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를 보고 실망했던 적이 없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는 편집과 음악의 활용에 능숙한, 영화의 특징을 아주 잘 알고 실천하는 감독이다.
예전에는 굳이 왜 사서 노동을 하나? 이런 의문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요즘들어 사서 하는 노동도 건강을 위해 필요하구나 하고 관점이 바꼈다. <127시간>은 '굳이 사서' 많은 컷을 찍고 사용한 영화다. 글을 쓸 때도, 영화를 만들 때도 최대한 불필요한 장면을 컷트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 감독은 굳이 안 찍어도 될 장면에 사서 노력을 많이 들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많은 관중들이 나오는 컷이 다수 지나가는데 그들의 옷색깔까지 화려하게 깔맞춤하여 정성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불필요한 장면은 아니겠으나 메인 장면이 아닌 것에 참 많은 노동을 쏟는군.. 하는 의문이 든다. 결국 그런 사소한 정성이 영화의 질을 좌우하는듯 싶다.
그는 영상으로 말을 하는 감독이다. 주인공이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소리가 갑자기 작아지는 순간, 주인공은 큰 위험에 빠진다. 그소리의 변화는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사실성을 담보해준다. 그리고 주인공은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지만, 메인 장면에 분할 화면으로 붙여진 편집된 컷들이 주인공의 심리를 영상으로 대변해준다.
그가 영화에서 사용하는 음악들이 좋다. 관객의 심성을 건드리는 음악을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이 영화가 더 깊게 다가오는 것은 그것이 실화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것.
그러나 5일 동안 그랜드캐넌(?) 국립공원에서 벽과 돌멩이에 한 팔이 껴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
참 단순하고 볼거리 없겠다는 짐작이 간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이 선입견이 깨진다. 광활한 국립공원, 주인공의 심리를 편집해 넣은 분할 화면에서 우리는 감독의 힘을 느낄 수 있다.
127시간, 때로 귀찮은 군중들이 그리워지기도 하며, 주인공의 낀 팔이 빠졌을 때 그의 해방감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색다른 영화다. 다만, 임산부는 안보시길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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