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볼만하다.
풍산개? 도대체 끌어당기는 매력이 없는 제목이다. 김기덕 감독(여기선 제작)은 늘 그러하다. 그가 만든 영화제목 중 제목만으로 관심을 끌었던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면 그만큼 적합한 제목이 또 생각나지 않는다.
뭐가 볼만한가?
일단 윤계상의 벗은 몸매가 볼만하다. 진흙탕을 뒹굴어도 멋진 몸매는 멋진 몸매다.
그리고 그의 눈매가 볼만하다. <최고의 사랑>에서 그의 눈빛을 보면서 예전에 비해 아주 매서워진 눈매가 이전 그의 매력을 앗아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자상한 그 캐릭터에 맞지 않는단 생각을 했었는데... 아마 영화 <풍산개>를 찍고 있었나보다. 영화의 캐릭터에 적합한 눈매다.
밤갈대밭이 볼만하다. 푸른빛인듯 회색빛인듯 애매모호한, 빛을 아주 절제한 장면들이 볼만하다.
가끔 던지는 진부한 대사들이 피식 웃음이 나게 하지만 애정이 간다.
마지막 스크롤이 올라갈때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드는 진중한 음악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제작자겸 극본가인 김기덕과 감독인 전재홍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며 불안하게 표류하는 느낌이다.
김기덕 감독의 장점은 아주 절제된 대사와 화면빨이다. (촬영컷이 많은 빠른편집과 뛰어난 색감 등)
그런데 이 영화는 그보다 적당한 길이의 미장센을 보여주는 화면이 많다. 그리고 대사도 김기덕 감독이 만드는 것에 비하면 꽤 많다. 그런데 그 대사들이 때로 진부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다.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대사. 아마 김기덕 감독이었다면 그 대사의 약점을 괜찮은 화면빨로 커버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다른 사람이다. 전재홍? 신인감독인가? 어떻든 이 감독은 그렇다고 김기덕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거 같지 않다. 그리하여 어정쩡하게 서 있는 느낌이다.
김기덕 감독은 제작자보다는 감독이었음 좋겠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들로 선진적인 그의 장점들은 많이 쇠약한 거 같다. 어쩌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남북다 비슷. 이념에 끼어 인간이 희생되는) 너무 현혹되어 버린 탓일지도. 역시 예술은 메시지가 강하면 예술적 영감이 힘을 잃는다.
이 영화는 좀 진부하게 비현실적이면서 그래도 꽤 재밌긴 하다. 최근에 이만한 안정된 색감의 영화를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갈증에 시원한 물 한모금 머금은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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