지 않기로 했네.  왜냐?  더 궁금한게 생겼거든.  


긴장한 윤희, 걸오.

곁눈질하는 선준.



36. 병판방 (낮)


병판 ; (홍벽서를 들고 있다 내리며) 그 답을 알고 있다아?  홍벽서가 누군지, 알거 같다는 말이냐?

장의 ; 아직은, 한 명이랄순 없습니다.  이번 순두정강에서, 시전행수의 장부를 훔친 놈들, 그 네 명, 이선준, 김윤식, 문재신, 그리고 구용하.  홍벽서는 분명, 이들 중에 있습니다.

병판 ; 넌 앞으로 성균관에서, 그놈들을 자알.. 감시하거라.  이 애비는 애비대로, 그놈에게 덫을 놓을 생각이다. 

장의 ; 예.

병판 ; 헌데 얘야아?  설마.. 좌상의 아들은 아니지?



37. 성균관 일각 (낮)


마루에 앉아서 자기 입을 손으로 만지고 있는 선준.

   

*몽타주  - 기생 차림으로 돌아보는 윤희 얼굴.

         - “설마아.. 어여쁜 여인네들이 싫은건 아니지?” 하는 여림.

         - 혀로 입술을 닦는 윤희의 입.  선준의 눈.

         - “자네 설마, 사내를 좋아하는 건가?” 하는 여림.


선준 ; 허우.. (고개를 절레 흔들다 굳은 결심을 한 듯 일어선다)



38. 여림방 (낮)


여림 ; (선준을 안아서 등을 툭툭 치며) 하하하하핫, 잘 생각했네.  아암, 사내라면 여인네를 마다할 수 없는 법이지, 으음.

선준 ; 김윤식에겐, 제가 말해 두겠습니다.

여림 ; 걸오에겐, 내가 말함세.

선준 ; 그럼.

여림 ; 이따 마포나루에서, 유시에 보세나아.. (선준을 툭툭 친다)


선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여림의 부르는 소리에 돌아본다.


여림 ; 어이 가랑,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 깜빡, 착각을 했지 뭔가아..  마포나루에서 신실세, 신시. 

선준 ; 알겠습니다.

여림 ; 대물하고 단둘이.. 배를 타면 되는걸세.  그럼 모든걸,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39. 성균관 뜰 (낮)


책보 끼고 유생복 차림으로 걸어오는 윤희.


선준 ; (유생복 차림으로 큰나무 옆에 서 있다가) 김윤식!  (뒷짐지고 윤희에게 다가서서) 오늘 휴가에.. 할 일 있소?  

윤희 ; (고개 저어며) 딱히..  뭐, 집에나 다녀올까 했는데..

선준 ; 별일 없으면, 어디 좀 같이 갈까.. 해서.

윤희 ; 어딜 간다는 거요?

선준 ; 시간 없소?

윤희 ; (고개 급히 절레절레 강하게 흔들며) 아 아니, 있소, 시간.

선준 ; 그럼 신시에 봅시다.  (간다)


윤희, 가는 선준을 보고 나서 혼자 웃는다.



40. 중이방 (낮)


거울 보고 웃는 표정으로 갓끈을 만지며 매무새를 가다듬는 윤희.

걸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윤희, 일어서 나가려 한다.


걸오 ; (나가는 윤희 보며) 대물, 너 어디 가냐?

윤희 ; (긴장하여) 볼일이 좀.. 있어서.  (인사하고 나간다)


걸오, 방바닥에 놓인 거울을 본다.



41. 마포나루 (낮)


짚으로 된 부두를 뒷짐 지고 나룻배 쪽으로 앞서 걷는 선준.

그 뒤를 따르는 윤희.


윤희 ; (기뻐서) 배타고 가는 거였소? 

선준 ; 탑시다.  (선준 먼저 탄다)

윤희 ; 우웃 (타려다 기우뚱한다)


선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려다가 멈칫 한다.

윤희, 뒤에 탄다.


사공 ; (묶인 끈을 풀어 배에 놓고 노 저으며) 시간 맞춰 잘 타셨어.  하늘이 심상치가 않아요.

선준 ; (어색하여 헛기침) 어어험.

윤희 ; (기쁜 표정으로) 이렇게 배를 타고 어딜 가보는 건, 난생 처음이오.


구름낀 강을 가는 배.



42. 여림방 (낮)


여림 ; 둘이 보내버렸지.  아무도 없는 무인도로.  (걸오 뒤로 걸어오며 반지를 만지작거린다)

걸오 ; (놀란 눈으로 여림을 돌아보며) 뭐..뭐라고?

