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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과 심리학, 철학 등

우리의 시민 운동, 뭐가 문제인가?


 *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따라서 이 글을 쓰는 나도 이기적이다.  즉, 나의 이익을 위해 이 글을 쓰니, 그것을 감안하여 읽어 주면 좋을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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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는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 스스로 아주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절대 시간수가 적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는 늘 공항에 깃발 흔들기 위해 갔다.  외국 손님이 올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니, 학생 운동으로 휴강하기 일수였기에 바짝 공부했다고 할 수 있는 건, 87년 민주화 운동의 승리(?) 이후의 대학 3,4학년인 2년 간이다.  물론 이때도 약간의 사회적 써클을 같이 했기에 완전히 공부에 몰입했다고는 할 수 없다. 

 

  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 학생 운동을 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그런 대학 생활을 보냈는데, 물론 1학년 때는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계속 우울하고 졸리고 친구도 없고 해서 음악감상실에서 공강 시간에는 줄창 잠만 잤다.  가끔 알바를 했지만 무지 힘들었다.  정신적 고통 아니면 신체적 고통이 극심했고, 알바비를 받아도 집에 주고 쓸 돈이 없어서 하다말다 했다.  내가 상상했던 대학 생활과 너무나 달라서 적응이 안되었던 거 같다.  그럼 여기서 음악 감상실이라도 있는 대학을 다녀서 좋았겠다, 누구는,,,  하는 사람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긴 없는 것보다 나았다.  하지만 음악 감상실이 없었다면, 나는 도서관에서 잤을 것이다.  그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좌우간 난 대학에 가서 교수를 하려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데 왜 나는 성적이 안 나오는 걸까?  이런 의문에 빠졌다.  게다가 학교 때는 그렇게 재밌었던 수학이 왜 대학의 교양 수학에서는 재미가 없을까?  푸는 방법을 설명해 놓은 자습서도 없고, 교수님은 푸는 방법을 설명해 주지도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수학 문제는 풀리지 않고, 답도 없고, 수학책을 보면 졸리기만 하다.  그건 제대로 안 가르쳐 주어 그렇지, 했다.  오히려 학교 때 외우기만 해서 재미 없던 생물이 재밌는거다.  아하 먹이 사슬이 이런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네, 인과 관계로 대부분의 교양 생물 내용이 설명이 되니, 재미있네.  했다.  물론 가장 재밌는 과목은 <한국 근대 문학의 이해>였다.  교수님이 이야기를 섞어 재밌게 강의하니까 그렇지 했다.  역시 나는 교사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구나 했었다.

 

  어느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도서관 건물 옥상에서 한 학생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떨어져 죽었다.  충격이었다.  독재 타도, 그게 뭐라고 목숨과 맞바꾸지?  이런 의문은 잠시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내 상황에 빠져 있었다.  앞뒤 학번이라 유일한 친구였던 학생이 자기는 이 과가 적성이 아니라며 편입 준비를 위해 자퇴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그 애의 자취방에서 짐 싸는 걸 도와주고 집으로 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도 적성이 아닌 거 같은데, 그만 두면 누가 나의 학원비를 대주며, 가족은 누가 먹여 살리나?  적성이 아니라도 이대로 취직을 해서 돈을 버는 편이 낫지.  좌우간 그 애의 용기에 감탄하고 그럴 수 있는 환경에 좀 부럽기도 했던 거 같다.

 

  이제 본격적인 전공 수업으로 들어가는 2학년이 되었다.  1학년 때 너무 외로워서 2학년부터는 써클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용기가 안 났다.  아니 내 맘속에 1학년 내내 열심히 하려 했으나 공부가 안되는구나, 하다가 친구 따라 한 써클룸에 갔는데 선배들이 너무 잘해주는 거다.  지금도 생각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대학 1학년 때 한 써클룸에 갔었는데, 선배들이 내내 자기 악기 연습만 하다가 가고, 내게 다정하게 말 한마디 안 건네서 그만둔 기억이 있다.  이 써클은 선배들이 왜 이렇게 잘 챙겨주는 거지?  자기들도 전공 공부하랴 무지 힘들텐데 말이다, 했다.  

