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끝까지 16mm로 찍은 듯한 현실과 흡사한 풍경의 영화.
예전 영화 배울 때, 16mm필름 카메라로 5분 분량의 영화를 찍는데 장소 옮기면 또 촛점 맞추고 하면서 한 2시간을 땡볕에서 고생하다 보니, 학을 떼게 되고 '이길은 내길이 아닌가봐', 하고 접었다. 상상 외로 힘들고 지난한 그 작업에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도 발전하고 하여 아마 그만큼 힘들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깔끔하고 매끄럽게 빠진 그 화면들을 보면서, 아 투박한 느낌의 마치 현실 속 풍경 그대로 같은 16mm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이 영화가 그런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영화의 소재는 40대 여자와 10대 남자의 사랑이다. 그러나 촛점은 그것에 있지 않다.
그 만남의 금기성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아주 추운 겨울날 눈덮인 산을 헤매는 것 같이 살아가는, 삶의 고난을 잘 표현하고 있다.
마치 헐벗은 느낌으로 불안한 앞날을 만나고 있던 사회 초년생이었던 20대의 나를 만난 것 같다.
고양이, 처음에는 없는 살림에 우선 고양이부터 처분을 하지 왜 끼고 살면서 궁상이지? 이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고양이는 그들 삶의 동반자, 그들과 부박한 현실을 이어주는 어떤 끈 같은 것이다.
그들의 조건은 처음부터 열악하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10대 후반의 남자는 경제성이 전무하다.
40대의 여자조차 작가라는 직함을 가졌으나 경제력은 가지지 못한 채 김밥집 알바를 전전한다.
고양이의 치료비 30만원을 6개월 할부로 끊고 걱정할 만큼 가난한 그들.
게다가 그들의 조합이란 처음부터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조건이다. 즉, 어떤 동정이나 도움도 받기 힘든 여건인 것이다.
그러한 사회의 냉대 속에 하게 되는 그들의 선택은 서글픔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거리를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
그 모습을 롱테이크로 길게 따라가는 마지막 핸드핼드 화면은 불안하게 흔들린다.
기존 영화와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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