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4> 가정 교육, 자식에게 매를 들어야 할까요?
나는 참 이상했다. 나도 자랄 때 맞아 본 적이 없는데, 지금 학생들도 별로 안 맞고 자랐는데, 왜 나와 다를까? 그게 지금까지의 의문이었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겠다.
그것은 형제의 차이에 있다. 그리고 직접 매를 맞지는 않았지만, 공동체 사회였기 때문에 예전에는 어느 정도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에 이득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자라면서 맞았던 기억은 딱 4번이다. 그 중 3번의 경우를 얘기하겠다.
먼저 첫번째로 맞았던 기억은 이렇다. 잠자기 전 껌을 씹고 잠들었다가 일어나면서 저절로 그 껌을 씹고 있었나 보다, 아버지가 오셔서 그냥 그 껌을 씹고 있는 채로 (껌을 씹고 있는 줄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인사를 했는데, 아버지가 뺨을 때리며 '껌 뱉어.' 라고 했다. 난 정말 깜짝! 놀랐다. 한번도 때린 적이 없는 아버지였기에 껌을 씹고 있다는 사소한 것으로 때렸다는데 놀랐고, 그게 그렇게 맞을 일인가? 하는 의문에 또 한번 놀랐던 것이다.
이제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이해한다. 그 날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들어왔고, 술은 이성을 저하시키는 약물이다. 그러니 평소 같으면,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참았을 행동을 술 마신 김에 저지른 것이다. 껌 씹는 모습이 싫다, 가 아버지의 속마음이 아니었을까?
나는 우리집 형제 중에 가장 못 생기게 태어났다. 그러니까 다른 형제들과 똑같이 행동해서는 상대적으로 욕구를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그러니 나는 자라면서 이 경험 등을 통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의 욕구를 지연시키는 걸 배운 것이다.
생전 나를 때리지 않던 교육적인 나의 아버지도 이쁜 자식이 있고, 미운 자식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마음에만 담아 두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날만은 밖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지 하여 부양의 의무가 버겁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마침 자식이 꼴보기 싫은데 더 꼴보기 싫은 내가 껌을 씹고 있다, 그러니 이성을 제어하지 못하고 분풀이를 한 것이다. 아버지가 꼭 내가 미워서 그랬다고 지금은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 그 날 스트레스가 많지 않았겠나?
하지만 나는 이때부터 아마 본능적으로 아버지에게 이쁘게 보이려면 공부를 잘해야겠구나, 그런 보상을 알아챘을 것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경쟁적이고 목표지향적이다. 아마 본능으로 알았을 것이다, 내가 다른 형제들보다 이쁨을 받으려면, 나는 외모가 딸리니 다른 보상을 부모에게 주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그것을 다시 깨닫게 된 것은 또 한 번 맞았을 때일 것이다. 이미 두(?) 개의 사탕을 먹었지만, 딱 1개의 왕사탕이 너무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딱 1개만 더 먹으면 만족할 거 같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10원만... 하고 무지 쪼르게 된 것이다. 한참을 졸랐지만, 엄마는 더 이상은 사 줄 마음이 없다는 걸 나도 알겠다. 그런데 나는 이 왕사탕을 딱 1개는 더 먹어야 만족할 거 같았다. '엄마... 마지막으로 딱 10원만.... 그럼 절대 더 이상은 안 달라고 할게,,, 딱 10원만 응? 엉엉엉' 엄마와 실랑이가 벌어졌고 엄마는 더 이상의 딱 10원은 안 줄 생각이다. 이미 여러번 왕사탕을 위해 10원을 받아 갔으니까.
그런데 나는 이 10원을 안 받으면 절대 안되겠다, 왕사탕을 꼭 먹어야겠어, 내가 이렇게 졸라본 적이 언제 있다고, 물론 조르기 전에 엄마는 대부분 내 욕구를 들어주지만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이번만은 완강하다. 절대 안된단다, 나는 절대 먹어야겠다, 아 엄마 10원만 10원만 다시는 안 조를게 10원만.