 

  이 써클은 어설픈 사회운동 써클이다.  학과 공부와 학생 운동을 접목시킨 써클이라고 봐야 한다.  학생 때 내가 가지고 배웠던 모든 생각이 깡그리 잘못된 사고 였음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알을 깨고 나오려 했다.  그런데 반 쯤 나오다가 왜 나는 계속 이렇게 손해 보는 기분이 들까?  했다.  분명 학생 운동은 바람직한데 내 마음은 왜 이리도 완전히 그것에 공감할 수 없지?  이런 고민을 했던 거 같다.  즉, 나의 현실, 동생 밥 하나 못 챙겨주면서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들 뭐 한다는 거지?  뭐 이런 생각들이 맴돌았지만, 그동안 밥 한 번 한 적 없는 내가 동생 밥을 제대로 챙겨줄 리도 만무하고, 선배들이 잘 챙겨주고 에프터도 재미도 있고, 나름 당위성도 있고 해서 계속 했던 거 같다.

 

  그런데 이제 본격적인 3학년이 되어 전공 실습에 돌입했다.  난 영 실습과는 안 맞는 인간임을 그때 알았다.  실험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꼼꼼하게 시간대 별로 실험을 체크하는 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 나는 과학을 잘해서 적성인 줄 알았는데, 실험에 영 잼뱅이니, 이 쪽은 아닌가봐 했다.  그리고 전공 실습을 나가면 하는 일 없이 계속 여기저기 눈치 보며 서 있어야 하고, 케이스 하나를 잡아서 사람과 대화하고 레포터를 써야 하는데 영 그게 싫은 거다.  좌우간 난 인과 관계에 의해, 이래서 저렇게 되고 또 저러니 이렇게 된다는 과목이 재밌고 잘했다.  그런 전공이 뭐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학생 때는 학생 운동을 안하면 죄의식을 느꼈고, 땡볕의 야외 바닥에 7시간씩 앉아서 학생 운동을 하는 건 무지 힘든 일이었으니, 안 나온 친구에게 화가 났다.  나 혼자 힘드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의문은 들었다.  선배들은 좋고 고맙고 그런데도 왜 나는 그들에게 화가 나는 걸까?  그리고 이제 내가 선배가 되었으니, 그들만큼 후배를 챙겨줘야 하는데 왜 나는 그런 능력이 부족할까? 

  뭔지 모를 불만이 내 속에 차오르는데 그걸 선배들에게 가지는 건 잘못된 것임을 나도 알겠다.  내가 부정적인 인간이기 때문이겠지, 이랬다.

   

  지금에서야 그 이유를 알겠다.  그것은 가장 억압 당하는 존재인 '여자'인 내가, 어설프게 나보다는 덜 억압 당하고 있는 '민중'인 남자를 위해서 나의 삶을 희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원래 시민 운동은 약자끼리 뭉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약자를 위해 나도 희생해야지, 그런데 그 약자들은 더더욱 약자인 여자의 삶을 위해 뭘 희생하고 있지?  오히려 나의 도움을 당당히 받고는 (난 대학 때 민주노총 등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위해 약간의 힘은 보탰으니까), 그들의 권익이 발전하고 나아지자 도리어 여성을 억압하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대학 때 수도 없이 MT 가서 남녀가 어울려 잠을 잤지만, 성폭행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다른 대학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30년이 지났으니 그때와 강산이 3번 변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왜 여전히 여성의 억압은 가중되고만 있었나? 


  대학 때 한 써클 선배가 이론적인 밑바탕(사회학적 지식)이 부족한 스스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론에 통달한 사람보다 몸으로 실천하는 너 같은 사람이 훨씬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다."라고 위로를 했다.  과연?  했는데 이제는 그 말이 일리가 있음을 알겠다.  백날 머리로 시민 운동을 하면 무엇 할 것인가?  차라리 시위 현장에 하루라도 나가 주는 게 낫지.    

 

  그럼 다시 나의 옛시절로 여행을 떠나 보자.  이제 그렇게 부족해도 과를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해야 하는데 나의 동문들 대부분 붙는 곳에 합격이 안 되었다.  당연한 결과다.  실습도 열심히 하지 않았고 하니 말이다.  아 창피해, 다들 붙는데 왜 나만 떨어지냐, 그래도 좀 붙여 주지, 뭘 그렇게 야박하냐?  꼴랑 1-2명 떨어뜨리는 게 말이 돼?

