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금의 땅 21회> (필사)
1. 세운당 집 외경 (낮)
새소리 들린다.
기와집 외부 담벼락에서 눈이 약간 쌓인 지붕으로 이동하여 기와집 전경이 보인다.
2. 세운당 부엌 (낮)
순금모, 부엌문으로 쌀 씻는 물이 담긴 양재기를 들고 들어와 선반에 놓고 힘든지 이마의 땀을 닦는다.
진경모 ; (뒤따라 들어와 순금모 옆으로 오며) 냅둬라. 내가 하마. (서서 한복 소매를 접는다)
순금모 ; (보며 공손하게) 아니예요.. 저.. 괜찮습니다.
진경모 ; 그러다 애라도 흘리면, 그 원망을 누가 다 듣게에.. 내가 옴팡 뒤집어 쓸거 아냐.
순금모 ; 저.. 미자.. 향자는?
진경모 ; 주막에서 퍼 잔단다. 대문 앞에서 밤새 곡을 해도 내가 봐줄까말깐데, 한시간도 못버티고 쪼르르 가? 츳. (행주로 도마를 훔친다)
순금모 ; 아직 애들이잖아요..
진경모 ; (순금모 인상쓰고 보며) 이 사단이 누구 때문에 났는지 몰라아? 이거 다 너때문이야아.. 미자 고년이, 니가 약장수랑 도망치려고 했던걸 다 꿰고 있더란 말이다아.. 그걸 내가 그냥 놔 둬어?
(E) 덕구모 ; 마님, 마니임!
진경모 ; 아휴우.. 터진 콩자루 또하나 오네. 이걸 어떻게 틀어 막어어?
조리로 쌀을 이는 순금모.
덕구모 ; (뛰어 들어와 둘 사이에 서서 민경모의 행주를 뺏어 들며, 큰소리로 과하게) 아이구우, 이리 주세요, 이리 주세요. 아이구 주막에 갔더니, 그것들이 그냥 떡하니 누워있잖아요. 혼온비백산해서 뛰어오는 길입니다요.
진경모 ; 그것들이 왜 쫓겨났는지 말해에?
덕구모 ; 미자 그것이 또 뭐라고 헛소릴 했겠죠. 전 절대로 안 그래요오. 아시죠오?
진경모 ; 두고보면 알겠지. (돌아서 가며 순금모에게) 너도 얼른 들어가라아.
덕구모 ; (진경모 뒷모습에 인사하며) 들어가세요오.
조리를 놓고 앞치마에 손닦으며 들어가는 순금모.
덕구모 ; (순금모 앞을 가로막으며) 저 아씨, 댁에 경사가 났다면서요? (순금모 손을 잡으며) 애기 가진 거 감축드려요오, 아씨이..
순금모 ; (난감한 표정으로) 네에 그럼 수고해 주세요.
덕구모 ; (꾸벅거리며) 예예, 예예, 예에. (도마쪽으로 급히 와서 도마 옆에 그릇에 담긴 반찬들 보고, 뒤로 돌아 손짓으로 부르며) 덕구야아.
뛰어 들어와 덕구모 옆에 서는 덕구.
덕구모 ; (숟가락 빼들고 옆의 콩자반을 떠서 덕구의 입에 넣어주며) 자아, 아아 해봐. 흐흐흐흐.
먹고 입이 불룩해져서는 표정이 밝아지는 덕구
덕구모 ; (한술 떠서 자기입에 넣고 씹어 먹으며) 달콤짭잘한 게 기가 맥히지이?
덕구 ; 향자는, 맨날 이렇게 먹으면서, 왜 자꾸 집을 나간다는 거야아?
덕구모 ; (계속 먹으며) 흐흐 흐흐, 흐흐 흐흐.
3. 주막의 방 안 (낮)
나란히 누워 있는 미자와 향자.
주모 ; (방문 열고 들어와 서서) 해가 중천이다아. (발로 이불을 차며) 일어들 못 나? 으이그 으이그 으이그,,, 이렇게 게을러 터지니, 쫓겨난 거지.
향자 ; (일어나 앉아) 우리 언니 게을러서 쫓겨난거 아니예요. 말이 많아서 쫓겨난 거지.
주모 ; 어이 또 뭔 헛소릴 지껄였는데?
미자 ; (일어나 앉아, 혼잣말로) 아니 진짜 내가 맞는데에,.. (주모 보며) 저기.. 약장수 아저씨, 뭐 수상한 거 없었어요?
주모 ; 약장사고 고물장수고, 개성양반까지이.. 어디 술독에 빠졌는지, 통-- 들오질 앉는다. 너희들, 밥 얻어 먹을려면, 나와서 일 해, 어? 빨리 나와아. (나간다)
미자 ; (혼잣말로 갸우뚱하며) 이상하다아. (다시 이불 덮고 눕는다)
향자 ; (이불 흔들며) 얼른 나가봐아, 언니이이. 이 상황에서 잠이 오니이? 잠이 와아?
미자 ; (옆으로 누워) 자는거 아니고 생각하는 거야.
순금 ; (방문 열고 들어와 방문 앞에 서서) 향자, 일났으먼.. 지방 쪼까 오더라고오..
향자 ; (밝은 표정으로 보며) 왜에? 우창오빠 나 찾아?
순금 ; (고개 끄덕이며) 이이.
