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맘대로 아무거나 시크하게 쓰기

내가 조선일보를 싫어하게 된 이유

  한때 나는 조선일보를 즐겨봤고 꽤 괜찮은 신문이구나,,, 생각했던 열혈독자 였다.

 

  내가 대학을 다닐 당시는 87년 민주화 운동이 물결을 타던 시대였다.  그때 대학을 다닌 친구는 졸업 후 만들어진 한겨레 신문에 매월 일정금액의 돈을 보냈다.  그 신문은 잘못된 언론을 개선해보고자 그당시 대학생이나 지식인 층의 기여금을 모아서 설립한 신문이다.

 

  그 신문이 생길 당시는 돈이 없어서 나는 보태지 못했다.  그 이후 몇년이 지나 취직을 하고 그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이건 재미가 없어도 너무 없어 연신 하품이 나는 것이다.  아- 의무감만으로는 신문을 읽을 수 없겠구나.  왜이리 지루하게 신문을 만들지?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조선일보를 매달 받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두 신문이 비교가 되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편집은 아주 매끄럽고 시각적인 반면, 한겨레 신문은 지나치게 작은 활자만 빽빽한 것이다.  신문이 구독비만으로 유지되기 어렵고 광고비가 주를 이룬다는 사실을 알고, 자본이 적으면 칼라와 그림을 많이 싣기 어려우므로 아마 그리 되었겠지,  짐작은 하면서도 하다못해 활자 크기라도 좀 키우거나 내용도 지나치게 정치적 이념위주보다 다양하게 실으면 안되나,,, 이런 불만과 함께 한겨레 신문과는 멀어졌다.

 

  조선일보를 받아 보면서 특히 주로 보았던 란은 여행과 맛--이라는 코너였다.  이름은 잘 기억 안나지만 신문에서 주는 정보로 그곳을 찾거나 먹거나 하면 아주 즐거워지곤 했다.  그래서 조선일보의 극찬자가 되었다.  신문에서 편집과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무작정 비판만 하는 거는 옳지 않아.  이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이후 신문의 활자가 희미해지기 시작해 신문을 보고 나면 눈이 아파지는 관계로 조선일보를 안보게 되었고 그 시간이 어언 10년 정도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딘가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그곳에 놓인 조선일보를 보게 되었다.  기사는 대충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일류대를 많이 보내므로 좋다.  따라서 공립학교 교사도 한 학교에 사립교원처럼 애정을 가질 수 있게 지속적으로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립교원이 한 학교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것에는 전문가도 아니고 관심도 없으므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립고등학교가 공립고등학교보다 일류대를 많이 보내므로 좋다?  에는 반발한다. 

 

  그리고 기사를 읽으면서 교묘하게 경제적으로 어렵고 부모가 대학에 대한 정보를 잘알지 못하는 학생들을 영원히 안좋은 곳에 몰아두고자 하는 교묘함이 느껴진다.  아마 잘사는 집 아이들은 부모가 능력이 많아 절대 안좋은 낮은 과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일류대에 들어가면 다 좋은가?  그 학생의 인생이 망가져도 그저 그 학교에서 몇명의 학생을 일류대에 보내는가 만 학교의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다.  적어도 고3학생의 담임이라면 학생의 진로에 대해 학생 입장에 서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고 비록 일류대가 아니라도 학생의 적성에 맞는 과를 권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은 쉽게 수치로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일류대에 몇명의 학생을 보내느냐로 학교를 서열화하는 것은 아주 부패한 방식이다. 

 

  나는 사립고등학교를 나왔고 그것도 꽤 서울대에 많은 인원을 보내는 학교를 다녔다.  그리하여 꽤 괜찮은 학교에 낮은 학과를 지원하여 오늘날까지 인생을 죽쓰고 있다.  물론 내부모가 똑똑하거나 돈이 많아 나에게 진로에 대한 정보를 많이 주었다면 그렇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학교는 밤 10시까지 자습을 시키고 그만큼 교사들의 인내와 노력이 있었다는 점에서는 인정하지만, 지금도 나는 되도록 공립고등학교를 들어가도록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고 싶다.  나의 고3 담임샘은 인간성도 그 학교에서는 꽤 괜찮은 샘이었다.  하지만 아마 그샘도 일류대를 많이 보내느냐, 자기반 학생의 성적이 어느정도냐에 따라 학교의 시달림을 받았을 것이다.  그보다 개차반인 교사, 돈을 밝혀 학생을 맨날 패던 교사도 그 학교에는 존재했고, 그 교사가 그돈을 자기만 먹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여긴다.  사립학교는 공립학교보다는 비리가 많다.  그만큼 부패한 곳에는 부작용이 있다.  내가 다닌 학교가 유난한 사립학교는 아니라고 여기며, 그래도 꽤 괜찮은 사립학교였다고 여기지만,,,  나는 공립학교를 선호한다.  교사의 열의가 그만큼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상대적으로 깨끗할 것이라고 여기며, 비리는 어느구석에서든지 빈공간을 만든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선일보의 그 기사를 보면서 교묘하게 계속 서열화를 부추기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라는 신문이 싫어졌다.  있는 놈들이 항상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도록 교묘하게 쇄뇌시키는 기사를 쓰는 신문.

 

  지금도 나는 우리 사회가 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왜 방송사나 각 회사에서는 영어성적이 그렇게 중요한가?  라고 되묻고 싶다.  영어가 전혀 필요없는 일인데도 왜 굳이 영어성적을 입사할 때 받느냐 그말이다.  예를들어 방송사도 해외에 로케를 나가는 분야의 사람만 영어를 잘하면 되지, 평생 영어를 써먹지도 않을 직업에서 영어성적이 그토록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얼마전 영어성적은 부모의 경제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했고 영어성적 점수가 높은 사람이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그렇다.  교묘한 계열화다.  방송사 PD시험을 볼 때 영어성적 점수를 받는다.  그런데 드라마 하청업체(제작사)의 PD는 영어성적이 없어도 아마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고생은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이 날밤새며 하는데 그 커미션은 방송사 직원이 많이 가져가는 구조도 공평한 구조는 아니다.

  뭐 니가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싶으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면 될 거 아니냐?  라고 얘기하실 분들 계시겠으나 그 직업에 굳이 필요치도 않은 영어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그 직업에 열정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일할 인재를 뽑아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좌우간 나는 우리사회가 영어가 꼭 필요한 직업이 아니라면 영어시험 점수를 요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쓸데없는 영어점수 딸 시간에 차라리 다른걸 하는게 전체적인 인적 관리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