드디어 화가 무지 난 엄마는 호수줄(그 때 우리집 마당에는 수도가 있고 그 수도에 연결된 고무 호수가 있었다.)을 가지고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사실 때린다기 보다는 화가 나서 호수를 흔들었고, 나는 저멀리 마당 끝으로 도망쳐서 실제로 그 호수줄에 맞은 건 딱 1대 정도다.
그러나 그 기억은 나에게 아, 나는 언니처럼 조르면 안되겠구나, 하는 걸 깨닫게 한다. 아니, 언니는 나보다 더 많은 횟수로 자주 반지며 옷 등을 사달라고 조르고, 오래 조르면 대부분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는 딸랑 어쩌다 한번 무지 먹고 싶은 사탕을 좀 여러번 10원을 달라긴 했으나 어쩌다 한번이다, 그런데 안 들어준다. 왜? 무의식 속에서 그런 생각 하지 않았을까? 사실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맞았던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그런 유추를 하게 된다. 물론 나는 지금도 그것이 진실인 지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좌우간 부모도 이쁜 자식을 더 좋아한다, 본능적으로. 아니면?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는 셈으로, 내가 이뻐서 엄마는 나를 교육시키려 때렸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본능적으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매를 통하여 배운 것이다. 나의 욕구를 절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차피 밉게 태어났으면, 욕구를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세상도 그렇다, 이쁘면 떡이 생겨도 하나 더 생긴다. 그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 이쁘다는 것이 단지 외모만은 아닐 것이다. 성격도 포함될 것이다. 좌우간 둘 다 이거나 아닐 지라도, 현실적으로 사람은 미우면 떡이 안 생긴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요즘은 집에서야 자기가 혼자이니, 자기 부모 눈에 자기가 제일 이쁠 것이지만, 학교를 오게 되면 달라진다. 이쁜 학생과 안 이쁜 학생이 있다. 그러니 그때부터는 아 내가 안 이쁘면 이런 불이익을 받아도 감수해야 하는구나, 그걸 받아 들일 줄 알아야 사회가 돌아간다. 그러니 처벌 없이 어떻게 교육이 되겠는가? 다만 그 처벌은 횟수는 아주 적어야 효과가 올라간다. 나는 자주 맞지는 않았으니까.
이제 내가 3번째 맞은 이야기를 하겠다. 부모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비록 그들이 자기 자식을 사랑하기에 약간은 사회보다 낫다 하더라도 사회의 축소판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이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살고 있고, 사회의 가치관에 따라 자식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모도 어쩌다 부모가 된 약한 인간이다, 신이 아닌.
왜 그런지를 3번째 내가 맞은 이야기를 통해 해주겠다.
나는 스스로 권력을 가졌거나 돈이 많은 사람에게 고개를 아마 숙일 것이다. 나의 무의식이 그러하다. 왜냐하면 이 3번째의 매 때문이다. 우리집은 그리 부자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주 가난한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는 더 가난한데 그걸 내가 인정하기 싫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해서 그런 지도 모른다.
이 3번째의 매는 나로선 아주 억울하다. 하지만 나는 이 매를 통해 억울해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느날 마을에 사는, 자주 놀던 한 친구와 싸우게 된다. 정말 나는 그 애와 그냥 좋은 맘으로 놀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 애는 어느 순간 내 얼굴을 할퀴어 상처를 낸다. 나는 너무 억울하다. 그러니 그 억울함을 호소해야 했다.
