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감사한 분이 많지만, 그 중 두 분에 대해 얘기하기로 하자.
먼저 초등 고학년 때의 선생님이다.
우리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다가오자 담임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운동장 정글짐 옆 나무 그늘에 앉혀 놓고, 얘기를 해 주셨다. 앞으로 너희들이 공부를 하게 될 때 제일 중요한 것이 고독과의 싸움이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니, 아주 외롭고 고독하다. 그 고독과의 싸움에서 이기면, 공부를 잘하게 될 것이다. 다들 고독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라고 얘기해 주셨다. 보통 그렇게 운동장 그늘에 앉혀서 교육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또 나는 교사의 말을 아주 잘 듣는 학생이었기에 그 선생님의 얘기를 끝까지 기억하고 지금까지 공부를 나름 잘해 왔다. 그 선생님의 얘기는 엄밀히 고독과의 싸움이 아닌 고독과 친하면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다만, 문제는 그 습관이 지금까지 몸에 베어 있어, 아직도 고독과 친하고 공부만 하고 싶은 게 문제지만 말이다.
이 선생님을 또 하나 기억하는 이유는 상 때문이다. 보통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는 상을 타게 되는데, 나는 교육장 상을 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당시 돈으로 5만원(?)의 장학금을 주는 상이 있었다. 이 상은 명칭은 없다. 그냥 상을 준다기보다는 상 대신 장학금을 주는 것이다.
그 당시는 가정방문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 때는 우리집이 최악으로 가난할 때여서 정말 너무 창피하여 선생님이 우리집에 오는 게 아주 싫었다. 몇 번을 어머님이 안 계시다고 빼면서 나는 선생님이 우리집을 방문하지 말기를 바랬지만, 선생님은 기어이 우리집을 방문하고 가셨다. 그래서 너무 창피해서 그때는 아주 싫었다.
그런데 졸업을 할 때 원래 교육장 상을 받기로 했었는데, 그냥 장학금을 받는 게 더 나을 거 같아 이 상을 준다며, 선생님은 그 때 돈으로 꽤 많은 돈을 상으로 받게 해 주셨는데, 자존심이 강하던, 세상을 잘 모르던 나는 선생님의 그런 처사가 정말 싫었다. 나는 교육장 상이 더 좋은데, 왜 나에게 상도 아닌 돈 따위를 주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훨씬 나았다. 교육장 상 따위의 종이 쪽지는 이미 여러 번 이사를 다닌 내가 지니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받은 돈으로 우리집에선 캔디 만화책 한 질(9권?)을 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케잌을 사서 함께 촛불 끄며 아주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하여 돈 따위 안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가치관을 나는 믿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도 가난한 학생의 등록금을 대신 대주기도 하고, 뒷 돈은 별로 받은 바도 없는 교사였지만 나는 그런 게 위선으로 느껴지고, 돈이 중요하다. 종이 쪽지 따위보다. 그래서 한 때의 행복을 선물해 주신 선생님께 정말 늘 감사하는 맘이다.
이 선생님은 그 당시 29살의 미혼이어서 우리는 중1 때 우리가 살던 도시에서 약간 외곽에 있던 선생님 집으로 놀러 가서 개울이 있던 선생님 집에서 잘 놀았던 기억이 있다. 내가 교사가 되고 보니, 이게 참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것이니 말이다. 선생님이 결혼을 하시고 연세가 드셔도 여전히 그런 선생님일 지는 의문이지만, 인간성은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니 적어도 나쁜 선생님은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선생님께 늘 마음으로 감사해 왔는데,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감사를 드리고 싶다.
두 번째로 감사한 선생님은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특징을 알아 보시고, 그 당시 한글학회의 잡지도 받아볼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셨는데, 나는 그 당시 수학과 과학을 잘했고 국어는 잘 못하는데 왜 내게 이런 잡지를 주시지, 하고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내가 고전문학(국어 중 고문학)은 잘했던 거 같다. 나는 규칙이 있는 학문이 좋은데 고문은 규칙이 있어서 아마 좀 재미있었다고 쉽게 생각하고 넘겼었다. 게다가 적성 검사를 하면, 문과로 나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나는 그 쪽에 적성이 있는 거 같다.
한자를 안 배운 세대라 지금도 한자가 좀 힘들고 해서 고전 문학을 전공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지만 그 쪽 적성은 있는 거 같다. 그런데 나는 너무 좁게 생각해서 선생님이 알려 주신 이런 적성을 놓쳤다. 사립학교였는데, 그런 선생님이 계셨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고 그렇다.
