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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느낌

시동, 간호학과 절대! 가지 마라. 1



 영화 <시동> 얘기하는데 왜 간호학과 가지 말란 얘기를 하지? 하고 의문이 들 것이다.


 먼저, 영화에 대해 얘기해보자. 영화는 꽤 현실적인 얘기다. 속썩이는 아들과 잔소리하는 엄마. 이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생각이 다르다. 엄마는 아들이 공부를 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잔소리를 하고, 아들은 엄마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잔소리와 배구선수였던 엄마의 손때가 맵기 때문에 가출을 한다. 어느집이나 비슷할 지 어떨지 모르겠다. 꽤 현실적이고 직업을 왜 잘 선택해야 할 지를 깨달을 수 있다. 그리하여 영화 자체는 제법 재밌고 볼만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더더욱 간호학과를 왜 가지 말아야 하는지? 를 거듭거듭 깊이 깨닫게 되었다. 여러분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부모거나 학생이거나 그 둘 중 하니라도 말이다. 공부를 잘하면 좋다고 대부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25년 이상을 오랫동안 공부를 잘해서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를 갔고 공부를 잘해서? 아니면 학벌 덕을 봐서? 임용 시험에 합격해서 계속 그 길만을 걸어왔다. 아마 그래서 덕 본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서야 왜 다들 공부를 잘하라고 하는데 나는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 것일까? 에 대한 결론을 얻은 것이다. 그건 간호학과를 가서다. 지금 나의 결론은 공부는 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고? 생각만 잘하면, 선택만 잘하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적어도 짐승 같은 인간들이 동료가 안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 공부를 잘한다고 짐승 같이 안된다고 생각하긴 힘들지만, 확률은 높다. 자기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막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대체로 음식점에서도 마구 돌아다닌다. 즉 교육 받기 전의 인간은 그런 존재다. 하지만 교육 받은 인간은 사회의 관습이나 법을 대체로 지키려 하기 때문에 함께 살아도 괜찮은 존재로 거듭난다. 다만 그 교육은 학교교육만이 아니다. 가정교육, 독서, 생각, 평생 교육, 심지어 법적 처벌까지 그 교육에 속할 수 있다.


  그럼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왜 간호학과, 심지어 의학과까지 직업으로 삼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 영화에는 사체업이나 조폭으로 생활을 하는 직업인이 나온다. 그 직업은 지속하기가 꽤 힘들다. 왜냐하면, 남에게 해를 가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해를 입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직업을 가지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의학계통은 이 직업과 흡사하다. 의도치않게 타인에게 해를 가하고 그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내가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아주 잘하면 때로 보람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그건 대체로 의학과에 해당된다. 간호사는 의사의 명령에 의해 그 명령을 실제로 행하는 직업이다. 명령을 내리는 입장도 그걸 책임지고 결정해야 하니, 쉽지 않지만 말로만 하는 것보다 실제로 행동으로 봉사해야 하는 간호사는 더더욱 어렵다. 물론 이 사실에 대해 다르게 판단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왜 공부를 열심히 하며, 30년 동안 한결같이 출퇴근을 하고 돈을 버는가? 타인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그 사람은 직업인이 아닌, 봉사만 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성직자가 되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 결국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밥을 얻기 위해서, 나아가서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의료계통 직업을 가지면, 그 30년 세월의 매일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어 실수를 할 경우, 조폭이나 사채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처럼 사람의 목숨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대체로 긴장하며 일상을 살아야 하며, 잠깐 실수로 크나큰 책임을 지거나 죄책감에 시달려야 할 수 있다, 행복할 수 있겠나? 좀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의료직은 누가 하냐고? 그 부분이 좀 힘든 부분인데, 그건 다른사람이 알아서 할 부분이라고 본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은 복불복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이다. 30년 전이니까 이런 소리를 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지만, 간호사의 조건은 그때와 거의 흡사하다. 외국은 간호사도 개업을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물론 미래에 세월이 더 지나서 간호사도 개업이 가능한 세상이 올 수도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간호학과는 가지 마라!