4. 순금방 (낮)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 생각에 빠진 우창 모습.
5. 세운당 사랑방 (낮, 회상)
우창 ; (의자에 앉아있는 세운당주 앞에 서서) 혹시 간밤에 집부칠 일 안하셨스니까아?
세운당 사장 ; 난 어제, 안사람이 아파서, 밤새 그 옆에 있었는데에.
우창 ; 틀림없이니까아?
세운당 사장 ; 읍네 의원에 가서, 확인을 해보려무나.
6. 순금방 (낮)
생각에 잠긴 우창 모습.
문 열고 들어와 앉는 향자와 순금.
향자 ; (무릎꿇고 앉아 우창 보며) 오빠, 나 왔어. (순금 보며, 자랑하는 목소리로) 순금아, 그거 알아? 접때에.. 나 집 나갔을 때도, 우창 오빠가 금촌까지 와서, (자신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치며) 날 찾아냈잖아아.
순금 ; 그려어?
우창 ; (향자에게) 물어볼게 있는데.
향자 ; (밝은 미소띠고) 응? 뭔데?
우창 ; 잘 기억해봐. 그믐날밤에, 세운당 사장님이, 언제 나가서 언제 들어오셨는?
향자 ; 기억하고말고, 할 게 뭐있어. 설거지 하느라고 한창 바쁜데에,, 새아씨만 쏙 빼가지고 나가셨다가, 담날 아침에 와서어 마님이 난리를 치셨지.
순금 ; 뭔일루다가?
우창 ; 아씨 모시고.. 병원에 댕겨온게 맞구나아.
향자 ; 오빠도 아네? 우리 아씨가.. 애기를 가졌는데, 그게 잘못될까봐, 입원했던거래에.
순금 ; 오메에.
우창 ; 고맙다. 그만 나가봐아.
향자 ; 나, 그냥 가?
우창 ; 주모 아주마니한테, 따순물 달라해서 세수해라아.
향자 ; 아 (눈의 눈꼽을 떼고, 나간다)
순금 ; 긍께에.. 세운당 사장님은, 이 일하곤 아무상관이 없네에?
우창 ; 으음.
순금 ; 그라믄.. 근데 여그 와서 아저씨를 데리고 나갔던, 그 아저씨를 찾는 수밖에 없겄구먼..
우창 ; 나랑, 같이 찾아줄수 있는?
순금 ; 그람 혼자 갈라고 헌겨어? 얼굴 본 사람이 나뿐인디? (뭔가 생각난 표정으로) 아참, 또 있다.
7. 골목길 (낮)
넝마에 휴지를 집어넣으며 골목길을 나란히 걸어오는 정수와 영수
정수 ; (휴지를 집게로 집어 뒤에 진 큰 광주리에 넣으며) 며칠 잘 놀았으니끼니, 열심히 일하라우.
영수 ; 며칠은 무순.. 겨와 이틀 놀아놓코.
순금 ; (약간 떨어져서 손을 흔들며) 정수 오빠아!
정수, 미소 머금고 손을 흔든다.
영수 ; (정수 보며 놀리듯) 좋댄다아..
순금, 우창, 달려와서 정수 영수 앞에 선다.
순금 ; (달려와 정수영수 앞에 서서 영수에게) 꼬마야, 부탁이 있는디..
영수 ; 뭔데?
우창 ; (순금과 나란히 서서) 으음.. 그믐날밤에 만난 아저씨 있잖아아?
영수 ; 형 아바디 델고 간 사람?
우창 ; 응. 아무래도 그 아자씨를 찾아야 하는디..
정수 ; 유난 떠누나야아. 니 아바지래 집나간게 한두번이네에? 국으로 동구밖에서 기다리다 보먼 오시갔디이.
순금 ; (안타깝게) 아녀어.. 요번에는 쪼매 다르당게에.
영수 ; 혹시 북에 넘어가셨을까베 기카네?
정수 ; (영수를 머리를 쥐어박으며) 잡히가고 싶잖으먼, 기딴 소리 하지도 말라 했디이.. (시묵룩한 어조로) 우리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한가하게 사람 찾아 돌아댕길틈이 있나말.
우창 ; (고개 숙이며) 그말도, 맞다아..
순금 ; 아아따 뭔 남자가 요러크럼 말이 많댜아? 혀 줄거면 시원스레 혀 주지이?
정수 ; (당황하여 크게) 내레 언제 안한다 했니이? 날레 가자우. (간다)
영수 ; 가자우. (따라 간다)
뒤따라 가는 순금과 우창.
8. 세운당 안방 (낮)
상을 사이에 두고 둘러 앉은 세운당 사장과 진경모, 진경.
상 차려두고 나가는 덕구모.
진경모 ; (국 한술 뜨며) 두 상 차리기 뭐해서 겸상했으니, 언짢게 생각하지 말게.
세운당 사장 ; (밥 뜨며) 저 상투 얹고 다니는 사람 아닙니다.
진경 ; 엄마, 빨랑 해운 아저씨 보내서, 미자 언니 오라고 해, 음?
진경모 ; 아랫것들 부리는게 그렇게 쉬운건 줄 알어? 상전 무서운걸 보여줘야, 허튼짓을 못하는 거야.
진경 ; 네에. 나 새언니한테 가봐도 돼?
진경모 ; 아유 안돼에. 새언니 힘들어.