물론 그 외에도 좋은 선생님은 많았지만 대체로 가정가사와 윤리 선생님이셨는데, 윤리 선생님은 여러 권의 책을 빌려 주셨는데, 대체로 내게 별로 도움은 안 되었던 것이 '독일인의 사랑' 등 그런 소설류여서 나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많은 선생님들께서 내게 신경을 써 주셨구나 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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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있어 보니, 학생도 2부류로 나뉜다. 사실 인간을 이렇게 딱 2개로 어떻게 나누겠는가 마는. 규칙을 잘 지키는 학생과 규칙을 잘 안 지키는 학생이 있다. 이건 교육을 해서 라기 보다, 타고 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아니면 가정 교육의 차이일까?
난 지금도 '가장 나쁜 교사와 가장 착한 장사꾼 중에 그래도 가장 나쁜 교사가 착하다.'는 고정관념을 믿는 편이다. 물론 이제는 사람 나름임을 알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대체로 그러하다 고 생각한다.
그럼 성과급에 대해 얘기를 하기로 하자.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주어 서로 경쟁시키고 동료끼리 불신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꼭 말 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사 중에도 두 부류가 있다. 돈의 노예가 되어 그 성과급 좀 더 받아보자고 자신이 열심히 하지도 않고 그 돈은 내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부류가 있고, 그것에 모두 동참하지 않으면 뒤통수를 때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로 말하자면, 아주 적성에 맞아 온 직업이 아니므로 (나는 교사 적성인데 보건교사는 딱히 지금까지는 교육을 하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하기가 제일 싫다. 그러니 내게는 성과급보다 그냥 이대로 열심히 안하도록 냅두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내게 보건 교육과 응급처치 업무를 동시에 시키니까, 나는 그에 대한 댓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과연 내가 제일 열심히 하는 건가? 에 방점이 찍히니, 차라리 나는 성과급 밑바닥 깔아주고 열심히 안 하겠다 주의다.
여태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이제 생각이 달라진다. 입장 바꿔서 보건 교사 아닌 다른 교사에게 자기들이 하는 교육 말고, 보건실 응급처치를 시키면서 댓가를 안 주면 자기들은 좋겠는가? 그런데 왜 보건교사를 정교사 시키지도 않으면서 성과급도 바닥을 주면서 2개를 다 시키려 하는가? 나는 댓가없는 노동이 싫다. 둘 다 해도 우리보다 안 힘들지 않냐고 그들은 말하지도 모른다. 아 그럼 정교사 시키고 니들도 응급처치 해보던가? 라고 말해주고 싶다. 보건교사는 수당이 한달에 3만원이다. 그런데 담임은 한달에 20만원을 준다. 보건교사가 응급처치와 더불어 수업까지 한다면 그것이 담임보다 힘이 덜 든다 할 수 있는가? 그러니 수업까지 시키려면 적어도 한달 수당을 20만원보다는 더 줘야 마땅하다. 그건 힘 들고 안 들고의 차원이 아니라, 관심이 두 개로 나뉘니, 정신이 없다. 학생 처치하다가 달려가야 하고, 하니 말이다.
물론 정교사들은 성과급 바닥 받고도 나보다 훨씬 힘들지 모른다. 그럼 나는 그냥 보건 교사도 정교사 시키고 같이 경쟁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성과급 체계를 정교사와 분리시켜야 한다. 보건 교사끼리 해야 한다. 응급처치와 수업을 같이 하는 사람이나 학급수 많은데 인턴도 없이 근무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성과급을 가져가면 된다.
그런데 체계적으로 교육부에 넣어 주지도 않으면서, 성과급 할 때는 같이 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공평하지 않으니까. 나는 지금도 성과급이 없어지면 교사들이 더욱 더 스승 같아질까?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정교사가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괜찮은 사람이면 혼자 높은 성과급 받으면 미안할 것이며, 덜 된 사람이면 자신이 받을만 하지 않아도 내가 높은 성과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과급을 없애지 않고 시행하려면 제대로 평가 체계를 갖추어야 마땅하다. 학생과 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보다 교장이나 교감에게 아부하는 사람이 더 높은 성과급을 갖는다면 그것은 마땅히 바꿔야 한다. 그런데 그냥 성과급이 싫으니 나눠 먹자? 이것에 나는 반대다. 어디든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까. 사실 적성에 맞으면 성과급 안 줘도 열심히 한다. 그런데 모든 교사가 적성에 맞아서 교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나? 그러니 경쟁이 필요한 것이다.