 

  그리하여 다들 취직하고 참석하는 졸업식에 난 취직을 못하고 참가했다.  더더군다나 우리집에선 공부 잘하는 내가 이제 졸업만 하면 가족을 부양할 것으로 당연히 알고 있고, 나 또한 그래야 하는데 취직을 못했다.  어쩌나...  다른 곳도 모두 나이 제한이 24살이다.  즉, 졸업하자마자 취직 못하니 갈 곳이 없는 거다.  딱 2군데가 25살까지 공채에 응해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번에 떨어지면 끝인데 하니 면접 볼 때 덜덜 떨리는 거다.  자신의 장점을 물어 본다는데 나는 장점이 없는데 뭘 얘기하지?  이랬다.  그런데 다행히도 붙은 거다.  학벌 덕을 봤나 보다.  과연? 

 

  이제 그리하여 적성에 정말 안 맞는 거 같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  다행이다. 가족을 부양할 수 있고 나도 더러운 아버지 밥 불안하게 안 얻어 먹어도 된다.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거야말로 정말 지옥인 것이다.   적성에 안 맞는데다 학교 때 별로 배운 게 없는 일을 양 많게 해내야 한다.  학벌에 의해 피해를 본, 볼 거 같은 상사나 동료로부터 끊임없이 치이고 도움은 커녕 역차별 받았다.  아니, 우리 학교는 왜 현실에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과 전혀 상관 없는 실습을 시킨 거지?  다들 똑똑해서 잘하는데 나만 이런건가?  역시 적성에 안 맞아, 했다.  그런데 이제야 알겠다.  학생 때 실제적인 실습 시켰다면, 진즉에 적성에 안 맞는 걸 알고 다른 과로 갈 학생이 많았기 때문이겠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니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고, 직장을 다니자니 매일 밤 악몽을 꾸고 제 명에 못 살겠고, 그만 두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치도 않고, 자살 만이 방법인가?  내가 자살을 하면 가족들은 얼마나 비난을 받을까?  그럼 사고사로 위장하고 죽을 수도 있지만 죽을 용기도 없고,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은 뭐 먹고 사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으니 다닐 수는 없었다. 


   근무 조건이 너무 열악한데, 여자들은 하도 집에서부터 강하게 길들여져서 그 일들을 잘 해낸다.  근데 나는 할 수가 없다.  절대적인 노동량은 많은데 사람은 조금만 고용하니까, 누군가는 뼈빠지게 힘들어야 한다.  같은 동료인데 내가 편하려면 타인에게 일을 떠넘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몸이 힘드니, 정신적인 판단을 제대로 할 수도 없고, 일단 덜렁대는 내게는 안 맞는 일이다.  손으로 하는 노동에 열악한 신체 구조를 타고 났고, 꼼꼼하고 순간 판단력이 뛰어나야 하는 일인데, 어려서부터 급하고 덜렁대서 자주 주전자를 엎는 내게는 정말 정말 맞지 않았다.  그래서 타의반 자의반 관뒀다.  잘했다. 


  그곳을 그만두고 전철역에서 거리를 걸어가다가 하늘을 올려다 봤는데, 파란 하늘 아래 바람에 살랑대는 나뭇잎에 반사되어 부서지는 햇살이 왜 그리 아름답던지, 눈물이 났다.  자유란 이렇게 좋은 거구나, 참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서, 행복해서.


  그런데 이제부터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일단 돈을 벌어야 해서 삼계탕집에 알바를 시작했다.  그 삼계탕집은 도심 중심에서 제법 유명한 곳이었던 것 같다.  주인이 좋은 사람이라 시급도 좋았고, 식사도 거창하게 잘 먹었다.  삼계탕을 주 메뉴로 하는데 직원들은 주방장이 고등어 찌개며 나물이며, 고기며 반찬을 서너가지 해서 따로 잘 먹는 곳이다.  늘 주인은 그곳에 없었지만 직원들은 자기 일처럼 열심히 했다.  주인이 있거나 없거나 관계 없이 말이다.  점심 시간이면 뜨거운 삼계탕을 30그릇 이상 30분 내에 날라야 하는 곳.  그릇도 무겁고 덜렁대는 성격에 빨리 날라야 하니, 가끔 화상도 입었지만, 아침에는 냅킨 채우고 청소하고 그것도 힘이 들었지만 재미 있었다.  적성에 맞아서?  아니면 하루에 5시간만 근무 하니까?  난 다른 직업을 가질 거고 이곳은 잠시 머무르는 곳이니까?  잘 모르겠다.  좌우간 사장님도 더 있어 주기를 바랬지만 나는 정규 직업 즉, 공채를 봐야 해서 그곳을 그만두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안 좋아 보이던 아버지 직업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휴일 따박따박 쉬지, 독립적이지, 공채니 짤릴 일 없고 누구에게 잘 보일 일도 없고 말이다.  게다가 내가 읽고 싶은 책 맘대로 읽을 수도 있을 거 같고, 적성에 안 맞으니 다른 공부 하기도 좋겠고 말이다.  그래, 일단은 돈을 벌어야 하니, 이 직업을 가진 뒤에 내가 정말 원하는 다른 직업을 얻어야지.  이렇게 말이다. 