세운당 사장 ; 가봐.
진경 ; (밝게) 네에. (간다)
진경모 ; 으음, 애지중지하던 아내가 대를 잇게 됐으니, 얼마나 사랑 겨울꼬? 근데 왜 사랑채에서 잔 겐가아?
세운당 사장 ; 제 눈치 그만 살피시고 식사 하세요.
진경모 ; 새아기는 내가 곁에 붙어서 딱 지킬테니까 안심하시고. 인옥인 어떻게 처리하기로 했나? 내가 신경 안 써도 되는 거지?
세운당 사장 ; (숟가락 탁 놓으며) 그냥 내버려두세요, 별일 없을 겁니다.
진경모 ; 그게 무슨 소리야? 자네 그것이, 왜 새애기랑 친구가 됐는지, 알고나 하는 소린가? 저 발칙한 것이, 그 약장수딸이랑 치마폭에 품고 있던 이유가 뭔지 아냐고? (별 동요없이 밥 먹고 있는 세운당 사장을 보더니) 이미 알고 있던 게로구만. 그런데도 인옥이가 드나드는걸 허락을 했다아? 대체 무슨..
세운당 사장 ; (밥 다 먹고 일어서며) 먼저 일어납니다아.
진경모 ; (벽에 걸린 남편의 초상화를 보더니) 그 애비에 그 아들이라더니.. 니놈도 속이 시커멓구나.. 허어.
9. 순금모 방 (낮)
이불을 덮고 앉은 순금모, 그 앞에 작은 상이 놓였고, 맞은 편에 진경이 앉아 있다.
진경 ; (숟가락 꽂은 죽그릇을 들고 식혀서 순금모 앞에 놔주며) 언니, 좀 들어요. 언니가 먹어야 뱃속에 아기도 먹지이.
순금, 한 숟갈 떠서 먹으려다가 헛구역질 한다.
진경 ; (놀라서) 언니 왜그래? 엄마, 엄마아! (급히 나간다)
10. 안방 (낮)
진경 ; (급히 문 열고 들어오며) 엄마, 새언니가 막, 윽 토해. 빨리 가봐아.
진경모 ; 요란 떨거 없어어, 입덧 하는 거야. (상 맞은 편에 앉은 덕호모에게) 저방에 동치미 한사발 들여주게.
덕구모 ; (호들갑스럽게) 차라리 수정과를 들여갈까요? 아니, 둘다 들여 갈까요?
진경모 ; 남으먼 아들 먹이게? 뭐 그러던지이..
덕구모 ; (웃으며 손사레치면서) 아 하하, 아유 마님도 무슨 그런 농담을, 흐흐흐. 아유참.. (상 들고 나간다)
진경 ; (앉아서 뚫어지게 보며) 엄마, 입덧은 언제까지 하는 거야?
진경모 ; (방 훔치고 시선 피하며) 사람마다 다르지이.
진경 ; 엄마는 어땠는데?
진경모 ; (보며) 나? 나야 너무 심해서 친정 가서 낳았잖아.
진경 ; 나 낳을 때.. 많이 아팠어, 엄마?
진경모 ; 말이라고 해에.
진경 ; 어떻게 아팠는데? 식중독보다 더 아파?
진경모 ; 땡크가 배 위로 지나가는 거 같았지. (생각에 빠지는 표정)
11. 진경모 친정 방 (낮, 회상)
이불 덮고 누워서 천장의 끈 당기며 힘주는 인옥(으윽, 으윽).
다리 자락에 한복 곱게 입고 앉은 진경모.
중간에서 이불자락 올려 보며 해산을 돕는 여자.
여자 ; 그래, 그래, 조금만 더. 아 그래. 옳지, 옳지, 옳지.
아기 울음소리.
끈을 놓고 털석 눕는 인옥.
여자, 아기를 안아 올린다.
진경모 ; (여자 보며) 뭐야?
여자 ; (아기 보더니) 딸이네에. (인옥에게 아기 보여주며) 잘 봐 둬..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거야.
인옥 ; (땀이 범벅된 얼굴로 힘없이) 무슨.. 말씀.. 이세요?
진경모 ; 인옥이 너 잘 들어라. 애는 내가 낳은 거야. 넌 다시 볼 생각 하지 마라.
인옥 ; (일어나 앉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아아, 안돼요. 애만 여기서 낳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여자 ; (민경모 보며) 귀운 언니, 다시 생각해에.. 천륜을 어떻게 끊어어?
진경모 ; 상관 없어. 난 일단 호적에 올라야 돼. 그럴려면 자식을 낳아야 되고. 인옥아, 영감 죽으면 다시 너 줄게. 그때 찾아. (아기를 받아 안는다)
인옥 ; (필사적으로) 안돼요! 마님, 마님, 우리 애기, 우리 애기 돌려주세요! (고개를 가로젓는다)
진경모 ; 세운당 씨를 종년이 낳았다면 가만 둘 거 같애? 어차피 너는 못 키워. 내가 잘 키워줄게. (아기 안은 채 일어난다)
인옥 ; (절실하게) 안돼, 안돼, 안돼!
12. 안방 (낮)
생각에 잠겼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표정의 진경모.
진경모 ; (진경에게) 아이 머리가 왜이렇게 헝클어졌어어? 일루 와봐. (진경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유우.. (진경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보며 웃는다)
마주 보고 미소짓는 진경.
