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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인문학 특강> 왜 사회학 강의는 없을까?

 

  <ebs 인문학 특강>을 보고, 왜 사회학 강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 삶에서 사회란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  지금 우리 사회는 친일파, 친미파, 친북파, 친중파 등이 뒤엉켜 친한파는 힘을 잃고 있다.  사회가 개인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는 다들 아실 것이다.  뮌헨을 그리워하다가 세상을 떠난 전혜린도 현대에 살았다면, 엘리트로 아주 잘 살았을 수 있다. 

 

  나의 삶만 봐도, 그러하다.  예전에 내가 연하를 좋아할 때는 무슨 죄를 짓고 감옥에 갈 것만 같았건만, 오늘날은 연상연하가 대세다.  사회가 바뀌니, 같은 사람이라도 동일한 일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다.  그러니 사회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그 강의가 빠져 있다. 

 

 

  이 혼돈의 시대를 소상히 밝혀줄 특강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 지를 말하지 않고는 안된다.  우리나라는 유교적 봉건 조선시대에서 일제 식민지를 거쳐 서서히 친미 식민지로 변화해 가는 중이다.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란 하나의 국가를 유지할 지 말 지는 의문이다.  지금 현 사회를 본다면, 친미파, 친일파, 친북파, 친중파에 의해 끊임없이 사람들이 분열되고 있다.

 

 

  이 특강을 듣다 보니, 예전에 가졌던, 철학은 고리타분하고 비현실적이란 생각을 바꾸게 된다.  인기 있는 철학자들이 탄생했던 시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돈의 시대였다.  여러 세력이 뒤엉켜 갈피를 잡을 수 없던, 또는 새로운 문명이 생겨나 기존 가치와 충돌할 때 가장 철학은 발전했었다.  아마도 지금 우리나라가 그런 혼돈의 시대이므로 철학이 필요해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특강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니체다.  니체라는 사람, 그렇게 자신이 진리에 통달했다면 왜 자살을 했는가?  어느날 부친의 책상에 놓여 있던 실존주의책을 읽고 나는 그것에 몰입했었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는 니체라는 사람이 싫어졌었다. 

 

  실존적으로 살라고 해놓고 자기는 왜 자살을 하는가?  그렇다면 결국 이 사회에서 실존적으로 산다는 것은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자살로 마감하는 삶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 니체 특강을 듣고 나니 그가 이해가 된다.  그는 말년에 시력을 잃는 신체적 괴로움에 빠졌다.  그러니 계속적으로 산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겨웠던 것이다.  그러니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니었겠나?

 

 

   이 니체 특강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는 <낙타, 사자, 어린아이로서의 삶> 부분이다.  아이를 낳아 놓고 학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나도 나 좋을대로 자유롭게 살았고, 요즘 젊은 사람들도 자유로운 교육을 받았는데, 왜 저들은 나와 다른가? 를 생각해 보았다. 

 

  그랬더니 차이점은 그들은 낙타로서 고된 짐을 지고 그 짐을 이행하는 망치를 든 삶을 살아보지 않은 것이다.  망치를 들고 힘겨운 의무를 매일매일 수행하는 삶을 살아본 연후에야, 상황이나 사회에 분노하는 사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 망치적 삶을 살지 않고 사자로서의 삶부터 산 사람이, 다시 망치를 들려니 힘겨운 거였다.  그러니 인간의 삶이란 망치, 사자, 어린아이로서의 삶이 되어야 제대로 사는 것이란 니체의 견해에 동의하게 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말초적 행복만을 추구하면 끝이 없다.  말초적 감각은 더욱 강한 자극을 요구하고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니 권력자가 만일 성욕을 추구하게 되면 더더욱 방탕한 생활, 더 자극적인 것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연구하며 그렇게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음식, 여행, 옷이나 쇼핑 등도 결국 그것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나의 행복을 그런 일차적인 욕구에서 찾게 되면, 끊임없이 더 많은 돈을 추구하고 그 돈으로 그런 1차적 욕구의 더 큰 만족을 추구하지만, 마음은 공허해지고 진정한 행복에 닿기가 어렵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세상의 본질을 꿰뚫는 어떤 시각, 판단력을 가지게 되면, 지금까지 우물안 개구리적 하늘이 넓어지면서 뭔가 뇌리가 뻥 뚫리는 희열을 경험한다.  그때부터는 같은 일상을 산다해도, 세상을 아는 나의 행복은 더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일차적 욕구에 몰입하지 않고도 적은 돈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세상은 무엇이며 나는 이 세상 가운데 어떤 존재인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허무감을 덜 느끼게 되고 더더욱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인문학 특강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인문학 특강이 결국은 이 나라에서 가장 피해를 본 우리 세대를 달래는 수단 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이 인문학 특강에 사회학 강의가 빠져 있는 이유이다.  결국 세상은 우는 아이 젖 준다.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울지 않는 중간층에게는 혜택이 없는 것이고, 저 아래층도 울지 않게 하기 위해 특강이며 기타 교육을 하는 것이다.

 

 

                                                               ★★★★☆