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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아무거나 시크하게 쓰기

'자유'에 대하여,,,

  오늘은 '자유'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개념을 교육 받으며 자란 한 사람으로서, 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해 왔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문득, 내가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지는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현대 사회에서 '자유'란 '돈'과

동의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정비례하리라. 즉, 돈이 있을 때 적어도 개인의 자유는 보장된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면, 라디오에서 이런 글을 들었다. '민들레 국수집'을 방문하는 고객에게 "뭘 드시겠냐?" 물으면, 대체로

"아무거나 주세요."라고 한다는 것. 이들은 대부분 동정을 받는 위치에서 자기가 메뉴를 선택할 권리가 없었기에, 주는 대로 먹는 것

에 익숙해져 있으므로, 자기의 입맛,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아무거나' 먹었던 셈이다, 즉, 입맛을 선택할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저께까지 많이 화가 났었다, 내가 적어도 일부분은 일구어 놓은 삶의 터전에서 어쩔 수 없이 쫓겨난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어쩌면 가족이란 이유로 내가 상대의 자유를 빼앗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보았다. 사람은 굳이 상대가 억압하

지 않더라도 돈이 없으면, 스스로의 자유를 일정부분 포기하게 된다. 그것이 경제적으로 존속되어 있는 자의 운명이다. 그부분을 생

각해 본 적도 없고, 배려한 적도 없는 나 였기에, '자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돈이 없으면, 먹고 자고 안전할 자유를 축소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은 자유를 억압당하면서까지 직장을 다니고 있을 것

이다. 가족이라면, 혈연이라면, 숙식을 함께 공유하고 제공해야 한다는 당위성의 시대를 살았던 나란 인간은, 오랜동안 가족을 부양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 지점에서 다시 부양이란 무엇인가? 한번 되새겨보자.

 

 나의 머릿속 부양에는 '자유'는 자리잡고 있지 않았다. 그저 숙식과 안전의 제공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유는 성실과 책임이란 단어에 갇혀 나의 자유 또한 억압 당한다고 생각하고 살았기에, 가족의 자유까지는 배려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어차피 살아간다는 건 일정정도 자유를 억압당하며 살 수 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맞는 말이긴 하다. 내 블로그의 모토

가 '자유롭게 말하고 싶다.'인 것처럼 말이다.

 인간은 시대를 뛰어넘기는 다소 힘들다. 가족의 삶이 내 삶이라는 착각의 시대를 살아온 나란 인간은, 20대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서, 위궤양을 앓고 자살을 염두에 둘만큼 힘들었기에, 적어도 가족에게는 이런 힘듬을 안 겪게 하고 싶다는 고 바라게 되었다. 그랬

기에 가족에게 숙식의 최소는 제공되었는 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유'는 아주 많이 억압한 거 같다.

 

 한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사회에 발을 딛는 첫 경험은 누구나 치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족이라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언젠가는 겪을 아픔과 힘듬이므로, 차라리 일찍 겪고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편이 한 인간의

인생에서 바람직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성장통을 대신 앓아줄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상대의 삶과 자유

를 뺏게 된 셈이다. 물론 나의 좋은 의도와는 많이 어긋난 셈이지만, 그 책임이 내게만 있고, 그것을 내가 질 생각은 없다. 결국 누구

나 자기의 삶이 있고, 나는 상대가 아니기에.  경제적 의존은 스스로의 자유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비록 그 상대가 혈연이고 가

족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럼 나의 변명으로 들어가보자.  오랫동안 나는 나의 삶을 일정 정도 포기하고 살아왔고 지금 또한 그러하다.  이유는 돈과 자유를

물물교환했기 때문이다.  모든 직장인이 이 물물교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나 직업의 조건과 자신의 흥미에 따라 자유를

포기하는 양에 차이가 생긴다.  따라서 그 직업이 스스로가 원해서 선택한 것이고 그 직업이 조건이 좋다면, 자유를 조금한 포기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고 그 직업의 조건도 나쁘다면, 아주 많은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즉, 자유와 돈을 등가교환하게 된다.

 

 그런데 현실은 등가교환이 아님에도 스스로 등가교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유를 돈에 모두 팔아버리고 아주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사람의 머릿속엔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하게 되고, 긍정적으로 사고하지 못할 것이다.  가끔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라서 나

의 글에 사람들의 많은 동의가 없는가? 하며, 항상 긍정적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 라디오 DJ를 부러워한 적이 있다. 물론

나도 라디오DJ를 하고 있다면, 저렇게 긍정적일 수 있으리라, 또 라디오DJ의 말이 부정적이라면 싫을 것이니, 긍정적 말만 표현하

겠지,,, 라고 생각했다.  가끔 부정적인 기분도 들텐데 그걸 표현하지 못하는 그의 고통도 있을 것이다.  좌우간 그래도 청취자로서 그

렇게 부정적인 말들은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얘기하고 싶은 게 뭐냐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을 꼭 해야만 한다.  그것을 위해 직장을 가진다는 건 어느 정도 자유를 돈에 팔아야 가능하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자유를 너무 많이 팔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