많은 좋은 선생님이 계셨지만, 그래봐야 그들은 세상을 모른다.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면 세상에 적응하고 경쟁해 나가야 한다. 모두 교사를 할 건 아니니까. 그러니 어느 정도는 교사의 관심이 도움이 되겠으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교육 체계를 너무 과신했다. 국영수과학 등 과목이 있으니, 그 과목 중 흥미가 있는 분야에 나의 적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과목 선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땜에 그것만으로는 적성을 찾을 수가 없다. 지금은 진로 과목도 생기고 했지만, 다 적성을 찾아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교육은 어떻게 바뀔까? 일단 학교에서는 문제가 안 일어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일단 문제아 중심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잘하고 규칙 잘 지키는 학생은 그대로 문제를 안 일으키니까 말이다. 그러니 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그것이 다라는 사고는 아주 위험하다. 학교 체계의 공부만 잘한다고 세상의 일이 다 그에 맞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고 규칙을 잘 지키며 교사에게 예의를 지킬 필요는 있다. 그럼 떡이 하나라도 떨어진다. 지금은 문제아 위주로 잘 봐주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봐주는 것이 결코 그 학생을 위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 일으킬까봐 그냥 넘어가는 거니까. 결국 그 학생은 사회에 나가면 그에 대한 댓가를 혹독하게 치를 것이다. 게다가 나만 해도 규칙 잘 지키고 예의 바르고 성실하여 이쁜 학생은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다. 물론 나의 가르침이 얼마나 그들에게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으나 돈 안 받아도 하나라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떠올려 보면 예의 없고 규칙 안 지키는 학생은 내가 뭐하러? 이런 생각이 든다. 모든 교사가 그렇지 않겠나? 물론 안 그런 교사도 있겠지만 대체로 인간은 그럴 거라고 본다.
요즘 학생들은 외모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던데, 외모 꾸며봐야 결국 외모 팔아 먹고 살기 밖에 더 하겠나? 앞에서 내가 이쁜 학생이 떡이 생겨도 하나가 더 생긴다고 했는데, 그 때의 이쁘다는 말은 외모만은 아니다. 학교에서 보면, 얼굴은 아주 이쁘게 생겼는데 거짓말 하는 학생을 본다. 그럼 정내미가 뚝 떨어지면서 하나도 이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왜 외모를 꾸미지 않는 지를 알려주자면, 나는 본질보다 덕을 더 보는 것이 싫다. 왜냐하면 그만큼 노력을 덜하게 된다. 즉, 외모를 꾸민다는 것은 본질과는 다른 어떤 요소로 덕을 보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짧게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고 노력을 덜 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자 여자가 예쁘다, 그럼 예쁜 외모를 팔아서 돈을 벌어야겠네? 성매매로 빠지기가 더 쉬운 것이다. 물론 취직할 때 외모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취직할 때 까지다. 그러니까 외모를 가꾸는 것보다는 더더욱 자신의 실력을 닦는 것이 더 낫다.
남자들은 여자의 외모를 많이 따지지만, 그건 이쁜 여자와 안 이쁜 여자가 동일하게 솔직하거나 착하거나 잘 참거나 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대체로 그러했다.
하지만 여기서 만일 이쁜 여자가 거짓말쟁이고 안 이쁜 여자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가정해 보자. 그 때도 이쁜 여자를 배우자로 맞이할 것인가? 또, 직장에서는 이쁜 여자를 채용할 것인가? 물론 사람은 사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고 우리나라는 이쁜 여자가 착하기도 했다. 그러니 지금까지 이쁜 여자를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쁜데 치중하는 것이 꼭 자기 인생에 도움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잘 생긴 남자가 좋은데, 남자 인물값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물론 이 속담이 꼭 맞지는 않다. 예전에 거짓말 잘하는 성폭행범 만난 적이 있는데, 못 생긴데다 편안한 아저씨 외모를 하고 있기도 하더라. 그러니 고정 관념은 고정 관념에 불가하고 사람은 케이스바이케이스다.
하지만 나 스스로 맨날 거울만 들여다 보고 있다 보면, 결국 외모로 먹고 살기 밖에 더 하겠는가? 나이가 들면 아무리 괜찮은 외모도 보기 싫어 진다. 나이는 속일 수가 없으니. 그 때는 뭘로 먹고 살 것인가? 따라서, 중요한 건 실력이다. 외모를 안 꾸며야 다른 이득이 없고, 본인의 실력을 더 갈고 닦을 수가 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사회에 나오면 조금 달라지기도 하지만 일단 학생 때는 외모보다는 다양한(경제학과 심리학 등) 책을 읽어야 한다. 사회에 나오면 다소 책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도 하지만 말이다.
얘기가 옆길로 샜다. 결론은, 감사하는 스승은 많지만 교육 체계 자체가 다소 어패가 있으니, 학교 때 재밌었던 분야를 직업으로 갖기는 참 힘들다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따라서 자기 적성을 잘 파악하고 학교 교과과정이 다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아울러 외모에만 관심을 가지다가는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외모 팔아 먹고 사는 수렁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면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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