13. 술집 홀 (낮)
커피잔 들고 마시는 인옥.
쎄리 ; (돈을 세다가 멈추며) 어? 얼추 만원이 비네에. 이게 어디 갔지이?
인옥 ; 김봉달씨가 주어서 내뺐잖아아.
쎄리 ; 하하 아휴참. 정수복이는, 지여자 남편한테 받은 돈을 하늘에 대고 뿌리는데.. 그 와중에 돈을 주워가아?
인옥 ; (커피잔 들고) 줏은 사람이 임자라며.. (커피 마신다)
쎄리 ; 이거야, 니 몸값이니까아. 정수복이이.. 취하니까 멋있데에. 바가지 쓰는 거 뻔히 알면서도 돈을 성큼 내주고. (돈 챙기다가) 너 죄받아 이년아아.. 순금이 생각해서라도 그럼 안되지이. 십년을 못만난 사람들을, 중간에서 그렇게 이간질을 시키니?
인옥 ; (단호하게) 나까지 세운땅에서 쫓겨날수는 없어. (커피 마신다)
목도리 두르면서 문 열고 나오는 순금부.
쌔리 ; 하이 오빠아. (일어서서 순금부 보며) 해장해야지이. (순금부의 손을 잡는다)
순금부 ; 잘 놀고 갑니다이이.. (목도리를 두른다)
인옥 ; 정수복씨, 간밤에, 돈 말이예요..
쎄리 ; 인옥이 몸값 갚아준거.. 생각나요오? 그거 취소 안하는거지? 돈 좀 남았는데.. 돌려.. 줄까?
순금부 ; 넣어두시요오. 한푼도 받을맴 없응께에.. (나간다)
안스러운 표정의 인옥.
14. 기지촌 골목 (낮)
걸어오는 순금부, 멈춰 서서 생각한다.
15. 마을 (밤, 회상)
순금모 ; 이 구멍난 옷들, 내가 다 꿰매줄 수 있어요. 내일.. 저녁에 금촌 정거장에, 버스정거장에 가 있을께요.
16. 마을 (낮)
세운당 사장 ; 그사람은 집에서 나온 적 없습니다.
17. 술집 (밤)
인옥 ; 그리고, 순금이 양육비래요.
순금부 ; 이건.. 뭣이여?
인옥 ; 그냥 이돈 받고, 조용히 사라져주길 바란답니다.
순금부 ; 그..그랄 리가.. 그랄 리가.. 대체 왜에?
인옥 ; 임신을 했어요. 한치수씨 아이를.
18. 기지촌 (낮)
분노한 표정으로 가슴을 치는 순금부, 뭔가 생각난 듯 급히 간다.
19. 세운당 사랑채 (낮)
일어서는 세운당 사장.
마주 선 순금부.
세운당 사장 ; 우리가 더는 만날 일이 없을줄 알았는데.
순금부 ; 그짝이 준 돈은.. 잘 썼구만이라아. 기지촌에 가서어.. 잘 묵고, 잘 놀았시다.
세운당 사장 ; 그 돈을 다아? 그게 어떤 명목인지 몰랐소?
순금부 ; 내딸, 양육비라고 들었는디이.. 그 더러운 돈으론, 양말 한짝도 사주기 싫은께에.
세운당 사장 ; 어이없군. 그돈은 나한테도 큰돈이야. 내가 그 돈을 뭣땜에 줬겠소?
순금부 ; 돈 받고 떠나라아? 허어. 근디 어쩌나아? 그돈을 몽땅 써버렸응께, 빚 다 갚을때까정은, 못 떠날거 같은디이..
세운당 사장 ; 지금 나랑 말장난 하자는거요?
순금부 ; 댁맨키로 가진 사람들은, 돈지랄하다 안되먼 매질이라는디이.. 이집 마당서 이미 곤죽으로 맞아본 적도 있고오.. 뭐어, 한번 더 당해보지라아. (돌아선다)
세운당 사장 ; 그래, 누가 먼저 나가떨어지나 해봅시다.
순금부 ; (돌아서서) 아참, 그라고오.. 개성 강씨가, 행방이 묘연헌디.. 혹시 아는거 없나 해서라아.
세운당 사장 ; 북한에 가자말자 하다가 중간에 치워버리지 않았소? 강선생이 그전에 북쪽으로 보냈던 사람을 다시 만나서, 둘이 같이 움직인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날 의심하는 겁니까?
순금부 ; 허기사, 이런디서 사시는 분이, 뭐 급한 일 있다고, 그런일까지 허겄습니까아.. (돌아서 나간다)
입이 마르는지 입술을 손끝으로 훔치는 세운당 사장.
20. 세운당 마당 (낮)
마당에 내려서서 사랑채를 돌아보다 가는 순금부.
마당에 서 있는 해운.
덕구모 ; (마당으로 나오며 나가는 순금부 뒷모습을 보다가 해운에게) 약장수가 뭔일이래에?
해운 ; 상관 말고 댁에 일이나 하슈우.
21. 약제상 앞 골목 (낮)
골목을 돌아 나오는 아이들.
정수 ; (맨 앞에서 오며) 백운강 강바닥에서 과자 찾기 아임..
우창 ; (약제상 앞에 서서) 니들 여기 잠깐 있어. (약제상 앞에 서 있는 주인에게) 어르신, 말씀 좀 여쭙계시다. 여기서, 혹시 개성 사람이 홍삼 팔러 온 적 없시니까?