  그래서 정말 믿지도 않는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저번에도 취직만 하면 믿을 것처럼 기도해놓고 취직이 되니 입 싹 씻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어려서 다니다 만 것도 죄송하고, 우리 아버지의 교회에 대한 큰 불신도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취직만 되면 꼭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를 가고, 열심히 다니도록 약속합니다.  그랬더니 공채에 합격을 했다. 


  물론 위궤양이 엄청 심해서 공부를 못할 정도로 힘들었고, 누구보다 일찍 도서관에 도착하여 하루에 10시간씩 꼬박 앉아 공부를 했다.  누군들 그렇게 안할까마는.  그때의 내 결심이 합격만 하면 다시는 공부의 ㄱ 자도 안하리라.  그리고 다시는 굶지 않으리라.  절대 재래식 변기는 사용하지 않겠다, 이 세 가지였다. 


  기도와 노력이 빛을 보아 공채에 붙었다.   


  역시 인간에겐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  이제 돈을 벌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하니 재미가 있고 좋았다.  그래서 약간 업무에 불만이 있어도 불만이 있을 때는 열심히 해서 직업을 바꿔야지 했지만 딱히 이 전공을 가지고 취직할 곳이 없었고 대부분 나이 제한에 걸렸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곳은 나이 제한이 27세까지인데 지금껏 안하던 영어, 상식 이런 것까지 해서 붙어야 한다.  1년 만에 내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내가 취직할 곳 중에는 지금 있는 곳이 가장 조건이 좋았다. 


  그리하여 한 20년 이상 근무했나 보다.  그런데 요즘도 적성엔 안 맞아서 열심히 하진 않는다.  열심히 한다는 것?  승진에 목적이 있던지, 좋아하는 일이던지, 그도 아니면 상사의 등쌀에 못 견디던지, 그들이 조성하는 짤릴 거 같은 두려움에 동조하던지, 근데 난 그 중 어느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열심히 해야 된단다...  그럼 '열심히'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열심히'는 무엇인가?  무엇을 어떻게 열심히 해야 되는 거지?  좌우간 열심히 해보기로 하자.  지금까지 나는 내 직업을 가진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하게 하는 줄 알았다.  근데 보니 아니더라.  나처럼 열심히 안 하고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열심히 안해도 되는 줄 알고 뻣대는 사람은 나 뿐이더라.  그러니 주위에서 공격이 막 들어 온다.


  서비스(우리 직업이 서비스를 주는 곳인 줄은 몰랐지만 그렇다고 한다면)를 받는 자는 '당신은 00직업을 가졌는데 왜 00하지 않나요?' 라고 질문하거나 틱틱거린다.  그리고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은 우리 직업의 권익을 높여야 하는데 나처럼 열심히 안하는 사람이 걸림돌이다.  그러니까 또 '그렇게 적성에 안 맞고 이 직업이 싫어서 열심히 안할 거면 이제라도 그만 두세요!' 한다. 


  그래서 나는 그래, 난 이 직업에 오래 있을 것도 아니었는데, 이 직업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내 죄가 크다.  진작 이 직업을 박차고 다른 직업으로 갔던지, 아니면 이것이 적성이려니 하고 열심히 할 것을 말이다.  후회가 된다.  다 내 개인적인 잘못이다.  출근을 할 때는 마치 도살장 끌려 가는 소 같은 기분으로 20년 이상을 했는데도 그 사라지지 않는 기분. 