그 애의 엄마는 과부인데 주로 돈 벌러 나가서 집에 없다. 나는 정말 그 애에게 얼굴에 상처가 날 폭력을 당할 잘못을 저지른 일이 없다. 그래서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 우리집으로 향했다. '엄마 얘가...' 하는 순간, 엄마는 나의 뺨을 때렸다. '아니 엄마 나는...'하는데 엄마는 또 한번 나의 뺨을 세차게 때리며, 말도 들어보지도 않고, '친구끼리 사이좋게 놀아야지, 왜 싸워. 그래 00이야, 가라... 들어 가자.' 하며 나의 팔을 끌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 이후 나의 고민은 지속된다. 엄마는 왜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계속 폭력을 행사하지? 난 정말 한번도 엄마에게 맞아본 적이 없는데, 왜 이런 억울한 사항, 얼굴에 상처 나게 폭력을 당한 상황,에서 내가 엄마에게 맞아야 하지? 아 정말 억울하다, 억울해. 왜 엄마는 내 엄만데 나의 억울함을 들어보지도 않고 다른 애 편을 들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 억울하게 뺨을 맞아도, 그것을 그냥 받아 들일 수 밖에 없구나.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걸 그냥 감수해야 하는 수가 있구나. 억울해도 감수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마 나와 같은 경험이 없다면, 정말 그건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겠나? 그 당시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겠다. 아마도 그건 사회 속에서 약자에 속하는 엄마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애의 엄마보다. 그러니 이유를 들어보지도 않고 나를 때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애의 엄마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렇게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 어찌 내 부모가 사회에서 자유롭겠는가? 그러니, 그걸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 부모를 통해 우리는 또 사회에 미리 적응하는 법을 배우게도 된다. 약한 부모를 만났다면,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배우니,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최근에 짐작하는 바이고, 지금껏 학교에 있으면서도,
왜 우리 엄마는 내가 맞고 들어왔는데 나를 때렸는데, 요즘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남을 때렸는데도 자기 아이를 감싸고 돌지? 참 이상하네, 그런 의문 가졌었다.
또 맞은 애 부모가 어떨 때는 너무 좋은 사람이고 순해서 놀란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겠다.
돈이 많은 사람은 자기 아이가 남의 아이를 때려도 내 아이가 잘했고 최고다, 그리고 약하고 순한 사람은 내 아이가 맞았어도 내 아이 잘못인 것이다. 이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와는 또 다른 문제다.
요즘은 아이가 1명이라서인 지 돈 없고 빽 없어도 학교에 큰소리 치고 교사에게 막말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내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려도 내 아이가 잘했고 다른 아이가 잘못이다. 자 이런 부모 밑에 교육이 되겠는가? 그러니 매를 꼭 들라는 말이 아니라, 정말 필요할 때는 매를 들어서라도 교육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운 애 떡 하나 더 주고, 예쁜 애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말이 있다. 결국 아주 아끼다가 드는 교육적 매는 자기 자식을 위한 것이다.
돈이 있든 없든, 다른 아이를 가해하고도 처벌이 없는 그 아이는 결국 사회에서 더 큰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사회가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피해를 당하고도 무조건 참으라고 가르치는 것은 또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때로 필요하긴 하다.
좌우간 요즘 학교에는 교육이 없다, 그러니 자기 자식 교육은 자기가 잘해야 한다. 잘못했으면, 분명 벌을 줘야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잘못하고도 오냐오냐 하거나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가해지는 잦은 매는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내가 그렇게 교육 받았다고? 그래로 자식은 똑바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자식을 사랑한다면, 스스로는 좀 참고 극복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주고 1개의 마시멜로 먹는 걸 참으면, 15분 후에 3개의 마시멜로를 준다고 했을 때, 그 욕구를 잘 참는 아이가 성공한다. 는 심리학 실험이 있다. 나는 대체로 마시멜로를 참는 쪽이다.
나의 욕구가 강하고 그걸 만족 못하면 아주 싫어라 하며, 내 욕구 중심적인 인간이지만, 그 욕구를 참았을 때 이득이 크면, 아주 잘 참는다. 왜냐하면 경쟁적이고, 목표 지향적으로 타고 났기 때문이다.