약제상 주인 ; 홍삼? 홍삼 귀해진지가 언젠데, 누가 그걸 팔러와?
배레모 쓴 남자, 골목에서 나와 약제상을 본다.
우창 ; 세운당 사장님이, 홍삼을 사러왔다고 들었시다. 그때 같이 왔던 사람, 기억허십니까?
약제상 주인 ; (손사레 치며) 아이구 몰라, 엊저녁일도 가물한데, 뭘 자꾸 캐물어!
순금 ; (앞으로 나서 공손히 인사하고) 아저씨, 중-요한 일인께, 쪼까 생각을..
약제상 주인 ; 어여들 가지 못해!
힘없이 가는 아이들.
보다가 반대쪽으로 가는 베레모 쓴 남자.
22. 주막 (낮)
덕구와 진경, 걸어온다.
덕구 ; (반갑게) 향자야!
마루에 나란히 앉아 있는 향자와 미자.
진경 ; 우리엄마 엄청 화났어. 여깄으면 어떡해?
미자 ; 그럼 어째에. 쫓아내는데..
진경 ; 용서해줄 때까지 대문 앞에서 빌었어야지.
미자 ; (주머니에 손 넣고 의기양양하여) 그래도 내가 없으면 안될꺼얼.. 새아씨도 애기 가졌겠다.. (민경 보며) 쫄쫄 굶지는 않았어?
덕구 ; 울엄마가 가서 밥 했는데.
향자 ; 뭐어? (발 구르며) 아휴우..
진경 ; 어떡할거야? 덕구네 엄마가 밥도 해주고, 우리 엄만 더 화났구. 언니랑 너두, 피난민촌 가서 살아야 되는거 아니야?
덕구 ; 세운당은, 먹을 것도 널렸고, 엄-청 좋더라. 향자가 살던 방은, 내가 써야지.
진경 ; 향자는 맨날 집 나간다더니, 소원 성취 했네. (돌아서 가는 덕구와 진경)
향자 ; 그래, 우리 당장 금촌 가서, 빠스 타고 부산으로 갈거야. 어이 얄미워. 독고독고 멍멍 독고.
미자 ; 쟤네 엄마가 진짜 우리집 식모하면 어떡하지?
울상인 향자.
23. 주막 앞 마을 (낮)
진경 ; (덕구와 나란히 걸어 나오며, 미소띤 채) 우리가 너무 약을 올렸나?
덕구 ; 향자 걔는, 좀 당해도 되에에. (걸어오는 쎄리를 발견하고 서서) 어, 빨강머리다.
뭔가를 찾는듯 핸드백을 손에 들고 두리번거리며 걸어오는 쎄리.
쎄리를 빤히 보는 진경.
쎄리 ; (자신을 보고 섰는 민경과 덕구를 보더니) 사람 구경, 처음 하나? 여기 김봉달씨 집이 어디니?
덕구 ; (팔 뻗어 검지를 펴서 앞을 가리키며) 저기요. 근데 아줌마, 양공주예요?
쎄리 ; 허, 그래서?
덕구 ; 어 저는 전방집 아들이구요, 얘는 세운당 딸이예요.
쎄리 ; (진경을 보더니) 어허 너구나아아... 쏙 뺐네에에.
진경 ; 그게 무슨 말이예요?
쎄리, 돌아서 가버린다.
덕구 ; (진경 보며) 쏙 빼다니? 저 아줌마가 너네 엄말 아는거야?
진경 ; (기분 안좋아서) 그럴 리가 있어?
24. 김봉달 방 (낮)
초록색의 군대 담요 중앙에 모여 있는 지폐에 화투패를 던지는 사람.
김봉달 ; (화투패 던지며 신나서) 구삥
도박패 1 ; (화투패 던지며 속상해서) 어이구
도박패 2 ; (화투배 던지며) 어이구 죽었어, 죽었어. 아이 왜이래에, 정말.
김봉달 ; (웃으며 돈을 쓸어온다) 해해해햇 해해해
쎄리 ; (문 열고 들어서서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한심한듯) 에휴우.
김봉달 ; (놀라서) 뜨아아아.
쎄리 ; (앉아서) 으이그, 잘한다, 잘해에.. (담요를 걷어 업는다)
김봉달 ; 아 참, 한참 따고 있는데, 왜이래에?
도박패 2 ; 아이 이여자가 진짜아 이..
쎄리 ; (옆의 도박패에게 삿대질하며) 나가서 밥 안먹어? 똥안싸?
도박패 2 ; 가자구우. (도박패1과 함께 일어서 나간다)
도박패 1 ; (일어서며) 음, 어이그.
김봉달 ; 어이 그, 여편네가 남자 혼자사는 집을 쳐들어와서 진짜..
쎄리 ; 아이그 아이그, 방꼬라질 보니까, 정이 딱 떨어진다아.. 어? 정수복씨가 뿌린 돈을 주워다가 겨우 노름이 하고 싶어어?
김봉달 ; 그러는 자기는? 뭐어? 캐시 몸값이 오만워언? 헤이구, 솔직히 말해보슈, 만원도 안되지? 그돈을 꿀꺽 삼켜놓고, 무신..?