  그랬는데 최근에야 그것이 나 개인의 잘못이 아님을 알았다.  나는 이 직업에 있으면서 내가 다른 동료들과 동등한 입장인 줄 알았다.  그러하기에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명칭을 변경한다고 난리를 칠 때도 이 명칭이나 저 명칭이나 무슨 큰 차이라고 저러나?  했다.  그런데 이제서야 알겠다.  세상을 부분이 아닌 전체로 보게 되니 (작가는 세상을 부분이 아닌 전체로 보는 사람이라고 고 박경리 작가는 얘기했는데), 명칭과 자격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겠다. 


  그리하여 내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것은, 이 직업이 작가가 되기에는 아주 좋은 직종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격과 명칭이 얼마나 중요한 지, 내가 창작에 재능이 없음을 알게 되고도 이 직업에 열심히 할 수 없는 이유였다. 


  물론 개인적으로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전공에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스스로 열심히는 안하는 성격이다.  뭐 그리 재밌는 전공이라고 스스로 대따 열심히 하겠는가 말이다.

 

  사실 예전에는 몰랐다.  언제든 내가 갈아 타려고 하면 같은 장소의 다른 직업으로 갈아 탈 수 있는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조건을 충족하고도 나의 예상과는 영 빗나가는 현상을 보니 글렀다.  이 직업 자체가 그들의 밑에 있는 직업인데 내가 몰랐던 것이다. 


  그래도 별로 크게 문제는 안된다.  난 조금만 있으면 정년이고, 지금 이대로 편하고 좋으니까.  맨날 이곳저곳에서 따가리만 시키니까 따가리가 딱 적성이다.  이제서야 지난날 내가 했던 따가리들이 전혀 내가 할 의무는 없는 것이었구나 판단이 서지만 그대로 괜찮다.  다만 나는 이제 이 직업에 경험이 많으니, 내 직업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내게 이래라 저래라 안하면 좋겠다. 


  시민 운동을 얘기하다가 너무 멀리 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우리나라에서는 따가리는 영원한 따가리다.  그리하여 나는 선배들에게 원인 모를 불만이 많았던 것이다.  전공상 그들은 글이나 말로 하고 나는 실행하는 입장이다.  즉, 그들의 따가리다.  그것도 힘든 따가리 말이다.  몸만 움직이면 되는 것이 아닌,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정신적 고통까지 짊어지는 따가리다.  여자들이 많은 직업은 영원한 따가리 직업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등한 세상을 이루려면 그들은 우리 전공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옳았다.  즉, 해방이 안된다면 정당한 복지나 댓가라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이 없으니 말이다.  아울러 그들 또한 자기의 전공을 자기가 선택한 것은 아니니 접어두자.  다만 공부를 잘해서 재수 좋게 돈 많은 부모를 만나서 그 전공에 입성 했을 뿐이니 말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자, 나의 전공 나의 직업 내 존재 자체가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누구를 도와준다는 얘기인가?  같이 연대하자고?  연대했는데 그들이 배신을 한다면? 


  드라마 <송곳>을 보자.  사실 엄밀히 말하는 노조의 활동은 그 마트의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내가 그 마트의 손님이라고 가정해보자.  내가 손님이라면 나는 나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아무래도 관리자  편을 두둔하게 될 것이다.  송곳의 주인공는 중간 관리자다.  그 중간 관리자가 왜 마트 직원 편에 서야 하는가?  도덕적 당위성에 따라?  길게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함이다.  사장이나 윗 상사 편에 섰는데 나중에 자기도 해고의 위험을 당하게 되면 어떨까?  당장 해고 당하지 않는다고 다행이라 여기며 마트 직원을 해고하는데 앞장서야 했을까?  그것은 주인공 맘이겠지. 


  그럼 그 드라마에서 관리자도 중간 관리자도 마트 직원도 아닌 나는?  나는 다만 물건을 사는 소비자다.  당장의 나의 이익은 관리자 편이 낫다.  왜냐하면 노동자 편에 서게 되면 비용이 증가하고 그 비용은 다시 소비자인 나에게 부담으로 오기가 쉬우니까.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노동자 편을 드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도덕적으로도 나의 직업에 미칠 영향에 따라서도 그 편이 나으니까.  즉, 둘 중 더 부당한 쪽, 주인공이 노동자를 선택했듯이 여기서는 관리자가 지나치게 나쁘니까 노동자 편에 서야 할 거 같다.  하지만 보다 현실적으로 이런 일에 부닥친다면, 아마 나는 다른 마트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에게도 꼭 좋은 선택은 못된다.  그리하여 프랑스 마트 기업이 예전에 자기 나라로 여기 사업을 접고 돌아간 사례가 실제로 있지 않은가.  