15분 후에 주는 3개의 마시멜로라는 보상이 만일 내 맘에 든다면, 얼마든지 욕구를 지연시키고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아마도 그 욕구를 안 참게 되는 건 보상이 맘에 안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썽 피우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욕구를 참는 성향이 안된다. 그러니 나와 다르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아이들은 형제가 없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이걸 본능적으로 터득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학교에서 이걸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딱히 보상이나 처벌이 없으므로 교육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세상은 어차피 모두 경쟁이다. 형제가 있다는 것은 집에서부터 이 사회의 논리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형제가 없고 모두 오냐오냐 양육되고 있다. 그러니 가정에서 이걸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무조건적 처벌이 아닌 적절한 처벌이 필요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이것이 어렵다. 지금은 학생에게 손만 들게 해도 인권 침해에 속하고, 학교에서 벌점과 상점을 주는 것도 심한 경우, 학생 인권 침해라고 하지 말라고 하니, 기껏 가장 최상의 처벌이 전학이다. 이것 가지고 무슨 교육을 할 수 있겠나?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는 가장 사람 차별을 가르치는 공간이다. 예전에는 공부로 사람 차별을 했다. 즉, 공부만 잘하면, 매와 지각 등 모두 용서된다, 그런데 공부 못하는 사람이 그걸 하면, 가차없이 매를 드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매가 사라진 공간이다. 그런데 사람 차별은 극심하고, 사람 차별하게 교육하는 공간이다. 사회적인 지위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은연 중에 가르치는 곳이다. 물론 가정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교사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돈을 갖다 바치던 부모들이 교사에게 막말하고 대들고 학생도 또 그렇게 교육시킨다. 학교에는 교육이 부재하다. 그러니 부모들 자기들 스스로가 사람차별을 교육하면서 자기 자신이나 자식은 차별받지 않고자 한다, 말이 되는가? 부모나 학교나 모두가 마찬가지다.
자, 그럼 내가 왜 바보 같았는 지를 보자.
예전에는 공부 잘하면 장땡이다. 학교에 가도 공부를 잘하니, 아무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물론 나는 청소 땡땡이 한번 해보지 않았다. 그러니 이쁨 받지 않겠는가? 공부 잘해, 청소며 시키는 것 잘 해. 아버지도 공부를 중시하는 교사다. 그러니 공부 잘하는 것을 최고로 치는데 나는 공부를 잘한다, 그러니 좋아하신다.
그런데 공부 잘한 것이 과연 나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좋은 일이었나?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공부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이 좋은 일이고 좋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 물론 나는 지금은 잘해서 대접 받아서 다행이고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아니었다.
나는 경쟁심, 목표 의식이 있어 공부를 잘했기도 했겠으나 나는 공부 자체가 재미있다. 뭔가를 알아간다는 게 아주 재밌는 것이다. 물론 그 공부가 내가 싫어하는 것이면 싫겠지만, 좌우간 그래도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된다는 자체가 재밌어서 공부를 잘한 것이다. 나는 인간 관계, 이런 골치 아픈 것보다는 공부하는 게 아주 재밌다. 그래서 평생 공부만 하며 살고 싶다. 그런데 사회에 나오면 공부는 수단이 되고, 목적이 아니다. 그러니 먹고 사는 돈을 벌려면 공부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사회성, 인간 관계를 잘하는 것, 이런 게 더 중요해진다. 그런데 공부 자체에 매력을 느껴 잘했던 사람은 사회에 나오면 정말 불행해진다. 이제는 공부를 할 수가 없고 계속 돈 벌며 살아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공부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잘한 사람은 돈도 많이 받고 좋은 조건에서 근무하니까, 나도 공부를 잘했어야 하고, 내 자식도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공부를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공부를 하는 것은 참 지옥 같을 거다. 그러니 잘하기도 힘든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목적으로 생각한 사람은 이제 사회에 나오면 불행하다, 더 이상 재밌는 공부를 해서는 먹고 살기 힘드니까. 지금껏 재밌던 공부를 못하게 되고 적성에도 안 맞는 욕체 노동과 정신 노동을 해야 하니 말이다.