쎄리 ; (말 돌리며) 으음, 아 수복씨, 작정하고 인생 막나가기로 한거 같은데.. 성님이라는 사람이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에, 그래?
김봉달 ; 내가 오죽하면 이럴까아? 내가 괜히 세운뜰에서, 에레나를 봤다는 말을 해가지고, 착실히 약장수하는 사람을 끌어들여가지고오.. 이꼴저꼴 다 겪게 하고. 하유우, 내가아.. 놀음이라도 해야지 잊어버리지, 이 맨정신엔 못산다니까아...
25. 마을길 (낮)
걸어가는 아이들.
영수 ; (광주리 메고 맨 뒤에 가다가 배를 잡고 주저앉으며) 아앗!
정수 ; (앞서 가다가 우창과 함께 돌아보며) 와이카니?
순금 ; (앉아서 영수를 잡으며) 워디가 아픈겨?
고개 끄덕이는 영수.
순금 ; (걱정되어 울먹이며) 워쩐댜아.. 뭣을 잘못 묵었나아?
영수 ; (아픈데 참고 있는 힘준 목소리로) 내레, 실컷 먹고 배 아파보는 거이 원이었었는데.. 너무 아프다아..
우창 ; 많이 아프은?
정수 ; (선채 인상쓰며) 다리 아프니께니, 엄살부리는 거이네?
영수 ; (쩔쩔매는 목소리로) 다리가 아이고 뱃때지가 아프다니께니..
정수 ; 설이라고 보이는대로 다 먹어대디만.. (고개를 돌려서 먼 곳을 가리키며) 가서 똥이나 싸라아우.
순금이 부축하고 영수 일어서 걸어간다.
26. 술집 홀 (낮)
영수 ; (배를 움켜쥐고 종종 걸음으로 들어와서 탁자를 닦고 있는 인옥에게) 캐쉬, 여기 밴소가 어딤매? 아..
인옥 ; 나가서, 오른쪽으로 돌아가아.
영수 ; (배를 움켜잡은 채) 으, 뱃때지야아. 아.
인옥 ; (영수에게 한쪽을 가리키며) 저 빈병 모아놨으니까, 갖고 가. 밥은? 먹었어?
정수 ; 번번이 고맙수다. 아주마이래, 세운당에서 식모 살았다는기, 사실입미까아?
인옥 ; (영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헤이 맨, 여자 과거는 캐는 게 아니거든..
정수 ; 그집 마님이 고약스럽긴 한 모양입미다아. 정초부터 식모를 쫓아냈답미다. 밴소에 뒤딱게가 있을라나..
인옥 ; 어 (조금 걸어 다른 탁자에서 신문지 한 장을 주워 정수에게 건네며) 이거 갖고가.
정수 ; (신문지 받아 나가며) 예에.
생각에 빠진 인옥 얼굴. 뭔가 생각난듯 급히 뒤돌아선다.
27. 세운당 집 대문 앞 전경 (낮)
새소리.
28. 세운당 안방 (낮)
진경모 ; (놀라서) 뭐어? 니가 우리집 식모를 하겠다구?
인옥 ; 네에, 제가 할께요. 저 시켜주세요.
진경모 ; 너 미쳤구나아?
인옥 ; 저 바라는거 없어요. 엄마소리 듣겠다는 것도 아니예요. 마님이 진경이엄마 하세요. 전 그저.. 밥이나 해주고 빨래 해주고, 한울타리안에만 있게 해주세요.
진경모 ; 뭐어?
인옥 ; 정말 죽은듯이 살게요, 마님 몸종이 돼서 죽은듯이 살게요.
진경모 ; 넌 내가 밉지도 않니이? 나같으면 잡아 죽일텐데..
인옥 ; 그래서 뭐하겠어요, 제가 지금 이모양 이꼴인데.
진경모 ; 허, 어림없어어. 내가 넘어갈줄 알았니이? 건넌방에 쳐들어가서 안되니까 사랑에 들구, 이제는 부엌을 차지하겠다아? 누구 맘대루. 당장 나가.
인옥 ; 사랑에 허락받으면, 되나요?
진경모 ; 너 대체.. 한사장을 어떻게 녹인거니이? 겉으론 새애기 친구인척 하면서, 뒤통수 치고 있는거냐? 허어, 건넌방부터 가봐라아. 아무것도 모르고 너만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29. 마당 (낮)
마당에서 국그릇 하나 들고 조심스럽게 마루쪽으로 걸어가는 덕구모.
안방에서 나와 마루를 지나 건넌방에 들어가는 인옥.
해운 ; (쪽문에서 마당으로 걸어 들어오며, 덕구모에게 헛기침으로 주의 준다) 허엄.
덕구모 ; 아하, 아이구 저.. 새아씨 입덧하나 어쩌나.. 해서어...
해운 ; 들어가 일이나 해요.
덕구모 ; (해운에게 쪼르르 다가서며) 아저씨, 저기 지금 들어간 거 인옥이 맞죠? 아, 마님께서 그렇게 질색팔색하시는데, 어떻게 안방 건넌방을 지맘대로 막 다닌데요오?
인상 쓰는 해운.
덕구모 ; 아이이 아, 알았어요오..
30. 순금모 방 (낮)
순금모 ; (한복차림으로 다소곳이 앉아서, 약간 조바심내는 어투로) 저.. 내내 기다렸어요오. 저.. 내말, 순금이 아버지한테 전해줬어요?