  내가 간호학과에 가게 된 지점을 살펴보자. 우리 아버지는 서울대만 대학인 줄 알고 계셨다. 대체로 공부나 학벌에 가장 연연해하는 직업이 교사다. 아버지도 교사셨다. 그리고 그 시대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는 생각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라에서 주는 등록금도 후불이기에 제때 내지 못하고 창피를 당하는 집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중간에 서울여상을 갈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지만, 에이 대학만 가면 핑크빛 세상이 펼쳐지고 돈이야 당연히 버는 건데 뭐, 치부하고 가지 않았다. 대학을 갈 시점이 되었는데, 대학을 가려면 서울대를 가야 하는데, 갈 과는 없었다. 물론 간호학과보다 점수가 낮은 과도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과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캔디 만화책을 재밌게 읽었고 외할머니도 돈 벌려면 간호학과가 어떠냐? 해서 생각해보니, 꽤 괜찮을 거 같았다. 난 꿈이 교수가 되는 건데, 어느과 교수든 무슨 상관이냐? 오히려 실력 낮은 애들이 오니까 교수되기도 쉽겠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였다. 사실 서울사대는 힘들지만, 공주사대 정도는 식은죽 먹기로 들어갈 성적이었고 그당시 공주사대는 학비, 기숙사비 모두 면제였는데 그 선택을 안한 거다. 내가 교사를 할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왜? 내가 공부를 잘하는데 뭣하려 교사 정도에 머물러? 이런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간호사를 하던 사촌 언니가 (이 언니는 피곤에 지쳐 집에 오면 대자로 뻗어 잠만 잤다.) 간호사는 절대 하지 마라, 간호사 하려면 차라리 의대를 가라, 고 했지만, 그 언니는 공부를 못해서 지방 전문대에 가서 그런거지, 게다가 난 의대 갈 실력은 안되는 걸, 이렇게 생각했다. 사실 나란 인간이 의대를 가고 싶단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난 교수가 되고 싶은데,,, 그렇게 대학을 들어갔다. 여기서 큰 착각을 한 거다. 학벌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알아야 될 게 하나 있다. 학벌로 어떤 특혜가 있을 지는 모르겠으나, 서울대를 나왔던 지방 하류대를 나왔던, 심지어 대학을 안 나왔던, 같은 직업을 가지면 같은 일을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건축 실무자가 있을 것이고, 건축학과를 나온 설계자가 있겠지만 말이다.