  참 복잡해진다.  이제는 글로벌한 세상이 되어 만일 우리나라에서 노동자의 봉급이 올라간다면, 관리자는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될 것이다.  그러니 더불어 도덕적으로 함께 잘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즉, 시민 운동은 어렵다는 말이다.  특히 내 자식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도록 노력하는 개인들이 많은 우리나라는 말이다.  그럼 시민 운동의 방향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 


  명분이다.  서로 다른 이익 집단들이 가장 합리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명분.  그 명분을 향하여 부분 집단들의 이익을 접어두고 함께 움직일 때 시민 운동은 가능하다.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내세우고 또 다른 이익 집단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그 시민 운동은 결합하지 못하고 흩어져 힘을 내지 못한다.  내 집단의 나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다른 사람을 끌어 들일 수 있나?  그것이 위선이 아니라 정당할 때 사람들의 힘이 실어질 것이다.  


  이제 남녀 모두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생각하듯이 정말 여자의 권익이 신장되어 남자가 역차별 받고 있는 시대인가?  

  사회 초년생일 때, 아니 최근까지도 나는 페미니즘이라면 왠지 거부감이 들었었다. 

지금까지 계속 여자만 있는 곳에 몸 담아서 '아 내가 여자만 있는 직업이 아닌 전공이나 직업을 선택했다면 차별 받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즉, 집에서도 동등하게 양육 받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여자만 있는 곳에 쭉 있었으므로 차별 받은 적이 없는데 무슨 남녀 차별 철폐를 외치나?  그런 생각으로만 있었다. 


  그런데 이제 생각하니 나의 불행은 그 근본에 남녀 차별이 가장 크게 깔려 있는 것이다.  여자만 있는 직업이니, 동료끼리는 차별이 없어도 이미 남자가 있는 직업보다 후진 대접과 계급적 차별을 같은 직장인 모두가 당하고 있는 셈이었다. 


  즉, 이전 직장에서도 그런 부당함을 느꼈지만, 그 직업을 가진 모두가 그 부당함을 감수하고 살아가는데 혼자서 무슨 투쟁을 하겠는가?  차라리 그 직업을 벗어나는 편이 낫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공은 평생 쫓아 다닌다. 

사람들은, 세상이 바람직하게 적성에 맞는 전공이나 직업 선택에 도움을 주지 않았는데도 그 전공을 가진 사람은 다 그 직업이나 전공에 능통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도움을 청한다.  잘하지 못하는 일이라 한 두 번 거절하고 나면, 인간 관계마저 어려워지는 것이다. 


  물론 나라는 인간 자체가 대인기피증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적성에 맞는 전공을 가지지 못했으니, 비슷한 사고를 하는 사람과 친구가 될 확률이 적다.  동료도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서로의 자격 조건이 달라 동등하지 못한데 친구가 되기는 힘들다.  진정 힘들 때 배신을 경험하게 되므로.  


  이제 나는 남녀 차별 철폐의 선두에 서고 싶다!   시민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여, 누구보다 억압 받는 여성의 직업적 불평등을 개선하는데 앞장 서라.  진정한 혁명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 시대 가장 부당한 직업적 대우를 받는 사람은 여성들이다.  여성이 많은 직업이 가장 조건이 열악하다.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면 그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성 노동자, 여성이 많은 직업 조건이 가장 열악하다.  그것이 개선된다면, 당장은 손해인 듯 싶지만, 당신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해진다.  당신의 부인, 아이, 누이의 삶이 달라지고 그 행복은 당신의 부담을 덜어신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혼자 사는 남자라고?  그래도 당신이 노동자라면 그 조건의 개선은 연이어 당신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나는 관리자라고?  당신에게도 딸과 부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보라.  가장 억압 받는 곳에서 뚫고 나와야 올바른 시민 운동이다.   그것이 보다 인간적인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