인옥 ; (자르듯이) 그럼요.
순금모 ; 뭐라고 그래요오?
인옥 ; (시선 피하며) 우선 몸조리 잘하라고오, 걱정 해줬어요.
순금모 ; (걱정되어) 그사람.. 지금 뭐하고 있어요? 잘 지내나요?
인옥 ; 그럼요. 고물상 아저씨하고 심심풀이 화투 치면서어..
순금모 ; 고마워요오 인옥씨.. 또 와줄거죠?
인옥 ; 그럼요. 갈게요. (외투를 챙겨 일어서려 한다)
E (진경) ; 엄마아!
긴장하여 방문을 보는 인옥과 순금.
31. 마당 (낮)
마당으로 걸어 들어오다가 마루앞 댓돌에 놓인 인옥의 빨간구두를 보고 긴장하여 멈춰서는 진경.
32. 마을 (낮, 회상)
쎄리 ; 어허, 너구나아? 쏙 뺐네에..
33. 마당 (낮)
싫은 표정인 진경.
마루 끝에 나와 서는 진경모와 인옥.
진경모 ; (반가워서) 어서와라아, 우리딸알.. 허허.
인옥 ; 어서와아.
진경 ; 엄마, 양공주가, 왜 자꾸 우리집에 오는 거야! (돌아서 나가버린다)
슬픈 표정의 인옥과 의기양양한 표정의 진경모.
34. 세운당 마당 전경 (밤)
35. 진경방 (밤)
진경 ; (침대에 누운 채) 졸려어.
진경모 ; (옆에서 이불을 정리해 덮어주며) 추운데 걸어다녀서 그러지이. 향자는 내일 불러올거니까, 염려하지 말구우.
진경 ; 응. 근데.. 새언니는 왜 그런 여자랑 친구야아?
진경모 ; 그러게나 말이다.
진경 ; 양공주도 싫지만, 식모주제에 우리집에서 돈 훔쳐 갔다는게 더 싫어.
진경모 ; 나쁜애는 아니야아.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된거지. (진경을 다독여 잠재우며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진경, 눈감고 잠들었다.
36. 순금모 방 (밤)
옆으로 누워있는 순금모.
진경모 ; (상자 들고 방으로 들어서서 앉으며, 일어나려는 순금모에게) 아유 앉아있어, 먹지도 못하면서 잠이라도 자야지. 임산부가 그러면 되겠니이? (상자를 순금모에게 주며) 자 받아라, 니꺼 도로 돌려준다아. 열어봐.
순금모, 상자 열어보면, 보석이다.
진경모 ; 안에들것까지 다 확인해봐. 애 나아 기르면서, 국으로 보석치장이나 하면서 살어어. 너 절대로 도망 못간다. 한치수가 얼마나 무서운놈인지, 짐작은 하니? 그동안 너한테는.. 봄바람 같았지. 인제 당해봐라. 얼마나 차고 매정한 놈인지. 바보 모지리. 넌 한치수가 왜 인옥일 이집에 드나들게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니?
순금모 ; 가엾잖아요.
진경모 ; 그래에, 허어. 너한테 붙었다가, 한치수한테 붙었다가.. 이젠 식모살이라도 하겠다고, 나한테까지 엎어지고. 지딴엔 치열하게 발악을 한다마는.. 그러면 뭐하니? 막상 진경이가 벌레보듯 하는데,
생각하는 순금모.
37. 마루 (밤)
잠옷차림으로 마당에서 마루로 올라와 안방으로 가는 진경.
진경 ; (작게) 엄마아.. (안방문을 열어본다)
38. 안방 (밤)
안방문 열고 들여다보다가 닫는 진경.
39. 마루 (밤)
진경, 방문 닫고 다시 마루를 걸어 건넌방 앞에 가 선다.
E (진경모) ; 너, 진경이한테..
멈춰서서 귀 기울이는 진경.
40. 순금모 (밤)
진경모 ; 출생의 비밀 같은거 말할건 아니지? 어휴유. 그 어린것이 얼마나 무섭고 아파할지.. 내가 그생각하면 잠이 다 안온다.
순금모 ; 어머니, 세상에 비밀은 없어요.
진경모 ;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41. 마루 (밤)
듣고 있는 진경.
E (진경모); 그 양공주가, 지 생모라는걸, 어떻게 말하니? 진경인 절대로 알게 해선 안돼에.
놀라서 돌아서는 진경.
42. 진경방 (밤)
침대에 옆으로 누워 생각하는 진경.
E (진경모); 그 양공주가, 지 생모라는걸, 어떻게 말하니? 진경인 절대로 알게 해선 안돼에.
문 열고 진경모 들어온다.
눈감는 진경.
침대맡에 앉아 진경의 이불을 덮어주는 진경모.
E (나레이션) ; 진경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잠에서 깨고 나면, 없던 일이 될거라고, 이건 아주 나쁜 꿈이라고, 열심히, 잠을 청합니다.
43. 강가 전경 (아침)
갈대숲이 보이다가 강 건너에 눈이 쌓인 강가 전경.
새소리 점점 커진다.
44. 순금방 (아침)
벽에 기대어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있는 우창.
순금 ; (이부자리에서 자다 일어나 앉으며) 밤새 그라고 앉아 있었던겨? 이부자리도 안깔고?
