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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과 심리학, 철학 등

삶에 대한 소고 1 : 죽음의 유혹

  20대 중반 돈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늘 죽음에 대한 유혹을 느껴왔다.

칸트씨가 아무리 개인은 자신의 신체를 함부로 할 권리가 없다고 외치는 말을 되새겨도 그 유혹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목숨을 끊기가 쉽지 않기에,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봐야 할 거 같다.

 

  근데 참 이상한 것이다.  20대 중반 돈 벌 시기에는 생을 이어가자면 돈을 안 벌 수는 없고, 간호사 생활은 도저히 못 하겠고,,, 그럼 죽는 수 밖에 없겠다,,, 싶었기에 그런 유혹에 시달렸지만,,,  그 후 40-50대가 되어서도 왜 죽음에 대한 유혹을 때때로 느끼는 거지? 의문이 강하게 들었었다.

 

 

  이제 알겠다.  정욕이 만족되지 않아서 였던 것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생리적 욕구를 만족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정욕은 이 기본 생리적 욕구에 포함되는데,,,  난 이 정욕을 알지 못하고 무시했기 때문이다.  기본 욕구 만족이 안 되니까, 왜 힘든 생을 이어가야하지?  무엇 때문에?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고 죽지 못해 사는 것이지, 뭐.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유가 궁금하긴 했었다.  지금에야 답을 알게 된 셈이다.

 

  난 기본 욕구인 성욕을 무시하고 편하게 사는 댓가라고 생각했었다.  아이 낳고 기르기도 겁나고, 가사 노동도 하기 싫으니,,, 그런 힘든 일을 안 하는 댓가로 성욕이야 만족 못하는 게 당연하지, 사람이 어떻게 모든 욕구를 만족하고 살 수 있는가? 여겼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정욕은 아주 기초적인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욕구이니 만족하면서 살아야만, 죽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이다.  단지 배고픔만이 인간을 사망케 하는 것이 아니다.  정욕도 배고픔과 동등한 하위 욕구이니, 인간이라면 만족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부인을 잃고 황조가를 지었던 옛시대 왕이 생각난다.  한 쌍의 새를 보며, "암수 서로 정다운데,,, 나는 홀로 외롭구나." 이런 시였다.  나도 가끔 동물을 보면서, 아니 동물이 나보다 낫네, 성욕을 만족하고 사니까.  난 동물보다 불쌍한 인간이구나... 하며, 이 황조가에 공감했었다.  

 

  더불어 난 미성년자도 아닌데, 미성년자처럼 성욕을 완전히 자제하며 살아야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가여이 여겼었다.

 

  그래, 내게는 승화가 있지, 성욕을 승화하는 거지 뭐.  하며 영화, 드라마, 책에 빠져 살았었다. 

 

  지금 생각하니까, 그런 것들은 그래봐야 가짜 만족이다.  나는 이제 정욕을 깨닫게 되었고, 진짜 만족을 하며 살고 싶다.  그리하여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 죽음의 유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쓰는 가짜 만족(식욕, 여행욕, 소비욕 등)을 하면 희미해졌다가, 돈이 없어 이조차 힘들어지면 더더욱 강렬해지곤 한다.

 

 

  그리하여  '성매매의 합법화'를 주장한다!  싱글의 성매매는 합법화해야 한다.  이유는 위와 같다.  모든 인간은 행복할 권리를 지니며, 정부(나라)는 이 행복할 권리를 뺏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배부른 사람이 먹을 것을 탐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마찬가지로 결혼한 사람이 정욕의 더 큰 만족을 위하여 배우자 외의 타인과의 정욕 만족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너무 큰 욕심이다.

 

  허나 나 같은 사람은 배고파 죽을 직전까지 갔다.  그리하여 죽고 싶다.  그런데도 작은 정욕의 만족을 이루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배고파 죽기 직전의 사람에게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의 음식은 제공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성병 관리와 성매매자의 거부권을 주어서, 성매매를 합법화하자!!!!!!!!!!!!!!!!!!!!!

 

 

 법이 법을 지키는 사람만 불행하게 하고 죽음으로 내 몰며, 위법을 쉽게 하는 사람들만 행복하게 하는 그런 종류라면, 그 법은 없어져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