  대학을 가서 교수를 하려고 보니, 일단 우리집에는 내가 교수될 때까지 밀어줄 형편이 안된다, 즉 비현실적 꿈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보니, 교수가 되면, 이 힘든 일을 하라고 자기 제자를 몰아넣는 직업 아닌가? 그런 직업은 갖고 싶지 않은거다. 그러니 교수라는 꿈은 버렸다. 물론 대학을 가니 공부를 잘하기도 어려운 거다. 난 외우는 게 싫어서 외우는 과목은 잼병인데, 이 과는 모든 걸 외워야 하는 거다. 어떤 인과관계를 통해 공부를 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교재도 좋은 게 필요한데,  너무 많은 것을 짧은 시간에 배워야 하고 재밌는 책을 사려면 그 당시 가격으로 책 한권에 3만원씩 하는데, 그 책을 살 수는 전혀 없어 제본을 해서 보니, 공부를 잘하기도 힘든 거다. 족보라는 게 필요한데 인간관계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선배들에게 그런 아쉬운 소리도 하기 싫고 해서 성적은 바닥을 쳤다. 다들 공부를 잘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도 재수없게도 간호사 자격시험은 붙은 거다. 공부를 못해 그것도 떨어졌으면 다른 길로 나가는 건데 말이다. 그리하여 서울대 병원에 붙어야 조건이 좀 괜찮은데 병원에는 떨어졌다. 왜냐고? 난 간호학과 3, 4학년이 죽을 맛이었는데, 학과 공부 절반 정도를 병동에 있어야 한다. 딱히 있을 곳도 마땅치 않고 내 환자에게 희생과 봉사를 하여 레포터를 써야 하는데, 그런 아쉬운 소리 하는 거 봉사하는 거는 딱 체질에 안 맞아서였다. 이건 요즘 좀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다른 전문대 학생들은 어떻게 실습하느냐? 병동 실습시 간호사가 하는 일을 도와준다. 즉, 학생때부터 그 병동 전체 환자의 혈압, 체온, 맥박을 체크하는 거다. 한 60명 되는 사람 것을 말이다. 그 외에도 간호사가 시키는 일을 할 것이다. 이것도 요즘은 바뀌었을 지 모른다. 아마 학생 때부터 그와같은 일을 시켰다면, 나를 포함한 서울대 출신 간호학과생들 대부분은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네,,, 하고 다른 길을 찾아갈 기회가 될 지도 모르는데,, 그걸 알고 안 시키는 건지, 그런 일은 안 시킨다, 서울대는. 요즘은 어떤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왜 내가 서울대 병원을 떨어지면 안되냐고? 그래서다. 대부분의 서울대 출신들은 붙는 병원이니까 자존심이 상한다. 이런 상세한 얘기까지 하면, 저 사람은 적성이 아니고 나 보다는 공부를 못했으니 그렇겠지? 하는 사람 있을 거다. 물론 적성이 아닌 부분이 없다고 생각은 안하지만, 그보다는 간호학과에 가서는 안되는 사회적 조건이 더 크다. 또, 서울대 병원을 가야 할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병원은 기능성으로 일한다, 그건 내 환자가 없다는 거다. 즉, 아래 간호사는 60명의 혈압 등(바이탈) 측정과 그 환자 모두의 복용약과 주사제를 준비하고 줘야 한다. 윗 간호사는 아래 간호사가 한 걸 차크에 적고 환자에게 질문응답 받고 체크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서울대 병원은 10여명 내외의 내 환자를 주는 책임제다. 그 내환자에 대한 모든 바이탈과 약, 차팅을 다 내가 하는 거다. 나는 학생때부터 그 많은 환자에게 처치를 해본 적이 없는데, 그걸 하기가 쉽겠는가? 물론 그때는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자, 그리하여 서울대 병원에 떨어졌는데, 간호사는 나이제한에 걸려 25살까지만 종합병원(대학병원)에 취직을 할 수가 있었다. 난 우리집에서 돈을 꼭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데, 취직을 못할 수는 없다. 배운 건 간호학 뿐인데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 이력서를 넣어봤다. 알음알음으로 갈 수 있는 준종합 병원에서는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마 나란 인간이 간호사 일을 잘 못할 거란 걸 간파했는 지도 모르겠다. 좌우간 시험을 보고 통과하는 병원을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겨우 제법 큰 병원 그 당시는 간호사 월급 중 가장 많이 받는다는 병원에 재수없게 또 취직이 되었다. 들어가보니 빛좋은 게살구다. 월급은 실제 노동량에 비하면 그리 많은 편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혹사시키는 지 모른다. 그 병원을 그만두는 간호사들은 다 살이 통통 오른다. 얼마나 그 병원에서 마음 고생 몸고생을 했으면 말이다. 그래서 난 지금도 살빼기 싫다. 그 병원에서 일하면서 마음과 몸이 고생을 하니 살이 쏙 빠져서는 물건 하나 들어 올리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다이어트 하는데 반대다. 가뜩이나 근육도 없는 여자들이 다이어트를 하면 더 힘이 없어지는 거다. 다만 몸이 좀 가볍긴 하지만. 자 이 병원은 기능성이다. 기능성 아닌 곳이 중환자실 뿐이다. 중환자실은 대체로 6-8명의 환자를 혼자 본다. 난 다행히도 중환자실에 발령을 받았다. 그런데 이곳에도 기능성이 남아있는 부분이 있다. 신참은 1시간을 일찍 출근하여 다른 환자들의 수액까지 모두 준비해 두어야 한다. 중환자실에서는 매일 모든 환자들의 자세를 바꾸어주는데, 이걸 매일 간호사들이 해야 한다. 