우창 ; 너네 아부지도 이틀째 안들 오셨는데, 걱정도 안된?
순금 ; (일어서 이불 개며) 으이그, 하루 이틀도 아니고... 울아버지는, 원래 정초엔 얼굴보기 힘들당께.
우창 ; 나도 너같이 뱃속이 편해봤음 좋겠다.
순금 ; 나가 이 봉놋방 첨 왔을 쩍에두우, 그 짝은 맨날매칠 아부지만 기달리고 있잖혀? 두분이 암시랑토 안케, (두손모아 기도하듯 하며) 창아.. 허시먼서 돌아오시겄제에.
약간 위로받는 우창 표정.
45. 주모방 (아침)
둥근 작은 상을 중간에 두고 둘러앉은 떡국을 먹는 미자, 향자, 순금, 우창, 주모.
향자 ; (숟갈 놓고 불만스러운듯) 이게, 떡국이예요?
미자 ; (숟가락 들고 불만스런 표정으로) 흰자 노른자, 지단 붙여서, 고명 안 얹어요?
향자 ; 육수낸 고기도 쪽쪽 찢어 넣고, 김가루도 솔솔 뿌리고오..
주모 ; 이틀씩이나 재워줬더니 이것들이 호강엘 겨워 요강에 똥을 싸는구나아. 뭐어? (미자의 떡국 그릇 뺏으며) 쫓겨난거 불쌍해가지고 거둬줬더니, 뭐어? 육수낸 고기? 김가루 소올솔? (수저 들고 미자와 향자 때리려하며) 나가! 나가 이것들아, 당장 나가! 이런 꽤씸한 거 겉으니라고.
기겁하여 나가는 미자와 향자.
어쩌나 싶은 순금.
46. 주막 마당 (아침)
방에서 나오는 미자와 향자.
미자 ; (주머니에 손넣고 마당으로 걸어나와 서서 향자보며 비난하는 어조로) 그냥 먹을것이지, 고기에 김가루 얘기는 왜 해?
향자 ; 고명 타령은? 언니가 먼저 했거드은.
순금 ; (나와 가운데 서며) 어후우, 시방 요러고 있음 워쩔 것이여어? (손바닥을 마주대고 비는 시늉을 하며) 가서 용서를 구하든, 뭐든 해봐야 할거 아니여어?
미자 ; 우리마님 성질을 몰라서 그런 소릴 하냐아? (고개 절레절레 흔들며) 난 못가.
순금 ; 아따 답답시런거어..
향자 ; (절실하게 울먹이며) 순금아, 니가 같이 가주먼 안될까아?
순금, 혀 약간 내밀며 난감한 표정.
47. 세운당 마당 (낮)
마당에 선 순금과 그 옆에 보따리 들고 주눅들어 나란히 선 미자와 향자.
마당 한켠에 선 덕구모.
엄한 표정으로 마루 끝에 와 서는 진경모.
순금 ; (양손 모아 공손히 앞에 두고, 진경모 보며) 지가, 세운땅에 온지는 얼매 안되었지만서두, 세운당이 요 고장서 제일 가는 가문인 것은, 봐서두 들어서두 아는구문유우.
진경모 ; (매서운 표정으로 서서) 그런데?
순금 ; 지는 장똘뱅이라아.. 아는 것은 짜르지만서두유, 그.. 뭣이냐아.. 어른들 말루다, 관대고 관대하다는건..
48. 순금모 방 (낮)
순금모, 앉아 있다가, 순금 목소리를 듣고 방문 앞에 서서 듣는다.
E (순금) ; 세운당 마님맨키로, 신분있는 분이 허는거라고 생각해라아. 엄동설한에, 개도 내쫓지 않는 법이잖혀라아..
49. 마당 (낮)
아이들 뒤에 와 서는 세운당 사장.
순금 ; 명망 있는 세운땅서, 애린 식모를, 참말로 내치시진 않았을 것인디.. 미자언니랑 향자느은.. 참말로 내친신줄만 알고 못들어오길래, 지가 댈꼬 왔시라아..
덕구모 ; 제가 원래 저래요오. (손들어 순금에게 다가와 쥐어박고는) 야, 여기가 어느안전이라고 버릇없이.
진경모 ; (나무라는 어투로) 자네는 뭐하는 사람인가아?
덕구모 ; (의아하여) 네에? 저 저요오?
진경모 ; 부끄러운줄 알게. 어째 애만도 못하나아. 미자 뭐하니? 얼른 행주부터 삶지 않고.
미자 ; 네에. (부엌으로 들어간다)
향자 ; (손들어 인사하며) 순금아, 잘가아. (부엌으로 따라 들어간다)
순금 ; (인사하며) 그라먼 안녕히 계시라아.. (돌아서 가려는 순금)
진경모 ; (순금 부르며) 너어! 새아씨께 세배는 했던가아?
순금 ; (의아하여) 야아?
나가려다 멈춰서서 표정 굳는 세운당 사장.
진경모 ; 들어가 보거라아.
50. 순금모 방 (낮)
순금모, 방문에서 걸어와 방 중앙에 선다.
순금 ; (방에 들어와서 꾸벅 인사하며) 안녕하신게라아?
순금모 ; (표정 환해지며) 아, 순금아아..
순금 ; (미소 띠고) 아씨이..
순금모와 순금의 밝은 표정 번갈아 보인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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