사실 엄밀히 공부는 노는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은 아니고 앉아서 자기가 재밌는 거 하는 거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잘못되어 있는 것이, 노는 것을 힘들다 하는 것이다.
내가 재밌는데 왜 힘들지? 하다가 사회에 나오니 힘들다, 더이상 내가 재밌어 하는 것이 아닌데 해야 하니까. 그럼 교수가 되면 될 것이지만, 밀어줄 돈이 없는 집이니까, 불행한 거다.
그러니 자기가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것으로 벌어 먹는 것이 가장 행운이다. 예술이나 운동은 그러하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재밌어서 갈고 닦은 것을 계속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 분야에 몸 담은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가질 것이지만, 내 생각은 그러하다.
따라서 계속 공부를 할 지 말 지를 생각해서 공부에 올인해야 한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으면, 나는 반대다. 공부 잘해서 가장 잘되어 본댔자 교사, 교수다.
그런데 교사가 되면, 지속적인 공부보다는 인간인 학생을 많이 만나야 한다. 이제는 공부만 잘 가르쳐서 좋은 교사는 못되니까.
또, 교수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고 매력적이어야 가르치고 싶은데 빽으로 들어온 학생, 부모의 정보력으로 들어온 학생이 많다, 학문보다는. 그러니 가르치고 싶겠는가? 그러니 공부가 좋은 사람은 연구소 이런 게 좋지만 그런 공부는 또 별로 재미를 못 느끼겠다, 나는. 그러니 잘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투명한 경쟁이 안된다.
얼마 전에 보니 누가 이런 질문을 했더라. 문과 가면 백수고, 이과 가면 노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고 싶은가? 나라면 백수다. 나는 노예보다는 백수가 좋으니까.
자 이제 답 나왔다. 공부하라고 아무리 매를 들어봐야 공부 안 할 사람은 공부 안하고, 공부 할 사람은 공부한다. 물론 공부하지 말라고 매를 든다면, 아마 이 사람은 공부를 안 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이 맺혀 노인되어 공부할 것이다.
그러니 공부 하라 마라, 부모는 매를 들 필요가 없다. 다만, 재밌어 할 공부를 찾아 주면 된다. 세상에 공부 아닌 것이 어디 있나? 악기를 다루거나 운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도 공부다. 악기를 운동을 잘 알아야 하고 부단히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니까.
문제는 학생 자신이 재밌게 할 수 있는 공부를 찾아서 어려서부터 하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그러면 흔쾌히 자청해서 그 분야의 노예로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노예도 본인이 행복하면 된 것 아닌가? 자, 양반인데 글공부가 하기 싫은데 맨날 하라고 한다, 지옥 아니겠는가? 노옌데 마당 청소며 일하기가 정말 싫고 맨날 글공부가 하고 싶어, 정말 불행하지 않겠나?
그런데 노옌데, 마당 청소가 너무 너무 재밌다, 행복 아닌가? 양반인데 글공부가 노는 거야,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러니 부모가 할 일은 공부가 다양하니 글공부만 하라고 맨날 자식 때려봐야 안되니까, 어느 분야의 공부가 재밌는 지를 찾아주고 그걸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요즘 입시는 워낙 복잡해서 웬만한 경제력과 정보력, 그걸 추구할 시간 등을 가지지 않은 부모는 어렵다. 그냥 자식에게 맡겨 두는 편이 낫다.
<결론>
되도록 때리지 마라. 맞고 욕구대로 못하면, 원한이 생긴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 아이 인생에서 2-3번은 매를 들어 잘못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려면 거의 때리지 않겠다는 사람만 가능할 것이다.
내 자식을 오래 살게 하고 싶다면, 가정 교육 제대로 해야 살아 남는다.
'(성)교육과 심리학, 철학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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