여림 ; 전하께서 내린 포상휴가 아닌가아..  이번 일에 공을 가장 많이 세운건, 아무래도 가랑하고 대물인거 같아서..


걸오, 급히 나간다.


여림 ; (걸오 나가고 문을 보며) 그러니까.. 십년지기 친구를 속이려 들면 안되지, 걸오.



43. 효은방 (낮)


효은 ; (벌떡 일어서며) 배가 없다니?  배가..  그게 무슨 말이야아?

버들 ; 애기씨가 준비하신 짐, 실러 가보니까, 오늘 예약해둔 배가, 신시에 벌써 떠났다지 뭐예요..

효은 ; 말도 안돼, 하.  (치맛자락 잡고 급히 나간다)


44. 마포나루 (낮)


걸오, 궁금한 표정으로 있다.


사공 ; 오늘 배 못 뜹니다아..  (손가락으로 강 쪽을 가리키며) 저-쪽, 하늘 좀 보십시오.


사공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안절부절 하는 표정이다.

효은 ; (쓰개치마 쓰고, 급히 나루에 와서 사공에게) 아, 아 저.. 여기 있던, 그 유시에 밤섬으로 떠나기로 한 배, 못 봤소?  허, 분명 유시라 약조를 했는데..

사공 ; 글쎄..  오늘 밤섬에 들어가기로 한 배는, 신시에 갔다는데에.. 

효은 ; 확실한거요?

사공 ; 아, 그렇다니까요오.  좌상댁 도령이 탔다고 들었는데..

효은 ; (혼잣말로) 도련님께 가봐야 돼.  하, 도련님.. 내일 아침까지 그섬에 꼼짝없이 갇혀 계실거라고오..  아후..


효은 보는 걸오.



45. 밤섬 (낮)


새소리.

천막 쳐 있고, 안에 상이 있고 음식이 차려져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선준과 윤희.


윤희 ; 이런건.. 다 언제 준비했소?

선준 ; 내가 준비한 게 아니오.



46. 마포나루 (낮)


어두컴컴하다.


효은 ; 내가 그렇게 준비했다구우..  그 밴, 내일 오후에나 그섬에 들어가도록 내가 예약했단 말이야아.  다른배, 다른배 알아봐주세요, 빨리.


가는 사공.


여림 ; (와서 뒤에서) 알아봐도 소용없을걸?  어차피 안 뜰테니까아.  잊었어?  날씨까지 다아 알아보고 배 예약한거..  (하늘을 보며) 봐아, 비올거 같잖아.


화나서 보는 효은과 걸오.



47. 밤섬 (낮)  


윤희 ; 그러니까, 지금 여인네들을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나를 데리고 이 먼-길을 왔단 말이오.  난 그것도 모르고.. 

선준 ; 뭐가.. 잘못됐소?  왜이렇게 화를 내지?

윤희 ; (화난 목소리로) 왜 시키지도 않은일을 하고 그래?  누가 여인네 따위 소개시켜 달래?  (급히 걸어서 강가로 걸어가며 혼잣말로) 하아, 한심하긴.  대체 뭘 기대한 거야, 이꼴을 하고서.

선준 ; (급히 윤희를 쫓아 뒤에 와서 윤희의 어깨를 잡았다가 윤희가 돌아보면 아차 싶어 놓는다) 나.. 난, 난 그러니까.. 김윤식 너도 좋아할거라 믿었다.  사내라면.. 여인네는 마다할수 없는 법이라고, 여림사형이 말했다.  그래서 난..  김윤식 너도 사내잖아.

윤희 ; (슬픈 표정으로) 그러니까.. 그 좋아하는 여인네들 만나는 건, 너나 실컷 하라고.  (돌아서서) 이보시오, 사공.  (떠나는 배를 보고 쫓아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보시오! 사공..!

선준 ; (윤희를 쫓아 물에 들어가서 윤희 어깨 잡으며) 이게 뭐하는 짓이야?

윤희 ; 비켜!  (간다)


다시 잡는 선준.


윤희 ; (선준을 주먹으로 치고) 비키란 말 안들려!



48. 마포나루 (낮)


걸오 ; (여림을 주먹으로 세게 쳐서 넘어뜨리고) 너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이 나쁜자식아!



49. 밤섬 (낮)


넘어지려는 윤희의 허리를 안아 잡는 선준.


윤희 ; (그런 선준을 뿌리치며) 놔아!


그바람에 넘어지면서 물에 빠지기 직전의 선준.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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