무거운 20명에 가까운 환자들 자세를 바꾸고 중환이 나가고 들어오면 시트를  갈고, 게다가 혈액을 마구 바꾸어줘야 하는 중환이 들어오면, 그 환자만 봐도 정신이 없는데, 힘은 딸리고 이렇게 정신없게 근무하다가 실수를 할까봐 여간 겁이 나는 게 아니다. 난 키까지 작아서 수액병(그때는) 하나 걸려고 해도 힘이 많이 들었다. '와 이 힘든일을 15년 20년씩 하다니, 대단하다. 저 선배들은 어떻게 저렇게 살고 있는 거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는 엘리베이터 타고 가면, 몇개월 학원 수강 후 들어온 간호조무사들이 종이결과지 몇개 든 작은 통을 들고 다닌다. 너무 부러운거다. 간호조무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는 거다.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 병원 중환자실엔 간호조무사는 없었던 거다. 조무사가 할 일까지 간호사가 다 하고 있었던 거다. 있어봐야 별 차이는 없겠으나 간호조무사가 있으면 적어도 침대보는 그들이 갈겠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있어 물침대까지 있는 침대도 있어 침대보 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 이러니 일을 잘할 수 있겠는가? 몸이 힘든데 정신은 더 꼿꼿이 세워야 약을 바꿔 주거나 혈관이 막히는 걸 막을 수 있다. 매일밤 악몽을 꾼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수간호사에게 잘 보여야 좋은 스케줄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 나이트는 3-4일 이상은 안 주게 되어 있지만, 전문대 출신인 수간호사는 나를 싫어했다, 교묘하게 스케줄을 짜서 10일 동안 거의 나이트를 연속으로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고, 이브닝 데이는 보통 안주는데 내게는 이브닝(끝나서 집에 가면 12시다) 데이(집에서 4-5시에 일어나야 줄근할 수 있다)를 연속해서 주는 거다. 물론 내가 일을 못해서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학벌의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일을 못하니, 간호사 1년 반 만에 소아과 병동으로 발령이 난다. 소아는 성인과 용량도 아주 다르고 약의 종류도 다 다르다. 게다가 한번도 해보지 않은 60명 바이탈에 복용약, 주사제 모두 준비해야 한다. 애들은 빽빽 울고 의사가 시술할 때 1시간을 우는 아이의 팔다리를 잡고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그때는 수은체온계인데, 아이들은 팔을 딱 붙이고 있지 않아 체온재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60명을 해야 한다. 매일밤 실수를 했을까봐 악몽에 시달려 잠을 제대로 못잔다, 스트레스 받으니까 입맛도 없었다. 그리하여 죽기 전에는 그만두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병원을 그만뒀다.  이제 우리 가족은 뭐 먹고 사나? 암담했지만, 길을 걸을 때도 반짝이는 태양을 보며 많이 많이 행복했다. 어느 직장이든 갈려고 면접을 보면, 간호학관데 여기 왜 왔어요? 간호사를 안하고? 하고 묻는다. 그런데 자존심이 상해서 전 간호사 힘들어서 못했어요, 이 소리를 못하는 거다. 그래 난 간호학과를 나왔는데, 그것도 최고 대학을 나왔는데 왜 간호사를 안하려 하는 거지? 하고 나조차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간호사 할 때도 승진할 생각은 안했다. 승진해봤자 수간호산데, 맨날 하는 일이 의사들한테 아부 떠는 일이다,(물론 수간호사는 병동 전체를 관리하는 게 일이다. 그런데 그 수간호사는 그랬다.) 저런 일이 승진하는 일이라면 난 하고 싶지 않았다.  교수도 되기 싫고 수간호사도 시켜 주지도 않겠지만 하기 싫고, 먹고는 살아야겠고 뭘 할까? 생각했다. 그래 난 학교 때 수학을 잘했으니까, 학원 수학 강사나 해보자, 전화를 했더니, 강사는 이미 뽑았고 전화로 고객응대라고 하겠냐는 거다, 내가 왜? 그런 일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보건교사나 하자. 비록 고등학교때 양호샘을 보며, 한심하다, 저런 직업을 왜 가지고 있지? 라고 생각했었지만 말이다. 비록 교사로서의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돈이 안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위선이 싫었지만 할 게 없으니 교사라도 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말이다. 물론 9급 공무원 시험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태까지 내가 배워 온 간호학이 있는데, 뭐하러 새롭게 외워야 하는 공무원 시험을 볼 것인가? 생각했다. 이게 간호학과를 가면, 이미 투자한 걸 잃기 싫어 그 분야에서 나오기 힘들 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간호학과 절대! 가지 말란 말이다.

 1부를 여기서 마칩니다. 2부를 기대해 주세요^^


 영화의 별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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